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 모음

레이더가 설치된 2018년형 일본 자동차들 품질 문제

이미지
레이더가 설치된 2018년형 일본 자동차들 품질 문제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레이더가 처음 실전에 등장한 것은 2차 세계 대전 때입니다. 독일 공군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1930년 대 중반에 독일을 향한 해안에 체인홈(Chain Home)이라는 레이더 시스템을 설치합니다. 이것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공군력이 열세에 있던 영국 공군은 효과적으로 독일 공군에 저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거대한 덩치의 레이더가 공동공진 마그네트론(Cavity Magnetron)이라는 기술을 개발하여 레이더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선박이나 항공기에도 적재할 수 있게 되고, 이 기술을 활용하여 미해군이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데도 일조했습니다. 레이더가 그런 무지막지한(?) 군사 무기이고, 가격도 엄청났을텐데, 이젠 이것이 덩치가 작아지는 것에 비례하여 가격도 줄어들어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자동차에도 쓰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동차에 쓰이는 레이더는 드라이빙 어시스트 컨트롤 장비의 핵심 부품입니다. 오늘 2018년형 혼다차와 닛산 차를 점검했는데 둘 모두 레이더 시스템과 관련하여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혼다 CR-V 계기판에는 3가지 경고가 떴습니다. 코드를 찍어보니 코드는 하나가 뜨는데 세가지 경고 메시지 모두 이 코드와 관련이 된 것입니다. 그냥 시스템으로 뭉뚱그려서 코드를 띄웠습니다. 그에 반해 닛산 무라노는 레이더 센서를 지정하여 코드를 띄웠습니다. 무라노의 전방 레이더는 그냥 노면 가까운 위치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노면에서 튀는 돌 같은 것에 맞아 금이 간 흔적은 없지만, 잔...

믿음의 수준

믿음의 수준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라고 해야 하나? 뭐 믿으면 믿고 믿지 않으면 안믿는 것이지, 믿음의 수준은 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믿음에도 수준이 있고, 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비몽사몽 간에 깊은 바닷속 어둠, 스올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온 마음을 휘몰아치고 내일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 그 때, ‘주님!’ 하고 부르는 순간, 신음과 같은 그 짧은 말을 내뱉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것이 온 마음과 영혼에 드리워지며 느껴지는 평안함, 하늘이 주는 평화, 그런 것을 느끼면서, 내가 믿기는 믿는가보다, 주님이 나를 살피시고, 지키시고, 위로해주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세상 속에서 느껴지는 짜증과 분노와 좋지 않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족히 믿음이 있고 믿는다는 고백이 있다면, 항상 기쁨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남들의 바보같은 행동에 짜증 나고, 분노하고, 상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기분이 들 때, 그런 상황일 때, 찬송가나 CCM을 크게 틀고 들으면 몸이 리듬에 맡겨지고, 감사와 은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이거 정말 이기심의 농축체이고, 이중인격 아닌가?

저의 신앙 수준이 항시 기쁨을 느끼는 수준은 되지 못하고, 분노와 기쁨 사이에 있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어떤 일에 분노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수준 높은 믿음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일지만, 그걸 야기한 상대나 상황을 오히려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거의 항시 기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높은 단계의 믿음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분노하고는 찬양을 듣고, 말씀을 되새기며, 분노를 삭이는 수준은 좀 낮은 단계의 믿음 수준, 아니 아직 믿음으로 들어서지 못한 비신앙인과 신앙인의 경계선 상에 있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Jas 2:14, NIV]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사실 분노는 fail입니다. 패배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꽉 찬 마음이라면 분노할 일이 없습니다. 분노는 불만, 불안, 걱정, 패배감, 모욕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모욕감이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받은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모욕감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권위적으로 자기보다 위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수모적인 모욕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근저, 바닥 깊은 곳에는 나와 남, 혹은 남과 남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존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마7:3). 이 말씀은 잘잘못의 크기나 죄의 크기를 비교평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예 기본적으로 남을 평가할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분노라는 것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알기만 하면 뭘해! 도대체 내 삶에 적용이 되지 않는데!'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예람 워십

성지용의인

아마존에서 이북 구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