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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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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매뉴얼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자동차를 사면 글러브 박스(glove box) 안에 사용자 매뉴얼(owner’s manual)이 있습니다. 운전석 앞과 차량 내부에 있는 각종 버튼과 스위치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페어 매뉴얼(repair manual: 정비 매뉴얼)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미캐닉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자동차가 고장났거나 일상적인 유지관리 보수를 할 때, 매뉴얼을 보고 그것에 나와있는 내용에 따라 작업을 하면 됩니다. 작업 안내서로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엔지니어가 설계하고 그 설계도를 보고 쇠를 녹이고 깍고 하여 부품을 만들고 부품들을 조립하여 자동차라는 제품을 완성합니다. 설계를 사람이 했기 때문에 사람이 알아보고 그것에 따라 작업할 수 있는 정비 매뉴얼을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설계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을 자동차와 같은 기계와 견준다는 아이디어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치고, 사람이라는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그걸 만든 이는 누구입니까? 설계자는 누구입니까? 설계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을 자동차라는 사람이 만든 제품과 비교한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가설일지 모를지만, 사람을 설계한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백번 타당한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거짓말이고, 유기물에서 세포가 형성되고, 그것이 식물이 되고, 동물이 되고, 물고기에서 포유류가,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세상 웃기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박사들 99%가 그런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것은 비웃음당할만한 일입니다. 세...

한국 교회의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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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퇴행 밴쿠버에서 교회에 다니다 보면, 대형 교회는 예배 끝나면 그냥 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로 돌아갑니다. 그에 반해 교인 수가 적은 조그만 교회는 일반적으로 다과 시간을 갖습니다. 다과의 공간을 보면, 남녀가 같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 따로 모이고, 또 나이도 같은 또래별로 모입니다.  그중에 나이많은 남자들이 모인 테이블에서 스멀스멀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의 정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거의 백프로 한국의 보수, 극우보수를 지지하는 내용이고, 민주당을 빨갱이로 모는 이야기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해외로 이민 나온 사람들은 죄다 과거 한국의 군부 독재 극우 권력 카르텔의 끄나풀과 연결된 사람들뿐인가요? 석렬이 쿠데타 사건을 보면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식겁을 하고 경악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석렬이 탄핵을 앞두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고 놀란 것 중에 또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이었습니다. 이게 양아치인지 목사인지 알 수 없는 목사란 것들이 나와 폭력선동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 기독교는 뭔가? 교회 목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한국에서 기독교는 없어져야 하는 종교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한국의 기독교, 교회,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고, 목사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의 신앙도 제대로 된 신앙인지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뜻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신앙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국 기독교의 신앙은 죽은 믿음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살게 되면서 신앙이 무너지게 되는 것인데, 교회가 권력에 붙으면서 이권을 추구하는 모습은 완전히 망한 모습입니다. 기복신앙이라고 하면, 못 배우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할머니들이 가진 신앙인줄 알았더니, 살면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좋은 학교 나오고 잘 사는 사람들이 기복신앙의 맹주들입니다...

부와 권력의 천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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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의 천박함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니 거의 전부 다 사람들이 자기를 돌아볼 줄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Mt 7:3, NIV]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제일 나쁜 것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루라도, 아니 잠시라도 남을 평가하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온갖 일과 시스템이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끝을 맺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 머리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사람 스스로가 그런 것을 만들었고, 그 폐해가 처음으로 크게 일어난 것이 가인과 아벨 사이의 살인 사건입니다. 사람은 여러가지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잣대로 스스로가 자기자신까지도 평가하여 높아 보이는 기준으로 자기를 끌어올리려고, 자기가 원하는 스펙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사람들이 스펙을 쌓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부와 권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를 쌓은 사람은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그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부와 권력에 눈이 멀게 되니, 부와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개무시합니다. 그런 풍조가 사람의 존엄성마저 무너뜨렸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애완견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 풍조에 빠진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지...

