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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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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遍義自見.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내용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 성경을 몇 번 읽어보셨나요? 읽는 것보다 더 강력한 작업은 쓰는 것입니다. 옛날에 국민학교 다니신 분들은 국어 선생님이 주시는 숙제의 무게에 눌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노트에 베껴오라는 숙제,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 베껴오라는 무식한 숙제를 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공책 공장 사장님들과 연필 공장 사장님들과의 무슨 정경유착(?)이 있었나요? 요즘 몽땅 연필이란 단어가 있나요? 무지막지하게 공책에 밤새가며 쓰던 시절에는 몽땅 연필 생산(?)이 일상이었습니다. 국어교과서를 베껴쓰던 그 천하제일검의 솜씨로 성경은 몇번이나 베껴써보았습니까? 한번이라도 베껴써보셨나요? 저는 성경을 한번 베껴써보았습니다. 연필로 쓴 건 아니고, 키보드로 두드리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번 써보았습니다. 써보기까지 했는데도, 성경의 내용들이 전부 기억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 있었나?” 처음 보는 것같은 내용이 다시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요? 정말 백번을 읽어도 생소한 부분이 완전히 없어질 것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경은 백번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들이라 읽을 가치도 없어 보입니다. 진화론이 패러다임이 된 세상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같지도 않고, 허구적이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왜 열심히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창세기처럼 가슴 뛰게하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사람에게 들려주는 기가막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창세기를 또 읽으면서 창세기에 “땅”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는 것을 새삼 봅니다. 요즘 사람들이 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창세기에 땅 이...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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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보이는 것은 허상이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이니라” 나무 혹은 돌로 만든 불상에 절하고 염불 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과학적(?)인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Heb 11:3, NIV]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 없었는데 있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은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있는 것이 없는 것인 것을 보여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있는 것을 이용하여 다른 것을 만들 수는 있어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즉, 아무 재료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고 신의 영역입니다. 지금 보이는 세상의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과학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맙니다. 과학자들이 들여다 본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이 원자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자 속을 들여다보던 과학자들은 원자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원자 속이 얼마나 텅 비었는지 쉽게 설명하면 이런 정도입니다. 원자는 중심에 양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을 전자가 돌고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원자 중심에 있는 원자핵을 농구공 크기로 가정한다면, 전자의 크기는 좁쌀 정도의 작은 크기입니다. 그리고 더...

벌레에게 먹힐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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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에게 먹힐 놈들 영국군에서 드론 부대를 운영하면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드론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고 드론들을 경쟁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드론이 자기가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데, 경쟁에서 자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뭔가 검토를 해보니, 자기를 조종하는 드론 조종자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드론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 드론 조종자를 공격하여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그게 시뮬레이션인지 정말 사고로 드론 조종병사가 공격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런 케이스가 보고된 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드론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지구에 일어난 첫번째 대격변, 노아의 대홍수, 그게 일어난 이유도 그와 같은 것 아닐까요? 주님을 향한 반란, 불순종, 주님에 대한 모욕,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인간들의 욕망과 타락. 주인을 향한 드론의 도발과 닮은 꼴 아닌가요? 주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대로 순종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Hos 6:3, NIV]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주님을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아담? 노아? 모세? 모세는 구약의 시작 첫 다섯 권을 쓴 사람입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나 모세만큼 주님을 가까이 접하고 그 분의 ...

