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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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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문학 오늘날 보는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성경은 수많은 저자가 쓴 것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쓰여있습니다. 시문학학 형태로 쓰여진 것도 있고, 역사서 형식으로 쓰여진 것도 있습니다. 문학적인 형태로 볼 때, 지혜문학으로 구분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혜문학에 해당되는 것은 욥기, 잠언, 전도서, 야고보서입니다. 잠언과 전도서가 지혜문학에 들어가는 것은 언뜻 감으로도 알만한데, 욥기와 야고보서는 “어, 왜?”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습니다.  욥기에 나오는욥이 살던 곳은 지금의 중동지방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도 추정이 됩니다. 지금의 중동지역은 뜨겁기 그지없는 지역인데, 욥기에는 눈, 춥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빙하시대, 빙하시대가 언제인가요? 지금도 빙하시대입니다. 엥? 빙하가 있는 시대가 빙하시대 아닌가요? 빙하, 북극이나 남극이나 알라스카까지 갈 필요없이 밴쿠버에서 두 시간 떨어진 휘슬러에도 산꼭대기에 빙하지역이 있습니다. 거기서 7월 한여름에도 빙하 위에서 사람들이 스키를 탑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하루길인 캐나디언 록키의 빙하도 유명합니다. 욥이 살던 시대에는 빙하지역이 더 광밤위하여 중동지역까지 빙하가 덮힌 지역이 있었나 봅니다. 과학자들이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빙하시대가 욥이 살던 시대이지 읺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욥은 욥기 10장에서 주님에게 대듭니다. 법정에서 한번 붙어보자고 나옵니다. 그런 성난 욥이 창조주의 변론을 듣고는 그 오만방자한 입을 닫고, 창조주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 변론 과정에서 욥기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부인할 수 없는 기가막힌 묘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정말 지혜의 말들이고 표현들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왜? 야고보서는 길지 않습니다. 버스 기다리면서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 호흡에 훅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루터는 야고보...

Have mercy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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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mercy on me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옛날 이스라엘 여리고 신작로 먼지 날리는 한 귀퉁이에서 이런 샤우팅을 한 사람은 바디매오입니다.  [막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Mk 10:46, NIV]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which means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바디매오, 그는 거지입니다. 거지인데, 세상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그 처지로만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보잘것 없는 인생의 이름이 무려 성경에 기록되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읽고 알게 되었고, 믿음의 표상으로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효자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이 해프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바디매오가 그냥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디매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아버지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게 만들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 바디매오가 거지로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할 때, 아버지 디매오가 바디매오를 겉옷하나 덮어주며 거리로 내쳤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에게 잘 케어받다가 아버지 디매오가 죽으면서 거지생활이 시작이 되었을까요? 마가는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를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자신의 기록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바디매오의 아버지가 누군지 수소문해서 알아내었을까요? 저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 있어야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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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있는 곳, 있어야 하는 곳 주일에 젊은 친구들이 늦잠 자고, 화면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리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어디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예배당에 와서 예배 드리고 있는 것은 요즘 같은 시절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교회로 모여드는 젊은 영혼이 정말 귀하고 은혜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는 걸로 멈추지 않고, 예배 중에 귀한 일을 더불어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은혜가 됩니다. 학교다닐 때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앞에 앉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뒤를 좋아합니다. 사실 저는 교실에서 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는 키 순대로 자리를 배치해서 앉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키가 작아 앞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면 공부를 훨씬 더 잘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쉰소리! 주일이 되면 가는 노스 밴쿠버의 작은 한인 교회, 앞자리 앉지 않으려고 예배당에 일찍 갑니다. 오른쪽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보면, 앞에서 봉사하는 젊은이 둘이 보입니다. 왼쪽에 앉은 1번 친구는 강대상 앞 스크린에 화면을 띄우는 빔 프로젝트 담당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실수없이 예배 시간 내내 잘 수행합니다. 젊은 시절의 소중한 시간을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쓰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의 모습이 은혜가 되는 순간은 찬양을 할 때입니다. 찬양할 때, 성도들은 앞의 자막에 뜬 찬양가사를 보는데, 저는 이 친구의 발을 보게 됩니다. 찬양의 박자에 따라 발이 까닥까닥 박자따라 움직이고, 머리가 앞뒤로 끄덕끄덕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은혜가 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2번 젊은이, 이 친구는 1번 친구 옆에 앉아있지만 뭘 하지는 않습니다. 보지 않는 사이에 비밀스런 뭔가를 하는 건지, 아니면 사수에게 뭔 일이 있을 때 사수 대신 빔 프로젝트를 맡을 임무를 띤 조수인지 부사수인지 모르겠지만, 사수가 늘 멀쩡하니 도대체 옆에 앉아 뭘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비싼 책의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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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책의 옥의 티 이 글의 제목을 좋은 책의 옥의 티라고 하려다가 티가 있으면 좋은 책이 아닌 것같아 제목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로 비쌉니다. 이북(ebook)은 종이책만큼 비싸지 않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두꺼운 책은 백불이 넘습니다. 이게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무지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한국어 버전의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걸 캐나다에서 찾아보니 당연히 영어 원본이 있는데, 그게 백불이 넘는 가격입니다. 요즘을 살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 속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의 시대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온전히 되지 않거나 미스언더스투드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으면 더 심도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경 시대의 시대상과 유적들을 소개하는데, 그림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성경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류가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내산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지도에서 시내산을 시나이 반도에 그려넣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출판물에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광야 생활을 한 것으로 서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오류입니다. 아마도 “어떻게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갔겠어? 그게 말이 돼?”하는 불신 속에서 그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관련 책자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만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 추종자이지만 밥벌이 때문에 그걸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그건 못 믿는 사람도 만연한 세상이니 뭐.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한 곳은 시나이 반도가 아니라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 쪽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 사이에 있는 아카바(Aqaba)만입니다. 아카바 만의 가장 좁은 해협의 바다 밑에서 발...

