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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무슬림, 기독교의 역사와 변천 과정 - 진실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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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무슬림, 기독교의 역사와 변천 과정 - 진실과 오해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유대교, 무슬림, 기독교는 모두 예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는 시각,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세 종교가 같지가 않습니다. 유대교는 예수님을 신성을 모독한 자로 여기고 처단을 했습니다. 모슬림은 예수를 선지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지자로 보고 있습니다. 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마호메드를 신으로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신은 알라인데, 그 알라신이 유대교가 믿는 신과 같은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호메드는 무슬림의 마지막 선지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님을 천지를 창조한 신으로 믿고 있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근본적으로 한 신을 믿는 것 같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세 종교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교는 신약을 인정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합니다. 구약만 가지고는 창조와 신의 약속과 구원의 성취와 회복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 그것을 합쳐야 예수가 창조자인 신이었고,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신이 재물이 되므로써 인간이 완성할 수 없는 제사를 신이 스스로 완성하고 부활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신 신의 법칙과 스토리를 완성합니다. 기독교만이 그 모든 역사 속 실제 일어난 일들의 아구를 맞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구가 맞지도 않는 이상한 종교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합치면 성경이 꽤 두꺼운 책입니다. 그런데 마치 구약과 신약의 요약본 같이 마치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소책자를 만들어...

치즈의 재발견

치즈의 재발견

코스트코 쇼핑을 하노라면 군데 군데 시식코너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엊그제 치즈 코너를 도는데, 시식 테이블 위에 조그만 치즈 조각을 내놓았습니다. 처음 보는 비주얼이고, 처음 먹어보는 맛입니다. 맛을 어찌 표현할 수 없는 아무 맛도 없는 기가막힌 맛이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치즈를 캐나다에 와서는 언제부터인가 꾸준히 먹고 있는데, 주로 먹는 것은 구다나 브리 치즈였습니다. 오늘 처음 먹어본 것은 기존에 먹던 치즈와는 또다른 차원의 맛이고, 구다나 브리 치즈 못지 않은 기분 좋은 맛이고, 뒤끝이 아주 깨끗한 담백한 맛이 좋습니다.

이 치즈는 캐나다산 우유로 만드는 보스웰(Bothwell)의 스쿼커즈(Squeak’rs)라는 치즈입니다. 치즈를 만들때 우유나 염소젖에서 응결된 치즈를 뭉쳐서 치즈덩이를 크게 만드는데, 이 치즈는 그냥 치즈가 형성된 모양 그대로를 모아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주 사먹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닭고기, 코스트코 주방에서 장시간 기름 빼어가며 돌리고 돌려 구워내는 닭고기, 이건 코스트코 입구에서 동전하나 가격으로 파는 핫도그와 함께 코스트코의 대표적인 미끼 상품입니다. 그 가격에 그 큰 닭고기를 그렇게 구워 팔 수가 없습니다. 뭐 성장 촉진제 먹여가며 단기간에 키운 닭이다 뭐다 말이 많지만, 일반인들이 요즘 나오는 먹거리에서 그런 것을 피해가며 가려가며 먹을 수 있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런 걸 따지자면 큰 땅을 사서 거기서 농사도 직접 짓고, 가축도 직접 키워서 잡아먹지 않는 한은 먹거리 지뢰밭을 혼자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용빼는 재주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닭을 한 팩 사들고 오면 그날 저녁은 물론 다음 날 아침까지 해결이 됩니다. 우선 닭고기를 뜯어 먹고, 나머지 살들은 발라내어 닭죽을 끓여 먹습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맞물려 요동치는 물가고 속에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내 한 몸 잘 먹었지만, 오늘 하루 먹은 것이 없이 배고픈 배를 움켜잡고 잠들어야 하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나 고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심히 무거워집니다. 농사가 망하여 먹을 것이 없는 농부의 마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나눠 갖지 못하고, 자기 욕심만 끝없이 채우는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되었을까? 인간들의 죄악이 심히 크고 큽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Hab 3:17, NIV]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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