빅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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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추억 우리는 에덴동산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 거기서 지냈던 꿀같던 시절이 기억나십니까? 오래 전 일이니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만, 옷값 들지 않고, 식비들지 않고, 벌거벗고 편하게(?) 살 수 있었으니, 한번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Mr. 우주는 어떤 생각이 있을까요?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그 옛날 아무 것도 없을 때, 대폭발로 우주가 생겼다면 그 끔찍한 폭발의 추억을 다시 곱씹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는데, 뭐가 폭발을 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그런데 가방 끈 긴 과학자들이 빅뱅을 주장했으니,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십니까? TV를 보면서 화산의 폭발을 보거나, 전투기 폭격을 보거나, 테러범의 폭발을 볼 때, 폭발 현장은 어떻게 보였습니까? 매우 질서정연했습니까? 쑥대밭이 되었습니까? 폭발의 순간은 쑥대밭이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질서정연한 모습의 어떤 작품으로 변했습니까?  아니면 폭발의 현장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니, 그 자리에서 멋진 집이 한 채 생겼습니까? 에펠탑이 하나 생겼습니까? 아니면 그냥 더 뭉개져 내리고 폐허로 변했습니까? 지금 지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람이 살기에 이렇게 기가막히고 완벽한 곳이 없습니다. 태양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 큰 폭발이 있은 뒤에 어떻게 이렇게 균형 잡히고 완벽한 모습의 태양계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요? 폭발의 흔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질서정연하게 정해진 대로 아름답게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수류탄 터진 다음의 파토난 모양새가 아닙니다.  큰 폭발이 있었다면, 터져나간 잔해가 우주에 산만하게 펼쳐져 있어야 상식 수준의 모습인데, 별들은 정확한 별자리를 만들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흩어져 엉망진창이 되기는 커녕 제가 사는 동안, 북극성의 위치가 변한 적이 없고, 북두칠성의 모습이 틀어진 적이 없습니다. 은하계들은 이름 지어진 대로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고, 움직이는 모습도 각자의 모양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한을 보여주시는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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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보여주시는 그 분 없었는데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 아니 세상이란 것이 없을 때. 생각도 아무런 존재도 없었던 그 때. 아니 그 때란 것도 없었을 때.  없었는데 생겨났다. 있는 걸 가지고 뭘 만드는 걸 만든다고 합니다. 있는 걸 가지고 뭔지 알아보는 것을 인간이 만든 말로 연구한다고도 하고 과학을 한다고도 합니다.  동물이 새끼를 낳는다고 하지,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잉태하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무 재료도 없는 상태에서, 무에서 유가 생겨났을 때, 그것을 창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조는 저절로 생겨날 수 없고, 창조하는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 창조가 일어난 다음에 피조물들은 자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엄마가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며 내가 네 엄마다라고 말해주어 엄마가 내 엄마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창조주를 알아볼 능력이 없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이 창조주임을 알려주셔야 그 분이 창조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Ge 1:1, KJV]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창조주가 사람에게 내가 창조주라고 알려주시는 말씀이 성경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정말 은혜가 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 말씀에 이어서 하루 하루 어떻게 하셨는지 디테일까지 친절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존재할 존재가 아니었는데, 그 분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렇게 있다는 것은 심히 놀라운 일이고 은혜고 그 분이 나라는 존재에게 보여주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Isa 41:10, KJV] Fear thou not; for I am with thee: ...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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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의 퍼즐 유튜브를 보다보니 어떤 목사가 어떤 목사의 의견을 반박하는 내용이 보입니다. 그 내용인 즉슨, 한 목사가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천사도 창조하였다고 언급하는데 대해 다른 목사가 반박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 반박의 내용을 가만히 듣자니, 주님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천사와 마귀는 창조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이건 주님이 창조주이심을 은근한 척하면서 전적으로 부인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는 말이고, 주님이 천사나 마귀급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목사는 마귀의 앞잡이가 되기로 작심을 한 모양입니다. 전광훈 목사급 적그리스도이고 마귀의 수괴(首魁)입니다. 인간들이 목사라고 하는 것들이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개탄할 일입니다. 창조 이야기가 나오니 또 창세기 1장 1절이 생각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세상을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갑자기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나옵니다. 이게 뭔 소리? 도대체 태초에 뭔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성경 이사야에서도 주님이 세상을 혼돈케 창조하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Isa 45:18, NIV] For this is what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the heavens, he is God; he who fashioned and made the earth, he founded it; he did not create it to be empty, but formed it to be inhabited— he says: "I am the LORD,...

완전한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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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것에 대하여 주를 믿는 자들은 주님을 완전하신 주님이라고 찬송합니다. 주님은 정말 완전하신가? 이런 의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뭐 생각을 해본 적도 없을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그렇다고 따라하는데(?) 생각으로는 정말 그런가 싶은 의문이 들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완전하시고 완벽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완벽하심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시선이 주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향했을 때, 그런 의문과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완전하시다면, 왜 나를 완벽하게 만드시지 않았는가? 나는 왜 매일 걱정하고, 아프고, 일도 마음 먹은 대로 잘 돌아가지도 않고, 돈도 원하는 만큼 생기지 않고, 결국은 죽어야 하지 않는가? 그럼 주님은 어떠신가?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그 날개 아래 두셨으며, 죽지도 않으시고, 그냥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완전, 그 자체입니다. 당신이 완전 그 자체이실 뿐만 아니라, 죽어도 부활하시는 분이고, 우리를 구원까지 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않다고, 그 분이 완전한 분인가 의문을 갖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고, 논할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사람에 대해 가끔 완전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인간의 죄악을 쓸어버리기 위하여, 아니, 죄악에 빠진 세상을 쓸어버리기 위하여, 홍수로 세상을 덮으실 계획을 하시면서 노아를 선택했고, 그를 일컬어 완전한 자라 칭하십니다. 주님의 기준으로 볼 때, 완전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면 사람은 죄악에 빠집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이면, 주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창조주가 만든 법이고, 그의 시선이고, 시각입니다. 피조물은 그에 대하여 토를 달 권리도 의무도 없습니다. 그저 그 분의 힘으로 없던 것에서 있는 것으로 생겨난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

