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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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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살면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말이고, 듣고보니 있어보이는 질문인지라 멋지게(?) 소시적에 누구에겐가 써먹어보기도 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면서 결론이 났습니까?  살아보니 그게 있어보이는 질문이 아니고, 참 싸구려 질문입니다. 혹자는 잊어버리고 있던 그 질문이 생각나서 “정말 뭐가 먼저일까?”하고 또 그 멍청한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그것 가지고 지지고 볶아도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먼저면 그 달걀은 어디에서 나왔고, 닭이 먼저면 그 닭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 머리 수준으로 따져볼 주제가 아닌 거고, 인간은 그런 질문을 가지고 놀 능력도 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바이블을 읽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뻔한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Ge 1:1, NIV]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Ge 1:25, NIV] God made the wild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s, the livestock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주님이 메추리 알부터 공룡알까지, 크고 작은 알들만 죽 만들어놓고 그걸 보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겠습니까? 주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동물들을 암수 쌍으로 만드셨고, 그것들이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게 질서있는 창조의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보

천문학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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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바다에도 가보고, 산에도 가보도, 외국 여행도 다녀보고, 그러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내가 사는 지구가, 세상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하고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떤 신이 그리 전지전능하기에 이런 세상과 천지만물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스케일이나 솜씨가 아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자기 생각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신은 없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들이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구상의 동식물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를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만화처럼 만들어낸 이야기가 우주가 큰 폭발로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빅뱅설이고, 종의 기원에 기록한 자연선택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오늘날 생각해보면 정말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초등학생이 엄마따라 어느 섬을 한번 여행하고 쓴 곤충채집과 일기 수준의 쓰레기 이야기입니다.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한심한 현실입니다. 그러면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아내지도 못할 그런 일을 가방 끈 긴 것 내세워 우기지 말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간단하고 쉬운 상식선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러면 노벨상 받은 박사님과 농사나 짓던 할배와도 대화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사람보다도 더 많아 진 것 같은 자동차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자동차가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 흙 속에 섞인 철강석이 어찌어찌 스물스물 흙을 떨구고 기어나와 스스로 자동차로 진화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병원에 가야할 수준이지요? 아니면 만화작가나 공상과학 소설가지요.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5천명의 설계자가 설계하고, 5만명의 작업자가 달라붙어 몇년을 고생해야 만들어집니다. 자동차보다 비싸긴 하지만 만드는데 필요한 사람 수도 적고 구조도 비교적 덜 복잡한

원생대 퇴적층에는 왜 화석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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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생대 퇴적층에는 왜 화석이 없을까 의학을 공부하러 가면 1학년 때 본과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의대에 비교해서 미안했습니다만, 제가 공부할 때는 공돌이 공대도 그랬습니다. 저는 2학년에 올라가면서 기계공학과를 선택하였습니다. 1학년 때 공부할 때는 수학이 제일 중요한 과목입니다. 역학(수리수리마수리하는 역학이 아니고)을 공부하면서 공식을 세우고 그 공식을 푸는 수단이 수학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아폴로 쏘아 올릴 때만 해도 필요한 모든 수학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풀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온 다음부터는 수학을 푸는 것을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는데, 제가 배울 때 공대생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 공부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는 포트란이란 것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란 것이 덩치만 집채만하게 컸지, 데이터 입력을 위해서는 구멍 뚫린 카드 뭉치를 컴퓨터 입력장치에 넣어주는 후진 방식이었습니다. 공대생 1학년 때는 수학과 그 포트란을 잘 공부해두어야 했습니다. 그후 수학공부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은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거였지만. 좌우지간 기계공학과 2학년으로 올라가보니, 교과서의 제목들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열역학, 유체역학, 고체역학, 구조역학, 기계요소설계 등, 역학책들이 두둥 등장을 했습니다. 이중에서 유체역학을 공부하면서는 수조 실험실에 들어가 실험을 하면서 데이터를 만들고 물속에서 저항이 생길 때, 수중에서 물체 주위의 압력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그런 것들을 측정하면서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험들을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조, 미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이 수조에 물을 흘리면서 흙을 집어넣어보았습니다. 그 실험을 한 동영상은 지금은 유튜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장난(?)을 하면서 보았더니, 흙들이 눈에 보이게 선명하게 즉시로 퇴적층을 만들고 있는 게 목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보고,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이 지구의 퇴적층은 장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퇴적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 150일 동안 전지

