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신 치아 관리법

주님이 주신 치아 관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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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골 어르신들이 한 여름 웃통 벗고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부채질하며 동네 아낙네들 궁디 흔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흥얼거리던 명언이 있습니다.


春風融鐵 秋霜穿石

춘풍융철 추상천석


봄바람이 쇠를 녹이고, 가을 서리가 돌을 뚫는다.

그 옛날 시골 서당을 수석 졸업한 어르신네가 어려운 한시를 읊조렸지만, 좀 더 고상하게 세종대왕님식으로 품위 있게 표현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봄 보지가 쇠 저를 녹이고 가을 좆이 쇠판을 뚫는다.”

봄에는 여자가 정력이 세고, 가을에는 남자가 정력이 넘쳐난다는 말을 그렇게 고급지게 표현한 것입니다. 욕 아닙니다.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니 음담패설도 아닙니다. 그냥 속담같은, 민담같은 명언입니다. 테스 형이 한 명언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습니다. 한국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즘 누가 뭐라고 하면, 즉각, 적극적으로, 조급하게, 응대하지만 그 시절 아낙네들은 그런 소리 못들은 척 슬쩍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가는 눈썹 한번 슬쩍 요염하게 흘기고는 더 보라는듯 그냥 소박(?)하게 살짝꿍 더 비틀어대며 요염하게 그냥 갈 길 갔습니다. 그 시절 섹시에 비하면 요즘 섹시는 섹시도 아닙니다. 다 내놓은 섹시보다 감추어진 섹시가 훨씬 더 사람 환장하게 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그게 뭐, 주님이 설계하신 호르몬의 지령대로 몸과 생각이 움직여 대는 것이지만, 예수님 기준으로 본다면 몽땅 다 핑계댈 것 없고, 범죄자들입니다. 거룩은 그런 범죄(?) 현장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유혹이 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거부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그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미국이나 한국에나 망하지 않고, 죽지 않았어도 될 정치인들 여럿 있는데.

평상 위에서 부채질하면서 세월을 씹고 있던 노인네가 바라본 아낙네의 모습은 뭐 섹시라고 할 만한 것이 어디 없습니다. 치마저고리로 풍성하게 가린 모습에서 뭔 섹시를 느끼겠습니까? 섹시가 커머셜의 가장 핵심적인 툴이된 상업자본민주주의 시대, 돈 엄청 벌고 있는 미국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허벅지 내놓은 것 빼면 뭐 그다지 돈 될 것 없지 않나 싶은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중들 앞에서 왜 그렇게 벌거벗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요즘은 뭐 그러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할머니들도 궁디 앞뒤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룰루레몬 입고 다니는 세상이긴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남녀가 처음 만날 때 벗고 만나지는 않습니다. 선보는 자리 나가면서 홀라당 벗고 나가는 사람 아직은 없지 않나요?

그런데 처음 만나는 남녀지간에 서로 홀라당 벗고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입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아담이 이브를 보고 처음 한 말이 얼마나 섹시한지 모릅니다.


[창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Ge 2:23, NIV] The man said,"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세상 처음 보는 여자를 완전한 알몸으로 보았으니 얼마나 황홀하고 정신 없었겠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섹시 메시지로 감탄을 했을텐데, 평상 위의 어르신같이 점잖게 그리고 창조의 원리에 입각하여 최대한 거룩하게 표현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온갖 추악하고 잔인한 모습이 여과없이 그대로 실린 성경이지만 성경이 전혀 허접하거나 그레이드가 낮은 것이 아니고 거룩함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숨쉬고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의 거룩함이 임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진짜 믿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추한 모습들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역설입니다. 옛날 왕들은 자기의 치적을 드러내고, 더러운 것은 감추기 위하여 역사를 조작하고 바꾸기 일쑤였습니다. 만약 성경이 사람이나 엉터리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보기 흉한 장면들은 빼고 좋은 장면만 기록에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는 모습과 인간사에 주님이 역사하신 모든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 것은 주님이 주님이란 것을 자신있게 보여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똑똑한 사람들은 성경의 기록 중에 나타난 기적, 물 위를 걷고, 물이 포도주가 되고, 바다가 갈라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문둥병이 치료되고, 뭐 그런 일들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성경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똑똑한 사람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위하여 태양계와 지구를 만드시고, 원자와 양자의 세계까지 설계하시고, 사람의 유전자까지 만드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기적도 아니다 그냥 껌 씹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다 성경을 못 믿을 이유가 뭐냐, 내 손바닥만 보아도 위대한 설계자와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뭐 이렇게 나옵니다. 설 익은 똑똑이가 성경이 어떠니, 기적이 어떠니 제 좋은 소리하면서 믿어야 할 것, 믿을 수 있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도대체 뭘 믿고 살꺼니?

주님이 너무나 설계를 기가막히게 하셔서 호르몬이 지령하는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데, 홍수 이전에 사람들이 몇 백년씩 살면서 그런 범죄(?) 현장을 피하지 못하고, 유혹을 피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질렀을지는 굳이 상상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상상이 절로 되는 일입니다.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Ge 6:5, NIV] The LORD saw how great the wickedness of the human race had become on the earth, and that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the human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


사람이 수백년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강건하면 마음은 더 오만방자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수 백년을 살았으니, 당시 사람들은 치아 관리는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치약 치솔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나요? 홍수 이전의 문명 수준이 어땠는지 참 궁금해지는 일입니다. 

