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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플러그 인 - Crow Hill V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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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플러그 인 - Crow Hill Vault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한국사람이 전부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세상사람이 전부 페이스북을 사용할 때, 저는 그걸 보면서 도대체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뭔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게 생각한 시절이 있습니다. 정보는 웹사이트나 구글에서 찾으면 되고 소통은 이메일과 블로그만 가지고도 충분하다는 조선시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SNS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도 그 조류에 전혀 편입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카카오톡을 쓰게 된 단 한 가지 이유는 카카오톡 도사인 아내와의 소통을 위해 카카오톡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SNS가 뭔지 처음으로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SNS가 그런 건지 알고는 사진 한 장 베이스로 정말 뇌 없이 소통하는 인스타그램도 한 때 푹빠져 써본 적도 있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니 찍는 사진마다 하나씩 올리는 재미를 즐긴 것입니다. 하다보니 그것 참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은 앱도 스마트폰에서 지워져 없고. 그러다 페이스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잘 쓰는 아내와는 달리 저는 그게 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고, 페이스북 UI도 제 머리와 눈에는 전혀 직관적이지 않아서 “이게 뭐지? 왜 쓰지?” 의문을 안은 채 스마트폰에 올린 앱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구글 블로거에서 다시(그전에는 조선일보 블로그에 들을 올리다가 조선일보가 블로그를 폐쇄하면서 말아먹은 역사가 있습니다: 형편없는 신문사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블로그 글을 페이스북과 X에 링크를 하게 되면서 페이스북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제 블로그 글들이 링크되다...

교회를 온통 엎드러치는 사람들 - 교회는 영혼의 정신 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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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온통 엎드러치는 사람들 - 교회는 영혼의 정신 병동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지난 주에 예배 끝나고 교회 건물 바깥 나무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글을 쓰고 있는데, ‘오라버니, 안녕하세요?’ 누군가 그럽니다. 아는 목소리가 아니고 먼저 지나간 남자분이 있어서 그 분에게 그러나 보다 했는데, 이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고 제 앞에 머물러 다시 한 번 그 소릴 합니다.  ‘뭐지?’ 고개를 들어보니, 모르는 여인네 둘이 허리를 한껏 숙이고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라버니’ 소리를 합니다. ‘언제 봤다고 내가 니들 오라버니냐?’ 하마터면 이런 소리가 그냥 터져나올 뻔 했습니다.  뭐 제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단번에 들어도 그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가지고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해서 어디 자료를 찾아볼까 하다가 요즘은 AI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니, AI(구글 Gemini)와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저의 질문>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는 집사님이나(실제 집사가 아니라도) 혹은 형제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여자들은 출생이 기생인가? <AI의 대답> 한국 개신교의 호칭 문화와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말씀하신 부분은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교회라는 공적인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호칭은 단순한 친분을 넘어 그 공동체의 질서와 성격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1. 교회의 공식적인 호칭 원칙 기본적으로 교회 내에서는 성별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성도님', '형제님/자매님' 또는 직분에 따라 '집사님' 등으로 부르는 것이 정석입니...

Already but Not Yet - 균형잡힌 기독교 - 복음과 현실의 고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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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ready but Not Yet - 균형잡힌 기독교 - 복음과 현실의 고통 사이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한국의 경제적 부흥시기에 같이 부흥한 것이 한국의 교회입니다. 오늘날 그 오래된 묵은 된장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잘 숙성된 하늘이 내려준 구수한 씨앗 된장의 냄새가 아니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썩은 똥냄새(엘리트주의에 찌든 극우 정교유착)가 나고 있지만 말입니다. 좌우지간 그 부흥의 역사 속에 그런 똥냄새가 진동하는 흑역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을 하며 기독교 복음 전파에 공헌한 교회와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지내온 한국의 기독교 역사 속에 모든 교회가 복음 위에 올바로 선 것은 아니고 신천지 같은 극단적인 이단은 물론이고, 금전 앞에 무너지며 목회를 세습하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이단 이상의 엉터리 대형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었는지(?) 모릅니다. 정치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상식과 분별력을 잃으면 극우화되고 폭력화 되는 것처럼, 교회와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분별력을 잃은 사회 속에서 성도들이 상식과 분별력을 잃지 말고 복음에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사, 성도 구분 할 것 없이 복음에 관하여는 흔들림 없는 상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들은 얼마나 복음 위에 똑바로 서있습니까? 한국의 바울이라고 할 수 있는 하용조 목사가 사역하던 온누리 교회의 이재훈 목사는 윤석열을 지원하며 정교유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었던 김장환도 썩은 고인물인 것을 세상이 알게 되었습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그리 썩고 분별력이 없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