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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 Pen vs Roller 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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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 Pen vs Roller Pen 요즘 대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타블렛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빠르게 진행되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메모하는 수단으로 노트에 연필로 기록하는 속도를 타블렛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연필로는 노트에 강의 내용을 필기하고 순간 떠오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여백에 ‘스스슥’ 기록해두는 행동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타블렛으로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하여 타블렛 화면에 연필과 노트로 할 수 있는 기록을 똑같이 할 수 있겠지만. 타블렛과 스타일러스 펜을 노트북과 연필 이용하듯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리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종이와 연필의 편리함과 순발력을 따라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단지, 노트북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고, 연필을 깎기가 불편한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노트에 기록한 것을 타블렛이나 노트북에 다시 정리해 입력해 넣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겠지만,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강력한 복습의 효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사 감당해야 하는 과목의 수가 많고 해야할 과제가 많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등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좀 곤란하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노트북이나 스케치북에 급히 뭘 휘갈겨 쓸 때, 6B 이상의 스케치 연필만큼 잘 써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깎는 불편함 때문에 볼펜을 쓰게 되는데, 볼펜이 6B나 8B만큼 부드럽게 술술 잘 써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불편함을 극복하고 부드럽게 빨리 잘 써지는 펜을 개발하여 나온 것이 Gel Pen입니다. 코스트코에 가보면 젤펜이 정말 많이 진열되어 있고, 코스트코 뿐만이 아니라 월마트에 가보아도 이제는 고전적인 볼펜보다 젤펜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젤펜보다 더 잘써지게 업그레이드 된 것이 Roller Pen입니다. 코스트코에서는 아직 롤러펜을 보지 못했는데, 월마트에는 2종류의 롤러펜이 보입니다. 왼...

에델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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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공격적으로 인터넷 공급망을 광케이블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저의 집에 인터넷을 공급하고 있는 텔루스도 4월초에 현재 공급되고 있는 전화선으로 공급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중지할 것이기 때문에 광케이블 선으로 교체하는 일정을 잡으라는 공지가 나왔었고, 그걸 4월초 오늘로 잡았고, 오전에 그 공사를 했습니다. 이제 광케이블로 서비스되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첨단 유저 대열에 줄을 섰습니다. 텔루스 광케이블 인터넷 광고에서 보던 둥근 통 모양의 모뎀이 우리집에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이 첨단 도시에서 한 발자국만 움직이면 원시림 숲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숲과 도시와 바다와 강과 호수와 스키장이 공존하는 도시에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게 밴쿠버에 사는 맛입니다. 그리고 미국에는 없는, 캐나다에는 동네마다 있는, 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오급 수영장에 가서 푸카푸카 수영도 할 수 있고, 사우나도 할 수 있으니 캐나다 생활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캐나다인이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첨단 장치 설치를 마치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3월에 뒷산에 눈이 많이 내려 계곡마다 수량이 풍부합니다. 겨울에 산란한 연어 새끼들이 개울에서 큰 다음에 바다로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뒷산 봉우리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보이지만, 동네에는 온갖 봄에 피는 꽃들이 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눈 속에서 피어난다는 에델바이스같이 온갖 꽃들이 정말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당연히 주님의 정말 대단한 솜씨입니다. 정말 섬세하고, 정말 우아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누구 보라고 이렇게도 다양한 꽃들을 창조하셨을까요? 원숭이 보라고? 까마귀 보라고? 사람들 보라고 이 꽃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이 꽃들을 보면서 그 분이 우리를 얼마나 ...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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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 “죄와 벌”을 통해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한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습니다.  “사랑을 외치는 주님이 사람들에게 왜 시련을 주고, 죽이고, 심지어는 홍수로 쓸어버릴 수 있나?”    교인뿐만이 아니고 기독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신이 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시각을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을 위하는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 그런 좁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시각에서 판단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해야 할 일은 깨우칠 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적인 사건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일어난 것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신의 법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그리고 그 죄가 감당하게 될 처벌과 재앙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심지어는 죄를 범한 인간에게까지도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시선을 재앙에만 두고, 죄에 두지 않으면 성경과 주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 열왕기하 6장 24절에 보면 아람 군대에 포위된 사마리아 성내의 백성들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 묘사됩니다. 아람 군대에 포위되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굶주려 아이를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잔인함”만을 생각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창조주의 잔인함으로만 본다면 죄악...

