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 2025의 게시물 표시

아프레 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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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레 파면 아프레라는 말은 불어입니다. 아프레(après)의 뜻은 영어의 after입니다. 주로 스키장에서 아프레스키라고 쓰는 말입니다. 스키 타고난 후에 펍(pub)에 들려 먹고 마시며 스키 타고난 후의 여운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레 파면이라는 것은 파면 후기, 즉 석열이 그 놈을 파면시킨 후에 즐기는 파티 뭐 그런 뜻입니다. 만약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로 돌아갔더라면, 잡혀가서 물고문 당할까봐 잔뜩 쫄았던 사람들 많았었을 것같은데, 이제 마음 놓고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게 생겼습니다. 석열이 결국 파면되는 거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 모습 보며 그 짜릿했던 역사의 순간을 느긋하게 다시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석열이 그렇게 나쁜 머리 가지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대통령의 신분을 망각하고 정말 나라를 말아먹을 일을 벌여서 탄핵을 당하는 것이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 일을 안타깝게 여기고 잘못된 일로 여기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논리에는 이런 종류의 것들도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이 지정하여 왕이 된 것인데, 왕이 그런 사람인데, 왕을 어떻게 탄핵을 하느냐” “옛날에는 왕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게 했다.” 아니? 요즘 개인의 인권이 얼마나 중요시되고 있는 세상인데? 옛날 같았으면 노비로 살았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왕권 독재 부당한 정치에 맞서서 민중들이 수 백년간 싸워 얻은 것이 오늘날과 같은 자유이고 민주주의인데, 그 부정부패로 물들었고, 온 만민을 힘들게 만들었던 왕권을 들고나오고, 다윗을 들고나오면서 대통령을 왕으로 포장하고 스스로 노예가 되는 그런 말과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런 바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말문이 콱콱 막힙니다. 정말 상식도 모자라고 분별력도 없는 바보같은 인간들입니다. 이런 정신병자 수준의 사람들은 앨런 머스크가 만든 로켓에 실어 앨런 머스크와 트럼프와 윤석열과 함께 광해군이 폭정하던 조선시대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왕 제도는 근본적으로 주님이 원하신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삼상 8장을 보면 이스라...

없었는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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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는데 생겼다 “해라.” “해도 된다.” “하지 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하면서 이들이 주님께 들은 말은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것들입니까?  “해라.” 이건 뭘 하라는 명령입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같이 뭘 강제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주님이 이들 부부에게 그렇게 의무를 부여한 말씀은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지내라 처럼 그런 의무 사항이 없습니다.  “해도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너에게 주니, 맘껏 다스리고 마음껏 먹어라. 즉, 놀고 먹어라 혹은 먹고 놀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초기 직업은 홈리스였습니다. 의무 사항이 없으니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필요도 없고, 납세의 의무도, 제사를 드리는 의무도 없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입은 가죽옷을 위하여 짐승을 잡을 때 그게 제사일 수 있지만 그것도 이들 부부가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주님이 지어 입히신 것으로 나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Ge 3:21, NIV] The LORD God 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 “하지 마라.” 이들 부부에게 의무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해서는 안되는 일은 주님이 지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신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라.” 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농사 일이야 뭐 하든 하지 않든 자기 맘이고, 하지 않으면 굶는 것이고, 그러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건 반강제적인 일일지 몰라도, 제사는 해야 할 의무 사항이 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그 죄를 직접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려가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신 십자가 사건이 벌어져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죄의 부담을 ...

