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사건의 증거
동산 사건의 증거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며 생긴 부상의 흔적을 왜 지우지 않으셨을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죽은 몸을 스스로 살리시면서 온전한 몸으로 원위치 시키는 일을 왜 하지 않으셨을까요? 증거 아니고는 믿지 못하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Jn 20:27, NIV] Then he said to Thomas, "Put your finger here; see my hands. Reach out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Stop doubting and believe."
예수님 몸에 일어난 그런 일이 태초의 사람 아담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아담으로부터 이브를 복제하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하신 분이 간단하게 이브를 말씀으로 만들면 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한 걸음 더 나가 아담으로부터 갈빗대를 취하실 때 왜 굳이 외과수술 방법을 택하셨을까요? 미래에 일어날 예수님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예언하는 그런 모습일까요? 주님이 아담으로 갈빗대를 취했다는 것은 주님이 아담을 마취시킨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Ge 2:21, NIV]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then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깊이 잠들게 하시니” 마취시킨 겁니다. 그리고 갈빗대를 떼어낸 자리에 갈빗대가 다시 재생되지 못하게 살로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꼬맸습니다.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취에서 깨어나 이브를 본 아담의 반응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Ge 2:23, NIV] The man said,"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마취에서 깨어나서 온 몸이 뻐근한데, 앞에 여자가 하나 서있습니다. 온 땅의 짐승 이름을 지어주면서 온갖 동물을 다 본 아담, 모두 짝이 있는데, 자기만 짝이 없는 것을 봅니다. 온 땅의 동물이 다 모였는데, 자기와 닮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홀로 외롭고 자기도 짝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그 짝이 자기 앞에 드디어 ‘두둥’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옆구리가 욱신거려서 보니, 꿰맨 자국이 있고, 그곳을 만져보니, 갈비뼈 하나가 없습니다. 다른 쪽을 만져 보니 거기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아하, 이 수술을 주님이 하셨고, 내 뼈를 가지고 저 여자를 만들었구나, 나는 흙으로 만들었는데, 저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들었으니까, 저건 내 꺼다.” 그렇게 소유권을 주장한 것입니다.
아담이 여자가 필요함을 느꼈던 감정은 한자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필요 요, 한자는 “要”입니다. “要”자에서 보면 아랫 부분은 계집 녀(여: 女)입니다. 그리고 “女”자 위에 있는 글자는 밭 전(田)자 위에 사람이 하나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변형된 글자입니다. 그리고 밭 전(田)자는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 위에 있는 남자가 여자가 필요했다. 그게 필요 요(要)에 담긴 문자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아담의 몸에 이브를 만든 흔적을 남기셨을까요? 아담으로부터 이브를 만들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사람들에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그럼 아담과 이브의 신체적 특징이 오늘 날의 사람들과 틀린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담과 이브 이래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탯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인류 역사상 딱 두 명, 아담과 이브만이 배꼽이 없을 것입니다. 둘 모두 어머니 몸을 빌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아담과 이브가 만들어진(?) 이후에 동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자에 남겨진 증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신과 관련된 한자 단어들 몇을 볼까요?
신(神), 종교(宗敎), 제사(祭祀), 기도(祈禱)
이 한자들을 보면서 뭔가 한 가지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바로 “示”자 입니다. “보이다”, “계시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시”자입니다. 이 “示”자는 신과 관련된 의미를 가지는 글자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자의 기본 획을 보면 “천지인”으로 이루어집니다. 만들 공(エ)자에 그 기본 획들이 담겨 있습니다. 위쪽의 획은 하늘이고, 아래쪽의 획은 땅을 의미합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사람을 의미합니다. “示”자는 하늘에 뭔가 세 개가 연결되어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 세개가 무엇일까요? 바로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삼위일체 개념은 근대 기독교 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한자를 만든 고대, 나아가 주님이 아담에게 알려주었을 내용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게 한자를 만든 동의족에게까지 상식(?)으로 구전되어 혹은 문자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멍석을 제대로 깔아놓았으니 에덴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캐보기 시작하겠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요즘 사람들이 꼭 한번씩 해본 생각이고, 한번 궁시렁거려본 말이 있습니다. “선악과는 왜 만들어 놓으셔 가지고” “만들어 놓고 하지 말라고 하면, 그걸 안 할 사람이 있겠어” 선악과를 만드신 것과 그걸 먹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들이 그런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금하다” 하지마라. 온 인류 특히 사춘기 애들에게 천추의 한이 된 이 금하다 금 한자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짠!’ “禁” 어디에 가서 이런 빨간 딱지(🈲)를 보면 건드려서도,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에게 소리소문 없이 잡혀가 쥐도새도 모르게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면 “禁”자가 왜 “금”자가 되었을까요? 문자의 구성을 보면 나무 목(木) 두 개, 그 밑에 신을 뜻한다는 “示”자가 있습니다. 나무 두 개면, 수풀 림(林)인데? 그렇게 보지 말고, 나무 두 그루로 보지요. 그러면 뭐 생각나는 것 없나요? 예, 바로 선악과가 열리는 나무와 생명 나무입니다. 그 이야기와 관련된 한자가 금지할 “禁”인 것입니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Ge 2:9, NIV] The LORD God made all kinds of trees grow out of the ground—trees that were pleasing to the eye and good for food. In the middle of the garden were the tree of life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그런데 뱀으로 둔갑한 사탄이 끼어들어 여자에게 가짜뉴스를 만들어 배포합니다. 이브가 극우보수같이 그 가짜 뉴스에 넘어가 선악과의 과실을 탐내게 됩니다. “婪” 여자가 두 나무를 바라보며 탐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가 탐할 탐(婪)입니다. 일단 탐할 마음이 생겼다면 게임 끝입니다. 그렇게 그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한민족의 조상인 동의족이 한자 속에 그 역사를 그려넣었습니다. 위에 보이는 책 표지가 그런 내용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글자만 더 소개합니다. “靈” 령(영혼 영)입니다. 비 우(雨) 밑에 입 구(口)자 세 개, 그리고 그 밑에 무당 무(巫)자가 있습니다. 이 한자 “靈” 영적인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무당 무, 하늘과 땅 사이에 세 인물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무당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윤석열이 좋아하는 무당은 인간과 잡신을 연결하여 주는 역할을 하는 백해무익한 존재지만, 그 옛날, 무당의 의미는 선지자와 제사장 역할을 하는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무당 위에 입 구(口)자 세 개도 성부, 성자, 성령을 한 번 더 표시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기운이 뭉글뭉글 나는 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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