빅뱅과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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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과 블랙홀 현대 천문학자들이 주장하는 두 개의 큰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빅뱅이고, 하나는 블랙홀입니다. 빅뱅은 상식적으로도 엉터리인 구석이 많습니다. 초기 큰 폭발로 우주가 생성이 되었다면 초기에 형성되었을 멀리 있는 은하와 가까이 있는 은하의 모습이 뭔가 좀 달라야 할 것 같은데, 모든 은하들의 기본 모습이 동일하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의문점이 많은데, 빅뱅으로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주 전체의 모습이 설계되고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궁금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블랙홀, 빅뱅은 단번에 어설픈 가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블랙홀은 속된 말로 좀 아리까리(?) 합니다. 사실 천문학자들도 그걸 본 적이 없고, 아직도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블랙홀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들을 보면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찍었다는 블랙홀의 모습도 블랙홀을 직접 찍은 것은 아니고, 블랙홀 주변 우주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건방지게(?) 블랙홀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인용하는 성경 내용은 역대하의 내용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하늘들의 하늘”이라는 문구를 이용하여 블랙홀이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하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Ch 6:18, NIV] "But will God really dwell on earth with humans? The heavens, even the highest heavens, cannot contain you. How much less this temple I have built! 블...

거짓과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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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조작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을 때, 그것이 당시 학계에서 바로 뜬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 그의 책이 폭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어설픈 한 이론에 불과한 그것이 진리처럼 취급을 받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종의 기원을 지지하는 이론이 진화론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진화론이 원래 진리가 아니고, 이론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잘못된, 거짓된 이론에 불과하다보니, 그것을 지지하기 위해 나오는 이론들도 전부 거짓 이론들 일색입니다. 심지어는 그게 거짓이다보니, 정말 처럼 보이고 자신의 이론이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일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Recapitulation Theory 1866년 독일의 무신론자이고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에 의해 발표되어 대중화된 가설입니다. 수정란에서 성체로 발달하는 과정, 다시 말해 개체발생(ontogeny)은 계통발생(phylogeny)을 되풀이한다, 즉 종의 진화 역사를 반복한다는 주장입니다. “Ontogeny recapitulates phylogeny.” 지금은 신빙성 없고, 증거로 제시된 그림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간혹 지금도 무식하게 이 가설이 이론으로 인용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이론의 핵심은 수정란이 자라는 배아 발달 과정을 보면 초기 단계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분화하여 가며 진화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정란이 세포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에 의하여 정해진 완전한 개체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초딩들도 아는 사실입니다. 헤켈은 엉터리 이론을 주장하면서 그림을 한 장 내놓는데, 자기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하여 그림을 서로 비슷하게 조작을 한 것입니다. 만물은 저절로 생겨 자기 마음대로 분화하고 진화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설계대로 만들어지고 그의 설계 대로 대를 ...

무지함의 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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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함의 소치 진화론은 무지(無知)의 소치(所致)입니다. 인간의 지식의 한계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물이 만들어진 이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아는 척하며 이론이라고 만들어 낸 것들이 거의 전부 거짓말입니다. AI(구글 Gemini)에게 미국의 학계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보니,  충격적인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미국의 학자들 98%가 진화론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래 문답은 AI와 나눈 결과물입니다. =============== 미국의 학계에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가? In the American academic community, the overwhelming majority of scientists support the theory of evolution. 98% of scientists connected to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 state they believe humans evolved over time. This figure has remained consistently high over the past few decades. A 2009 Pew Research Center study found that 97% of scientists agreed that humans and other living things have evolved over time. Among biologists specifically, the acceptance rate is likely even higher, converging very closely to 99%. It's important to note that while public acceptance of evolution in the United States is lower than the scientific cons...

