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
대통령 윤석열이 불쌍해서 지난 밤 잠 못 이루고 울었다는 어느 할머니 이야기, “대통령이 왕인데, 왕은 하나님이 점지해주는 분인데, 그런 분을 어떻게 탄핵을 하고 파면을 할 수 있느냐? 너무 슬프다. 옛날에는 왕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는데, 국민들이 왜 그렇게 빨갱이 짓을 할 수 있느냐?” 뭐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왕입니까? 왕의 폭정에 이기지 못해 18세기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이 일었고, 왕정을 없애고, 수백년간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르며 탄생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그런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요?
왕을 주님이 점지해주셨다는 말은 구약에서 선지자를 통해 사울왕에 이어 다윗왕을 점지해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그런데 사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왕정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왕으로 인해 고통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두기를 원합니다.
[삼상8:6-9]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Sa 8:6-9, NIV]
6 But when they said, "Give us a king to lead us," this displeased Samuel; so he prayed to the LORD.
7 And the LORD told him: "Listen to all that the people are saying to you; it is not you they have rejected, but they have rejected me as their king.
8 As they have done from the day I brought them up out of Egypt until this day, forsaking me and serving other gods, so they are doing to you.
9 Now listen to them; but warn them solemnly and let them know what the king who will reign over them will claim as his rights."
왕은 그때도 그렇고 그 이후의 인류의 역사를 통해 좋은 역할보다는 국민을 착취하고 죽이고 어렵게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타당한 이유가 없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대한민국의 경제와 외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또라이 윤석열을 왕에 비유하며 그런 놈이 불쌍하다고 하는 노인네는 정신줄이 제대로 나가신 분 같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왕 중에 좋은 왕이라고 하면 다윗 왕을 꼽을 수 있나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다윗이 좋은 왕인가요? 좋은 일만 했습니까? 자기와 이스라엘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장군의 아내를 자기 침실로 끌어들여 색욕을 채웁니다. 그리고 그 장군의 아내가 임신을 하니까 자기의 불륜을 감추려고 최전방에 나가있는 그 장군을 호출하여 아내와 잠자리를 갖게 합니다. 그런데 충직한 그 장군이 자기 부하들이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장군인 내가 어떻게 이 상황에 아내와 같이 잠자리를 즐길 수 있겠냐며 동침을 하지 않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갑니다. 난감해진 다윗은 그러면 그 장군을 죽여 없애서 우환을 없애자는 잔인한 생각을 가지고 장군을 최전방 돌격대로 보내 마침내 죽여 버립니다. 그 장군은 전쟁하다 전사했다기 보다는 사실상 다윗이 죽인 것입니다.
그런 왕이 좋은 사람입니까? 양아치 중에 양아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윗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Sa 13:14, NIV] But now your kingdom will not endure; the LORD has sought out a man after his own heart and appointed him ruler of his people, because you have not kept the LORD's command."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충직한 부하 장군의 아내를 범하고, 그 장군을 죽이는 정도의 인간을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로 말씀하십니까? 초신자들이 아니 교회 꽤나 다녔다는 사람들도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입니다.
혼란스러워 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잘난 것 같아도 원래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걸 성경은 거르는 것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석열이 같은 놈은 자기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도 없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행동도 없고, 국민을 향해 사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땅의 왕들 중에 다윗같이 그렇게 자기 잘못에 대해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보이는 왕을 다윗 외에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왕이나 대통령의 권위를 가진 사람 중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인물이 한국의 역사에서 있었나요?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면에서 다윗 정도면 정말 훌륭했던 인물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하고는 정말 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 투성이고, 제대로 된 사람 별로 없는 게 현실입니다. 소름끼치지 않습니까?
하지만 주님이 다윗을 그저 마냥 이뻐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하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이 죽인 장군의 아내 밧세바가 낳은 다윗의 아들을 주님은 치십니다. 다윗은 장군을 죽이고 빼앗은 여자를 궁궐로 불러들여 아내로 삼지만 그가 낳은 첫 아들을 죄값으로 치러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공식으로는 셈이 되지 않는 신의 복잡한 수식(?)같이 보일 수 있지만, 되지도 않는 머리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하나님은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고,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성경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홀딱 넘어간 여자 밧세바에게서 얻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도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입어 지혜의 왕이란 타이틀까지 획득합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 그도 형편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끝납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김건희 같이 미신 믿는 여자들에게 홀딱 빠져 주님을 버리고 잡신을 믿다가 인생을 종치고 맙니다. 솔로몬 만큼 받지 못했지만, 솔로몬보다 더 은혜롭게 인생을 산 이름없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이 처럼 자기 이속만 챙기고 남에게는 쪼잔한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좀 의아해집니다. 왕궁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양의 백향목이 필요했고 레바논(두로)으로부터 수많은 백향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레바논에게 치른 보상을 보고 레바논(두로) 왕 히람이 빡칩니다.
