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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와 가시덤불이 키워온 가톨릭과 기독교의 술 취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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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AI도 아는 진정한 성도의 길 [부제]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키워온 가톨릭과 기독교의 술 취한 역사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캐나다 밴쿠버에서 교회들을 다녀보면서 그리고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보면서, 교회 안의 여러 모순되고 납득할 수 없는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신앙 생활,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창조주가 이 좋은 세상을 만드셨고, 죄에 사로 잡혀 사는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대속 제사를 친히 지내시고, 부활하시어 주님과 인간 사이에 있던 장막을 거두고 주님 앞으로 담대하게 걸어나갈 환경을 만들어 주셨는데, 인간들은 왜 제멋대로 살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 믿는 자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건지,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도 자체도 문제가 있는 것같아 마음을 바로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대범한 믿음의 용사이거나, 심지 바로 박힌 참된 신앙인이 아니고 뜨내기이다보니, 어디 본보기가 될만한 신앙인들이 모여 신실하게 예배하는 곳이나 사람들이 없는지 끊임없이 피곤하게 찾아 해매게 되는 모양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진 못해도 누가 말씀대로 살고 있는 지는 성경 말씀을 토대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니 그게 병인지도 모릅니다. 참 믿음 생활하는 큰바위 얼굴 성도들이 있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성당 체험을 하면서까지 요즘 시대에 신실한  믿음은 어디에 있는 가를 찾아 떠나는 마음으로 교회와 성당의 차이를 직접 느껴보려고도 했고, 실제로 다녀보며 교회와 성당의 차이에 대해서도 나름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 AI(구글 제미나이)가 동역자가...

믿음의 수준

믿음의 수준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라고 해야 하나? 뭐 믿으면 믿고 믿지 않으면 안믿는 것이지, 믿음의 수준은 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믿음에도 수준이 있고, 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비몽사몽 간에 깊은 바닷속 어둠, 스올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온 마음을 휘몰아치고 내일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 그 때, ‘주님!’ 하고 부르는 순간, 신음과 같은 그 짧은 말을 내뱉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것이 온 마음과 영혼에 드리워지며 느껴지는 평안함, 하늘이 주는 평화, 그런 것을 느끼면서, 내가 믿기는 믿는가보다, 주님이 나를 살피시고, 지키시고, 위로해주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세상 속에서 느껴지는 짜증과 분노와 좋지 않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족히 믿음이 있고 믿는다는 고백이 있다면, 항상 기쁨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남들의 바보같은 행동에 짜증 나고, 분노하고, 상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기분이 들 때, 그런 상황일 때, 찬송가나 CCM을 크게 틀고 들으면 몸이 리듬에 맡겨지고, 감사와 은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이거 정말 이기심의 농축체이고, 이중인격 아닌가?

저의 신앙 수준이 항시 기쁨을 느끼는 수준은 되지 못하고, 분노와 기쁨 사이에 있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어떤 일에 분노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수준 높은 믿음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일지만, 그걸 야기한 상대나 상황을 오히려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거의 항시 기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높은 단계의 믿음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분노하고는 찬양을 듣고, 말씀을 되새기며, 분노를 삭이는 수준은 좀 낮은 단계의 믿음 수준, 아니 아직 믿음으로 들어서지 못한 비신앙인과 신앙인의 경계선 상에 있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Jas 2:14, NIV]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사실 분노는 fail입니다. 패배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꽉 찬 마음이라면 분노할 일이 없습니다. 분노는 불만, 불안, 걱정, 패배감, 모욕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모욕감이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받은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모욕감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권위적으로 자기보다 위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수모적인 모욕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근저, 바닥 깊은 곳에는 나와 남, 혹은 남과 남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존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마7:3). 이 말씀은 잘잘못의 크기나 죄의 크기를 비교평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예 기본적으로 남을 평가할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분노라는 것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알기만 하면 뭘해! 도대체 내 삶에 적용이 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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