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야훼 하나님의 차이 -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 유대교, 무슬림의 차이
알라, 야훼 하나님의 차이 - 예수님에 대한 기독교, 유대교, 무슬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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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밴쿠버에 살면서 놀라운 점 하나는 이란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웨스트 밴쿠버에 사는 사람의 20퍼센트 정도가 이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교회에 다니는 이란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란은 무슬림 중에서도 강경파인 시아파 무슬림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무슬림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밴쿠버에 온 이란인들 80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세속주의 이란인들이라고 합니다.
제가 BCIT에서 공부할 때, 이란애들이 꾸란(코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놀란 것은 꾸란이 조그만 수첩같이 조그맣고 크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약 성경의 3분의 2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게 꾸란 전체냐고 물의니, 오히려 제 질문이 뭔 말인지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입니다. 그 조그만 분량이 꾸란의 전부였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저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합친 성경의 방대함을 생각하고 꾸란을 생각한 것인데, 꾸란의 그 형편없이 작은 크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도대체 저 꾸란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했고, 한번 잃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페르시아말로 쓰여진 그걸 읽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살기 바쁜데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꾸란을 읽어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었다면 나중에라도 꾸란 영어본을 구해서 읽어볼 수 있었겠지만, 그럴 시간 있으면 성경이나 한번 더 읽어보지 그걸 읽어볼 이유를 느끼지 못했고, 그냥 들은 바로는 기독교 신명기의 내용처럼 뭘 먹으면 안되고 그런 율법에 관련된 내용은 10퍼센트 정도고 나머지 90퍼센트는 알라를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 뭐 그런 내용이 전부라고 합니다. 성경처럼 인물의 이름도 거의 나오지 않고, 십계명같은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면 뭐 읽어보나마나 입니다. 뻔합니다. 성경과 달리 역사적인 기록서의 가치조차 없는 셈입니다.
무슬림은 알라신이 유대인이 믿는 야훼와 동일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신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마호메트가 가장 마지막 예언자고, 예수는 기적을 일으킬 줄 아는 마호메트 이전의 가장 뛰어난 예언자로만 여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이부분에서 같은 신을 믿는다고 하지만 완전히 다른 신앙인 것입니다.
유대교는 자신들의 경전인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로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는 예수님을 성부성자성령 중에 성자에 해당하는 즉, 창조때부터 주님과 함께 했던 창조주 신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무슬림은 예수가 사람이고 뛰어난 예언자라고만 인정합니다. 아마도 이 관점들의 차이가 세 종교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믿음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것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욕을 먹고 있는 것은 사람의 문제이지 신의 문제는 아닙니다.
무슬림이 완전히 엉터리인 것은 꾸란에서 그 증거가 나옵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없이 그대로 담은 것으로 생각하고,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은 인간들이 수없이 편집하고 변형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건 어이없는 억지 주장입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경전의 두께로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 것인지 판별할 수 있다면 단연 가장 두꺼운 성경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진짜 아닐까요?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과 신약을 합한 두께이고, 유대교는 신약만큼이 빠졌고, 무슬림의 꾸란(코란)은 기독교 신약의 3분의 2 두께 분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꾸란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면 그게 얼마나 어이없는 억지이고 무슬림이 엉터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꾸란이 만들어진 것은 651년입니다. 마호메트가 구술한 것을 받아적어 만든 것입니다. 그게 무슨 하늘이 준 것을 변형없이 그대로 받아 꾸란이 되었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바로 꾸란을 읽으면 읽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그 방대한 내용을 얇은 수첩에 요약하고 사람 이름도 나오지 않으니 무슨 암호책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읽어본 사람은 꾸란을 읽어나가는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슬림 사회에는 꾸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별도의 이야기 책이 있다고 합니다.
노스밴쿠버와 웨스트밴쿠버에 온 이란 사람이 교회에 가서 구역과 신약을 읽으면 엄청나게 놀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진짜 신일 수 밖에 없는지 절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이 유대교를 자신들의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나, 무슬림 지도자들이 신정정치를 펼치는 것이나 닮은 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기독교의 예수님 사랑을 엿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지향한 기독교마저 무너진 현실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목사들마저 정교유착의 고리가 되고, 섬김의 자세와 양심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탐욕에 올인해서 그런 것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예수님처럼 낮고 낮은 자세로 섬김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꼿꼿하게 굳은 고개 치켜뜨고 헌금 운운하는 것은 정말 역겨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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