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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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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百遍義自見(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遍義自見.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내용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 성경을 몇 번 읽어보셨나요? 읽는 것보다 더 강력한 작업은 쓰는 것입니다. 옛날에 국민학교 다니신 분들은 국어 선생님이 주시는 숙제의 무게에 눌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교과서의 내용을 노트에 베껴오라는 숙제,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 베껴오라는 무식한 숙제를 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공책 공장 사장님들과 연필 공장 사장님들과의 무슨 정경유착(?)이 있었나요? 요즘 몽땅 연필이란 단어가 있나요? 무지막지하게 공책에 밤새가며 쓰던 시절에는 몽땅 연필 생산(?)이 일상이었습니다. 국어교과서를 베껴쓰던 그 천하제일검의 솜씨로 성경은 몇번이나 베껴써보았습니까? 한번이라도 베껴써보셨나요? 저는 성경을 한번 베껴써보았습니다. 연필로 쓴 건 아니고, 키보드로 두드리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번 써보았습니다. 써보기까지 했는데도, 성경의 내용들이 전부 기억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 있었나?” 처음 보는 것같은 내용이 다시 보이는 것은 웬일인가요? 정말 백번을 읽어도 생소한 부분이 완전히 없어질 것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정말로 성경은 백번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들이라 읽을 가치도 없어 보입니다. 진화론이 패러다임이 된 세상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같지도 않고, 허구적이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왜 열심히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창세기처럼 가슴 뛰게하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없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사람에게 들려주는 기가막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창세기를 또 읽으면서 창세기에 “땅”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온다는 것을 새삼 봅니다. 요즘 사람들이 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창세기에 땅 이...

나의 18번 찬송, 두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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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8번 찬송, 두 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분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 믿음이 내 영혼에 들어온 순간, 이 찬송을 들으면 그냥 뒤집어집니다. 예람이 이 찬송을 후렴으로 기가막히게 믹싱했습니다.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멜로디가 쉽고 아름다워 참 은혜가 되는 찬송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그 크신 사랑과 영광을 영혼을 담아 찬양하기 좋은 찬송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찬양을 부르려면 잘 부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좋은 곡을 음치가 망치는 것처럼 망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성악곡처럼 성악가들이 점잖게 불러서는 또 별로입니다. 온 영혼이 정말 기쁨과 감사에 젖어서 그 마음이 찬양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악을 써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템포가 굉장히 중요한 곡입니다. 늘어져서도 안되고, 너무 빨라도 안됩니다. 예람이 비록 후렴에 붙여넣기는 했지만, 잘 불렀습니다. 곡 해석을 잘 했고, 아주 잘 기가 막히게 불렀습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벌레에게 먹힐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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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에게 먹힐 놈들 영국군에서 드론 부대를 운영하면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드론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고 드론들을 경쟁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드론이 자기가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데, 경쟁에서 자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뭔가 검토를 해보니, 자기를 조종하는 드론 조종자로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드론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기 드론 조종자를 공격하여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그게 시뮬레이션인지 정말 사고로 드론 조종병사가 공격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런 케이스가 보고된 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드론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지구에 일어난 첫번째 대격변, 노아의 대홍수, 그게 일어난 이유도 그와 같은 것 아닐까요? 주님을 향한 반란, 불순종, 주님에 대한 모욕,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인간들의 욕망과 타락. 주인을 향한 드론의 도발과 닮은 꼴 아닌가요? 주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대로 순종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Hos 6:3, NIV]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주님을 가장 잘 알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아담? 노아? 모세? 모세는 구약의 시작 첫 다섯 권을 쓴 사람입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나 모세만큼 주님을 가까이 접하고 그 분의 ...