[왕상9:12-13]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1Ki 9:12-13, NIV]
12 But when Hiram went from Tyre to see the towns that Solomon had given him, he was not pleased with them.
13 "What kind of towns are these you have given me, my brother?" he asked. And he called them the Land of Kabul, a name they have to this day.
히람이 솔로몬이 준 땅을 보고 “가불”이라고 한 것은 그 땅이 아주 가치없고 볼품 없어 보이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호사스럽게 성전과 왕궁을 레바논에서 아낌없이 보내 준 백향목 덕분으로 잘 지었으면서 그 보답을 쪼잔하게 한 솔로몬의 욕심을 보면서 거기서부터 지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백향목, 레바논 세다(cedar)라고 하는데, 이게 요즘 레바논에는 얼마 남지 않아 아주 귀한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다가 우리 동네 뒷산에는 정말 많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의 이야기를 통해 혼란스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도 순간 방심하면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상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1Ki 2:3, NIV] and observe what the LORD your God requires: Walk in obedience to him, and keep his decrees and commands, his laws and regulations, a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Do this so that you may prosper in all you do and wherever you go
맞는 말인데, 이런 말을 주고 받은 부자가 모두 인간적으로는 형편없는 면을 가지고 있는 왕들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이들 인간들이 가진 모자란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서, 성도들이 가져야 할 주님을 향한 신실함이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이 말씀이 다윗이 솔로몬에게만 준 말입니까? 교회다니면서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까요? 현대인에게 맞게 신약의 말씀을 인용하면 이런 말입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Jas 2:14, NIV]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claims to have faith but has no deeds? Can such faith save them?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에는 잔인하고 이해하지 못할 어지러운 일이 너무 많다. 이런 생각이나 말들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 세 가지 관점을 항시 마음에 두고 있으면 어떤 대목이나 상황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첫째, 흙으로 뭔 도자기를 만들지 결정하는 것은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요강으로 만들어진 토기가 고려청자를 보면서, "나만 왜?"라고 불만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온 우주의 별들과 땅위의 모든 일들이 그의 의지대로, 설계대로 움직이도록 법칙을 만드신 분입니다. 온 우주에서, 땅위에서, 땅속에서, 물위에서, 물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그 분 마음대로이고, 그 분의 판결은 무조건 옳습니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으니, 토를 달 수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 분의 의지와 판단과 지혜는 그 어떤 나라의 헌법을 모두 모아 놓은 것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높은 상위의 법입니다.
둘째,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판단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게 바로 순종하지 않는 죄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그런 죄성으로 벌어졌습니다. 인간들이 자기가 신이 되고 싶고, 신을 자기들 의도대로 움직이고 싶어서 만든 것이 잡신들입니다.
셋째, 인간을 만든 것이 주님이고, 복 주시기 위해 만드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이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그 내용들이 잘 적혀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 땅위의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 지구의 환경, 그 모든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혜이고,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별을 만든 것도, 별을 이용하여 예언을 보여주시고, 별을 이용하여 목동들을 이끈 것만 보아도, 주님이 인간을 위하여 별을 만드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주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참 많이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는 엄벌을 하십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가 인간에게 내리신 벌을 통해서도 그 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과 대화하기를 즐기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신 것은 순결, 거룩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순간 인간에게서 거룩의 모습은 없어집니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죄를 정말 싫어하십니다. 죄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죄로 깨어진 사람과 주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죄로부터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긍휼히 여기신 주님이 은혜를 넘는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이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고 제사의 희생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피조물을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삼은 창조주, 그 어느 잡신이 따라 할 수 없는 진정한 창조주의 사랑을 피조물 사람에게 보여준 신은 예수님,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보면서 성경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인간들의 그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주검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이 그냥 그렇게 죽었다면, 스토리가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면, 뭔가 하나님의 법이 미완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냥 그렇게 정말 죽었다면 그건 신이 아니지요? 십자가에 매달려 제사의 제물이 되신 하나님이 다시 살아나시므로써 그 분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창조주였음을 증명하십니다. 그게 예수님 부활 사건입니다. 그 분이 우리가 정말 믿어야 하고, 믿어서 절대 후회하는 일 없을,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진정한 창조주이십니다. 그걸 믿으면 바이블이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은혜에 은혜가 되는 내용들입니다. 부활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보다 부활절이 더 의미있고 감격스러운 명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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