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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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저의 꼬맹이 시절은 밤 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전이 수시로 되어 촛불로 방을 밝히는 일도 자주 있었고, 거리에 네온사인도 없어서 밤이 참 어두웠고, 그로 인해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깨끗하게 잘 보였습니다.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 자리, 오리온 자리 안의 삼태성은 그 때도 네모 안에 갇혀 있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갇혀 있습니다. 삼태성이 가까이 붙어있는 별들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인데도 우리 눈에는 셋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대로 우주가 진화하고 팽창하는 것이라면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세월이 지나면 얽그려져 있고, 별자리를 관찰할 수 없이 어느 별이 어디로 갔는지 관찰할 수 없어야 하는데, 별들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 관측이 가능하고 예상 경로와 위치를 예측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폭발하고 진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리 질서정연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Ps 8:3, KJV] 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 그렇다면 주님은 별자리를 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별을 통하여 징조를 보이시고,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걸 인간에게 보이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관장하시는 분인 것을 알려주시려고 그러신 겁니다. [창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Ge 1:14, KJV]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of the heaven to divide the ...

퍼즐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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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완성 창세기, 지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세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바이블이 제일 많이 출판된 책이고, 제일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입니다. 그 책의 시작이 창세기로 시작되고 있고, 첫 문장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을 했고, 우주가 스스로 진화하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못합니다. 뭔 소설같은 소리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가 진화, 무생물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나요? 우주가 진화한다면 뭔가 진화를 일으키게 하는 소스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게 진화신인가요? 진화론자들이 믿는 신인가요? 스스로 무논리에 빠지는 함정에 빠질 일입니다. 각설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에 빠지고, 진화론 신을 믿는 진화론자들과 어리석은 논쟁을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뿐입니다. 진화론은 엉터리 믿음일 뿐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창세기 1장에 촛점을 맞춥니다. 창세기 1장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상이 혼돈하고 암흑에 쌓였다고 합니다. 아니 아름답게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인데, 그게 다 어디가고 혼돈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요? 잘 모르는 옛날일이니, 모세가 그걸 적으면서 주님께 들은대로 뭘 잘 모르겠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냥 듣고 기억나는대로 적고, 후세에게 나도 잘 모르겠고, 너희들도 각자 알아서 읽어라 하고 그리 무책임하게 기록을 남겼나요? 지난 20년간 사는데 바빠 일과 관련된 책만 들이 팠지, 그 외의 책들은 거의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즘 들어 책 읽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는 여건 상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매일 이것저것 읽어야 하는 환경이지만, 학창 시절 끝나고 책을 읽을 때는 한 권의 책을 잡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책 한권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독서의 패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북을 타블렛으로 읽다보니, 타블렛에서 독서앱을 열면 타블렛에 올린 여러 권의 ...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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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유기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비즈니스맨형 목사들입니다. 예수님 믿게 되었으면 믿는 사람이 사는 것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선한 삶을 사십시오 하고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부담스런 이야기하여 교인들 떠나가기 싫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인가요? 그런 사이비 목사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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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창세기의 기록이 허황된 것이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성경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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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가 뭡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까?