피아노 건반 위에 숨겨진 천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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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건반 위에 숨겨진 천지창조 음악을 하건 하지 않건, 피아노를 칠 줄 알든 모르든, 피아노를 한 번은 다 보았을 것입니다. 칠 줄 몰라도 한 번 건반을 두드려보기는 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아무리 못살았던 시대였더라도 학교에 풍금 하나는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선생님 몰래 한번 소리를 내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피아노 건반을 보면서 뭔 생각을 한 번 해본 적이 있습니까? 피아노 건반을 보면 흰색 건반이 있고, 흰색 건반 사이로 이빨 사이에 김조각 낀 것처럼 까만 건반이 두개 혹은 세개씩 배열이 되어 있습니다. ‘왜 저렇게 만들었지?’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습니까? 한글로는 도, 레, 미, 영어로는 C, D, E 그런 순으로 음이 매겨집니다. 그러면 서양 음악은 왜 A부터 시작하지 않고, C부터 시작하면서 C를 기본음으로 설정했을까? 뭐 그런 의문도 들고, 도 에서 다음 도까지 한 옥타브는 뭘 기준으로 만든 것일까? 건반과 건반 사이의 음의 차이는 어떻게 설정한 것일까? 온음 사이에 반음을 끼워 설정한 것으로 모든 소리를 다 커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건반 없는 바이올린은 피아노보다 더 많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피아노 건반을 위해 만들어진 오선지 악보를 보고 피아노가 내는 소리를 따라 내는 것일까? 어리버리 살다가 머리가 좀 커졌다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납니다. 뭘 몰라서, 무식해서 드는 생각일 수도 있고. 현대 서양 음악의 음계 체계는 16세기 이후 수학의 평균율 원리에 따라 12개의 반음을 정확히 같은 비율로 나누어 정하면서 비로소 완성이 되었습니다. 피아노는 건반 악기지만 사실 속은 피아노 속의 긴 줄을 때려 소리를 내는 어떻게 보면 현악기입니다. 바이올린은 켜는 현악기고, 하프는 튕기는 현악기고 피아노는 선을 때리는 현악기인 셈입니다.  그 현들의 길이 비율에 의해 음의 차이가 나타나는데, 음악을 하는 인간들이 긴 세월동안 소리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평균율로 쪼갠 음계 체계...

하나님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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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수학 반지름이 주어지면, 원둘레와 원면적을 구할 수 있습니다. 공식을 알고 있으면 계산으로든 계산기로든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한 값이 정확한 값입니까? 제 질문이 좀 의아한 분들이 꽤 좀 있을 줄로 압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개가 아니고요. 요즘 인기있고, 머리 좋은 인공지능에게 물어봐도 그 값은 정확한 값은 아니라고 알려줄 것입니다. 약간 멘붕에 빠지셨습니까? 옛날에 원둘레나 원면적을 묻는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백점 맞고, 대학 입시 때도 풀었던 문젠데 정확하지 않다니?  뭐 크게 잘못한 것이나, 잘못된 것은 없고, 그냥 정확하지 않은 것을 대충 맞다고 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원의 둘레나 원의 면적을 구한 값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공식을 이용하여 계산할 때, 사용하는 파이 값이 똑 떨어지는 정확한 상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파이 값은 소수점 뒤로 무한대로 펼쳐지는 숫자입니다. 달나라에 가기 위하여 극도로 정밀한 계산을 하기 위해서도 파이값의 소숫자리 아래 15자리까지만 사용해도 실사용상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파이 값은 그냥 3.14156, 그것도 더 간단히 그냥 3.14 값만 가지고 원주 길이를 구하고 원넓이를 구하면서, “구했다.” “맞았다.” 그러면서 그냥 지내온 것입니다. 그러면 파이 값은 뭐고 원의 넓이는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요?  원의 넓이를 구하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아르키메데스입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넓이를 구하려는 원에 내접하는 정사각형과 외접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를 구한 다음, 두 넓이를 합하여 둘로 나눕니다. 그러면 그 넓이는 두 사각형 사이의 어디에 존재하는 원의 넓이와 같을 것이고, 구하려는 원의 넓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의 넓이를 정하는 공식에 넣어서 상수값을 계산하면 그게 파이 상수값이 되는 것입니다. 원주의 길이를 구하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나아가서 사각형이 아니라 더 늘려 오...