Christmas in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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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in Eden 넷플릭스, 많이 보십니까? 그 옛날 흑백 TV 시절, 꼬맹이 때는 저녁 시간에 방영하는 만화영화를 넋놓고 봤고, 머리가 좀 커서는 주말 밤 늦은 시간에 방영하는 주말의 명화에 또 넋을 빼앗긴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더 커서 직장 생활에 바쁠 때는 뭔 할 일이 그리 많아 스포츠 중계 빼고는 TV 앞에 앉아 긴 시간을 빼앗긴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만든 성경 시리즈 중에 모세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 이야기는 그 옛날 벤허가 만들어진 시절에 같이 만들어졌던 십계 영화로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아날로그 시대였는데도,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을 어찌 그리 잘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본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나온 장면들은 요즘 CG가 엄청 발전한 시대니 기적의 장면들이 아주 현실감 있게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앞에 TV가 돌아가고 있는 동안 옆에 놓인 타블렛으로 이북(ebook)을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제목이 에덴의 크리스마스입니다. 리치쿨리(Richie Cooley)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그가 누군지 찾아보는데,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디스토피아의 저자라는 것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라는 것은 유토피아와 대치되는 말인데, 아일랜드에 영국의 탄압이 심할 때 생긴 말입니다. 그 에덴의 크리스마스 이북의 책장을 넘기다보니, 정말 흥미로운 내용들이 보입니다. 그 내용을 확 그대로 받아들이면 광신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보면 충격적인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선한 충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은 제임스 우셔(James Ussher)라는 인물입니다. 옛날 아일랜드의 대주교였는데, 이 사람이 성경의 연대기를 연구하며 성경의 기록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주님이 세상을 창조한 날이 언제인지 날짜...

The Light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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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ght of Heaven 차가운 날이 길어지니 나무가 여름내 치렁치렁 걸쳤던 드레스를 솔깃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벗어버렸습니다. 천국을 향해 펼친 나뭇가지의 실루엣이 그 자체로 그림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향하여 나무가 온 힘을 다하여 그린 찬양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Ro 11:36, NIV]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for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the glory forever! Amen. 며칠째 밤새 비가 내리는 날씨에 낮동안 겨울 해가 쨍쨍하여 동네 뒷산 숲에서 김이 올라 구름이 되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일상 보는 모습일지는 몰라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이런 광대한 모습을 재현해낼 수는 없습니다. 인생 그리 오래 살면서도 이런 자연의 순리를 설계하신 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지독하게 무지한 일입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Ro 1:20, NIV]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people are without excuse. 르부르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걸작(傑作)을 인류 역사상 처음 본 사람들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방주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비가 그쳤으니 방주의 조그만 창문을 열고 처음 보는 기적과 같은 노을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리는 ...

흙에서 뽑아낸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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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뽑아낸 보물 미국에서는 구멍가게에 가도, 월마트에 가도, 코스트코에 가도 맥주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밴쿠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밴쿠버에서 술을 사려면 주정부가 운영하는 술집 리쿼스토어에 가야 합니다. 정부가 술장사라니? 거기에 가면 호사스럽고 휘황찬란합니다. 술을 담은 유리병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고, 예쁜 디자인이 시선을 압도하고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수많은 술병을 보면서 뜨거운 열기 속에서 그 예쁜 병들을 만들었을 유리 장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매장을 둘러보다가 예쁜 병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유리병, 유리, 사람이 흙속에서 유리 만들 재료를 뽑아내어 유리를 처음 만든 것이 언제인가요? 로드오브더링에서 유리병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던가요? 그 영화에 유리병이 보인다면 그 시절부터 유리병이 시작되었고, 십계 영화에서 유리병을 보았다면,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유리를 사람이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을 자주 치렀던 나폴레옹이 병정들이 먹을 음식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유리병에 담았던 걸로 봐서는 그 시대 즈음에, 산업혁명 시대 이전에 유리산업이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레오가 살던 시대에 유리가, 유리병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유리병을 들여다보던 갈릴레오는 유리병을 통해 반대편에 보이는 물건이 왜곡되어 보이는 것에 영감을 얻어 유리를 갈고 닦아 렌즈를 만들었고, 그걸로 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을 보았고, 달을 관찰했습니다. 갈릴레오는 자기가 만든 망원경을 들고, 바닷가로 나가 멀리서 오는 큰 범선을 망원경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배들이 멀리서 배가 몽땅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돛대 꼭대기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지구가 편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을 깨달았고, 해와 달과 별들을 관찰하면서 지구가 땅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갈릴레오같은 옛날 과학자들은 주님을 믿었습니다. 과학을 하면 할수록, 주님이 지으신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창조주의 천지개벽할 지혜...