삼손을 모르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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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을 모르는 세대 옆에서 일하는 에릭, 백인 청년입니다. 덩치가 산(山)만하고, 덩치가 큰 만큼 힘도 엄청납니다. 그리고 덩치 큰 이 친구가 머리를 기릅니다. 일할 때는 머리를 뒤로 묶고 일을 하는데, 한번은 다시 정리하여 묶으려고 머리를 푼 모습을 보니, 구약에 나오는 삼손이 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릭, 너 삼손 같다.” 그랬는데, “뭐? 뭐라고?” 예상 못한 답이 들려왔습니다. 순간 멘붕에 빠진 것은 에릭이 아니라 삼손 이야기를 꺼낸 저입니다. 삼손을 영어로 삼손이라고 하지 않나? 삼손을 영어 발음으로는 어떻게 하는 거지? 영어로도 삼손 맞는데, 내 혀가 덜 꼬부라져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가?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마침 옆에 잭이 있어서, 잭에게 “너 삼손 알아?” 물었더니, 잭도 모릅니다. 잭도 백인 청년입니다. 그래서 노트북으로 삼손을 찾아보니, 영어로도 Samson입니다. 그걸 보고도 여전히 둘이 모두 삼손을 몰라서 구약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다음날, 일하는 도중에 에릭이 느닷없이, “나 삼손같이 생겼어?”라고 어설픈 한국어로 물어봅니다. 제가 옆에서 가르쳐준 덕분에 한국말 몇마디를 어설프게 할 줄 압니다. ‘어! 삼손을 몰랐던 놈이 한 번 이야기해준 걸로 삼손을 기억한다고?’ 이러면 제가 고구마 전도사같이 날 고구마에 한 방 찌른 거 맞지요? 오늘 제가 전도한 건가요? 삼손은 구약,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에 나오는 사사 중에 한 명입니다. 주님이 그에게 큰 힘을 주셔서 삼손은 힘 센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삿15:15-16]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Jdg 15:15-16, NIV] 15 Finding a fresh jawbone of a donkey, he grabbed it and struck down a thous...

심장이 기억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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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기억하는 사람 밴쿠버에 중국 사람들이 참 많이 삽니다. 특히 웨스트 밴쿠버에도 중국 사람들이 엄청 많이 삽니다. 중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돈 싸들고 밴쿠버에 와 수백만불짜리 집들을 그냥 마구 사재기를 하니, 그 바람에 밴쿠버의 집값이 엄청 올랐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조신하지 않고 몸 사리지 않고 그냥 와글와글 삽니다. 요즘은 전처럼 무식하게 주변 분위기 가리지 않고 정말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많이 없어져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단기간에 많이 발전했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의식수준이 상향 조정이 되어서 그런 건가요? 요즘 중국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있으면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헤어스타일, 옷매무새, 화장같은 것이 한국화되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동양인을 보면 일단 중국 사람으로 인식을 합니다. 그런데 밴쿠버에 살다보니, 한국 사람눈에는 중국사람과 일본사람이 대충 구분이 됩니다. 중국 사람은 사람과 마주치면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냥 보무도 당당하고,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면 백프로 중국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일본 사람은 움츠려들고, 피하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럼 한국 사람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한국 사람은 저 놈이 어떤 놈인지 파악하려는 눈치 게임을 하는 분위기를 보입니다. 아시아 인접 3개국의 국민성에 보이지 않는 뭔가 확실한듯 아닌듯 한 차이가 분명 있습니다. 웨스트 밴쿠버의 시립 도서관으로 메모리얼 라이브러리가 있습니다. 동네 도서관 치고는 규모가 있고, 내부 공간도 꽤 넓습니다. 그리고 입구 쪽에 조그만 찻집이 하나 있습니다. 책을 읽다 책이 내는 먼지에 목이 칼칼해지면 차나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습니다. 그곳 도서관 카페를 중국 여자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그 도서관 찻집에서 차를 주문한 일이 있습니다. 카페인이 없는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 루이보스(Rooibos...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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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 대통령 윤석열이 불쌍해서 지난 밤 잠 못 이루고 울었다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 “대통령이 왕인데, 왕은 하나님이 점지해주는 분인데, 그런 분을 어떻게 탄핵을 하고 파면을 할 수 있느냐? 너무 슬프다. 옛날에는 왕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는데, 국민들이 왜 그렇게 빨갱이 짓을 할 수 있느냐?” 뭐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왕입니까? 왕의 폭정에 이기지 못해 18세기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이 일었고, 왕정을 없애고, 수백년간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르며 탄생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그런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요? 왕을 주님이 점지해주셨다는 말은 구약에서 선지자를 통해 사울왕에 이어 다윗왕을 점지해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그런데 사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왕정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왕으로 인해 고통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두기를 원합니다. [삼상8:6-9]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Sa 8:6-9, NIV] 6 But when they said, "Give us a king to lead us," this displeased Samuel; so he prayed to the LORD. 7 And the LORD told him: "Listen to all that the people are saying to you;...