전광훈이 어떻게 전광훈이 될 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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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이 어떻게 전광훈이 될 수 있었나 눈이 와서 교회에 오지 못한 분에게 집사 한 분이 안부를 물었더니, 이런 말을 들어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불쌍해서 울고 있어.” 사람들이 그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사님이 심히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분별력이 그리도 없을 수 있음을 보면서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윤석열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두 실토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교활하게 자기를 지지하는 극우 꼴통 보수를 선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극우 꼴통 보수들의 악행이 심히 우려되지만 반면, 그런 단체의 소리에 현혹이 되어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극우 보수를 이끄는 핵심 단체나 인물이 여럿 있는데, 그 중의 하나에 전광훈 목사가 있습니다. 목사? 그 놈이 목사인가?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는 놈입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놈입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1Jn 4:1, NIV] Dear friends, do not believe every spirit, but test the spirits to see whether they are from God, because many false prophets have gone out into the world. 아래 영상에 전광훈이 어떻게 전광훈이 되었나, 그 놈이 어떤 놈인지 바로 좀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멋진 국민들이 사는 대한민국을 오염시키는 무리의 핵심이 극우단체 유튜버들입니다. 그들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반복해서 미친듯이 떠드는 소리에 분별력없는 노인네들이 진실착각효과에 빠져 바보같은 집회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집사님도 극우단체의...

동산 사건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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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사건의 증거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며 생긴 부상의 흔적을 왜 지우지 않으셨을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죽은 몸을 스스로 살리시면서 온전한 몸으로  원위치 시키는 일을 왜 하지 않으셨을까요? 증거 아니고는 믿지 못하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Jn 20:27, NIV]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see my hands.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예수님 몸에 일어난 그런 일이 태초의 사람 아담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아담으로부터 이브를 복제하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신 분이 간단하게 이브를 말씀으로 만들면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한 걸음 더 나가 아담으로부터 갈빗대를 취하실 때 왜 굳이 외과수술 방법을 택하셨을까요? 미래에 일어날 예수님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예언하는 그런 모습일까요? 주님이 아담으로 갈빗대를 취했다는 것은 주님이 아담을 마취시킨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Ge 2:21, NIV]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then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깊이 잠들게 하시니” 마취시킨 겁니다. 그리고 갈빗대를 떼어낸 자리에 갈빗대가 다시 재생되지 못하게 살로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

무협지보다 더 무협지 같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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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보다 더 무협지 같은 성경 사람, 내 몸, 나의 어머니가 나를 이 세상에 릴리즈하셨지만 그리 할 수 있게 한 것은 태초에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본 사람이 없으니 그런 일이 있었는 줄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주님이 인간에게 직접 말씀해주십니다. 성경에 그 분이 인간에게 알려주신 일들이 적혀 있습니다. 성경, 사람이 쓴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지만, 주님이 말씀해주신 것을, 보고 들은 것을 적은 것입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Ge 2:7, NIV] Then the LORD God formed a 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the man became a living being. 우리말 성경이 흙으로 아담(사람)을 만들었다고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은 먼지(dust)라고 기록하고 있고,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도 아파르는 먼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지같은 존재가 주님이 주신 생령을 받아 사람이 된 것입니다.  먼지가 스스로 진화해서 생명체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무협지는 재미로라도 읽을 수 있지만 먼지가 진화해서 원숭이가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소리는 재미있지도 않고 너무 바보같아서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배우고, 엄청난 시설의 미국 천문대에서 일한 가방끈 길고, 노벨상 받은 천문학자들이 빅뱅을 주장하면서 우주먼지가 에너지를 받아 별이 만들어지고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진화론을 펴는 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먼지는 어떻게 생겼고, 빅뱅은 어떻게 일어났고, 우주먼지는 어디서 에너지를 받았습니까?  누군가 그 에너지를 만들고 주지 않으면 뭔가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진화론...

