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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장하다 - 미국과 피파의 역사에 길이 남을 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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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장하다 - 미국과 피파의 역사에 길이 남을 추태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역시 트럼프, 그가 지나간 뒤의 발자국에는 어김없이 똥냄새가 납니다. 하는 짓마다 말썽을 부리더니 드디어 월드컵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는 놈이 어떻게 하는 짓마다 코 빨간 알콜 중독자가 하는 짓만 못한 말썽만 부리며 다니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벌고, 미국 대통령을 두번이나 하는 세상적인 성취는 이루어내었지만, 상식없이 내뱉는 말과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행동은 영락없는 14살짜리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번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추태를 보면서 미국 국민들 수준을 알게 되었고, 그 대통령에 그 국민, 모두 하나같이 14살짜리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구나 비로소 납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드 카드 받아서 다음 경기에 출장을 하지 못하는 발로건 선수를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출전하게 만들어 희대의 불상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선수 하나만 나오면 벨기에를 접고, 결승까지 갈 줄 알았나? 미국팀의 매너는 정말 똥이었습니다. 벨기에의 두번째 골이 들어가자 물병을 걷어차는 미국 감독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매너입니다. 트럼프에게 피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한 놈이 그 놈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가 그런 바보짓을 했어도 감독이 레드 카드 받은 선수 출전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세계인으로부터 스포츠맨십의 귀감으로 추앙받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트럼프의 제안을 피파회장이 단호하게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더라면 약한 나라에 강하고 강한 나라에 약한 피파의 정치색과 돈밖에 모른다는 이미지를 일거에 쇄신...

믿음의 수준

믿음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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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수준, 믿음의 단계라고 해야 하나? 뭐 믿으면 믿고 믿지 않으면 안믿는 것이지, 믿음의 수준은 뭐냐?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은 믿음에도 수준이 있고, 나의 수준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비몽사몽 간에 깊은 바닷속 어둠, 스올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온 마음을 휘몰아치고 내일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일 때, 그 때, ‘주님!’ 하고 부르는 순간, 신음과 같은 그 짧은 말을 내뱉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떤 것이 온 마음과 영혼에 드리워지며 느껴지는 평안함, 하늘이 주는 평화, 그런 것을 느끼면서, 내가 믿기는 믿는가보다, 주님이 나를 살피시고, 지키시고, 위로해주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면서, 세상 속에서 느껴지는 짜증과 분노와 좋지 않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족히 믿음이 있고 믿는다는 고백이 있다면, 항상 기쁨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남들의 바보같은 행동에 짜증 나고, 분노하고, 상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기분이 들 때, 그런 상황일 때, 찬송가나 CCM을 크게 틀고 들으면 몸이 리듬에 맡겨지고, 감사와 은혜가 느껴지는 것은 뭔가? 이거 정말 이기심의 농축체이고, 이중인격 아닌가?

저의 신앙 수준이 항시 기쁨을 느끼는 수준은 되지 못하고, 분노와 기쁨 사이에 있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어떤 일에 분노하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이 수준 높은 믿음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일지만, 그걸 야기한 상대나 상황을 오히려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거의 항시 기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높은 단계의 믿음의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분노하고는 찬양을 듣고, 말씀을 되새기며, 분노를 삭이는 수준은 좀 낮은 단계의 믿음 수준, 아니 아직 믿음으로 들어서지 못한 비신앙인과 신앙인의 경계선 상에 있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Jas 2:14, NIV]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사실 분노는 fail입니다. 패배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꽉 찬 마음이라면 분노할 일이 없습니다. 분노는 불만, 불안, 걱정, 패배감, 모욕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모욕감이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받은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모욕감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권위적으로 자기보다 위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수모적인 모욕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근저, 바닥 깊은 곳에는 나와 남, 혹은 남과 남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존재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고.(마7:3). 이 말씀은 잘잘못의 크기나 죄의 크기를 비교평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예 기본적으로 남을 평가할 생각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분노라는 것이 마음 속에서 일어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알기만 하면 뭘해! 도대체 내 삶에 적용이 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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