The edge of his clo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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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dge of his cloak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병을 낫고 싶은 욕심(소망이라기 보다는)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찢어질 정도로 혹은 벗겨질 정도로 왕창 움켜잡은 것이 아니라 손을 대기만 했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입니다.  움켜잡았다면 블랙프라이데이에 원하는 물건을 남들보다 먼저 차지하려고 남을 밀치고 앞으로 뛰어가 물건을 부여잡고 싹쓸이 하는 이기적인 모습이었을텐데, 그 옷자락 끝에 살짝 손만 갖다대었다는 것은 예수님께 기대하면서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여자의 가녀린 손끝에 보입니다. 누가는 그녀가 옷 가에 손을 대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옷 가, 영어 성경은 edg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옷 가장자리, 군중 속에 밀려가면서 혹시나 손끝이 예수님 옷깃에 다다르지도 못할지 몰라, 또 혹시 내가 그 옷에 손대는 것이 너무나 불경스러운 것은 아닐지 죄스럽고 조바심도 나는 마음이 섞여 순간적으로 마음 속에 이는 갈등을 극복하고 마지막 온 힘을 다하여 팔을 뻗었고, 어쩌면 손끝이 옷자락에 미처 닿지 못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극적으로 그 손끝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스쳐 갔습니다. 접촉! 접촉! 그녀의 접촉은 창조주와의 영혼의 접속이었습니다. 접속, 그 뜻은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 회복을 뜻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오늘 날에도 예수님을 창조주로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이 땅에서부터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건 종교라고 이름지어질 것도 아니고, 종교 중의 하나인 기독교로 치부할 일도 아니고, 인간이 당연히 회복해야 할 창조주와의 관계입니다. 이 장면이 감동스러운 것은 천지를 지으신 위대한 창조주가 참 미천해보이는 당신의 피조물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챙기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를 바라보고 원하는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그의 사랑을 보면서 내가 진짜 신을 제대로 믿고 있다는 하늘이 주는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눅8: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

Have mercy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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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mercy on me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옛날 이스라엘 여리고 신작로 먼지 날리는 한 귀퉁이에서 이런 샤우팅을 한 사람은 바디매오입니다.  [막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Mk 10:46, NIV]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which means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바디매오, 그는 거지입니다. 거지인데, 세상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그 처지로만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보잘것 없는 인생의 이름이 무려 성경에 기록되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읽고 알게 되었고, 믿음의 표상으로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효자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이 해프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바디매오가 그냥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디매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아버지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게 만들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 바디매오가 거지로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할 때, 아버지 디매오가 바디매오를 겉옷하나 덮어주며 거리로 내쳤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에게 잘 케어받다가 아버지 디매오가 죽으면서 거지생활이 시작이 되었을까요? 마가는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를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자신의 기록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바디매오의 아버지가 누군지 수소문해서 알아내었을까요? 저의...