지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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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문학 오늘날 보는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성경은 수많은 저자가 쓴 것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쓰여있습니다. 시문학학 형태로 쓰여진 것도 있고, 역사서 형식으로 쓰여진 것도 있습니다. 문학적인 형태로 볼 때, 지혜문학으로 구분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혜문학에 해당되는 것은 욥기, 잠언, 전도서, 야고보서입니다. 잠언과 전도서가 지혜문학에 들어가는 것은 언뜻 감으로도 알만한데, 욥기와 야고보서는 “어, 왜?”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습니다.  욥기에 나오는욥이 살던 곳은 지금의 중동지방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도 추정이 됩니다. 지금의 중동지역은 뜨겁기 그지없는 지역인데, 욥기에는 눈, 춥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빙하시대, 빙하시대가 언제인가요? 지금도 빙하시대입니다. 엥? 빙하가 있는 시대가 빙하시대 아닌가요? 빙하, 북극이나 남극이나 알라스카까지 갈 필요없이 밴쿠버에서 두 시간 떨어진 휘슬러에도 산꼭대기에 빙하지역이 있습니다. 거기서 7월 한여름에도 빙하 위에서 사람들이 스키를 탑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하루길인 캐나디언 록키의 빙하도 유명합니다. 욥이 살던 시대에는 빙하지역이 더 광밤위하여 중동지역까지 빙하가 덮힌 지역이 있었나 봅니다. 과학자들이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빙하시대가 욥이 살던 시대이지 읺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욥은 욥기 10장에서 주님에게 대듭니다. 법정에서 한번 붙어보자고 나옵니다. 그런 성난 욥이 창조주의 변론을 듣고는 그 오만방자한 입을 닫고, 창조주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 변론 과정에서 욥기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부인할 수 없는 기가막힌 묘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정말 지혜의 말들이고 표현들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왜? 야고보서는 길지 않습니다. 버스 기다리면서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 호흡에 훅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루터는 야고보...

Have mercy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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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mercy on me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옛날 이스라엘 여리고 신작로 먼지 날리는 한 귀퉁이에서 이런 샤우팅을 한 사람은 바디매오입니다.  [막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Mk 10:46, NIV]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which means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바디매오, 그는 거지입니다. 거지인데, 세상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그 처지로만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보잘것 없는 인생의 이름이 무려 성경에 기록되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읽고 알게 되었고, 믿음의 표상으로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효자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이 해프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바디매오가 그냥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디매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아버지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게 만들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 바디매오가 거지로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할 때, 아버지 디매오가 바디매오를 겉옷하나 덮어주며 거리로 내쳤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에게 잘 케어받다가 아버지 디매오가 죽으면서 거지생활이 시작이 되었을까요? 마가는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를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자신의 기록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바디매오의 아버지가 누군지 수소문해서 알아내었을까요? 저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 있어야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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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있는 곳, 있어야 하는 곳 주일에 젊은 친구들이 늦잠 자고, 화면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리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리고 있는 것은 요즘 같은 시절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교회로 모여드는 젊은 영혼이 정말 귀하고 은혜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는 걸로 멈추지 않고, 예배 중에 귀한 일을 더불어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은혜가 됩니다. 학교다닐 때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앞에 앉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뒤를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교실에서 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는 키 순대로 자리를 배치해서 앉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키가 작아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면 공부를 훨씬 더 잘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쉰소리! 주일이 되면 가는 노스 밴쿠버의 작은 한인 교회, 앞자리 앉지 않으려고 예배당에 일찍 갑니다. 오른쪽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보면, 앞에서 봉사하는 젊은이 둘이 보입니다. 왼쪽에 앉은 1번 친구는 강대상 앞 스크린에 화면을 띄우는 빔 프로젝트 담당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실수없이 예배 시간 내내 잘 수행합니다. 젊은 시절의 소중한 시간을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쓰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의 모습이 은혜가 되는 순간은 찬양을 할 때입니다. 찬양할 때, 성도들은 앞의 자막에 뜬 찬양가사를 보는데, 저는 이 친구의 발을 보게 됩니다. 찬양의 박자에 따라 발이 까닥까닥 박자따라 움직이고, 머리가 앞뒤로 끄덕끄덕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은혜가 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2번 젊은이, 이 친구는 1번 친구 옆에 앉아있지만 뭘 하지는 않습니다. 보지 않는 사이에 비밀스런 뭔가를 하는 건지, 아니면 사수에게 뭔 일이 있을 때 사수 대신 빔 프로젝트를 맡을 임무를 띤 조수인지 부사수인지 모르겠지만, 사수가 늘 멀쩡하니 도대체 옆에 앉아 뭘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비싼 책의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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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책의 옥의 티 이 글의 제목을 좋은 책의 옥의 티라고 하려다가 티가 있으면 좋은 책이 아닌 것같아 제목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로 비쌉니다. 이북(ebook)은 종이책만큼 비싸지 않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두꺼운 책은 백불이 넘습니다. 이게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무지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한국어 버전의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걸 캐나다에서 찾아보니 당연히 영어 원본이 있는데, 그게 백불이 넘는 가격입니다. 요즘을 살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 속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의 시대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온전히 되지 않거나 미스언더스투드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으면 더 심도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경 시대의 시대상과 유적들을 소개하는데, 그림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성경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류가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내산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지도에서 시내산을 시나이 반도에 그려넣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출판물에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광야 생활을 한 것으로 서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오류입니다. 아마도 “어떻게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갔겠어? 그게 말이 돼?”하는 불신 속에서 그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관련 책자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만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 추종자이지만 밥벌이 때문에 그걸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그건 못 믿는 사람도 만연한 세상이니 뭐.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한 곳은 시나이 반도가 아니라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 쪽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 사이에 있는 아카바(Aqaba)만입니다. 아카바 만의 가장 좁은 해협의 바다 밑에서 발...

