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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고추가 자유스러운 날 - 요 레이크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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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고추가 자유스러운 날 - 요 레이크 트레일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얘네들, 이 쬐꼬만 하늘고추들은 어떻게 하루종일 분기탱천(憤氣撐天)해 있을 수 있을까? 참 고추들 자유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견 부럽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등으로 한 나무에서 여러가지 색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올해 우리집 발코니에 분양한 하늘고추는 초록색에서 그냥 빨간색으로 두 가지 색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7월 초, 한가한 수요일 오후 느즈막히 뒷산 사이프러스에 올랐습니다. 겨울이면 스키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여름이면 등산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산입니다. 여름에는 또 블랙마운틴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글라이더를 오픈하여 그걸 타보려는 사람들이 또 많이 꼬여듭니다. 블랙마운틴을 리프터 타고 오른 다음, 이글블러프를 구경하고 미끄럼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걸 타려면 웹사이트에서 미리 표를 구입하고 타는 것이 편합니다. 그걸 타려고 사이프러스에 오른 것은 아니고 그냥 한가롭게 요 레이크(Yew Lake)나 한바퀴 돌까하고 올라간 것입니다. 트레일 주변으로 야생 블루베리가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7월 중순 이후 야생블루베리를 맛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프러스 산에 7월부터 9월까지 블루베리가 온 산에 지천입니다. 요레이크의 모습이 참 예쁩니다. 물이 얕고 겨울에는 온 호수가 얼어붙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이즈음 높은 산 트레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키작은 풀꽃은 번치베리(Bunchberry)입니다. 흰색과 초록의 콤비가 ...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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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트레일 사람들 마다 일생에 한번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습니다. 허리 근육에 힘이 빠져 모험에 대한 의욕도 상실한 상태면 위험한 모험은 하고 싶지 않겠지만, 엉덩이 근육에 힘이 좀 남아있고, 모험심이 빵빵 살아있고, 시간적인 여유까지 있다면, 거기에다가 아웃도어 액티비티에까지 진심이라면 살면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밴쿠버에 있습니다. 바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동네 트레일이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75킬로미터를 걷는 대행군입니다. 더구나 그냥 평지길이 아니고, 숲을 가르고 물을 건너는 강행군입니다. 중간에 하룻밤 쉴만한 여관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간에 식당도없고, 여관도 없고, 가게도 없고, 민가도 없습니다. 그냥 황량한 자연뿐입니다. 일주일 동안 해결할 음식과 식수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밤에 잠을 잘 텐트와 침낭도 물론 자기가 챙겨 가지고 가야 합니다. 웃기는 것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에 딱 맞게, 이 생고생을 사서 해야 합니다. 그 트레일로 들어서기 전에 돈내고 예약을 해야 하고, 사전 교육도 받아야 하고 트레일 사용비를 내야 합니다. 이것저것 합하면 3백불이 넘는 거금을 내고 트래킹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거금을 내고 씩씩하게 하이킹을 시작해도 매년 구조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만큼 험난한 길입니다.  이 트레킹을 왜 하는 걸까요? 이걸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답과 거의 비슷한 내용 아닐까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길은 목숨을 거는 일이지만, 이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고생길이긴 하지만 죽음을 각오할 정도는 아닙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구조대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힘든 길이긴 하지만 평생에 경험해보지 못한 정말 소중한 경험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한 사람들과 평생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 사...

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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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제가 꼬맹이 시절에는 대한민국에 아직 유치원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있었는데 저만 모르고 살았던건지는. 좌우지간 제 주변에는 그리고 그후 상당기간 동안 유치원이란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이름)에 처음 들어간 것은 서울 관악구 신림 사거리 부근 개천가에 살 때였습니다. 제가 들어간 학교는 봉천동에 있는 은천 국민학교입니다. 벌써 60년 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은천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본 건 캐나다로 이민 오기 얼마 전, 그 은천 국민학교 앞을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 본 것입니다. 그 때 제 눈을 의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동장이 정말 코딱지만하게 보였습니다. 꼬맹이 때의 기억은 정말 끝없이 드넓은 운동장이었는데, 어른이 된 눈에는 그렇게 조그맣게 보이다니! 어른의 눈에는 꼬맹이 때 본 것보다 열배 이상 작아보였습니다.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의 구글 위성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집들로 숨쉴 틈도 없이 모든 공간이 꽉 차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꼬맹이 시절 그 드넓어 보이던 개천들도 모두 복개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저는 2월생입니다. 주로 1957년생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에 저는 58년에 일찍 태어난 죄(?) 때문에 57년생들과 섞여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년이면 엄청난 변화가 있는 시기에 정신적으로 1년 어린 놈이 1년 더 성장한 놈들과 섞이자니, 학교 가기 싫어 매일 엄마 치맛자락 잡고 우는 게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참으로 잔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울보로 시작한 학교 생활이었지만 엄마 손을 놓고 어떻게 적응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혼자 떨레떨레 학교를 오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니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 갔으면 1km 남짓한 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꼬맹이의 시각에서는 어른 시각보다 열배는 크고 길어 보였을 것이니, 어른으로 치면 꼬맹이가 십리 이상의 길을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