큰 곰 한 마리 그리고 작은 곰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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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곰 한 마리 그리고 작은 곰 한 마리 꼬맹이 시절 국민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별자리를 학교에서 언제 배웠나요? 아마도 자연 시간에 배우지 않았을까요? 그때 배운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이고, 북두칠성의 국자끝 변의 길이의 다섯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북극성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페이스북에 누군가 계절별로 북극성을 중심으로 위치가 변하는 북두칠성의 그림을 올린 것이 보여서 북두칠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겨울철에 북두칠성의 위치는 3시 방향에 있습니다.  그래서 타블렛에 깔린 별자리 보는 앱으로 북두칠성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어라?’ 뭔가 이상합니다. 국자의 손잡이 끝이 북극성 위치에 있는 국자가 보입니다. 우리가 배울 때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국자 끝에서 국그릇 다섯배 떨어진 거리에 북극성이 있었는데? 실제로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국자는 작은 곰자리(Ursa Minor)입니다. 작은 곰자리의 손잡이 끝이 북극성인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큰 곰자리(Ursa Major)가 우리가 알던 그 북두칠성입니다. 큰 곰자리와 작은 곰자리 모두 국자 모양인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신기합니다.  밴쿠버의 3월은 아직 봄이 아니고 겨울인 모양입니다. 북두칠성이 아직 북극성 기준으로 3시 방향에 있으니 말입니다. 겨울은 겨울 맞습니다. 아직 뒷산에 눈이 쌓여있고, 동네 기온도 아직 한자리(섭씨로) 수입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피고 있지만, 피부가 느끼는 공기는 아직 겨울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더 알아본 바로는 북두칠성은 지구와 같은 은하계 안에 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미자르(Mizar)로 78광년 떨어져 있고, 제일 먼 별은 두브헤(Dubhe)이며 124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별들 간의 거리도 수십 광년씩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나의 블레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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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블레셋 성경의 구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악연은 참으로 긴 시간을 두고 이어집니다. 심지어는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이름이 블레셋(Philistine)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 옛날의 악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블레셋 사람들과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블레셋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름 돋는 일입니다. 한번의 악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정말 피차 피곤 할 것 같습니다. 내 인생에는 나와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블레셋이 없을까요? 내 삶의 앞길을 끊임없이 가로막는 것들, 끊임없이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들과 걱정 근심, 모든 사람에게 자기 나름의 블레셋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 인생이 남의 인생의 블레셋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블레셋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아브라함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등살에 쫓겨 우물을 계속 빼앗기며 새로운 우물을 찾아나섰던 이삭의 우물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심지어는 이삭같이 당하면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자세라는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우물을 빼았겨도 새 우물을 찾아 떠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나날이 창대해지고 강성해지는 이삭을 보면서 겁을 먹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까지 끌고 와서는 이삭에게 화친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26: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Ge 26:29, NIV] that you will do us no harm, just as we did not harm you but always treated you well and...

과부의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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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헌금 미국 공무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목이 팍팍 잘려나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됩니까? 트럼프가 미친 놈 하나를 연방 정부 효율부 장관 자리에 앉혀놓으니 이 놈이 미국 정부 예산을 절감한답시고 하는 일이 공무원 일자리 박탈하는 일입니다. 돈 많고 돈 잘 버는 놈 데려다 놓으면 정부를 위해서도 돈 많이 남겨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모양인데, 돈 버는 것과 예산 절감하는 일이 프로세스가 같은 일인가요? 그 동안 중국에 던져주고 미국내에서는 무너져 내린 제조업 구조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자국민의 복지도 고려한 정책을 수립해야지 단지 몇 개월 시한부 자리를 마련해주고 국가 예산 1조 달러 이상을 절감하려고 하니, 그 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람 자르는 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이 민주국가입니까? 민주,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평균 임금의 중산층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사람들, 아닙니다. 돈 위주로 돌아가는 미국 사회를 보니, 미국의 국민은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고, 그 외는 그들이 부려먹고, 수탈하는 노예같은 대상일 뿐입니다. 없는 놈의 간까지 긁어 모으는, 벼룩이 간을 빼먹는 부자들이 주인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럼 한국의 국민은 누구입니까?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민초들입니까?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국의 부패 유형은 매우 흥미롭다.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다. 많은 배운 놈들이 조직적으로 뭉쳐 국민을 등쳐 먹는다.” 한국이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만 미국도 매 한가지입니다. 다를 것이 없습니다. 뭐 말이 민주주의지, 그 옛날 봉건 영주가, 왕들이 민초들을 등쳐 먹는 것이나, 현재의 미국이나 한국의 권력이 자기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을 등쳐 먹는 것이 다른 것이 하나 없습니다. 유사 이래 사람은 그런 짓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죄스럽고, 욕심이 과하여 인간 중심으로 돌...

금수저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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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솔로몬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솔로몬의 이야기는 대충 이런 것입니다. 솔로몬은 부자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지혜는 물론이고, 부와 영화까지 얻었다. 주님의 일을 위하여 주님께 구하는 자는 무엇이든 얻는 은혜를 받을 것이다 뭐 그런 판에 박힌 소리입니다. 성경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솔로몬은 태어나자마자 뭐 한 일도 없는데,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하십니다. 완전 금수저입니다. 자기도 금수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스토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하12:24-25]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2Sa 12:24-25, NIV] 24 Then David comforted his wife Bathsheba, and he went to her and made love to her. She gave birth to a son, and they named him Solomon. The LORD loved him; 25 and because the LORD loved him, he sent word through Nathan the prophet to name him Jedidiah. 뭐 토기가 어떻게 생겼건 그건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마음에 안들면 만든 토기를 박살 내버리는 것도 토기장이 마음이니, 흙으로 만들어진 토기는 불만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흙으로 만들어졌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도 토기와 마찬가지로 박살나도 뭐라 반박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렘18: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Jer 18:4, NIV] But the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