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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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저의 꼬맹이 시절은 밤 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전이 수시로 되어 촛불로 방을 밝히는 일도 자주 있었고, 거리에 네온사인도 없어서 밤이 참 어두웠고, 그로 인해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깨끗하게 잘 보였습니다.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 자리, 오리온 자리 안의 삼태성은 그 때도 네모 안에 갇혀 있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갇혀 있습니다. 삼태성이 가까이 붙어있는 별들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인데도 우리 눈에는 셋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대로 우주가 진화하고 팽창하는 것이라면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세월이 지나면 얽그려져 있고, 별자리를 관찰할 수 없이 어느 별이 어디로 갔는지 관찰할 수 없어야 하는데, 별들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 관측이 가능하고 예상 경로와 위치를 예측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폭발하고 진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리 질서정연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Ps 8:3, KJV] 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 그렇다면 주님은 별자리를 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별을 통하여 징조를 보이시고,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걸 인간에게 보이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관장하시는 분인 것을 알려주시려고 그러신 겁니다. [창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Ge 1:14, KJV]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of the heaven to divide the ...

퍼즐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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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완성 창세기, 지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세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바이블이 제일 많이 출판된 책이고, 제일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입니다. 그 책의 시작이 창세기로 시작되고 있고, 첫 문장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을 했고, 우주가 스스로 진화하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못합니다. 뭔 소설같은 소리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가 진화, 무생물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나요? 우주가 진화한다면 뭔가 진화를 일으키게 하는 소스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게 진화신인가요? 진화론자들이 믿는 신인가요? 스스로 무논리에 빠지는 함정에 빠질 일입니다. 각설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에 빠지고, 진화론 신을 믿는 진화론자들과 어리석은 논쟁을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뿐입니다. 진화론은 엉터리 믿음일 뿐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창세기 1장에 촛점을 맞춥니다. 창세기 1장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상이 혼돈하고 암흑에 쌓였다고 합니다. 아니 아름답게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인데, 그게 다 어디가고 혼돈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요? 잘 모르는 옛날일이니, 모세가 그걸 적으면서 주님께 들은대로 뭘 잘 모르겠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냥 듣고 기억나는대로 적고, 후세에게 나도 잘 모르겠고, 너희들도 각자 알아서 읽어라 하고 그리 무책임하게 기록을 남겼나요? 지난 20년간 사는데 바빠 일과 관련된 책만 들이 팠지, 그 외의 책들은 거의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즘 들어 책 읽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는 여건 상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매일 이것저것 읽어야 하는 환경이지만, 학창 시절 끝나고 책을 읽을 때는 한 권의 책을 잡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책 한권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독서의 패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북을 타블렛으로 읽다보니, 타블렛에서 독서앱을 열면 타블렛에 올린 여러 권의 ...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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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유기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비즈니스맨형 목사들입니다. 예수님 믿게 되었으면 믿는 사람이 사는 것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선한 삶을 사십시오 하고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부담스런 이야기하여 교인들 떠나가기 싫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인가요? 그런 사이비 목사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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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창세기의 기록이 허황된 것이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성경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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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가 뭡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까?