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겁니까? 엎드려 눈 감고 뭘 해야 합니까?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죽어라 주님을 부르는 게 기도입니까? 주님이 대답하시지 않으면 그냥 주 기도문 외우고 끝나는 게 기도입니까? 기도는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합니까?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기도는 주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주문하듯 애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주님이신데 왜 기도를 하셨을까요? 기도하면 주님이 단번에 뭐든 다 들어주십니까? 뭐든 다 들어준다는 문구가 성경에 있긴 있습니다. 단번에 들어주시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는가요? 그게 뭐든.  엘리야는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할 때 일곱번 기도하고 나서야 비가 내립니다. 그럼 여섯번째까지는 기도를 해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일곱번째 기도에서는 주님의 말씀 응답을 받았을까요? 일곱번째 기도에서 주님이 말씀해주셨다면, 기도하고 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사환에게 왜 물어봤을까요? 기도의 전사로 통하는 엘리야도 일곱번 기도에 주님과의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도대체 기도는 뭔가요? 대답없이 응답해주는 것이 기도인가요? 승천한 엘리야같은 사람도 주님과의 대화없이 기도를 했다면 보통 사람은 도대체 기도 중에 뭘 기대하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건가요? 뭘 기대하고 기도하는 게 기도인가요? 아니면 그냥 해야하는 것이 기도인가요?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기도하는 내내 즐겁고 기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런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건가요? 엘리야가 일곱번 기도하고 사환에게 비가 오느냐고 물을 때마다 면이 섰을까요? 쪽팔림을 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릎사이에 머리 박고 하는 기도가 정말 즐겁고 기뻤을까요? 주님을 모르고 기도도 몰랐고, 기도를 하지도 않은 ...

구약 성경 구성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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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전체 구성 개요을 잡고 읽기

애즈베리 거짓 부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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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즈베리 거짓 부흥의 실체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일어난 대부흥 사건에 대해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 미국이 다시 살아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아니면, "뭐라고,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까? 제가 든 생각은 후자쪽입니다. 제가 너무 냉소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상태가 너무나 한심한 상태인데, 그런 일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있는 집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재미로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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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재미로 다니냐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가 하나님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주님 믿는 마음이 너무 좋아 다른 사람도 믿는지 궁금하고 믿지 않는다면 한번 예수님 믿어보라는 말을 하려고, “교회 다니세요?”하고 물어보면, 요즘 사람들은 나처럼 어리버리한 사람없고, 모두 눈치 200단. 내놓는 대답은 2차 공세조차 원천 차단하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저 천주교 믿어요.” 더 이상 교회나 예수님 운운하지 말라는 칼같은 대답입니다. 교회 다니냐고 물어봤는데, 성당 다닌다고 대답하지 않고, 천주교 믿는다고 대답한 이유는 뭘까요? 성당 다니지 않는데, 다닌다는 물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요? 뭘 믿는 건지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남이 알 수가 없는 노릇이고, 예수쟁이들의 집요한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으로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 성당 다니세요?” 그러고 물러나지만, 성당을 전혀 다니지 않는 것을 감으로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전도하려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실망, 좌절, 패배, 아니면 절망스런 기분이 듭니까? 저도 처음에는 솔직히 똥 밟은 더러운 기분이었습니다. 전도왕들은 고구마 전도라고 계속 찌르면 된다라며 의욕을 더 불태웁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정 같은 것인가 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기분도 듭니다. ‘바보! 그래 지옥에 가서 개고생 한번 해봐라.’ ‘그래 잘 생각했다. 너도 천국에 가면 내 배가 아플뻔 했지롱.’ ‘하긴. 그래도 명색이 천국인데, 개나 소나 다 가면 그게 외양간이지 천국이겠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너는 천국에 가겠냐? 각설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잘 다니고 있습니까? 재미? 교회를 재미로 다닌다고? 왜요? 재미를 나쁘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세요. 얼마나 아름답고 joyful한지 모릅니다.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땅위에 사람을 만들어 놓으셨을 때, 재미없게 세상을 만들어 놓으...

