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마주 대하는 골리앗 - 삶 - 정비

매일 마주 대하는 골리앗 - 삶 -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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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끝날 시간 한 시간 반 정도를 남기고 받은 작업은 고물 픽업 트럭입니다. 작업 내용은 ECM(Engine Control Module)을 프로그래밍하라는 것입니다. 차에 가서보니, 파워가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용케 뉴트럴로 쉬프팅은 되어 밀어서 베이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2007년형 시에라(Sierra) 3500 디젤 트럭입니다. 거대한 풀사이즈 픽업 트럭이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 스티어링 핸들을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테크니션들이 몰려나와 뒤에서 밀고, 테크니션 하나는 저를 도와 핸들을 이리돌렸다 저리 돌렸다하며 힘들게 제 서비스 베이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이제 죽은 이 트럭을 살려내야 합니다. BC주 기본 시급의 몇 배나 되는 비싼 시급을 받고 있는 만큼 밥값을 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차를 밀어준 다른 테크니션들이 차를 밀어주고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 놈이 과연 고칠 수 있을까? 얼마나 빨리 잘 고치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힐끔힐끔 쳐다본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그냥 당연히 또 고치고 내보내겠지 뭐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 직장에서 십년 넘게 일하다보니, 좋은 것은 제가 일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조그만 동양놈이 하나 섞여 들어와 일하는데, 그냥 알아서 잘 하겠지하고 하루종일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가끔 참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일하는 동안 믿음을 쌓아주었기 때문인가요?

그런데 힐끔힐끔 다른 사람 일하는 것을 쳐다보지 않는 것은 사실 저한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모두 다 그런 분위기의 직장입니다. 설령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옆의 테크니션이나 샵포맨(shop foreman)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이곳의 기본적인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문화입니다. 

밴쿠버의 모든 샵들이 그런 문화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샵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곳은 어떤 테크니션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SOS가 바로 가동이 되고 샵포맨이 붙고 필요하면 다른 테크니션까지 붙어서 같이 문제를 풀기 시작하기 때문에 ‘저 놈이 잘하나 못하나 한번 보자.’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애들은 하나둘 제뿔에 견디지 못하고 이곳을 다 떠났습니다. 인생 말년에 마지막으로 이런 직장에 자리잡고 십년 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우물을 빼앗기면 광야를 헤매면서도 주님의 축복을 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은혜와 감사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웍오더(work order) 내용을 보니, ECM을 프로그래밍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작업을 의뢰한 쪽은 개인이 아니고 애프터마켓 서비스 센터입니다. ECM이 새 것이 달렸나 보니, 웬걸! 전혀 아닙니다. 알루미늄 바디에 허연 녹이 푹푹 쌓인 고물입니다. 이걸 폐차장에서 하나 골라 꽂아넣은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아서 서비스 어드바이저에게 가서 ECM이 제대로 된 다른 것이 꼽힌 것 같지 않은데, 혹시 ECM이 아니고 BCM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역시나 프로그래밍을 의뢰한 부품은 ECM이 아니라 BCM입니다. 참고로 ECM은 엔진 작동을 컨트롤하는 모듈이고, BCM은 바디 컨트롤 모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디 컨트롤 모듈이라고 차체를 컨트롤하는 것은 아니고, 도어를 잠그고 도어를 열고, 시동을 걸 때, 도난 방지 장치를 작동시키고, ECU(Engine Control Unit: ECM/ECU 혼용해서 사용)와 통신 하면서 엔진의 시동을 걸게하는 건물 관리로 치면 수위실과 건물 관리인 같은 것입니다. ECU를 보일러실과 전기실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요? 건물 안으로 이상없이 들어가야 건물의 보일러도 돌리고 전기 스위치도 올리고 할 수 있는 것처럼 ECU와 BCM은 엔진의 시동을 켜고 끄고 할 때 서로 통신을 하기 때문에 BCM에 이상이 있으면 엔진의 시동을 걸 수 없게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BCM을 프로그래밍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BCM 프로그래밍을 진행하는 동안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프로그래밍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 원인을 찾아 프로그래밍을 무사히 끝내는 일이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BCM을 문제의 원인으로 진단했다가 정작 새 BCM를 장착하고 프로그래밍했더니, BCM 문제가 아니고 다른 문제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BCM 하나만 날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BCM은 VIN(차대 번호) 넘버가 한번 들어가면 쓰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 트럭을 가진 정비업체가 우리 딜러에서 BCM을 사가지고 가서 자기네가 프로그래밍하려다가 하지 못하고 차를 견인해와서 우리보고 해달라고 하는 그런 시츄(situation)입니다.

전기가 먹통인데, 일단 BCM을 프로그래밍하려고 시도해보니, 당연히 에러가 표시되고, 화면에 VIN(차대 번호) 넘버가 뜨지도 않습니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일단 퇴근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뭐부터 시도해야 할지 막막할 때, 우선 BCM과 관련이 있는 퓨즈들을 하나씩 점검해나갔습니다. 운좋게 금방 2A(암페어) 퓨즈가 번트(burnt)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퓨즈는 BCM이 차 시동이 꺼지면, 실내등과 라디오등 모든 전기를 먹는 장치에 가는 전기를 차단해 시동이 꺼진 차에서 배터리 전압이 낭비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는 회로쪽으로 가는 서킷(circuit)의 퓨즈입니다. 



그 퓨즈를 뽑으니, 전기가 완전히 먹통이던 트럭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램프들도 환하게 켜지는 대환장 파티가 순간 벌어졌습니다. 맛이 간 퓨즈를 뽑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기쟁이가 아닌 기계쟁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도 추리도 되지 않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때다 싶어 잽싸게 BCM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더니, 기적과 같이 BCM 프로그래밍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 절로 나오는 소리, “주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걸로는 트럭 엔진의 시동을 걸 수 없습니다. 이모빌라이저 런(immobilizer learn)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걸 시도했더니, 역시나 진행이 되지 않고 에러가 났습니다. 이제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 2A짜리 퓨즈를 새 퓨즈로 꼽아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퓨즈를 꼽으면 어디 뭐가 전기적으로 크게 잘못되거나 혹시나 BCM이 망가지면 어쩌나 싶은 우려가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덜덜 떨면서 새 2A(암페어) 퓨즈를 꽂았습니다. 천둥도 번개도, 뿌지직 소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모빌라이저 런을 실행했습니다.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드디어 시동을 걸어볼 시간, ‘따딸깍!’ 이그니션 키를 돌렸고, ‘텅텅텅!’ 하더만 ‘왕!’하고 시동이 걸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거대한 쇳덩어리 골리앗 몬스터와 겨루어 이겨냈습니다.

천사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시간이 얼마나 더 많이 걸렸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전날 저녁 BCM을 프로그래밍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의 고민거리가 기적과 같이 쉽게 해결이 되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자신의 한심함을 되새기게 됩니다. 예수님 믿고,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순간 두려움에 휩싸이면서, 믿음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몸도 물에 빠진 것처럼, 사는 동안 늘 하늘이 주는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내 자신의 믿음 없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서 스스로 뒤통수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 병은 정말 왜 치유가 절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가질 필요없는 두려움을 왜 스스로 만들어 가지게 되는 것일까? 두려움, 그것은 뭐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믿음이 굳건할 때 생기는 중병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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