날개달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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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사람 사람은 왜 진화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만약 사람에게 진화하는 능력이 있다면 지금쯤, 아니 벌써, 날개 달린 사람도 나오지 않았을까?  진화하는데는 왜 꼭 수만년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의 문명의 역사가 오천년이면 그 사이에 겨드랑이 밑에서 뭔가 나오려고 꿈틀거림이 있는 사람이 수십억 중에 몇 천이라도 나왔어야 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장구한 세월을 주장하는 것은 책임지기 전에 죽어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편리한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 꼼수인가? 지금 지구 상에 수많이 남아있는 원숭이들은 사람으로 진화하지 못했음에도 어떻게 도태하지 않고 그렇게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 장구한 세월동안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면, 그 연속적인 진화의 과정 중에 존재했을 수많은 개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존재들의 수가 지금 보이는 원숭이나 사람들 수보다 더 많아야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닌가?  엔지니어들이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먼저 차 그림을 내놓아야 하고, 엔지니어들이 그 그림에 맞게 세밀한 설계도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차를 만들기 위한 공장을 설비 제작 관련 엔지니어들이 준비해줘야 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작업자들은 어떤 지침에 따라 그 지침을 보고 일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 지침서가 바로 엔지니어들이 만든 설계도입니다. 그런 엔지니어들의 창조(?) 능력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는 엔지니어들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적으로 높은 인정과 대우를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공돌이로 통하지만. 각설하고, 차 한대 만드는데도 얼마나 많은 설계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차 보다 훨씬 더 정교한 사람을 만드는 데는 얼마나 더 많은 설계도가 필요할까요? 인간 몸속에 있는 30억 조합의 유전정보를 서술하는데 150만 페이지가 필요합니다. 자동차 설계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 설계도가 인간 각자의 몸속에 그려져 있습니다.  차를 만드는 인간의 능력과 사람을 만드는 창조주의 능력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인간이

욥, 요나, 엘리야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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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요나, 엘리야의 공통점 성경을 구약에서 신약까지 대항해를 해본 사람은, 대항해는 아니더라도 욥기를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왜 성경에 있지? 뭘 보여주려는 거지?’ 인간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늘 세상과 인간 세상이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고, SF환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천지간에 대화가 있고, 욥기에 묘사되는 동물들은, 이름은 현존하는 동물의 이름이지만 묘사되는 모습은 공룡들입니다. 사람과 공룡이 공존했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것은 성경 욥기가 주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흔하게 해석되는 것은, 고난을 극복하면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겨우(?) 그 정도의 밋밋한 기복신앙 정도의 메시지를 주려고 그런 격한(?) 내용들을 담았다고?  또 한 측면에서는 진화론을 반대하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창조의 증거로 욥기를 인용합니다. 태초에 모든 동식물과 인간이 같이 창조되었고, 욥기는 공룡과 인간이 동시대에 공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불과 몇 천년 전에. 저는 욥을 보면서, 요나와 엘리야가 보인 행동도 욥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창조주)과 씨름하던 이들이 마지막에 보인 행동에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기가 의인이라며 말많던 욥은 주님과 말씨름 끝에 입을 닫습니다. 주님의 부름에 불순종하며 지중해 건너 도망가던 요나는 물고기에게 잡혀 다시 끌려와서는 마지 못해 사명을 완수하면서 뙤약볕에 죽겠다고 불평을 하다가 주님의 한 말씀에 대답없이 요나서가 끝납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전사로, 돌쇠같이 순종하는 캐릭터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선지자입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여자가 뱉은 죽이겠다는 말 한마디에 무너져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고는 낙담하여 주님 앞에 날 죽여주십시오 라며 완전히 캐릭터 망가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은

진화=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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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퇴화 11월, 겨울, 썸머타임도 끝나서 시침이 한 시간 뒤로 물렸는데도, 새벽은 더 어두워만 지고 있습니다. 먼동이 트는 시간도 늦춰지고 있는데, 겨울 새벽 밴쿠버 일출의 모습은 석양보다 더 극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웨스트 밴쿠버 씨웍(Seawalk)에서 라이온즈 브릿지를 향해 동쪽 새벽 하늘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예쁜 다리너머 미국땅에 있는 베이커산이 보입니다. 정상에 쌓인 만년설이 1년내내 녹지 않는 높은 산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요. 세상의 모든 금을 모아도, 온 세상의 보석을 다 모아 쌓아놓아도 이 광대한 아름다움을 연출해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 은혜입니다. 대홍수 이후 주님이 노아에게 처음 보여주신 무지개처럼 매일 아침과 저녁에 노아의 후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고 사랑의 증거입니다. 주님의 섬세하심도 볼 수 있습니다. 태양, 달, 지구의 레이아웃, 지구와 달의 공전 속도, 지구의 자전 속도, 지구축의 각도,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의 배합율.. 이 모든 요소 중에 어느 것 하나만 자칫 삐끗해도 이 아름다움은 차치하고 우리의 생존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섬세함과 정교함은 저절로 생길 수가 없습니다. 무한한 능력을 가진 창조주만이 설계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 긴 가방줄 가지고, 박사학위, 노벨상 가지고도 이 사실을 부인하고,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양심에 똥바른 거짓말쟁이들이고, 보통 사람의 상식보다 못한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무식자들입니다. 유사 이래 진화는 없었습니다.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았고, 사람은 사람을 낳았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가지고 노는 뼈는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뼈가 아니고 다 원숭이 뼈고, 사람뼈일 뿐입니다.  없는 박사학위 가지고 생각할 생각하지 마시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식만 가지고도 뼈 가지고 논 과학자들의 학설이 거짓말인 걸 알 수 있습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