진절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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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절머리 제 노트북, HP것이고, 윈도가 깔려있습니다. 윈도11, 노트북을 켜면 화면에 멋진 그림이 떠오릅니다. 제가 세팅하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공짜로(?) 보여주는 친절한 그림입니다. 주로 유명 사진작가들이 찍은 풍경이 바뀌어가며 나오는데, 오늘 나온 그림은 지구 상의 풍경 그림이 아니라 제임즈 웹 우주 망원경이 찍은 천체사진입니다. 사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림입니다. 뭔가 추상화같은 그림입니다. 저게 한순간 찍은 사진인가요? 아니면 장시간 찍은 사진인가요? 그리고 찍은 순간의 그림 그대로인가요? 아니면 여러번 찍은 것을 합성처리한 것인가요? 한 순간 한번에 찍어서 나올 수 있는 사진은 아닌 것 같습니다.  7700 광년 떨어진 곳의 사진을 여러번의 노출로 합성하여 찍은 영상을 가지고, 은하수 같은 별들의 모임인데, 우주먼지라고 우기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우주 공간은 별보다 검은 색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 더 많습니다. 그게 먼지라면 빛을 발하지 않는데 그게 보이겠습니까? 그 멀리 떨어진 것이 사진 영상으로 남을 정도면 먼지가 아니라 별들의 모임이 맞는 것이지요? 그걸 우주먼지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게 이미 별인데, 그게 모여 신성이 탄생한다고 구라를 치고 있습니다. 빅뱅을 주장하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이 뻥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갈 필요도 없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그냥 생각해보면 엉터리라고 나오는 수준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 썰을 풀면서도 왜 모르는 게 그리 많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면서 계속 답이 나오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성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에 해답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은 쉽게 답을 찾는데, 성경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평생 죽을 고생하면서 거짓말만 만들어 내다가 귀중한 한 인생 종을 치고 있습니다. 그 사진...

비싼 책의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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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책의 옥의 티 이 글의 제목을 좋은 책의 옥의 티라고 하려다가 티가 있으면 좋은 책이 아닌 것같아 제목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로 비쌉니다. 이북(ebook)은 종이책만큼 비싸지 않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두꺼운 책은 백불이 넘습니다. 이게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무지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한국어 버전의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걸 캐나다에서 찾아보니 당연히 영어 원본이 있는데, 그게 백불이 넘는 가격입니다. 요즘을 살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 속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의 시대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온전히 되지 않거나 미스언더스투드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으면 더 심도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경 시대의 시대상과 유적들을 소개하는데, 그림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성경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류가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내산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지도에서 시내산을 시나이 반도에 그려넣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출판물에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광야 생활을 한 것으로 서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오류입니다. 아마도 “어떻게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갔겠어? 그게 말이 돼?”하는 불신 속에서 그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관련 책자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만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 추종자이지만 밥벌이 때문에 그걸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그건 못 믿는 사람도 만연한 세상이니 뭐.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한 곳은 시나이 반도가 아니라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 쪽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 사이에 있는 아카바(Aqaba)만입니다. 아카바 만의 가장 좁은 해협의 바다 밑에서 발...

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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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저의 꼬맹이 시절은 밤 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전이 수시로 되어 촛불로 방을 밝히는 일도 자주 있었고, 거리에 네온사인도 없어서 밤이 참 어두웠고, 그로 인해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깨끗하게 잘 보였습니다.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 자리, 오리온 자리 안의 삼태성은 그 때도 네모 안에 갇혀 있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갇혀 있습니다. 삼태성이 가까이 붙어있는 별들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인데도 우리 눈에는 셋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대로 우주가 진화하고 팽창하는 것이라면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세월이 지나면 얽그려져 있고, 별자리를 관찰할 수 없이 어느 별이 어디로 갔는지 관찰할 수 없어야 하는데, 별들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 관측이 가능하고 예상 경로와 위치를 예측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폭발하고 진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리 질서정연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Ps 8:3, KJV] 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 그렇다면 주님은 별자리를 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별을 통하여 징조를 보이시고,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걸 인간에게 보이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관장하시는 분인 것을 알려주시려고 그러신 겁니다. [창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Ge 1:14, KJV]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of the heaven to divide the ...

퍼즐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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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완성 창세기, 지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세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바이블이 제일 많이 출판된 책이고, 제일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입니다. 그 책의 시작이 창세기로 시작되고 있고, 첫 문장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을 했고, 우주가 스스로 진화하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못합니다. 뭔 소설같은 소리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가 진화, 무생물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나요? 우주가 진화한다면 뭔가 진화를 일으키게 하는 소스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게 진화신인가요? 진화론자들이 믿는 신인가요? 스스로 무논리에 빠지는 함정에 빠질 일입니다. 각설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에 빠지고, 진화론 신을 믿는 진화론자들과 어리석은 논쟁을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뿐입니다. 진화론은 엉터리 믿음일 뿐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창세기 1장에 촛점을 맞춥니다. 창세기 1장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상이 혼돈하고 암흑에 쌓였다고 합니다. 아니 아름답게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인데, 그게 다 어디가고 혼돈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요? 잘 모르는 옛날일이니, 모세가 그걸 적으면서 주님께 들은대로 뭘 잘 모르겠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냥 듣고 기억나는대로 적고, 후세에게 나도 잘 모르겠고, 너희들도 각자 알아서 읽어라 하고 그리 무책임하게 기록을 남겼나요? 지난 20년간 사는데 바빠 일과 관련된 책만 들이 팠지, 그 외의 책들은 거의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즘 들어 책 읽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는 여건 상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매일 이것저것 읽어야 하는 환경이지만, 학창 시절 끝나고 책을 읽을 때는 한 권의 책을 잡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책 한권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독서의 패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북을 타블렛으로 읽다보니, 타블렛에서 독서앱을 열면 타블렛에 올린 여러 권의 ...

