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룸의 모습이 내 모습 - 맘모니즘 시대의 인간상
골룸의 모습이 내 모습 - 맘모니즘 시대의 인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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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타던 자동차를 폐차하면서 울었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쇠덩어리 폐차하는데 슬퍼했다고? 뭐 무슨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가볍게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을 물건에도 도입(?)을 해서 그랬다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가볍고 값어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사 요즘은 뭐 개가 죽어도 장례식을 하는 세상이니 뭐.
물질만능, 금전만능에 쩔은 세상을 맘모니즘이라고 합니다. 요즘이 전형적인 맘모니즘 세상입니다. 요즘만 그랬을까요?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광야를 헤매면서 오직 주님 밖에 보이지 않고, 주님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40년 광야 생활 속의 이스라엘 백성 속에도 맘모니즘이 있었습니다.
제일 비싼 금속인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거기에 절을 하고 놋뱀을 우상으로 섬긴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이었습니다. 그걸 짓이라고 욕하지만, 우리는 내 자신은 맘모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가요? 교회 안에서 남의 흉보고, 돈 자랑하고, 기복신앙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맘모니즘 주의자들입니다.
맘모니즘, 돈을 모든 가치들 중에서 정점에 놓는 생각이나 사상을 이야기하는데, 돈뿐만이 아니고 모든 돈되는 물질과 물건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신봉하고 애지중지하는 것이 맘모니즘입니다.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으면서 기분 좋아하는 저의 마음도 맘모니즘입니다.
큐베이스에 기타 플러그인 깔아놓고 기타소리에 기분좋아하는 것도 맘모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나 짓(?)을 하건 그 마음에 창조주를 향한 경외와 감사와 기도가 없다면 맘모니즘입니다.
반지의 제왕, 정말 전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잘 만든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디지틀 그래픽 효과를 극적으로 잘 이용하여 잘 만든 환타지 영화 정도로 알고 있을 수 있지만 영화 전반에 기독교적 서사와 메시지가 깔려 있는 영화입니다. 극 중에서 맘모니즘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골룸입니다. 물질만을 탐하다 망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절대 반지를 탐하다 망해가는 골룸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흉측한 골룸의 모습을 보면서 만인이 자기의 모습은 골룸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존 인류의 99.99 퍼센트의 모습이 바로 맘모니즘, 골룸의 모습 아닐까요?
기독교는 물질을 숭배하는 보이는 종교가 아닙니다. 말씀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는, 믿음만이 중요한 보이지 않는 종교입니다. 교회 내부에 있는 십자가의 모습마저 우상적인 물질이 될 수 있다고 예배당 안에 십자가마저 치워버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마음에 지는 십자가, 행함이 있는 십자가와 말씀에 순종하는 영혼의 십자가가 중요한 것이지, 십자가 목걸이 하고, 십자가 귀걸이 하고 다니는 것이 믿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주문을 외우고,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천주교를 보고 우상숭배라고 하는 이유가 그런 것에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그러면 물건, 물질에 매달린다고 하지 않으면서 언약궤는 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오늘날 성경을 남겨 놓으신 것처럼 언약궤도 남겨 놓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궤는 요시야 왕 시절 (역대하 35:3)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모셔놓은 이후로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아마도 바벨론 침공 때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남아 있다면 모셔놓고 거기에 절하는 풍습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 동안은 왜 있었나? 아마도 교보재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고도 믿지 않고, 믿었다가도 워낙 쉽게 무너지는 인간들의 믿음의 수준 때문에 교육받는(광야 생활) 동안 주님이 주신 교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약궤 안에 들어있던 것은 십계명이 적힌 돌판, 만나가 들은 금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였습니다.