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겁니까? 엎드려 눈 감고 뭘 해야 합니까?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죽어라 주님을 부르는 게 기도입니까? 주님이 대답하시지 않으면 그냥 주 기도문 외우고 끝나는 게 기도입니까? 기도는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합니까?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기도는 주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주문하듯 애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주님이신데 왜 기도를 하셨을까요? 기도하면 주님이 단번에 뭐든 다 들어주십니까? 뭐든 다 들어준다는 문구가 성경에 있긴 있습니다. 단번에 들어주시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는가요? 그게 뭐든.  엘리야는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할 때 일곱번 기도하고 나서야 비가 내립니다. 그럼 여섯번째까지는 기도를 해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일곱번째 기도에서는 주님의 말씀 응답을 받았을까요? 일곱번째 기도에서 주님이 말씀해주셨다면, 기도하고 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사환에게 왜 물어봤을까요? 기도의 전사로 통하는 엘리야도 일곱번 기도에 주님과의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도대체 기도는 뭔가요? 대답없이 응답해주는 것이 기도인가요? 승천한 엘리야같은 사람도 주님과의 대화없이 기도를 했다면 보통 사람은 도대체 기도 중에 뭘 기대하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건가요? 뭘 기대하고 기도하는 게 기도인가요? 아니면 그냥 해야하는 것이 기도인가요?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기도하는 내내 즐겁고 기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런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건가요? 엘리야가 일곱번 기도하고 사환에게 비가 오느냐고 물을 때마다 면이 섰을까요? 쪽팔림을 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릎사이에 머리 박고 하는 기도가 정말 즐겁고 기뻤을까요? 주님을 모르고 기도도 몰랐고, 기도를 하지도 않은 ...

구약 성경 구성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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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전체 구성 개요을 잡고 읽기

애즈베리 거짓 부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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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베리 거짓 부흥의 실체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일어난 대부흥 사건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 미국이 다시 살아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아니면, "뭐라고,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까? 제가 든 생각은 후자쪽입니다. 제가 너무 냉소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상태가 너무나 한심한 상태인데, 그런 일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있는 집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재미로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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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재미로 다니냐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가 하나님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주님 믿는 마음이 너무 좋아 다른 사람도 믿는지 궁금하고 믿지 않는다면 한번 예수님 믿어보라는 말을 하려고, “교회 다니세요?”하고 물어보면, 요즘 사람들은 나처럼 어리버리한 사람없고, 모두 눈치 200단. 내놓는 대답은 2차 공세조차 원천 차단하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저 천주교 믿어요.” 더 이상 교회나 예수님 운운하지 말라는 칼같은 대답입니다. 교회 다니냐고 물어봤는데, 성당 다닌다고 대답하지 않고, 천주교 믿는다고 대답한 이유는 뭘까요? 성당 다니지 않는데, 다닌다는 물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요? 뭘 믿는 건지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남이 알 수가 없는 노릇이고, 예수쟁이들의 집요한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으로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 성당 다니세요?” 그러고 물러나지만, 성당을 전혀 다니지 않는 것을 감으로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전도하려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실망, 좌절, 패배, 아니면 절망스런 기분이 듭니까? 저도 처음에는 솔직히 똥 밟은 더러운 기분이었습니다. 전도왕들은 고구마 전도라고 계속 찌르면 된다라며 의욕을 더 불태웁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정 같은 것인가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기분도 듭니다. ‘바보! 그래 지옥에 가서 개고생 한번 해봐라.’ ‘그래 잘 생각했다. 너도 천국에 가면 내 배가 아플뻔 했지롱.’ ‘하긴. 그래도 명색이 천국인데, 개나 소나 다 가면 그게 외양간이지 천국이겠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너는 천국에 가겠냐? 각설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습니까? 재미? 교회를 재미로 다닌다고? 왜요? 재미를 나쁘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세요. 얼마나 아름답고 joyful한지 모릅니다.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땅위에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을 때, 재미없게 세상을 만들어 놓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