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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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역사학자들이 시대를 구분한 기준, 고대, 중세, 근대는 뭘 기준으로 한 구분인가요?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구분와 관련이 되나요? 중세가 들어간 걸로 봐서 종교적 역사와 다분히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고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알게 되나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주님인지 사람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누가 주님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 절로 그걸 절대로 깨우치고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자신의 믿음이 강해서 자기는 절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뻥을 치지만 그건 뻥일뿐, 그 분도 부모님이든 누구든 그걸 알려주고, 엄마 손 잡고 교회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지 절대로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자신을 닮게 인간을 창조한 덕분에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은 스스로 온갖 잡신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들에게 주님이 누군지 전파한 사람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에 의해 구약이 쓰여지고, 주님이 작심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약이 쓰여지고 그것이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블을 통하여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고, 세상에 주님이 누군지 비로소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주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대 다음에 열린 시대가 중세고, 중세에는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야단 맞는 시대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렇게만 좋게좋게 죽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

왜 사람이 진화의 최종단계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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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이 진화의 최종단계이어야 하는가? 단세포가 진화하여 사람까지 되었다면, 사람 이후에는 왜 진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진화의 최종 목표가 사람이었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왜 진화를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 처럼 이야기하는가? 진화를 왜 마치 조물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가?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창조주에 대항할 무언가를 만들어 낸 것이 진화인가? 진화가 창조주에 대항할만한 능력자인가? 정신 차리고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면, 진화는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모순 투성이인 사람이 만들어낸 어설픈 이론이고 가설일 뿐입니다. 단세포가 진화하여 어찌어찌 원숭이까지 되었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면, 원숭이도 많고 사람도 많은 이 세상에 원숭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아직도 진화를 진행 중인 그 연속적인 진화의 개체들은 다 어디 숨어있는 것인가? 사람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원숭이도 아닌 것이, 사람도 아닌 것이, 그런 이상한 것이 이 세상에 원숭이보다도 많고, 사람보다도 더 많아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논리 아닌가요? 흑인이, 황인종이, 아메리카 인디언이 그 중간 단계인가요? 진화가 사실이라면, 사람보다 더 멋있고, 능력있고, 슈퍼맨보다 더 뛰어난 무언가가 계속 사람에 이어 이 세상 어딘가에 아니 우리 주변에 득실거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득실거리기는 커녕 비정상적인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몸보다도 정신이 더 병신인 것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게이, 동성연애자, ADHD, 정신병자, 범죄자, 이런 것들이 사람으로부터 더 진화를 거듭한 산물인가요? 자가당착에 빠진 진화론자들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화로 이 세상이 생겨났는데, 진화의 최종 단계는 사람인 것으로 스스로 그렇게 정의해버린 이유는 진화론이 태동할 당시의 세계적인 역사적 사조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노예 거래, 산업혁명, 금속활자에 의한 출판물의 대량생산,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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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살면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말이고, 듣고보니 있어보이는 질문인지라 멋지게(?) 소시적에 누구에겐가 써먹어보기도 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면서 결론이 났습니까?  살아보니 그게 있어보이는 질문이 아니고, 참 싸구려 질문입니다. 혹자는 잊어버리고 있던 그 질문이 생각나서 “정말 뭐가 먼저일까?”하고 또 그 멍청한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그것 가지고 지지고 볶아도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먼저면 그 달걀은 어디에서 나왔고, 닭이 먼저면 그 닭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 머리 수준으로 따져볼 주제가 아닌 거고, 인간은 그런 질문을 가지고 놀 능력도 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바이블을 읽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뻔한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Ge 1:1, NIV]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Ge 1:25, NIV] God made the wild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s, the livestock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주님이 메추리 알부터 공룡알까지, 크고 작은 알들만 죽 만들어놓고 그걸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겠습니까? 주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동물들을 암수 쌍으로 만드셨고, 그것들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게 질서있는 창조의 원리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