성경 바르게 이해하고 읽기: 김근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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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 교수의 성경을 대하는 자세. 성경 읽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Mind Control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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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Control Manual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매뉴얼”  그런 것이 있을까? 성경이 그런 것일까? 불경이 그런 것일까? 까까중들이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그렇고 그런 소리들을, 도깨비 씨알 까먹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밤에 절 뒤에서 귀신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교회에서는 목사들이 그런 시답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목사들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면 신이지. 어느 어떤 인간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인간들은 마치 자기가 득도한 것처럼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책을 통하여 썰을 풀고 있습니다. 얼핏 들을 때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들 뿐입니다. 타이틀 달린 사람들이 그럴싸 하게 포장하여 이야기하니 대단해 보이는 것일뿐, 까놓고 보면 죄다 쉰소리일 뿐입니다.  Mind Control Manual,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사람은 사람이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를 다루는 매뉴얼을 만들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을 가지고 있지만 몸속에 감추어진 설계도를 볼 능력도 없고, 몸 속의 내장이나 기관들을 자기 스스로 움직이거나 변경하거나 고치고 뭐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진화? 세상에 제일 바보같은 소리가 그 소리. 짜장면 시키신 분 말고, 살아있는 동안 진화 한번 해본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자동차 사용법이나 정비 매뉴얼은 누가 만듭니까? 자동차 스스로 그걸 만들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설계하고 만든 사람이 자동차 매뉴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면 그걸 만들 수 있는 분은 사람을 만든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마인드 콘트롤 매뉴얼을 사람을 위해 만들어 주셨을까요? 바이블이 사람 마음 콘트롤 매뉴얼인가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들면서 사람에게 자율권을 주셨습니다. “자, 이 ...

빅뱅, 가설, 조작, 우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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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가설, 조작, 우기기 세상은 지금 빅뱅의 패러다임 아래에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장로라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면 빅뱅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창조도 믿고, 빅뱅도 믿고, 박쥐같이 살고 있습니다. 빅뱅과 창조, 그 두가지를 다 믿는 사람들의 논리는 하나님이 창조를 하셨는데 빅뱅을 이용하여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건 넌센스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와 진화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의 창조가 진짜면 진화는 가짜고, 진화가 진짜면 창조는 없는 것입니다. 빅뱅은 창조를 믿지 않는 진화론자들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가설입니다.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만화같은 이론입니다. 예수님을 창조주로, 구원자로 믿으면서 빅뱅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도 믿고, 까까중 부처도 믿고, 뒷마당 고목에 붙은 성황당 귀신도 다 믿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진화론자와 그를 추종하는 천문학자와 과학자들은 빅뱅이 맞다고 우기기 위하여 우주 팽창설을 주장하고, 우주 팽창의 증거를 찾기 위하여 죽어라 천체망원경을 들여다 보며 거짓말 조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뭘 하나 발견하고 그게 우주 팽창의 증거라고 우기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니 밥벌이도 되고 세상 명예도 얻을 수 있으니 시간을 투자할만한 일이긴 할겁니다. 빅뱅은 하나님의 창조방법이 아닙니다. 성경에 어디고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빅뱅은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진화론자들이 창조를 부인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빅뱅은 창조주를 거역하는 악마의 궤계에 넘어간 믿음이지 과학이 아닙니다. 성경의 창세기 1장을 보면, 주님은 빛을 만드신 다음, 물속에서 땅을 솟게 하시며 지구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법이고 순서입니다. 빅뱅으로는 그런 일이 순차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날짜까지 뽑아가며, 첫째날 뭐를 하시고, 둘째날 뭐를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걸 믿으려면 온전히 믿어야 나중에 내 귀책사유...

