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믿음인 게시물 표시

악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이미지
악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믿음으로 나를 고칠 수 있을까? 교회 나가고 예수님 믿으면 나를 의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명제는 모든 믿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도전이 됩니다. 믿음으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람이 유전자 설계도대로 움직이는데 그걸 바꿀 수 있을까요?  세상이 너무나 어지럽고, 불의가 가득한 세상이고, 늘 손해만 보고 사는 것 같고, 피해 보고 살고 있는 느낌에 휘말려 살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착해지고, 겸손해지고, 의로워지기 보다는 무슨 일에 맞닥뜨리면 우선 거짓말을 해서라도 구차하게 변명하며 임시로 모면하려고 애쓰기 일쑤고, 사기 치고, 냉소적으로 되는 쪽으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사람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비판적이 되면 공치사하고 냉소적으로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래 동영상에서 혹자는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하는 좋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뭐 귀신 밤에 콩 까먹는 소리이고, 믿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기독교인의 요가

이미지
기독교인의 요가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지금은 웨스트밴쿠버에 살고 있지만, 써리에 잠깐 산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밴쿠버에서 제일 큰 교회 다니면서 소그룹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재미있게 신앙 생활을 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소그룹 모임을 같이 했던 교우들 가족과는 지금도 가끔씩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을 같이 먹고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정의 자매님이 요가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요가가 뭡니까? 힌두교의 몸으로 드리는 제사 몸짓입니다. 그래서 이 자매님이 기독교인이 요가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이만저만한 고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번은 교회 목사님에게 그 문제를 놓고 상담을 했더니, 기독교인은 요가를 하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교에서 중들 중에서도 중같지 않은 엉터리 중을 까까중이라고 비하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짜 까까중을 줄인 말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목사가 까까중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남의 고민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단정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고 단편적이고 마음에 사람을 아끼는 사랑이 없는 태도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이교도가 제사 지낸 음식을 기독교인이 먹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할 때 바울이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고전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1Co 8:4, NIV] So then, about eating food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

소멸의 기억

이미지
소멸의 기억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성경을 읽어보면 오만가지 생각과 십만 가지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읽어도 생기는 궁금증이 있는 것은 사람의 뇌 속에서 신경 세포가 뿌지직 너무 과부하가 걸려 심하게 활동하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드는 오만 가지, 십만 가지 생각 중에서 가장 근복적이고, 알파이고 오메가인 궁금증은 사후의 삶, 사후의 세계,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성경이 그것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읽어보면, 영생과 천국에 대한 언급은 분명해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면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천국에서 영생, 그 정의는 분명하고 깔끔합니다. 그에 반해 지옥에 대한 언급은 약간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습니다. 성경속 이야기는 영원한 지옥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옥불에 던져져서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지옥불은 영원한데, 그 지옥에서 그냥 소멸하는 것인지,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인지는 명확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2026년 병오년, 새해에 구글 AI Gemini와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아래 내용은 저의 질문과 AI가 대답한 내용입니다. ========================= 저의 질문 1: 성경에 예수님 말씀으로는 예수를 믿고 따르면 영생을 한다고 했다. 반면에 지옥의 불은 영원히 탄다고 했지만 지옥에 간 사람이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과학자들이 본 세상은 텅텅 비어있다. 원자 속을 들여다 보면 텅 비어 있는 공간이고, 원자핵 속을 들여다 보면 다시 텅 빈 공간, ...

믿음의 증거

이미지
믿음의 증거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2025년도 이제 한 달이 남았습니다. 다들 평안하신가요? 믿음 생활은 강건케 이어가고 계신가요? 저는 매일, 매시, 매순간 끊임없이 헤매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천국 갈 수 있나요?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백프로 갈 수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Jn 3:16, NIV]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그런데 주님은 믿는 것에 뭐를 더 붙이십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Jn 8:12, NIV]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따르면. 따르면이 뭔가요?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이겠지요. 그럼 말로만 따르겠다고 선포하고, 실제로 따르는 행동이 없다면? 사기친 거죠.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다는 증거를 스스로 보인 겁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따름이 없는 행동은 믿지 않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마7:16-21] 1...

