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

기도가 뭡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까?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는 겁니까? 엎드려 눈 감고 뭘 해야 합니까?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죽어라 주님을 부르는 게 기도입니까? 주님이 대답하시지 않으면 그냥 주 기도문 외우고 끝나는 게 기도입니까? 기도는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합니까?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기도는 주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주문하듯 애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주님이신데 왜 기도를 하셨을까요? 기도하면 주님이 단번에 뭐든 다 들어주십니까? 뭐든 다 들어준다는 문구가 성경에 있긴 있습니다. 단번에 들어주시지는 않아도 언젠가는 들어주시는가요? 그게 뭐든. 

엘리야는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할 때 일곱번 기도하고 나서야 비가 내립니다. 그럼 여섯번째까지는 기도를 해도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일곱번째 기도에서는 주님의 말씀 응답을 받았을까요? 일곱번째 기도에서 주님이 말씀해주셨다면, 기도하고 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사환에게 왜 물어봤을까요? 기도의 전사로 통하는 엘리야도 일곱번 기도에 주님과의 티키타카가 없었다면, 도대체 기도는 뭔가요? 대답없이 응답해주는 것이 기도인가요? 승천한 엘리야같은 사람도 주님과의 대화없이 기도를 했다면 보통 사람은 도대체 기도 중에 뭘 기대하고 기도를 해야 되는 건가요? 뭘 기대하고 기도하는 게 기도인가요? 아니면 그냥 해야하는 것이 기도인가요? 

한시간 두시간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기도하는 내내 즐겁고 기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런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건가요? 엘리야가 일곱번 기도하고 사환에게 비가 오느냐고 물을 때마다 면이 섰을까요? 쪽팔림을 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무릎사이에 머리 박고 하는 기도가 정말 즐겁고 기뻤을까요?

주님을 모르고 기도도 몰랐고, 기도를 하지도 않은 어린 사무엘을 부른 주님의 음성은 무엇인가요? 기도없이도 말씀하시는 주님이시라면 기도는 뭔가요? 예수님을 잉태했던 마리아도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일방적으로 들었고,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이 제 욕심에 뭔가 필요하여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열고 지니를 불러내는 것처럼 기도를 하면 주님이 그런 세속적인 기도를 들어주실 것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런 쓸데없는 제 욕심 챙기는 기도를 왜 하고 있을까요? 주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그럼 사람들은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세상만물을 보기좋게 창조하신 것으로 주님은 인간이 주님에게 기도로 다시 요청할 필요없이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태초 때부터 미리 챙겨주신 게 맞습니다. 그럼 모든 것을 가진, 인간들, 사람들이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담과 이브를 만드시고, 주님이 그들에게 먹지 말아야 할 과일만 정해주었지, 기도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언제 처음으로 언급되고 나온 것인가요? 왜 나온 것인가요? 기도가 필요없는 아담과 이브 시절에서, 기도가 요구된 시기로 바뀐 게 언제인가요? 기도의 시작이 홍수 전인가요? 홍수 후인가요? 홍수 전에 기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나요? 주님이 방주 건설을 위해 노아를 부르기 전에, 주님이 방주에 대해 언급하시기 전에 노아는 기도를 했었나요?

구약에서 기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기도한 다니엘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할 때마다 주님과 카톡하듯 한마디 한마디 또박 또박 티키타카를 했을까요? 왕들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님은 다니엘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과의 진한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죽음을 개의치 않는 능력자가 된 것일까요? 그 능력은 다니엘의 제대로 된 기도를 통해 얻어진 능력인가요? 다니엘에게 일어난 기적으로 유추해보건데, 다니엘의 기도는 자신의 안위를 지켜달라는 그런 이기적인 기도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전사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주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은 아합과 신나고 멋지게 싸울 때가 아니고, 이세벨의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쫄아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간 다음에 탈진해 퍼져 있을 때, 폭풍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후계자 엘리사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승천합니다. 엘리야가 더 유명하지만, 폼은 엘리사가 더 멋져 보입니다. 하늘의 불병거 군단을 보는 눈이 있었던 엘리사는 주님과 겸상을 한 선지자입니까?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까? 

구약 시대의 기도와 신약 시대의 기도는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르면 어떻게 다른 것이며, 같다면,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뭘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왜 기도해야 합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떻게, 뭘 기도해야 합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듭니까? 굉장히 중요하고 급박한 것같은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먹고 마실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의식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식주가 기도 대상이 아니라면, 자신의 출세나 자식의 출세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도대체 뭘 위해 기도해야 하는 건가요? 

AI는 주님을 믿나? 걔는 기도에 대해 알고 있을까?

AI가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아는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기도에 포함될 사항으로 찬양과 예배, 회개, 감사와 필요한 것에 대한 요청, 뭐 그런 것들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주기도문을 기도의 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 주일 예배 때마다 모든 교인이 같이 외우는 기도문입니다.


