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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주님 - 우리의 위로자, 구원자 - 하늘이 주는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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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주님 - 우리의 위로자, 구원자 - 하늘이 주는 평안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요한복음 17장은 “기도하시다”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을 구약부터 시작하여 신약까지 전부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구약과 성경을 합친 성경책이 얇은 책도 아니고 그 안에 품고 있는 내용이 방대하여 두번 세번을 읽어도 읽어내려가면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니?”하고 처음 보는 것같은 부분도 나타나고, 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어느 부분이 오늘 보면서는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주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시간이 가까워져 올 때, 주님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주님에게 기도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17장을 읽어내려가면서 눈이 번쩍 뜨이고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다시 반가운 부분이 보입니다.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Jn 17:5, NIV] And now, Father, glorify me in your presence with the glory I had with you before the world began.
믿는 사람조차도 예수님을 사람과 동급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창조주 주님은 성부 성자 성령 3위 1체입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한번의 제사만으로 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단번에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스스로 재물이 되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주님이십니다. 성당에서 사람을 성자로 인정하는 그런 성자 말고, 성부성자성령 중에 성자를 말합니다. 즉, 창세부터 계시고, 창조에 함께 하신 주님이 예수님입니다.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 17장 5절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의 부모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보여주시는 사랑, 그리고 부모님이 직접 내가 너의 부모라고 알려주기 때문에 자기의 부모를 부모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몰라보고 부모님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입니까? 그런 인간을 패륜아라고 부르지요? 성경 1장 1절에서 창조주가 당신을 창조주라고 인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세시대를 지나면서까지는 피조물들이 창조주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르네상스 이후 대항해 시대가 시작이 되면서, 인간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사람들이 부모를 버리고 패륜아가 되어가는 것처럼 피조물들이 창조주를 부인하면서 “신은 죽었다.”라고 하면서 사람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진화로 저절로 생겨났다는 진화론을 만들어 내면서 세상의 패러다임을 진화론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인간들이 그런 패륜아같이 변했지만, 창조주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창조주 예수님이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인간의 죄를 제사지내는 재물이 되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그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2천년 전에 일어난 그 일은 오늘날까지도 그 언제까지고 유효합니다. 피조물에게 약속같은 것 할 필요가 없는 창조주가 인간들을 위해 그런 약속을 해주신 것입니다. 왜? 그 분이 우리 인간을 그냥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자식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모성애를 설계하여 유전자에 심어준 분이 창조주 주님이십니다. 이 요한복음 17장에도 그 주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요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Jn 17:23, NIV] I in them and you in me—so that they may be brought to complete unity. Then the world will know that you sent me and have loved them even as you have loved me.
주님이 우리의 몸에 담아주신 지혜를 발동하여 상식과 분별력만 발동하여도 흔들리는 잎새 하나만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세상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주님이 창조해서 밖에 생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도 주님이 주님이신 것을 아는데 주님을 애써 부인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교만이고 어리석음입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Ro 1:20, NIV]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God's invisible qualities—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made, so that people are without excuse.
오늘 웨스트밴쿠버 해안가를 산책하면서 보니, 캐나디언 루니(오리)가 해안 가까이 바다 위로 무리지어 떠있고, 까마귀가 홍합을 쪼고 있고, 갈매기들이 날고 있습니다. 봄이 되니,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낳을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즐비한 아파트들 지붕 위에는 갈매기 둥지들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낼 것입니다. 이제 갈매기들이 짖어대는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갈매기 둥지에서 까마귀 새끼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고, 까마귀가 갈매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원숭이를 낳지 않고 사람을 낳는 것처럼 갈매기는 갈매기를 낳고, 오리는 오리를 낳고, 까마귀는 까마귀를 낳습니다.
진화론자들의 이론처럼 진화가 장구한 세월동안 일어났다면, 까마귀와 갈매기 사이에 연속적인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간 개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장구한 세월동안 일어났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까마귀보다, 갈매기보다, 까마귀도 아니고 갈매기도 아닌 까마귀인지, 갈매기인지 애매모호한 다양하게 생긴 중간 개체들이 지금의 까마귀보다, 갈매기보다 엄청 많은 숫자의 개체들이 뒤섞여 있어야 진화론이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웨스트밴쿠버에는 갈매기는 하얗고, 까마귀는 까맣습니다. 갈매기 새끼는 어른이 되기 전에 몸 색깔이 흰색이 아니라, 회색입니다. 그러면 그 놈이 회색이었다가 까맣게 까마귀가 되려고 하는 걸까요? 털갈이를 하고는 하얀 갈매기가 됩니다. 도대체 진화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중간 개체들은 웨스트 밴쿠버에는 없고, 하와이에 다 모여 있나요? 진화론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희대의 사기극일뿐입니다.
<링크> 왜 회개하라고 하는가? -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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