믿음의 수준

이미지
믿음의 수준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라고 해야 하나? 뭐 믿으면 믿고 믿지 않으면 안믿는 것이지, 믿음의 수준은 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믿음에도 수준이 있고, 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비몽사몽 간에 깊은 바닷속 어둠, 스올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온 마음을 휘몰아치고 내일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 그 때, ‘주님!’ 하고 부르는 순간, 신음과 같은 그 짧은 말을 내뱉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것이 온 마음과 영혼에 드리워지며 느껴지는 평안함, 하늘이 주는 평화, 그런 것을 느끼면서, 내가 믿기는 믿는가보다, 주님이 나를 살피시고, 지키시고, 위로해주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세상 속에서 느껴지는 짜증과 분노와 좋지 않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족히 믿음이 있고 믿는다는 고백이 있다면, 항상 기쁨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남들의 바보같은 행동에 짜증 나고, 분노하고, 상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기분이 들 때, 그런 상황일 때, 찬송가나 CCM을 크게 틀고 들으면 몸이 리듬에 맡겨지고, 감사와 은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이거 정말 이기심의 농축체이고, 이중인격 아닌가? 저의 신앙 수준이 항시 기쁨을 느끼는 수준은 되지 못하고, 분노와 기쁨 사이에 있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어떤 일에 분노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수준 높은 믿음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일지만, 그걸 야기한 상대나 상황을 오히려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거...

묘묘 심지있네

이미지
묘묘 심지있네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석열이의 친위 쿠데타로 인해 한국 기독교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민낯이라기 보다는 일부 미숙하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삐뚤어진 세력들은 기독교라기 보다는 기독교의 탈을 쓰고 욕망을 쫓는 이익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팩트입니다.  정신 똑바로 박힌 교인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는 세상에 바른 말 제대로 할 줄 아는 분, 그것도 젊은 여자분이 있습니다. 묘성? 묘묘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기독교인 중에 상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고,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안도가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든 유튜브 영상을 보니, 양동근은 역시 쓰레기였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관상이 중요합니다. 그 양아치같은 분위기가 어디 가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조선 제일검을 연기했던 배우 조진웅, 정말 멋있는 연기자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 그리 산뜻한 이야기만 가지고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뚫고 정신 제대로 박힌 기독교인들이 이단 못지 않게 많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고 희망이 있는 서사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믿음

이미지
믿음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성경에서 믿음에 대하여 가장 단호하게 정의하고 있는 부분은 히브리서 11장 1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여기서 실상을 영어성경은 confidence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을 보면서 영어 믿음보다 한국 믿음이 더 강력하고 확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 컨피던스는 확신, 신뢰라는 뜻인데, 한국말은 실상, 즉 실제라고 하니, 이건 미친(?) 믿음 아닌가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번에도 영어 성경은 증거를 assuran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confidence와 assurance의 뉘앙스에 어떤 차이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두 단어가 같은 의미의 동의어 수준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어는 아주 그냥, 증거라고 못을 박습니다. 증거가 뭡니까? 실제로 존재하여 빼도박도 못하게 판사가 실형을 언도할 수 있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증거 아닙니까? 한국 사람은 믿음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주 그냥 곱배기로 미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인간들이 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세상이, 이 지구가, 이 우주가, 우주만물이,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면, 그리 믿었던 사람들은 살아서도 제대로 산 것이고, 죽어서도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겠지만, 그걸 믿지 않은 사람은 살았어도 잘못 산 것이고, 죽어서도 그땐 후회해봐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살면서도 사람은 그냥 절로 생겨났으니, 죽고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다가 죽을 것이니, 스스로를 먼지 같...

직무유기

이미지
  직무유기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비즈니스맨형 목사들입니다. 예수님 믿게 되었으면 믿는 사람이 사는 것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선한 삶을 사십시오 하고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부담스런 이야기하여 교인들 떠나가기 싫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인가요? 그런 사이비 목사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