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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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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이 문제다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인들이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로마 황제가 있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니, 로마 입장에서는 이 반역자들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신분을 감추고 지하로 숨어들었고 지하 교회에서 남모르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들이 지상에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우후죽순처럼 정말 많습니다. 누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예배드리기 좋은 조건이고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는데도 예수쟁이들의 가슴은 그 옛날 지하교회 시절처럼 새가슴입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 만나고 왔으면서도 교회 밖 세상에 나가서는 예수 믿는 것을 감추고 삽니다. 삶이 예수 닮은 꼴을 보이지 못하면 세상으로부터 욕먹는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을 감춥니다. 감출 필요없이 예수 닮은 삶을 살면 될텐데, 그러지 못하고 그냥 숨깁니다. 옛날에는 핍박을 피해 숨었고, 지금은 스스로 숨어버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죽이는 세상이 아닌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숨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욕먹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그러면 욕먹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텐데. 왜 그러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 닮은 삶을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치더라도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하면 당연히 욕 먹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요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더 이기적이고, 더 물질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더 타락했습니다. 개신교 장로이면서도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사리사욕을 채운 이명박은 정말 부끄러운 인간입니다. 얼굴 내미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변소에서 화장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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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에서 화장실로 화장실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난 애들은 변소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반대로 변소를 사용하던 시절의 사람들은 한국의 미래에 화장실이라는 말이 등장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화장실이라는 말을 꺼냈다면 그 말을 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자들 얼굴 화장 고치는 방, 아니면 시체 태우는 화장터, 둘 중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요? 똥 누는 곳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똥간에서 무슨 화장을 혀?” 뭐 그렇게 기가 차지도 않다는듯 혀를 찼겠지요. 그럴만한 것이 변소, 말 그대로 똥 있는 장소가 변소였습니다. 변소에서 똥 퍼서 배추밭에 뿌려 농사짓던 시절의 똥간을 점잖게 이야기해서 변소인 겁니다. 그 시절의 변소의 모양이 조금 현대식으로 바뀐 모양이 요즘 외진 캐나다 캠핑장에 가면 보이는, 혹은 공사장 주변에서 보이는 간이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당시 한국의 변소는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똥과 오줌이 떨어지도록 사람이 디디고 설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길쭉한 네모 구멍을 만들어 그리로 오줌과 똥을 내리는 겁니다. 때맞춰 똥을 퍼내지 않으면 똥이 발판 구멍 너머 쌓이고, 똥보다 오줌이 더 많은 경우에는 똥을 내리는 중에 똥물이 튀어 소중한 궁디에 묻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습니다. “세계적인 K-Pop 문화의 우아한 한국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구?” 있었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그런 변소들이 있었고, 거기서 퍼낸 똥오줌을 세상 온 밭에 뿌려대었으니, 그 시절에는 어딜 가나 똥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냄새뿐만이 아니라, 볼 일 보고 밑을 닦아내는 일 또한 대단한 밋션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화장지를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신문지가 최고의 뒷처리 수단이었습니다. 넘친 똥을 피해 까치발로 간신히 발을 디디고 일을 본 다음, 뻣뻣한 신문지를 구기고 비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