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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흙에서 아담을 만들었고, 사람은 흙에서 유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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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흙에서 아담을 만들었고, 사람은 흙에서 유리를 만들었다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주일이라 교회에 갔습니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았고, 곧 손에는 안경이 쥐어진 것이 보입니다.
한국에서 대기업 연구소에서 과장이던 시절 이사님 실에 들어가 회의를 할 때, 이사님이 돋보기를 쓰고 돋보기 너머 사람들을 쳐다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이들어 노안이 와서 가까운 것은 돋보기로 보아야 하고, 사람을 볼 때는 안경 너머로 부하직원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안경 쓰고 안경 너머로 사람을 쳐다보지?” 궁금했는데, 나이 들어 돋보기를 써보니, 가까운 것을 보기 위해서는 돋보기가 필요한데, 그걸 쓴 채로 멀리 보면 어지러워져 절로 안경 너머로 쳐다보게 됩니다.
같은 처지가 되어봐야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인간의 한계이고,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나이든 사람은 세대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안경, 유리로 만듭니다. 신은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드셨고, 사람은 흙에서 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만드는 실력이 유리이고 사람이고의 차이 정도가 아닙니다. 그 흙을 만드신 분은 창조주(신)입니다. 사람은 유리는 만들어도 흙은 만들지 못합니다. 신과 사람의 차이는 창조능력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창조입니다. 사람이 가진 능력은, 아니 사람에게 부여된 능력은 유에서 다른 유를 만드는 능력뿐이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주의 능력은 없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전후하여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인 이태리에서 유리와 안경이 만들어지고 갈릴레오는 렌즈를 이용하여 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을 보고 달표면이 전설과는 다르게 매우 거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만들어진 유리는 그 후 인간의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가 없으면 빌딩이 만들어질 수 없었고, 자동차가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안경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은 그 무엇보다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안경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서 만드는 능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보이지 않고, 잘 보이지 않으면 사람은 뭘 효과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안경이 없으면 위조지폐도 만들 수 없고, 가짜 여권도 만들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도 꼭)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작업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 필사본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도 눈이 나쁘면 그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모세에게 끝까지 눈이 잘 보이게 해주신 것도 그에게 모세 오경을 완성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걸 허락한 것 아닐까요?
[신34: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Dt 34:7, NIV] Moses was a hundred and twenty years old when he died, yet his eyes were not weak nor his strength gone.
안경 이야기를 하다보니 안경과 관련하여 두 가지 생각이 닙니다. 하나는 영화이고 하나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대서양의 고립된 섬에 버려진 죄수들의 이야기인데, 스티브 맥퀸은 그 섬에서 탈출하고 소심한 더스틴 호프만은 같이 가지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섬에 그대로 남는 줄거리인데, 스토리 중간에 더스틴 호프만이 진창에 안경을 떨어뜨리고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는 모습을 영화에 완전히 몰입되어 보면서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경 이야기와 관련하여 떠오른 성경 속 이야기는 예수님이 잡혀가려는 상황에서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대제사장의 종의 귀가 떨어져 나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귀가 하나 없으면 안경을 쓸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요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Jn 18:10, NIV]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요한복음에는 귀 잘려나간 이야기만 있어서 “이를 어째.”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뭔 소리야. 예수님이 잡혀가시고 죽임을 당하는 마당에.”
다행인 것은 누가복음을 보면 귀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보입니다. 자신은 죽음로 가고 있는데, 한 종의 귀를 회복시켜 주시는 창조주의 위대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눅22:50-51]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Lk 22:50-51, NIV]
50 And one of them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right ear.
51 But Jesus answered, "No more of this!" And he touched the man's ear and healed him.
그런데 그 이후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소름이 쫙 돋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심장에 꽂히는 말은 “검과 뭉치” 그리고 “어둠의 권세”입니다.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는 이스라엘과 미국과 러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 두 단어가 오늘날 세상을 예수님이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충격적입니다.
[눅22:52-53]
52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Lk 22:52-53, NIV]
52 Then Jesus said to the chief priests, the officers of the temple guard, and the elders, who had come for him, "Am I leading a rebellion, that you have come with swords and clubs?
53 Every day I was with you in the temple courts, and you did not lay a hand on me. But this is your hour—when darkness reigns."
세상의 어두운 권세를 말살하실 권능이 있으신 분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스스로를 제사 지내시기 위해 어두움의 권세조차 이용하시는 예수님의 계획과 행함을 보고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화론의 패러다임 밑에 있고, 금전만능 자본주의, 독재국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지구촌이 어두움의 권세 아래에 놓여있고, 매주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 성도들도 어찌할 수 없이 그 권세하에 놓여 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의 성경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약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어둠의 권세들에게 잡혀가면서도 사람들이 픽픽 힘없이 쓰러져 나가고 떨어진 귀가 다시 붙는 말도 되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시는데도 어둠의 권세들은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하느님의 아들이 보여주시는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의 권력과 엘리트 의식과 검은 세상 권세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구세주를 십자가에 때려박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이 모습은 어둠의 세력에 무너지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걸 보면서 성도인 우리가 배우고 사용해야 할 것은 칼과 철퇴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라는 영감을 받게 됩니다.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가 하는 행동이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구약에 나오는 타락한 왕과 동급입니다. 성경을 들고 있었다고 트럼프가 성경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엡스타인이 말한대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악하기 그지 없는 놈입니다.
이런 약한 권세들과 같이 사는 동안 성도가 같이 폭력을 행사하고 싶고 꼭지가 빡 돌아버릴 것 같은 거센 감정의 소용돌이 유혹을 뿌리치고 올바른 믿음의 길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의 안경을 꼭바로 가다듬어 끼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잘!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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