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철학 그리고 그림자
자동차와 철학 그리고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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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눕방, 일하면서 잠깐 눈을 들어 보니, 테크니션들이 여기저기 눕방 모드입니다.
운전석 밑에 들어가 위쪽을 올려다 보며 작업을 할 경우에 힘든 부분은 허리보다는 목입니다. 무거운 머리를 받쳐들다보면 목이 많이 힘듭니다. 운전석 밑쪽에 거꾸로 누워 처박혀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 자세는 트럭의 높은 엔진룸에 배를 받치고 엔진 뒤쪽으로 팔을 쭉 뻗어 작업하는 자세가 제일 힘든 자세입니다. 팔만 쭉 뽑는 것이 아니라 허리도 쭉 뽑기 때문에 한참 그런 자세로 낑낑 거리며 일을 하다 바닥에 내려서면 머리가 핑 돕니다. 온 몸을 무리하게 스트레칭한 결과입니다.
몇 년 전에 BMW딜러에 들려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알고 지내는 테크니션이 BMW가 페이가 좋으니 그리로 한번 옮겨서 일해보라는 권고를 하여 이력서를 이메일로 보낸 일이 있습니다. BMW 딜러에서 보자고 하여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제시하는 조건을 검토한 다음에 그냥 지금 일하는 지엠에서 계속 일하겠다고 하고 아임쏘리 쌩큐하고 끝낸 일이 있습니다.
그때 인터뷰 하면서 BMW 매니저가 제게 물어본 질문이 하나 기억납니다.
“BMW 차에 컴퓨터가 몇 개인줄 아느냐?”
컴퓨터? 반도체가 세상에 나오면서 차에 들어가던 아날로그 시스템이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기능을 하는 엑츄에이터들을 반도체로 만든 모듈이 컨트롤하는데 이런 모듈들을 자동차에 들어가는 컴퓨터라고 합니다.
그런데 차에 들어가는 컴퓨터가 몇 개냐 라는 질문 자체가 좀 애매모호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ECM(Engine Control Module)의 경우를 보면, 엔진 컨트롤 모듈이 여러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에는 또 엑츄에이터와 그것에 따른 별도의 모듈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엑츄에이터 내부에도 반도체 회로가 들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ECM 같은 큰 덩어리로 치면 컴퓨터는 ECM 하나지만, ECM 하나에 관여되는 모듈들을 모두 합하면 열 개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ECM만큼 큰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BCM(Body Control Module)의 경우에도 BCM과 관련된 모듈들이 열 개도 넘습니다. 또 요즘 차들은 라디오가 단순한 라디오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고, 파킹 어시스트 시스템도 있고, 시큐리티 시스템도 있고 하여 매년 신차가 나올때마다 새로운 모듈들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큰 덩어리만 따져도 서른 개 정도의 컴퓨터가 들어가고, 큰 컴퓨터 모듈에 관련된 작은 모듈까지 합치면 백 개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BMW 매니저의 질문에 스무개 정도로 답을 했더니, 백 개라고 답을 하며 으쓱해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오늘 2022년식 BMW X5 중고차를 인스팩션 하면서 코드를 한번 찍어 보았습니다. 큰 모듈은 아래 그림에 보는 바와 같이 큰 컴퓨터 기준 31개에 불과합니다. 작은 모듈을 다 합치면 뭐 백개에 가까울 수 있겠네요.
그럼 지엠차에는 컴퓨터가 몇 개나 있을까요? 지엠의 캐딜락 한 대를 스캐닝 해보았습니다. 큰 컴퓨터 숫자가 43개입니다. BMW의 X5보다 많습니다. X5가 후진차가 아닙니다. BMW의 SUV의 간판 모델입니다. 그런 차의 컴퓨터 숫자보다 캐딜락의 컴퓨터 수가 더 많습니다.
그러면 BMW나 지엠 말고 다른 메이커 자동차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컴퓨터가 있을까요? 다 도토리 키재기 입니다. 큰 컴퓨터는 서른 개 내외, 모듈 다 합치면 백 개 내외입니다. 일본차도 그렇고, 현대 기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개자식, 뻔한 뻥을 쳤어.
독일놈들은 죄다 사기꾼이고 도둑놈들입니다. 뭐, 밴쿠버에 있는 그 BMW 딜러의 매니저가 독일 출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독일이 이 세상에 끼친 해악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폭스바겐의 디젤 엔진 배출 가스 조작 사기 사건입니다. 정말 국제적인 사기꾼입니다. 자동차의 품질이 전세계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똔똔인 수준에 독일 사기꾼들만 차 값을 뻥튀기하여 받고 있고, 이기적이고 돈 많은 놈들은 독일차를 몰며 돈지랄을 하고 있습니다.
