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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묘 심지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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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묘 심지있네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석열이의 친위 쿠데타로 인해 한국 기독교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민낯이라기 보다는 일부 미숙하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삐뚤어진 세력들은 기독교라기 보다는 기독교의 탈을 쓰고 욕망을 쫓는 이익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팩트입니다.  정신 똑바로 박힌 교인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는 세상에 바른 말 제대로 할 줄 아는 분, 그것도 젊은 여자분이 있습니다. 묘성? 묘묘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기독교인 중에 상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고,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안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니, 양동근은 역시 쓰레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관상이 중요합니다. 그 양아치같은 분위기가 어디 가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조선 제일검을 연기했던 배우 조진웅, 정말 멋있는 연기자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 그리 산뜻한 이야기만 가지고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뚫고 정신 제대로 박힌 기독교인들이 이단 못지 않게 많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고 희망이 있는 서사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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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성경에서 믿음에 대하여 가장 단호하게 정의하고 있는 부분은 히브리서 11장 1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여기서 실상을 영어성경은 confidence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을 보면서 영어 믿음보다 한국 믿음이 더 강력하고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 컨피던스는 확신, 신뢰라는 뜻인데, 한국말은 실상, 즉 실제라고 하니, 이건 미친(?) 믿음 아닌가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번에도 영어 성경은 증거를 assuran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confidence와 assurance의 뉘앙스에 어떤 차이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두 단어가 같은 의미의 동의어 수준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어는 아주 그냥, 증거라고 못을 박습니다. 증거가 뭡니까? 실제로 존재하여 빼도박도 못하게 판사가 실형을 언도할 수 있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증거 아닙니까? 한국 사람은 믿음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그냥 곱배기로 미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인간들이 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세상이, 이 지구가, 이 우주가, 우주만물이,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면, 그리 믿었던 사람들은 살아서도 제대로 산 것이고, 죽어서도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겠지만, 그걸 믿지 않은 사람은 살았어도 잘못 산 것이고, 죽어서도 그땐 후회해봐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살면서도 사람은 그냥 절로 생겨났으니, 죽고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죽을 것이니, 스스로를 먼지 같...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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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유기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비즈니스맨형 목사들입니다. 예수님 믿게 되었으면 믿는 사람이 사는 것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선한 삶을 사십시오 하고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부담스런 이야기하여 교인들 떠나가기 싫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인가요? 그런 사이비 목사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