현대판 이세벨이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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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이세벨이 한국에 석열이를 대통령 만들었던 대한민국, 정말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실수들 중에서 단연 탑입니다. 근현대 역사를 통털어 아마도 가장 큰 실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 이후에 친일을 척결하지 못했고,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독재를 펼친 정권들 때문에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근현대사가 피로 물들었습니다.  이후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는가 싶었는데, 군발이도 아닌 석열이 놈의 쿠데타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수십년 빠꾸(back) 오라이 했습니다. 이번 석열이 탄핵 사건을 통해 나타난 탄핵반대 세력의 행동들을 보면서 친일과 군사독재의 뿌리가 얼마나 한국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그로 인한 해악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반국가 세력에 정신나간 기독교 세력까지 합세하고 있는 현실은 정말 너무나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석열이가 이렇게 위험한 사이코인줄 미리 알았더면 문재인의 정치적 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고 해도 석열이를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놈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헛소리하는 것에 홀딱 넘어가 강골이라고 오판하고 검찰 총장에 올린 것이 아주 큰 패착이었습니다. 그 놈은 강골은 커녕 조현병적 성격장애가 있는 놈이었을 뿐입니다. 석열이뿐만 아니라 그 놈 와이프는 석열이보다 더 가관입니다. 성경 구약에 나오는 아합왕의 와이프 이세벨 수준입니다. 악녀 중의 악녀, 마녀였습니다. 잡신을 믿는 것도 꼭 빼어 닮았습니다. 정말 근본을 알 수 없는 여자입니다. 어디서 놀던 지도 알 수 없는 접대부 계집을 대통령 영부인으로 한국인들이 맞이했던 것입니까? 석열이를 대통령으로 뽑은 한국인이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놈들이나 오십보백보입니다.  [왕상21:25-26]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없었는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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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는데 생겼다 “해라.” “해도 된다.” “하지 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하면서 이들이 주님께 들은 말은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것들입니까?  “해라.” 이건 뭘 하라는 명령입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같이 뭘 강제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주님이 이들 부부에게 그렇게 의무를 부여한 말씀은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지내라 처럼 그런 의무 사항이 없습니다.  “해도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너에게 주니, 맘껏 다스리고 마음껏 먹어라. 즉, 놀고 먹어라 혹은 먹고 놀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초기 직업은 홈리스였습니다. 의무 사항이 없으니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필요도 없고, 납세의 의무도, 제사를 드리는 의무도 없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입은 가죽옷을 위하여 짐승을 잡을 때 그게 제사일 수 있지만 그것도 이들 부부가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주님이 지어 입히신 것으로 나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Ge 3:21, NIV] The LORD God 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 “하지 마라.” 이들 부부에게 의무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해서는 안되는 일은 주님이 지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신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라.” 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농사 일이야 뭐 하든 하지 않든 자기 맘이고, 하지 않으면 굶는 것이고, 그러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건 반강제적인 일일지 몰라도, 제사는 해야 할 의무 사항이 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그 죄를 직접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려가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신 십자가 사건이 벌어져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죄의 부담을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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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찬송가 304장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단순하고 쉽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마음에 들게 부르고 있는 동영상을 찾아보는데 쉽지 않습니다. 이 찬양은 단순한 멜로디이고 그래서 부르기 쉽지만 막상 직접 부르려고 하면 악보대로 정확히 부르기 쉽지 않은 찬양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불러야 은혜가 되기 때문에 악보를 정확히 숙지하고 자칫 틀리기 쉬운 그 부분들에서 박자를 정확하게 쳐주고 넘어가야 찬양이 멋지게 들립니다. 아래 동영상은 백점만점에 백점은 아니지만, 이 찬양에서 제가 원하는 부분이 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찾아본 영상 중에서는 악보에 가장 충실한 동영상이고, 꽤 잘 만들었습니다. 이 찬양 악보 잘 숙지하고 가사 전부 외워두면 정말 언제 어느 때고 은혜롭게 혼자 혹은 여럿이 부르기 참 좋은 찬양입니다. 아래 악보 중에서 주의할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두 음표 사이에 쉼표가 없습니다. 가사의 두 문장이 이어지는 부분이지만 그냥 8분 음표로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개의 동영상의 경우, 떼창을 유도하며 쉽게 부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 사이에 마치 쉼표라도 하나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앞 음을 길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주의할 부분은 초록 색으로 표시한 부분과 파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인데, 앞의 것은 한 음(4분 음표) 플러스 반음(8분 음표)이고, 뒷 부분은 한음 플러스 한음이어서 앞뒤가 끌어주는 음의 길이가 다릅니다. 연습하여 악보대로 부르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절의 가사가 스토리 전개가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에 몇번 불러보면 가사가 절로 외워지는 찬양입니다. 