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욕먹는 이유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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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욕먹는 이유는 뭔가?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사는 것 보니, 나도 교회에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제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인성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만 교회에 많다면 교회가 욕 먹을 일은 없습니다. 그에 반해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역겨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인구보다는 역겨워하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이 기독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되먹지 못한 사람들”로 비춰질까요?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믿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영적교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기심. 믿는 사람들의 이기심의 발로는 토테미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의 소원을 두 손 닳도록 싹싹 비는 대상이 뒷마당의 수백년 된 거목에서 예수님으로 바뀐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자기를 확 바꾸어버리는 인생역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바라는 욕심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욕망만 마음에 가득차 있는 이기심 때문에 기독교인이 보여야 하는 사랑과 희생정신은 싹 무시하고 자기 욕심만 추구하는 썩은 마음이 교회를 병들게 했습니다.  영적교만. 세상사람들이 예수쟁이들을 싸늘한 눈으로 혹은 멸시하는 눈으로 혹은 조롱하는듯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소위 믿는 사람들이 세상사람들을 보는 눈초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를 알리려는 진심어리고 절실한 마음보다는, 받은만큼 되돌려준다는 마음이 섞인듯, “예수도 모르는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구”라고 생각하며, 세상사람들을 개보듯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의 그 마음을 눌러보면 말랑말랑 친절하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온유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눌러보면 강팍하기

라면 스프 감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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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스프 감자칩 캐나다 인구가 4천1백만명을 넘어섰습니다. 그에 더하여 2026년까지 매년 50만명의 인구증가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유학을 통하여 인도와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머리수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집값과 월세가 오르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매년 조그만 시 하나가 생길 정도의 폭발적인 캐나다의 이 인구증가를 그냥 놔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돈 보고 인생을 전력투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프렌차이드 레스토랑들이 대서양을 건널 필요도 없고, 태평양을 건널 필요도 없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땅이 붙어있는 캐나다에 이런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있으니 그 시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미국 프렌차이즈들이 캐나다 진출과 매장 확대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미국에나 가야 볼 수 있던 프렌차이즈를 캐나다 아니, 멀리 안가고 밴쿠버에서도 볼 날이 멀지 않은듯 싶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유명 프렌차이즈들에 대한 기본급 인상 때문에 미국에서 죽 쑤기 시작한 미국 프렌차이즈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캐나다 시장에 대한 의욕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 드라이브 나서면서   맥도날드에 들렸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오더를 하고 드라이브 쓰루로 밥을 받으면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오더를 하면서 화면을 보니 신제품이 보입니다. 감자칩인데, 거기에 스프를 뿌려 먹는 쉐이커 제품입니다. 뿌리는 양념이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서양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양 것입니다. 서양 것은 자지키(tzatziki)고, 동양 것은 라멘(ramen)입니다. 빅맥 세트 하나와 자지키 쉐이커를 주문했습니다. 쉐키 발음이 아주 강렬해서 주문을 주고 받을 때 밀크쉐이크하고 헷갈릴 수 있습니다.  드라이브 쓰루에서 맥도날드의 큼직한 봉투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니 감자칩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빅맥밀에 따라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자칩 쉐이커을 위한 것입니다. 자지키 스프

Full Strawberry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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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Strawberry Moon 자동차 고치는 테크니션이 일할 때, 차에 붙어있는 시간 못지 않게 노트북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습니다. 웍오더(work order)를 보고 일을 시작하고, 작업 내용을 웍오더에 기록해야 되고, 필요한 파트(part)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오더를 하고, 작업 매뉴얼을 보거나, 워런티 내용을 확인하거나 하는 작업을 웍벤치 위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면서 해야되기 때문입니다. 그걸 하는 동안 내내 서있을 수는 없고, 의자에 앉아서 해야하는데, 움직임이 많은 테크니션에게는 의자보다는 스툴(stool)이 더 유용합니다. 아래 그림은 제가 몇 년 쓴 스툴인데, 안장이 거덜났습니다. 안장이 저렇게 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앉아 비벼댔는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안장은 저렇게 되었는데, 제 궁디가 무사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람 궁디가 사람이 제조한 공산품이었으면 저 스툴의 안장과 함께 같이 거덜이 났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만든 제품보다 능력이 많으신 창조주가 만든 제품(?)이 훨 내구성이 좋습니다.  저대로 두면 안장이 완전히 떨어져 나갈 것같아 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새 스툴을 다시 사기는 비싸고 너무 아깝고, 그래서 아마존을 보니, 안장만 팝니다. 그걸 구해 끼웠더니, 작업장에서 앉고 서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사우디아라비아 광야에서 헤맬 때, 거기에는 아마존같은 배달의 기수가 없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속옷이 닳지 않게 주님이 역사하신 모양입니다. 정말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십니다. [신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Dt 8:4, NIV] Your clothes did not wear out and your feet did not swell during these forty years. 딸기만월, 오늘이 딸기만월이 뜨는 날입니다. 제 스툴의 안장과 같이 완전 둥근 달이 뜨는 날입니다.

