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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는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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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는데 생겼다 “해라.” “해도 된다.” “하지 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신접 살림을 시작하면서 이들이 주님께 들은 말은 위의 세 가지 중 어떤 것들입니까?  “해라.” 이건 뭘 하라는 명령입니다.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같이 뭘 강제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주님이 이들 부부에게 그렇게 의무를 부여한 말씀은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지내라 처럼 그런 의무 사항이 없습니다.  “해도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너에게 주니, 맘껏 다스리고 마음껏 먹어라. 즉, 놀고 먹어라 혹은 먹고 놀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초기 직업은 홈리스였습니다. 의무 사항이 없으니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필요도 없고, 납세의 의무도, 제사를 드리는 의무도 없었습니다.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입은 가죽옷을 위하여 짐승을 잡을 때 그게 제사일 수 있지만 그것도 이들 부부가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주님이 지어 입히신 것으로 나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Ge 3:21, NIV] The LORD God 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 “하지 마라.” 이들 부부에게 의무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해서는 안되는 일은 주님이 지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가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신의 명령을 어긴 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라.” 해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농사 일이야 뭐 하든 하지 않든 자기 맘이고, 하지 않으면 굶는 것이고, 그러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건 반강제적인 일일지 몰라도, 제사는 해야 할 의무 사항이 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의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그 죄를 직접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려가며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져 주신 십자가 사건이 벌어져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죄의 부담을 ...

자랑이 왜 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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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 왜 죄냐? “사랑”의 “사”자(字)에 “ㅡ”를 씌우면 “자”(字)가 됩니다. 한자에서 “ㅡ”, 이 수평획은 땅을 의미합니다. 즉, 사랑에 땅자랑이 씌워지면 자랑이 됩니다. (주: 이건 어디 두꺼운 책에 나오는 썰은 아니고 그냥 저의 실없는 개그인 점을 양해 바랍니다.) 사랑은 주님께 사랑받을 일이지만, 믿는 사람이 땅자랑을 하면 벌 받을 일입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요. 땅자랑, 그게 뭡니까? 땅 있는 사람이 땅 없는 사람에게 땅자랑하면 그게 뭡니까? 지주가 소작농에게 땅자랑하면 그건 갑질입니다.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땅자랑, 그건 요즘 말로는 “돈”자랑이 됩니다. 입만 떼면 돈자랑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같이 다니는 사람이 쉼없이 입만 열면 돈자랑하고 있으면 정말 하루종일 심신이 피곤해집니다. 오래 전에 믿지 않는 사람 집에 들려 저녁 식사를 같이 한 일이 있습니다. 몇 집이 모였는데, 저희 빼고는 모두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날 저녁 먹으면서 그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정말 죄다 물질적인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누구 집에 가니까 장롱이 의리의리하다에서부터 시작하여, 누구네는 정말 잘 살더라 뭐 시종일관 그런 이야기뿐입니다. 심지어는 정말 이해할 수 없고, 골 때리는 이야기는 남이 잘 사는 이야기를 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남이 잘 사는 이야기를 하면 자기도 있어 보여서 그런 건가요? 세속적인 자랑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심히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게 사람의 정신을 그렇게 피폐케하는 일이라면 성경은 자랑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있을까요?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Co 13:4, NIV]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성경 말씀은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하...

무한을 보여주시는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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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보여주시는 그 분 없었는데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 아니 세상이란 것이 없을 때. 생각도 아무런 존재도 없었던 그 때. 아니 그 때란 것도 없었을 때.  없었는데 생겨났다. 있는 걸 가지고 뭘 만드는 걸 만든다고 합니다. 있는 걸 가지고 뭔지 알아보는 것을 인간이 만든 말로 연구한다고도 하고 과학을 한다고도 합니다.  동물이 새끼를 낳는다고 하지,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잉태하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무 재료도 없는 상태에서, 무에서 유가 생겨났을 때, 그것을 창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조는 저절로 생겨날 수 없고, 창조하는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 창조가 일어난 다음에 피조물들은 자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엄마가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며 내가 네 엄마다라고 말해주어 엄마가 내 엄마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창조주를 알아볼 능력이 없습니다. 창조주가 당신이 창조주임을 알려주셔야 그 분이 창조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Ge 1:1, KJV]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창조주가 사람에게 내가 창조주라고 알려주시는 말씀이 성경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정말 은혜가 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 말씀에 이어서 하루 하루 어떻게 하셨는지 디테일까지 친절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존재할 존재가 아니었는데, 그 분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렇게 있다는 것은 심히 놀라운 일이고 은혜고 그 분이 나라는 존재에게 보여주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Isa 41:10, KJV] Fear thou not; for I am with th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