여럿이 모여 악보 보지 않고 악보대로 음길이 맞춰가며 부르면 꽤 멋지고 은혜가 되는 찬양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에델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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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인터넷 공급망을 광케이블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에 인터넷을 공급하고 있는 텔루스도 4월초에 현재 공급되고 있는 전화선으로 공급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중지할 것이기 때문에 광케이블 선으로 교체하는 일정을 잡으라는 공지를 내었고, 그걸 4월초 오늘로 잡았고, 오전에 그 공사를 했습니다. 이제 광케이블로 서비스되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첨단 유저 대열에 줄을 섰습니다. 텔루스 광케이블 인터넷 광고에서 보던 둥근 통 모양의 모뎀이 우리집에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 첨단 도시에서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원시림 숲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숲과 도시와 바다와 강과 호수와 스키장이 공존하는 도시에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게 밴쿠버에 사는 맛입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없는, 캐나다에는 동네마다 있는, 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오급 수영장에 가서 푸카푸카 수영도 할 수 있고, 사우나도 할 수 있으니 캐나다 생활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캐나다인이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첨단 장치 설치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3월에 뒷산에 눈이 많이 내려 계곡마다 수량이 풍부합니다. 겨울에 산란한 연어 새끼들이 개울에서 큰 다음에 바다로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뒷산 봉우리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보이지만, 동네에는 온갖 봄에 피는 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눈 속에서 피어난다는 에델바이스같이 온갖 꽃들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당연히 주님의 정말 대단한 솜씨입니다. 정말 섬세하고, 정말 우아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누구 보라고 이렇게도 다양한 꽃들을 창조하셨을까요? 원숭이 보라고? 까마귀 보라고? 사람들 보라고 이 꽃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이 꽃들을 보면서 그 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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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 “죄와 벌”을 통해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사랑을 외치는 주님이 사람들에게 왜 시련을 주고, 죽이고, 심지어는 홍수로 쓸어버릴 수 있나?”    교인뿐만이 아니고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신이 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시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을 위하는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 그런 좁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시각에서 판단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깨우칠 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적인 사건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신의 법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리고 그 죄가 감당하게 될 처벌과 재앙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심지어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까지도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시선을 재앙에만 두고, 죄에 두지 않으면 성경과 주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 열왕기하 6장 24절에 보면 아람 군대에 포위된 사마리아 성내의 백성들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 묘사됩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굶주려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잔인함”만을 생각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창조주의 잔인함으로만 본다면 죄악...

나의 블레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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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레셋 성경의 구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악연은 참으로 긴 시간을 두고 이어집니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이름이 블레셋(Philistine)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 옛날의 악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블레셋 사람들과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블레셋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름 돋는 일입니다. 한번의 악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정말 피차 피곤 할 것 같습니다. 내 인생에는 나와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블레셋이 없을까요? 내 삶의 앞길을 끊임없이 가로막는 것들, 끊임없이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들과 걱정 근심, 모든 사람에게 자기 나름의 블레셋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 인생이 남의 인생의 블레셋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블레셋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아브라함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등살에 쫓겨 우물을 계속 빼앗기며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섰던 이삭의 우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이삭같이 당하면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자세라는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우물을 빼았겨도 새 우물을 찾아 떠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나날이 창대해지고 강성해지는 이삭을 보면서 겁을 먹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까지 끌고 와서는 이삭에게 화친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Ge 26:29, NIV] that you will do us no harm, just as we did not harm you but always treated you well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