UBC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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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SO 밴쿠버에 있는 UBC 캠퍼스에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사람들이 벚꽃 구경하느라고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바글바글합니다. 로즈가든에서 바다 건너 웨스트 밴쿠버쪽 눈덮인 산들을 보는 풍경도 압권입니다. 오늘 이 대학교 Chan Center에서 공연이 있어 오후에 도착했는데, 벚꽃이 피는 봄이지만 아직도 공기는 꽤 쌀쌀합니다. UBCSO,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Symphony Orchestra를 말하는 것입니다. 2025년 4월 4일 저녁 7시 반, 학생들이 UBC 캠퍼스의 Chan 센터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있어 그걸 보러 갔습니다. Chan 센터 바로 앞에 로즈가든 주차장(Rose Garden Parkade)이 있는데, 오후 6시에 도착하여 거기에 차를 주차시키면 11불에 주차할 수 있습니다. 일찍 도착하여 캠퍼스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먹을 것도 저녁 겸해서 사먹었습니다. 공연 티켓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는데, 확인 이메일이 온 것을 보니, 이메일에 입장권 QR코드도 첨부하여 보내왔고, 공연장 안의 커피숍에서 음료도 한 잔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코드까지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그걸로 뜨거운 차 한잔을 받았습니다. Chan Center는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조그만 공연장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지는 않고, 잘 설계되고 예쁘게 잘 만들어진 공연장입니다.  오늘 관람객이 아주 많지는 않은지 공연장 1층만 개방을 했습니다. 첫번째 공연은 하이든의 교향곡 100번입니다. 이 곡의 별명은 “Military”인데 그런 별명이 붙여진 이유는 2악장의 리듬과 그 리듬에 맞춰 적극적으로 쓰여진 타악기들과 트럼펫 때문에 마치 군대 행진곡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곡을 지휘한 사람은 미국 오레곤 대학교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David Jacobs인데 지휘봉 놀리는 솜씨와 지휘하는 모습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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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찬송가 304장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단순하고 쉽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마음에 들게 부르고 있는 동영상을 찾아보는데 쉽지 않습니다. 이 찬양은 단순한 멜로디이고 그래서 부르기 쉽지만 막상 직접 부르려고 하면 악보대로 정확히 부르기 쉽지 않은 찬양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불러야 은혜가 되기 때문에 악보를 정확히 숙지하고 자칫 틀리기 쉬운 그 부분들에서 박자를 정확하게 쳐주고 넘어가야 찬양이 멋지게 들립니다. 아래 동영상은 백점만점에 백점은 아니지만, 이 찬양에서 제가 원하는 부분이 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찾아본 영상 중에서는 악보에 가장 충실한 동영상이고, 꽤 잘 만들었습니다. 이 찬양 악보 잘 숙지하고 가사 전부 외워두면 정말 언제 어느 때고 은혜롭게 혼자 혹은 여럿이 부르기 참 좋은 찬양입니다. 아래 악보 중에서 주의할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두 음표 사이에 쉼표가 없습니다. 가사의 두 문장이 이어지는 부분이지만 그냥 8분 음표로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개의 동영상의 경우, 떼창을 유도하며 쉽게 부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 사이에 마치 쉼표라도 하나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앞 음을 길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주의할 부분은 초록 색으로 표시한 부분과 파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인데, 앞의 것은 한 음(4분 음표) 플러스 반음(8분 음표)이고, 뒷 부분은 한음 플러스 한음이어서 앞뒤가 끌어주는 음의 길이가 다릅니다. 연습하여 악보대로 부르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절의 가사가 스토리 전개가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에 몇번 불러보면 가사가 절로 외워지는 찬양입니다. 여럿이 모여 악보 보지 않고 악보대로 음길이 맞춰가며 부르면 꽤 멋지고 은혜가 되는 찬양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성경에 한 번, 대한민국엔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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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한 번, 대한민국엔 두 번 가슴 졸이던 대한민국 국민들, 정말 오늘 마음 후련했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정말 애들 많이 쓰셨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인물 때문에 쓸데없는 일로 너무나 에너지 소모가 심했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경제적인 측면,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셈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국가적인 위상도 크게 실추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무너진 상식과 병폐의 일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니 “파면”이라는 말이 딱 한번 나옵니다. 신약과 구약을 합친 그 두꺼운 성경책에서도 딱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 말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두번이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살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시원한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동영상으로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 앉았다가 냉탕에 풍덩 잠수하는 것보다 더 시원합니다. [왕상2: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1Ki 2:27, NIV] So Solomon removed Abiathar from the priesthood of the LORD, fulfilling the word the LORD had spoken at Shiloh about the house of Eli. 살면서 가장 후련했던 소리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술과 무속에 쩔은 미숙아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 놓으니 결국 이런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과 그 당을 지지한 교회와 목회자들은 근본이 어디인지 모를 일입니다. 극우 유튜버들 얼굴 좀 보시지요. 미친 놈들입니다. 이 놈들이 만들어내는 엉터리 조작극에 넘어가 그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바보같은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상식과 분별력이 없는 미숙아들입니다. 이번 사태로 또하나 수면 위로 드러난 고구마보다 더 답답한 것은 한...

