왜 회개하라고 하는가 -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왜 회개하라고 하는가 -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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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죄인이라는 말과 회개라는 말에 알러지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너나 죄인해라. 나는 죄 지은 것 없다. 바보들” 이런 응대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 왜 내가 근본적인 죄인인가? 죄는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 같은데, 왜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나도 자동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원죄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죽였으니, 죄인인 것은 맞겠는데, 나는 다른 사람 때려본 일도 없고, 사기친 일도 없는데, 왜 무조건 회개를 하라고 하는가? 교회는 왜 사람을 다짜고짜 죄인 취급하는가? 좀 기분 나쁜 일 아닌가?
교회 다니고,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들까지도 일단 인정은 했지만, 그 후(?)로도 내내 생각 속에서 뭔가 정리되지 않고 뭔가 의문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도는 것을 느낍니다.
왜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인정? 이건 억울하기도 하고 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고하게 잡혀가 취소실 안에서 부당한 공권력 앞에서 거짓 자백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인정이라는 과격한 말보다는 영적인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구나 하는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인정하고(?) 인정을 이해 수준으로 좀 낮춰 볼까요?
인정이라는 레벨보다 낮추어서 이해라는 차원에서 한번 접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정은 영적인 차원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건방지게(?) 따질일이 아니라 납작 엎드려 순종해야 할 일이지만, 창조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억지가 없을테니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보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같이 살면 아이가 생깁니다. 부모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자라는 동안 전적으로 부모에게 삶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도 않고, 무례하게 군다면 부모의 시각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은혜도 모르고 감사도 모르는 아이가 그래도 마냥 이쁘기만 할까요? 인애가 많은신 창조주는 그런 무례함에도 오래 참는 모습이 성경에 보이지만, 인간 부모는 그런 오만방자한 행위에 분노를 감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가 자기 어머니의 자궁에서 정말 나왔는지, 저 분들이 정말 내 부모인지 증거를 가지고 있거나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분들이 부모인 것은 부모님이 부모인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그들이 부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동사무소에 신고한 출생신고서와 호적등본을 떼어보고, 다시 말해 부모들이건 남이건 누군가 그들이 부모인 것을 말해주지 않고는 부모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다시 돌아와 생각을 해보면 피조물은 자기가 창조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너는 창조된 피조물이고, 너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주는 성경을 통하여 창조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소식을 들어본 일 없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라고 사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게 교회 다니고 믿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창조주가 있다라는 소리를 들은 피조물이 그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도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앞서 이야기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무례한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으로는 그야말로 큰 죄입니다.
인간적으로 무례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어이없고, 분노가 느껴지고, 분함도 있지만, 만약 그런 후안무치한 양아치같은 자식이 어느 날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부모 앞에 나와서 무릎 끓고 사죄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그 자식을 백번 받아들이고 용서하지 않겠습니까? 분했던 마음은 눈녹듯 사리지고 춤추고 잔치라도 벌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는 회개가 되고,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이고, 창조주의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그를 향한 찬양과 감사의 노래가 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기고, 찬양하는 일련의 영적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 공원의 선악과
어린 시절 교회에 가서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마음에도 “주님은 왜 그런 사과를 만드셔가지고?”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주만물을 먼저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네 마음대로 맘껏 하라고 통째로 주십니다. 다만 한 가지만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 그건 그냥 동화적인 사과 이야기 하나가 아니라 정말 선악과 사건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순종이라는 하나의 의무를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강하고 제멋대로 살고 싶어하는 인간에게는 순종이라는 것이 상하 복종 관계이고, 훈장이 아니라 떼어내고 싶은 계급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순종, 하지만 창조주의 입장에서 그걸 만든 것은 피조물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고, 대화를 끊고 싶지 않은 창구같은 역할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이어진 끈, 그 끈을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끊어버리고는 사람들은 숨어버리고 맙니다. 주님과의 소통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은 창조주의 헌법에서는 가장 큰 죄악입니다. 헌법 1조 1항을 범한 죄입니다. 창조주, 신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신으로 삼은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주님이 사람과의 소통에 얼마나 목매었는지는(?) 성경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순종하지 않는 죄를 저지른 것이고, 소통의 선을 끊은 죄를 사람이 창조주에게 저지른 것입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부모를 능욕한 영적인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럼 왜 조상이 범한 죄를 후대에 태어난 나까지도 원죄라고 하면서 뒤집어써야 하는 것인가?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정당하지 않고 타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창조주의 피조물에 대한 갑질로 여겨지는 일입니다. 전혀 동의하거나 순종하고(?) 싶지 않은 대목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식물이나 로봇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주님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위대하고 놀라운 지혜를 가진 창조주는 어린아이 품에 안겨진 헝겊인형처럼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창조의 능력과 천사의 능력만을 제외한 모든 능력을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과 소통하길 원하셨습니다.
사람이 그런 고성능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뭐든 행할 수 있는 능력,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능력, 원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천사들이 창조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원죄를 짓기 전에 이미 창조주의 뜻을 거역한 악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창조주는 그런 피조물을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창조주의 뜻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따져물을 일은 아닙니다.
창조주를 반역한 세력은 동네 양아치들이 세력을 키우기 위해 뭐든 하는 것처럼 창조주에게 더 발악하기 위해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고, 선악과로 사람을 죄에 빠뜨렸습니다. 마약 사범들이 다른 마약 중독자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유혹이 다가왔을 때, 그걸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창조주의 권리가 아니고, 피조물인 사람의 권리입니다. 선(창조주)과 악(창조주를 거스른 세력)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죄로부터 분리된 세상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악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거부하는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유혹이 다가왔을 때 그걸 거부하거나, 선과 악을 구별하여 현명하게 대처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창조주의 도움이 필요하고, 창조주와의 회복이 필요하고, 창조주와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누군가 창조주를 말해주기 전에는 창조주를 알 수 없는 인간, 창조주를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 부모를 무시하고 산 아이들처럼, 주님을 모르고 산 것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가야 된다는 말은 영적으로 전혀 황당한 소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주님을 창조주로 깨닫고, 회개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는 것, 그것은 영적인 근본 원리이고, 당연한 사이클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정말 세상이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사람이 진화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정말 창조가 맞다면 지금까지 한 소리가 맞겠지만, 그게 아니면 헛소리 아닌가?
그렇습니다.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창조주를 알 수 없듯이, 내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처럼, 창조를 누군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창조를 믿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창조는 창조주가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서 “내가 세상을 창조했다.”라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패륜아처럼 피조물이 창조주를 우습게 아는 패륜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말 그대로 이론일뿐이다. 그것도 완전히 거짓 이론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창조가 진실이고 진리이고, 창세기 1장 1절이 정말로 창조주가 피조물인 사람에게 들려준 창조주의 말씀이란 것이 증명이 되는 건가요?
진화론은 창조주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신으로 삼은 극악무도한,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죄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살고 싶어 만든 이론이 무신론이고,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이 거짓이고 창조가 진리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링크를 아래에 달았습니다.
<링크> 연속적인 변화의 증거가 없다면 진화는 거짓이 아닌가? - 화석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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