닷지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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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지의 후예 한국전쟁 때, 전장을 누빈 미군트럭에 GM이 만든 지무시가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닷지 트럭이었습니다. 지무시는 GM 브랜드 중의 하나인 GMC를 말하는 것이고, 닷지는 지금은 없어진 회사지만 미국의 삼총사 중 하나였던 크라이슬러의 트럭 브랜드인 Dodge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닷지의 브랜드 네임을 이어받아 지금도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트럭 브랜드가 Ram입니다. 옛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품질이 형편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도 거리에서 보면 램트럭이 상당히 많이 보입니다. 품질이 나쁘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사실 차가 따지고 보면 다 그게 그거입니다. 크라이슬러 차도 운좋게 잘 걸리면 벤츠보다 문제없이 더 잘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업체의 제품 제조능력이 모두 상향 평준화된 상황이고 부품들의 수준도 전세계적으로 평준화되어 근본적으로 업체간 엄청난 품질차이를 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소비자 측면에서 느낄 수 있는 자동차 업체간의 품질 격차란 것은 무엇일까요? 바라스키, 일본말 바라스키, 품질편차를 말하는 것입니다. 열대 중에 열대의 품질이 모두 좋으면 최고의 품질입니다. 이런 업체의 제품은 잘 고를 필요없이 그냥 아무차나 딜러에서 새차를 받아도 품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열 대중에 품질문제 전혀 없는 차의 비중이 다섯 대 정도라면 품질 나쁜 새 차 받을 확률이 50%나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품질 산포가 산만한 업체의 차는 구입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램, 품질 산포가 들쑥날쑥 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회사의 트럭입니다. 품질이 안 좋은 것 중에서 첫번째는 어디선가 질질 새는 것입니다. 오늘 2021년형 램 트럭을 인스펙션 했습니다. ‘어디 보자 이 놈은 어디가 새는가.’ 없습니다. 새는 곳이 없습니다. 이 놈은 상태가 꽤 좋습니다. 크게 문제되는 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품질 바라스끼가 큰 회사의 제품인데, 이 트럭은 운좋게 품질이 좋은 상태로 조립이 된 트럭입니다.

직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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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유기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비즈니스맨형 목사들입니다. 예수님 믿게 되었으면 믿는 사람이 사는 것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을 수 있도록 선한 삶을 사십시오 하고 바울처럼 열정을 가지고 설파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부담스런 이야기하여 교인들 떠나가기 싫어하는 비즈니스 마인드 때문인가요? 그런 사이비 목사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 정말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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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내용이 참이 아니면 창세기의 기록이 허황된 것이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성경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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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가 뭡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까?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겁니까? 엎드려 눈 감고 뭘 해야 합니까?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죽어라 주님을 부르는 게 기도입니까? 주님이 대답하시지 않으면 그냥 주 기도문 외우고 끝나는 게 기도입니까? 기도는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합니까?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기도는 주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주문하듯 애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주님이신데 왜 기도를 하셨을까요? 기도하면 주님이 단번에 뭐든 다 들어주십니까? 뭐든 다 들어준다는 문구가 성경에 있긴 있습니다. 단번에 들어주시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는가요? 그게 뭐든.  엘리야는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할 때 일곱번 기도하고 나서야 비가 내립니다. 그럼 여섯번째까지는 기도를 해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일곱번째 기도에서는 주님의 말씀 응답을 받았을까요? 일곱번째 기도에서 주님이 말씀해주셨다면, 기도하고 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사환에게 왜 물어봤을까요? 기도의 전사로 통하는 엘리야도 일곱번 기도에 주님과의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도대체 기도는 뭔가요? 대답없이 응답해주는 것이 기도인가요? 승천한 엘리야같은 사람도 주님과의 대화없이 기도를 했다면 보통 사람은 도대체 기도 중에 뭘 기대하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건가요? 뭘 기대하고 기도하는 게 기도인가요? 아니면 그냥 해야하는 것이 기도인가요?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기도하는 내내 즐겁고 기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런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건가요? 엘리야가 일곱번 기도하고 사환에게 비가 오느냐고 물을 때마다 면이 섰을까요? 쪽팔림을 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릎사이에 머리 박고 하는 기도가 정말 즐겁고 기뻤을까요? 주님을 모르고 기도도 몰랐고, 기도를 하지도 않은 어린 사무엘을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