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문학
지혜문학
오늘날 보는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집니다. 이 성경은 수많은 저자가 쓴 것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쓰여있습니다. 시문학학 형태로 쓰여진 것도 있고, 역사서 형식으로 쓰여진 것도 있습니다. 문학적인 형태로 볼 때, 지혜문학으로 구분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혜문학에 해당되는 것은 욥기, 잠언, 전도서, 야고보서입니다. 잠언과 전도서가 지혜문학에 들어가는 것은 언뜻 감으로도 알만한데, 욥기와 야고보서는 “어, 왜?”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습니다.
욥기에 나오는욥이 살던 곳은 지금의 중동지방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도 추정이 됩니다. 지금의 중동지역은 뜨겁기 그지없는 지역인데, 욥기에는 눈, 춥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빙하시대, 빙하시대가 언제인가요? 지금도 빙하시대입니다. 엥? 빙하가 있는 시대가 빙하시대 아닌가요? 빙하, 북극이나 남극이나 알라스카까지 갈 필요없이 밴쿠버에서 두 시간 떨어진 휘슬러에도 산꼭대기에 빙하지역이 있습니다. 거기서 7월 한여름에도 빙하 위에서 사람들이 스키를 탑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하루길인 캐나디언 록키의 빙하도 유명합니다.
욥이 살던 시대에는 빙하지역이 더 광밤위하여 중동지역까지 빙하가 덮힌 지역이 있었나 봅니다. 과학자들이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빙하시대가 욥이 살던 시대이지 읺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욥은 욥기 10장에서 주님에게 대듭니다. 법정에서 한번 붙어보자고 나옵니다. 그런 성난 욥이 창조주의 변론을 듣고는 그 오만방자한 입을 닫고, 창조주의 위대함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 변론 과정에서 욥기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부인할 수 없는 기가막힌 묘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정말 지혜의 말들이고 표현들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왜? 야고보서는 길지 않습니다. 버스 기다리면서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 호흡에 훅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루터는 야고보서를 싫어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의 부패에 반대하여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을 외치며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는데, 얼핏 보면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가 거슬렸던 것입니다. 야고보서를 잘 씹으며 보지 않으면, 자칫 행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야고보서가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루터가 나중에 결국 오해를 풀고 아임쏘리했지만. 야고보서는 행함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악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살아야할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힘과 지혜가 있는 정경입니다.
야고보서 5장에서는 욥의 인내를 이야기합니다. 주님과 연결된 자는 지혜가 있고, 삶을 인내를 가지고 견디는 자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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