첫번째 십계명 돌판은 모세가 집어던져 깨졌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 돌판은 세컨드 에디션입니다. 십계명 돌판, 그것은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언약을 잊지말라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만나, 만나는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는 광야에서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내려준 값없이 준 공급, 필요입니다. 에덴 동산에 인간을 풀기(?) 전에 모든 것을 앞서 준비해주셨던 그 사랑과 베품의 미니어쳐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의 싹튼 지팡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광야 시대까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가장 악하고 반역스러운 놈, 영화에서도 그 악역이 너무나 잘 어울렸던 캐릭터로 고라가 있습니다. 이 놈과 그 일당들이 심심하면 쿠데타를 도모했는데, 한번은 모세와 아론을 향해 너희만 지도자냐고 쿠데타를 시도한 일이 있습니다. 이때 주님이 개입하시어 열 두 지파들 대장들을 지팡이 들고 모이게 하여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대장이 너희들 대장이라고 하여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누가 주님이 선정한 지도자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생명이 없는 돌같은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신 것은 생명을 설계하시고 지배하시는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주신 것이고, 주님의 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얘기를 해주고 해줘도 까먹는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실습 과정 중에 까먹지 말라고 그 언약궤에 세 가지 교보재를 넣고 잊을만하면 그 안에 든 것이 뭔지 생각하고 복습하라고 쓰여진 것이 언약궤가 아닌가 합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었던 것은 우상으로서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주님의 임재를 암시했던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 못지 않게 탐나는 물건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모세가 들고 다녔던 그 지팡이가 제일 갖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기 위하여 광야길을 떠날 때부터 부여잡았던 아니면 이집트에서 도망나올 때부터 붙잡고 있었을(영화에서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 지팡이, 뱀으로 변하기도 했고, 돌을 쳐서 물을 나오게도 했고, 바닷물을 가르기도 했던 그 지팡이, 물론 지팡이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 지팡이는 물론이고, 모세의 무덤마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신34:5-7]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Dt 34:5-7, NIV]
5 And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died there in Moab, as the LORD had said.
6 He buried him in Moab, in the valley opposite Beth Peor, but to this day no one knows where his grave is.
7 Moses was a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when he died, yet his eyes were not weak nor his strength gone.
왜 성경은 모세와 모세의 지팡이에 대한 기록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고, 보이지 않게 소멸시켰을까요?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맘모니즘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마도 모세의 무덤이 있고, 모세의 지팡이가 있으면 거기를 성지화하고, 우상화하여 모세의 지팡이에 숭배하고 절하는 인구들이 백프로 있을 것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전부인 무채색, 보이지 않는 믿음이 전부고 그 믿음만을 바라는 것이 창조주의 마음이고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기독교는 종교나 신앙이 아닙니다. 그냥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 회복을 바라는 것이 전부인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회복을 이루는 것만이 인간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주님은 스스로를 십자가에 때려박으면서 인간을 구원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걸 인간들이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니 패륜아도 이런 패륜아들이 없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뿐만 아니라 홍수 후에 땅 위에 내려앉은 노아의 방주를 찾을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맘모니즘의 본성을 주님이 아시기에, 노아의 방주가 발견된다면 성경이 사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감추시는 것은, 그것이 우상으로 섬겨지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고 죄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렘3: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Jer 3:16, NIV] In those days, when your numbers have increased greatly in the land," declares the LORD, "people will no longer say,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It will never enter their minds or be remembered; it will not be missed, nor will another one be made.
파랑새를 찾으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 허무한 것을 찾아 쫓기를 그만하고, 자기 마음 속에서 주님을 향한 사모함을 찾아야 하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기독교는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다행인 것은 기복신앙인들 조차 성경책 앞에 물 떠놓고 절하고 비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다행입니다. 보이는 것은 뭐든 우상화하는 맘모니즘의 천재들이 성경책만은 우상화 하지 않은 것은 뭔 일인가요? 정말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하기야 거기 절하면 뭐하겠습니까? 읽고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행해야 의미가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링크> 국가는 누가 어디 있는지 끝까지 추적하려고 한다 - 2026 센서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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