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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율 30% vs 윤석열 지지율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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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율 30% vs 윤석열 지지율 30%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트럼프같은 쓰레기를 지지하는 30%는 어디서 온 외계인인지 참 궁금합니다.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윤석열이가 정적과 지식인을 싹 쓸어담아 쥐도새도 모르게 학살하려고 일으킨 쿠데타를 실패하고 탄핵을 당했는데도 윤석열이 지지율이 20%로 떨어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나라 망하길 바라는 국민이 30% 이상 붙박이로 있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한나라의 매국집단인 극우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은 미국과 한국이 빼박으로 닮았습니다. 그들이 내놓는 부정선거론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자기들도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부정선거로 뽑혔다고 고백하고 있는 건가? 양심이 없는 건 기본이고, 머리도 꽤나 나빠 보입니다. 그리고 누가 극우 아니랄까봐 자기네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진보 쪽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 빨갱이 공산당이라고 몰아붙입니다. 그냥 우기고, 억지를 부리고, 품격이라고는 어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극우 어둠의 세력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입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두 가지 가스라이팅을 사용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딥스테이트를 언급하면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딥스테이트의 존재와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엡스틴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또 하나의 가스라이팅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현상을 보니, 딥스테이트라는 것은 트럼프 자신이고, 트럼프 뒤에 있는 네타냐후와 모사드입니다. 그렇게 막강한 자금력, 조직력,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조직인 CIA와 FBI마저 모사드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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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트레일 사람들 마다 일생에 한번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습니다. 허리 근육에 힘이 빠져 모험에 대한 의욕도 상실한 상태면 위험한 모험은 하고 싶지 않겠지만, 엉덩이 근육에 힘이 좀 남아있고, 모험심이 빵빵 살아있고, 시간적인 여유까지 있다면, 거기에다가 아웃도어 액티비티에까지 진심이라면 살면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밴쿠버에 있습니다. 바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동네 트레일이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75킬로미터를 걷는 대행군입니다. 더구나 그냥 평지길이 아니고, 숲을 가르고 물을 건너는 강행군입니다. 중간에 하룻밤 쉴만한 여관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간에 식당도없고, 여관도 없고, 가게도 없고, 민가도 없습니다. 그냥 황량한 자연뿐입니다. 일주일 동안 해결할 음식과 식수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밤에 잠을 잘 텐트와 침낭도 물론 자기가 챙겨 가지고 가야 합니다. 웃기는 것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에 딱 맞게, 이 생고생을 사서 해야 합니다. 그 트레일로 들어서기 전에 돈내고 예약을 해야 하고, 사전 교육도 받아야 하고 트레일 사용비를 내야 합니다. 이것저것 합하면 3백불이 넘는 거금을 내고 트래킹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거금을 내고 씩씩하게 하이킹을 시작해도 매년 구조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만큼 험난한 길입니다.  이 트레킹을 왜 하는 걸까요? 이걸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답과 거의 비슷한 내용 아닐까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길은 목숨을 거는 일이지만, 이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고생길이긴 하지만 죽음을 각오할 정도는 아닙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구조대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힘든 길이긴 하지만 평생에 경험해보지 못한 정말 소중한 경험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한 사람들과 평생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 사...

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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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제가 꼬맹이 시절에는 대한민국에 아직 유치원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있었는데 저만 모르고 살았던건지는. 좌우지간 제 주변에는 그리고 그후 상당기간 동안 유치원이란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이름)에 처음 들어간 것은 서울 관악구 신림 사거리 부근 개천가에 살 때였습니다. 제가 들어간 학교는 봉천동에 있는 은천 국민학교입니다. 벌써 60년 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은천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본 건 캐나다로 이민 오기 얼마 전, 그 은천 국민학교 앞을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 본 것입니다. 그 때 제 눈을 의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동장이 정말 코딱지만하게 보였습니다. 꼬맹이 때의 기억은 정말 끝없이 드넓은 운동장이었는데, 어른이 된 눈에는 그렇게 조그맣게 보이다니! 어른의 눈에는 꼬맹이 때 본 것보다 열배 이상 작아보였습니다.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의 구글 위성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집들로 숨쉴 틈도 없이 모든 공간이 꽉 차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꼬맹이 시절 그 드넓어 보이던 개천들도 모두 복개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저는 2월생입니다. 주로 1957년생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에 저는 58년에 일찍 태어난 죄(?) 때문에 57년생들과 섞여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년이면 엄청난 변화가 있는 시기에 정신적으로 1년 어린 놈이 1년 더 성장한 놈들과 섞이자니, 학교 가기 싫어 매일 엄마 치맛자락 잡고 우는 게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참으로 잔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울보로 시작한 학교 생활이었지만 엄마 손을 놓고 어떻게 적응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혼자 떨레떨레 학교를 오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니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 갔으면 1km 남짓한 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꼬맹이의 시각에서는 어른 시각보다 열배는 크고 길어 보였을 것이니, 어른으로 치면 꼬맹이가 십리 이상의 길을 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