히틀러 같은 놈의 선동에 넘어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놈들입니다. 뭐 그 후 전쟁에서 지은 죄를 사죄하고 보상하고 다닌 정성이 가상한 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정신 세계를 망가뜨렸고, 현재 진행형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니체와 바그너 같은 놈을 생산해놓은 나라가 독입입니다.
바그너와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빠져 인생을 그르친 놈들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신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헛소리를 한 놈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였던 니체는 머리가 명석하여 어린 나이에 라탄이와 그리스어 등을 마스터하고 이십대에 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글쓰는 솜씨 하나만은 탁월 했습니다.
그런 좋은 머리 가지고 아버지뻘 되는 바그너와 친하게 지내며 신을 부정하고 인본주의에 빠져 버렸고, 병약하여 말년에 가면서는 정신도 미쳐버렸습니다. 니체의 책이 읽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사람이 미친 놈 하는 소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코스모스는 아기 손”
이런 시를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쁜 시로 알고 시상이 좋다라고 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코스모스에 니벨룽겐의 반지가 날아왔다, 그때 달빛이 제왕의 반지에 비치면 곰팡이 냄새가 피어 올라 타락한 천사가 저주의 찬가 첫 소절을 코스모스 잎새에 새겨 넣었다,”
제가 뭐 이런 글을 썼다고 치면,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미쳤네!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정상적인 글은 정상적인 사람이 이해합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바보입니다. 반면에 미친 놈이 주절거리는 소리는 정상적인 사람도 미친 놈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니체의 글이 어렵다거나 심오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총명한 니체가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하늘 같이 의지하던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는 신을 원망하고 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내는 신을 저버리고 그 빗나간 정신 상태를 책으로 남겨 후대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리스어와 라틴말을 알았고, 수많은 서적을 읽으면서 글 쓰는 솜씨는 하나만은 얼마나 좋아겠습니까? 그걸 후대 무신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이 니체의 서적을 대단한 서적이라면 떠들고 그걸 철학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든 책으로 쓰여졌으면 대단한 것으로 아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이니 무조건 맞나보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구나 니체가 독일의 대학 교수였고, 후대에 또 대학 교수들이 저명한 철학자들이 니체를 띄우니 그게 맞나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어느 촌동네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이 법정에서 누가 옳은지 한판 붙은 일이 있습니다. 판사의 최종 판결은 진화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판사가 그렇게 판결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책입니다. 세상에 진화론과 관련된 책의 수가 창조론에 대한 책의 숫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죄다 대학의 교수들, 노벨상 받은 박사들이 쓴 책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쓴 진화론 책들이 세상에 압도적으로 많으니, 기록과 판례에 기준을 두고 판단을 하는 판사가 진화론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보면서 그 내용이 맞는지 엉터리인지 판단하지 않고, 두꺼운 책의 휘장과 글쓴이의 간판에 죄다 속아 넘어갑니다. 보통 사람들은 “박사들이, 노벨상 받은 사람들이 쓴 책인데 내가 뭘 알겠어?” 하고 따져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고등학교만 나와도 화학 주기율표를 외우고, 대학 시험에서는 물리와 미적분학 수학 문제를 푸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공과 대학에서는 후에 박사 학위 논문을 쓸 수 있는 기초 학문들을 배웁니다. 그런 지식으로 상식만 제대로 잡혀 있다면 제아무리 박사 아니라 박사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그게 헛소리인지, 상식에 맞는 소리인지는 얼만든지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미 노벨상 받았던 학설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들이 자기 생각으로 자기 힘으로 뭘 좀 해보겠다고 건방을 떨면서 미친 소리를 한 것을 학문으로 치장한 것입니다. 신과 성경을 적대시하고 한판 붙어보자고 나선 것이 철학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목사들의 설교가 찰지고 은혜가 되는 이유가 그와 관련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탕자의 간증이라고나 할까?
일하고 나오는데 해가 낮아 그림자가 몹시도 깁니다. 깊은 어둠과 그림자에 드리운 세상,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것처럼 세상에 온기가 돌아오기는 하는 걸까? 사람들의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 어둠을 벗어나 온 세상 영혼들이 주님의 온기 속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어둠속의 그림자같은 헛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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