순종과 불순종의 틈새

순종과 불순종의 틈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완벽한 말씀이라고 믿는 반면에, 예수를 믿지 않고 성경을 예수쟁이들이 만들어낸 종교 서적이나 전설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래서 틀린 구석도 많다고 놀리고 우습게 여깁니다. 노아가 방주에 실은 동물의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대목도 그런 사람들이 시비거는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하루이틀 사이에 방주에 실어야 할 동물의 수가 한쌍에서 일곱쌍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그것을 보고 성경의 부정확함을 지적합니다. 당시에 나무를 가지고 그 큰 배를 짓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 일을 하라고 노아가 숙제를 받을 때, 노아는 한마디도 이러쿵저러쿵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다시 뭐라고 묻는 일도 없었습니다. 노아가 뭐라고 궁시렁거렸을 건데, 창세기 저자가 노아가 하는 말을 적지 않았을 뿐이라고요? 창세기 저자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말 대답하면 꼬치꼬치 다 적은 사람입니다. 주님과 모세와의 대화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출4:13) 방주 만드는데 지쳐 짜증이 폭발할 법한 노아에게 방주에 한 쌍씩 실으라고 했다가, 일곱쌍씩 실으라고 했다가 다시 한 쌍씩 실으라고 하시는 주문(?)에도 노아는 전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습니다. 정말로 노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서 창세기 기자가 적을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오락가락 하는 말씀으로 노아를 시험했던 주님도 노아의 순종에 흡족하지 않으셨을까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19)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20)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창7:2)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7:3)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원생대 퇴적층에는 왜 화석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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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대 퇴적층에는 왜 화석이 없을까 의학을 공부하러 가면 1학년 때 본과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의대에 비교해서 미안했습니다만, 제가 공부할 때는 공돌이 공대도 그랬습니다. 저는 2학년에 올라가면서 기계공학과를 선택하였습니다. 1학년 때 공부할 때는 수학이 제일 중요한 과목입니다. 역학(수리수리마수리하는 역학이 아니고)을 공부하면서 공식을 세우고 그 공식을 푸는 수단이 수학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아폴로 쏘아 올릴 때만 해도 필요한 모든 수학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풀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온 다음부터는 수학을 푸는 것을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는데, 제가 배울 때 공대생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 공부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포트란이란 것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란 것이 덩치만 집채만하게 컸지, 데이터 입력을 위해서는 구멍 뚫린 카드 뭉치를 컴퓨터 입력장치에 넣어주는 후진 방식이었습니다. 공대생 1학년 때는 수학과 그 포트란을 잘 공부해두어야 했습니다. 그후 수학공부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은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거였지만. 좌우지간 기계공학과 2학년으로 올라가보니, 교과서의 제목들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열역학, 유체역학, 고체역학, 구조역학, 기계요소설계 등, 역학책들이 두둥 등장을 했습니다. 이중에서 유체역학을 공부하면서는 수조 실험실에 들어가 실험을 하면서 데이터를 만들고 물속에서 저항이 생길 때, 수중에서 물체 주위의 압력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런 것들을 측정하면서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들을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조,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이 수조에 물을 흘리면서 흙을 집어넣어보았습니다. 그 실험을 한 동영상은 지금은 유튜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장난(?)을 하면서 보았더니, 흙들이 눈에 보이게 선명하게 즉시로 퇴적층을 만들고 있는 게 목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보고,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이 지구의 퇴적층은 장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퇴적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 150일 동안 전지...

