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신 주님께 사람의 실수는 아무 것도

크신 주님께 사람의 실수는 아무 것도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이 되어 산에는 눈이 내린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는 타운에는 눈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2024년 겨울, 예전에는 빠르면 11월에도 눈이 왔는데, 12월,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25년 1월에도 타운에는 눈이 내리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2월 들어 드디어 첫눈이 내렸습니다. 그것도 제법 많이 내렸습니다. 2월 들어 둘쨋날, 아침에 계속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뿌리다 말다를 계속하는데, 내일도 내린다고 합니다.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아내가 늦어도 교회가자고 하여 밖으로 나섰습니다. 자동차에 쌓인 눈이 아침까지 내린 적설량을 표시해주고 있습니다.


교회에도 눈이 예쁘게 쌓였고,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주일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내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 밖에서 놀다가 실내로 들어와 빵을 먹는 아이들의 빨간 볼이 정말 귀였습니다.  


오늘 설교 주제와 관련하여 성경을 읽다보니 직관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역한글의 번역이 좀 신통치 않은 것 같습니다.


[레19:15, 개역한글]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

[Lev 19:15, KJV] Ye shall do no unrighteousness in judgment: thou shalt not respect the person of the poor, nor honor the person of the mighty: but in righteousness shalt thou judge thy neighbour.


아래는 개역개정 판의 내용인데, 위의 개역한글판과 뭐 거의 대등소이합니다. 영어 KJV와 NIV는 뭔가 차이가 좀 있습니다. 제가 좀 거슬리는 부분은 한글판의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라는 부분입니다. 이 한글 번역은 KJV를 보고 한 번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레19: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Lev 19:15, NIV] "'Do not pervert justice;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great, but judge your neighbor fairly.


아래는 우리말 성경의 내용입니다.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둔해서는 안 되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레19:15, 우리말성경] 너희는 재판할 때 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 말라. 곧 너희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둔해서는 안 되고 힘 있는 사람이라고 옹호하지도 말라. 다만 네 이웃을 공평하게 재판하라.

[Lev 19:15, NIV] "'Do not pervert justice;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or favoritism to the great, but judge your neighbor fairly.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그게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깊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NIV의 내용이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의 “do not show partiality to the poor” 부분을 AI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보았습니다.


AI의 의견(?)이 제 마음에 부합되는 내용입니다. “편파적이지 않기”, 힘없는 사람에게 불공평하지 않기, 뭐 그런 내용 아니겠습니까? 사전을 찾아보아도 partiality에는 편견(prejudice)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이 이웃을 사랑하고,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내용이 달라질 수 없는 일입니다. 보통 NIV의 내용이 거슬려서 KJV의 내용을 보고, KJV가 맞네, NIV가 잘못했네 싶은 적은 종종 있었는데, 반대로 KJV보다 NIV 내용이 더 맞는 것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예수쟁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창조주의 말이라면 왜 그런 엉터리가 있느냐고 딴지를 걸고 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그리고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두 언어 모두 알파벳에 고유의 숫자를 가지고 있어서 베껴쓰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완벽을 기했습니다. 다만 그런 성경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면서 그리고 풍습과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 오늘날에 이르면서 번역이 이어지다보니, 그 원래의 의미가 변할 수 있습니다. 그 번역이 한번에 완전하다면 한글 성경이 왜 개정판이 생기고, 영어판은 왜 KJV가 있고, NIV가 있겠습니까? 개정판이 있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의 말씀은 주님이 하신 말씀 맞고, 그 말을 받아쓴 것은 사람이 받아쓴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신약의 경우, 쓰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뭐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완벽하지 않은 주님의 말씀이라고 단정하면 아니 되옵니다.

진리의 중심이 뭔지를, 그 큰 줄기가 뭔지를 알고 나머지는 깊이 새겨 들으면 됩니다. 그러면 번역된 성경의 내용 때문에 이소리 저소리 듣고 동요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인간의 죄짐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재물로 스스로 대신 죄사함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땅끝까지 말씀을 전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그 중심을 잡고 있는데, 성경의 번역된 부분에 소소한 헷갈림이 있다고 근본을 흔드는 것은 바보입니다. 오히려 그런 부분도 보인다는 것은 성경을 읽는 또다른 재미입니다. 

그런 실수 같지 않은 실수같은 것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은 완벽하시고, 실수가 많고 모자라는 인간은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입지 않고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깊이 되새기는 것입니다. 그 큰 손으로 우리를 덮어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걸음되시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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