지금 사람의 수명이 백년이 되지 않고 왕성하게 일하는 나이는 20세 중후반부터 길어야 60대까지인 걸 생각하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40년 정도인데, 사람이 몇 백년을 살면 지구상에 전문가들이 수두룩 했을 것 같습니다. 기타를 치고 논 사람들의 실력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기타 실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사람이 관현악에 나오는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수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민 와서 초기에 사업한다고 껄떡 거린 일이 있었는데, 하루는 어금니 하나가 부러져 나갔습니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속에 한이 많이 쌓여 잘 때나 평상 시에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나 봅니다. 스스로 이를 하나 부러뜨리는 바람에 이민 와서 처음으로 치과에 갔는데, 하루 한번 치솔질을 잘(?) 하고 살았지만, 치아 상태가 엉망인 걸 그때 처음 알고는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살던 시절에는 치과 보험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보험으로 커버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걸로 이빨 관리를 잘 해오고 있었습니다. 캐나다는 의료보험은 무료로 제공이 되어도 치과 보험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직장의 치과 보험이 없는 사람은 현금 박치기로 치과를 다녀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빨이 아프지 않으니 이민 와서 치과에 가지 않은 채 몇 년을 보낸 것이었고, 그런 가운데 이빨 부러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후에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사업을 접고 그냥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하는 옛 어르신들의 지혜로운 말씀에 따라 직장 생활로 전향(?)을 했고, 그로 인해 직장인 치과 보험을 이용하여 이빨 관리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동네 치과에는 3개월 혹은 4개월에 한 번씩 들려 스케일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치과에서 스케일링 하는 분이 젊은 남성분인데 아주 여성스럽게 사근사근하고 가족 챙기듯이 잘 챙겨주는데, 가면 꼭 묻는 것이 있습니다. 칫솔질은 하루에 몇 번 하느냐, 치실은 하는가, 치간 칫솔은 사용하는가, 워터픽을 사용했는가, 이 네가지 질문을 꼭합니다.

칫솔질은 아침, 점심, 저녁 먹고나서 그리고 잠자기 전에 한 번 더, 그렇게 네 번 이상, 치실은 가끔, 치간 치솔과 워터픽도 가끔 한다고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초기에는 칫솔질 이외에 치실, 치간 칫솔, 워터픽은 거의 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냥 가끔 한다고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빨 나가고 씹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건 그냥 죽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그 네 가지를 매일 거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걸 해보니, 치실하면 치솔질 하면서 나오지 않은 찌꺼기가 나오고, 치실 다음에 치간 치솔을 사용해보면 또 찌꺼기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워터픽을 하면 뭔가 더 나오는 것을 보고는 네 가지를 모두 그냥 매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서툴렀습니다. 워터픽을 사용하다가 물이 목구멍으로 쏘아져서 켁켁거리기도 하고 뭐 그런. 그런데 익숙해지고나니, 그거 어릴 때부터 평생 거르지 않고 잘 했으면 이빨이 훨씬 더 건강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세상 모든 것이 장비빨이라니!

이빨 관리가 이렇게 노력이 필요하고 게으르면 안되는 것인데, 주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알려주신 이빨 관리법은 과연 뭐였을까가 정말 궁금해질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바이블에 창조에서부터 인간 역사의 큰 줄기가 잘 기록되어 있지만, 인간 유전자 설계도와 인체 사용 설명서까지 좀 더 상세한 매뉴얼을 주셨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쉬움? 인간이 아쉬움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앞에 보니 이야기 꺼내 놓고 마무리 하지 않은 내용이 하나 있네요. 아담이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게 뭔 말이냐? 아담은 흙으로 빗었지만, 아담에게 주님은 더 고급진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흙보다 더 고급진 재료를 쓰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담의 뼈와 살입니다.

아담에게서 뼈와 살을 취하기 위해 아담을 잠들게(마취) 하시고, 아담에게서 필요한 재료들을 꺼낸 다음에 그것으로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좋은 재료에서 아담이 정말 혼절할 정도의 미모를 가진, 몸에 와따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이브가 탄생이 된 것입니다. 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난 아담이 뻐근한 가슴을 만져보니, 갈비뼈가 하나 모자란 것을 알고는 “아하, 저걸(?) 내 뼈와 살로 만드셨구나”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창조주가 간단히 말씀으로 뚝딱 적당히(?) 또 하나 더 만드시지 않고, 그렇게 지극정성 직접 외과 전문의로 나서 집도를 하셨을까요? 우매한 인간은 주님의 전지전능 하심에 딴지를 걸 수 있습니다. 주님이 굳이 아담에게 외과수술을 시행한 이유는 주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는 빼도받고 못한 증거를 의심 많은 인간들에게 증거로 보이고 역사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겁니다. 가슴에 그 증거 남기지 않았으면, 아담부터 긴가민가 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Ge 2:21, NIV] So the LORD God caused the man to fall into a deep sleep; and while he was sleeping, he took one of the man's ribs and then closed up the place with flesh.


참고로 위에 보이는 아담과 이브 그림은 퐁피두 센터에 소장되어 있는 1909년 수잔 발라동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를 그린 화가들이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창조에 대해서 창세기의 내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것까지는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겨서 태어난 인간들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인간의 특징은 뭡니까? 바로 배꼽입니다. 

아담과 이브를 그린 화가들이 주님이 성형 수술로 배꼽을 만들어 주셨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은 다릅니다. 아담에게 외과수술을 하실 정도로 단호하신 주님이 과연 칼 든 김에 배꼽 성형 수술까지 해주셨을까? 아닙니다. 아담의 가슴에 칼을 댈 정도로 증거를 남기신 분이 아담과 이브의 배에 배꼽 없는 증거를 없애실리 없다는 생각입니다. 배꼽 없는 아담과 이브야 말로 성경 창세기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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