Gel Pen vs Roller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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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 Pen vs Roller Pen 요즘 대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타블렛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빠르게 진행되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메모하는 수단으로 노트에 연필로 기록하는 속도를 타블렛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연필로는 노트에 강의 내용을 필기하고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여백에 ‘스스슥’ 기록해두는 행동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타블렛으로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하여 타블렛 화면에 연필과 노트로 할 수 있는 기록을 똑같이 할 수 있겠지만. 타블렛과 스타일러스 펜을 노트북과 연필 이용하듯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리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종이와 연필의 편리함과 순발력을 따라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단지, 노트북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고, 연필을 깎기가 불편한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노트에 기록한 것을 타블렛이나 노트북에 다시 정리해 입력해 넣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강력한 복습의 효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사 감당해야 하는 과목의 수가 많고 해야할 과제가 많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등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좀 곤란하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노트북이나 스케치북에 급히 뭘 휘갈겨 쓸 때, 6B 이상의 스케치 연필만큼 잘 써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깎는 불편함 때문에 볼펜을 쓰게 되는데, 볼펜이 6B나 8B만큼 부드럽게 술술 잘 써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빨리 잘 써지는 펜을 개발하여 나온 것이 Gel Pen입니다. 코스트코에 가보면 젤펜이 정말 많이 진열되어 있고, 코스트코 뿐만이 아니라 월마트에 가보아도 이제는 고전적인 볼펜보다 젤펜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젤펜보다 더 잘 써지게 업그레이드 된 것이 Roller Pen입니다. 코스트코에서는 아직 롤러펜을 보지 못했는데, 월마트에는 2종류의 롤러펜이 보입니다. ...

에델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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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인터넷 공급망을 광케이블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에 인터넷을 공급하고 있는 텔루스도 4월초에 현재 공급되고 있는 전화선으로 공급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중지할 것이기 때문에 광케이블 선으로 교체하는 일정을 잡으라는 공지를 내었고, 그걸 4월초 오늘로 잡았고, 오전에 그 공사를 했습니다. 이제 광케이블로 서비스되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첨단 유저 대열에 줄을 섰습니다. 텔루스 광케이블 인터넷 광고에서 보던 둥근 통 모양의 모뎀이 우리집에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 첨단 도시에서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원시림 숲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숲과 도시와 바다와 강과 호수와 스키장이 공존하는 도시에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게 밴쿠버에 사는 맛입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없는, 캐나다에는 동네마다 있는, 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오급 수영장에 가서 푸카푸카 수영도 할 수 있고, 사우나도 할 수 있으니 캐나다 생활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캐나다인이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첨단 장치 설치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3월에 뒷산에 눈이 많이 내려 계곡마다 수량이 풍부합니다. 겨울에 산란한 연어 새끼들이 개울에서 큰 다음에 바다로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뒷산 봉우리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보이지만, 동네에는 온갖 봄에 피는 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눈 속에서 피어난다는 에델바이스같이 온갖 꽃들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당연히 주님의 정말 대단한 솜씨입니다. 정말 섬세하고, 정말 우아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누구 보라고 이렇게도 다양한 꽃들을 창조하셨을까요? 원숭이 보라고? 까마귀 보라고? 사람들 보라고 이 꽃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이 꽃들을 보면서 그 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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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 “죄와 벌”을 통해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사랑을 외치는 주님이 사람들에게 왜 시련을 주고, 죽이고, 심지어는 홍수로 쓸어버릴 수 있나?”    교인뿐만이 아니고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신이 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시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을 위하는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 그런 좁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시각에서 판단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깨우칠 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적인 사건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신의 법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리고 그 죄가 감당하게 될 처벌과 재앙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심지어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까지도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시선을 재앙에만 두고, 죄에 두지 않으면 성경과 주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 열왕기하 6장 24절에 보면 아람 군대에 포위된 사마리아 성내의 백성들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 묘사됩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굶주려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잔인함”만을 생각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창조주의 잔인함으로만 본다면 죄악...