나는 정말 믿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믿는 사람인가 인생을 반추해보면(소도 아니면서 뭔 반추를) 정말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같이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놈들을 반드시 지옥으로 보내 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마음이 들고 옛적에 느꼈던 그때의 분노보다 더 큰 분노가 되새김질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지옥는 왜 가? 나는 천당에 가고 그 놈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옥으로 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전담 천사가 있습니까? 그건 저승사자 아닌가요? 번잡한 인간의 생각을 접고 예수님께로 고개를 돌려봅니다. 예수님께는 빚진 게 많습니다. 그 분은 제게 주신게 많은데 저는 그 분께 받은 은혜밖에 없고 그게 다 빚이라면 빚입니다.  그 빚을 갚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선택사항이 아니라 멘도토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에게 당한 고통과 수모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분은 그런 악한 죄된 인간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이 땅에서 당할 일을 알면서도 스스로 죄 사하는 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건 창조의 역사보다 더 놀라운 용서와 구원의 역사입니다. 죄에 대하여 승리하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우리에게도 같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용서하라, 사랑하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원수를 위해.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6:2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주님의 사명 때문에 인생에 반추되는 그 미운 놈들을 미워할, 용서못할 핑계도 없어졌습니다. 그냥 내 마음 포기하고 내가 보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아니 용서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서 먼저 용서부터 구하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히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평생 노력하는 것이...

그 빛이 오는데 억년이 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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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이 오는데 억년이 걸렸을까 사람이 성경을 썼고, 지구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기록했지만, 그 내용은 주님의 말씀을 들은대로 기록한 내용이라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이 감리하시고 보증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와 그 비슷한 직접 말씀하신다는 내용이 성경에 쫙 깔린 것은 주님이 직접 만드신 책인 것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뻥을 칠 일도 없고, 뭘 대충 말씀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런 헛점이 있다면 결코 거룩한 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완전하고 완벽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창조주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고, 그런 분이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신 말씀이라면, 인간이 그 말씀에 빼지도 말고 붙이지도 말고 그대로 알아 들어야 합니다.  우주만물을 참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그 피조물 중에서도 인간을 사랑하시고, 친구되기 원하셨고, 아들 삼기 원하셨고, 찬양받기 원하셨으니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믿어도 하나도 손해볼 것이 없는 진실된 내용뿐인 것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 인간을 위한 우주를 조물주가 창조한 것은 AI도 성경에 의하면 6천년 전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최초 인류가 나타난 것은 20만년 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AI가 창조웹사이트에 6천년이라고 나와있는데 그건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토를 달고 있습니다. ‘AI도 전부 진화론자들이 만들고 있는가?’ 현 세상의 패러다임이 진화론이고, 세상의 도서관에 쌓인, 쌓이고 있는 자료들이 전부 진화론 관련한 것이다보니, 세상없는 AI인들 같이 진화론에 절여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나아가서는 인류의)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고, 누가 누구를 낳았고, 누가 몇살을 살았고, 그런 족보가 죽 이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걸 연대표로 죽 짜맞추면 대략 6천년이 나옵니다. 아주...

잘난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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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 샵에 두 젊은이가 있습니다. 아직 레드씰 정비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프렌티스들입니다. 둘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남을 잘 돕기도 합니다. 둘다 괜찮은 젊은이들이고 둘다 미래에 좋은 테크니션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조금의 캐릭터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뭔가 물어 보았을 때 한 사람은 거침없이 답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미안하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모르겠다고 답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에서 일하는 에릭이 “쟤는 수퍼 수퍼 테크니션이다.”라고 평합니다. 거침없이 대답하는 그 어프렌티스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걔는 모르는 게 없다.”는 비아냥거림이 있는 뉘앙스입니다. 뭐든 알고 있는 것처럼 답하는 그 젊은이가 인성이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은 잘난 척하는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보도 좋아하지 않고, 잘난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말 많은 사람도 좋아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지 않는데, 할 줄은 잘 모릅니다. 이걸 선천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복받은 사람이고, 의식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욥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