큰 곰 한 마리 그리고 작은 곰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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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곰 한 마리 그리고 작은 곰 한 마리 꼬맹이 시절 국민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별자리를 학교에서 언제 배웠나요? 아마도 자연 시간에 배우지 않았을까요? 그때 배운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이고, 북두칠성의 국자끝 변의 길이의 다섯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북극성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페이스북에 누군가 계절별로 북극성을 중심으로 위치가 변하는 북두칠성의 그림을 올린 것이 보여서 북두칠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겨울철에 북두칠성의 위치는 3시 방향에 있습니다.  그래서 타블렛에 깔린 별자리 보는 앱으로 북두칠성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어라?’ 뭔가 이상합니다. 국자의 손잡이 끝이 북극성 위치에 있는 국자가 보입니다. 우리가 배울 때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국자 끝에서 국그릇 다섯배 떨어진 거리에 북극성이 있었는데? 실제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국자는 작은 곰자리(Ursa Minor)입니다. 작은 곰자리의 손잡이 끝이 북극성인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큰 곰자리(Ursa Major)가 우리가 알던 그 북두칠성입니다. 큰 곰자리와 작은 곰자리 모두 국자 모양인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신기합니다.  밴쿠버의 3월은 아직 봄이 아니고 겨울인 모양입니다. 북두칠성이 아직 북극성 기준으로 3시 방향에 있으니 말입니다. 겨울은 겨울 맞습니다. 아직 뒷산에 눈이 쌓여있고, 동네 기온도 아직 한자리(섭씨로) 수입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피고 있지만, 피부가 느끼는 공기는 아직 겨울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더 알아본 바로는 북두칠성은 지구와 같은 은하계 안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미자르(Mizar)로 78광년 떨어져 있고, 제일 먼 별은 두브헤(Dubhe)이며 124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별들 간의 거리도 수십 광년씩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나의 블레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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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레셋 성경의 구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악연은 참으로 긴 시간을 두고 이어집니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이름이 블레셋(Philistine)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 옛날의 악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블레셋 사람들과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블레셋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름 돋는 일입니다. 한번의 악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정말 피차 피곤 할 것 같습니다. 내 인생에는 나와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블레셋이 없을까요? 내 삶의 앞길을 끊임없이 가로막는 것들, 끊임없이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들과 걱정 근심, 모든 사람에게 자기 나름의 블레셋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 인생이 남의 인생의 블레셋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블레셋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아브라함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등살에 쫓겨 우물을 계속 빼앗기며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섰던 이삭의 우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이삭같이 당하면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자세라는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우물을 빼았겨도 새 우물을 찾아 떠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나날이 창대해지고 강성해지는 이삭을 보면서 겁을 먹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까지 끌고 와서는 이삭에게 화친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Ge 26:29, NIV] that you will do us no harm, just as we did not harm you but always treated you well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