[마6:7-13]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Mt 6:7-13, NIV]

7 And when you pray, do not keep on babbling like pagans, for they think they will be heard because of their many words.

8 Do not be like them, for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efore you ask him.

9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10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11 Give us today our daily bread.

12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13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the evil one.'


마태복음에 나온 주기도문을 보고 기도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까? 뭔가 더 혼란스러워지지는 않았습니까? 나를 따르려면 세상 모든 것 버리고 십자가에 자신을 때려박으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던 분이 제시하는 주기도문은 너무 메가리(?)가 없습니다. 실망스.

주님께서 너희 구할 것을 모두 아신다고 했는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왜 또 들어갑니까?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매일 그냥 처먹지 말고, 감사하면서 좀 먹으라는 노파심으로 하신 말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치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서가 주님께 간구하는 그 모든 것인가요? 물론 대단히 중요한 것이고 복음의 핵심이긴 합니다만, 기도를 통해 우리가 간구해야만 되고, 주님께서 뭔가 당부하실 말씀이 더 있는데, 빠진 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만약 그렇다면 그게 뭘까요? 성경을 더 뒤져 찾아서 나온다면 그걸 보물같이 반드시 챙겨야 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미룰 수 없고, 급박하게 진행시켜야 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사람이 제대로 간구하기를 기다리시는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단서가 될만한 성경말씀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기도하는 자세에 대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릴 수 있는 능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엡6:18-19]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전도할 때, 인간적으로 버벅거리지 말고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듣는 사람의 영혼에 복음이 전파되는 그 능력을 허락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바울의 기도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과 대면하여 일대일 강습을 받은 바울이 쓴 성경 내용이니 이게 기도의 맥을 제대로 짚은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땅끝까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사도에게 사명을 주신 주님의 명령과도 일치합니다.

바울이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간구했을 때, 그거 네게 족하다며 들어주시지 않은 주님이십니다. 그냥 전도의 능력과 사명만 퍼부어주셨습니다. 바울급도 아니면서 기도로 먹고 마시고, 떼돈 벌고, 좋은 집 사고, 자식 출세하고, 뭐 이런 거 기도하고 있으면 천사가 뒤에 강림하여, “재수없는 놈!” 하고 성령의 가래침 퉤받고 돌아갈 일입니다. 머리채 끄댕기고 귀싸대기 두들겨 맞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Mk 11:24, NIV]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for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


뭐든 다 기도하는대로 들어주신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대로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이면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이겠지요. 저급한 세상적인 요구가 아니라 고상하고 하늘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거룩하고, 복음전파와 괸련된 요구사항이어야 합니다. 그런 목적으로 구하면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 능력을 구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 듣기를 소망하는 것이 기도인 것 같습니다. 

돈, 건강, 출세, 그것이 기도의 전부였던 사람들은 그거 빼면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제는 기도할 때, 땅을 보고 할 일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해야 합니다. 땅의 물질이 아니라 하늘의 거룩함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해보지 않은 기도라 주저하거나 멈추면 안됩니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1Sa 12:23, NIV] As for me, far be it from me that I should sin against the LORD by failing to pray for you. And I will teach you the way that is good and right.


기도를 날 선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는데, 말랑말랑하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까 합니다.

살아보니 인생이 참 녹록치 않습니다. 기가막히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을 때 믿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주님을 찾습니다. 

인생이 무너지는 감정을 느끼며 주저앉아 엎드려 주님을 찾은 구약의 인물 중에 언뜻 떠오르는 인물은 한나입니다.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분통한 마음으로 한나가 주님께 오열하며 하소연하고 구하는 동안 주님이 뭐라 답을 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나의 애통해 함을 듣고 계셨고, 그 원통함을 끝내 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대부분, 아니 거의 다 이런 패턴이 아닐까요?

저도 마음과 영혼이 무너지고 먹먹할 때,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 할 말조차 잊고, 그저 주님의 이름만을 부르는데도 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같은 평안과 위로를 느끼는 경험을 합니다. 그 분을 찾을 때마다 그 분의 위로와 그 크신 손으로 나의 이 작은 어깨를 감싸주시는 온유함과 사랑을 느끼며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부모 잃은 아이가 골골 굶어가며 거지꼴을 하고 헤매다 부모를 찾고 그 품에 안겨 서럽게 펑펑 우는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한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나를 지으신 분이고, 부모님이 모르는 것까지 내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분인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믿음의 증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리고 기도는 축복입니다.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전지전능한 분과 연결되는 고리니 인간이 세상 살면서 그만한 빽이 없습니다. 줄을 대려면 제대로 대고 살아야 합니다.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지, 사는 동안 잘못된 것을 믿다가 죽어서 “오마이갓” 해봐야 말짱 도루묵입니다. 성황당 뒤의 천년 묵은 나무나 바위에 대고 두 손 비비고 있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철학원에 찾아가 비싼 돈 주고 점치고, 부적 사붙이는 것도 바위에 비는 것만큼이나 바보같은 짓입니다. 나무부처나 돌부처에 빌어봐야 그것들도 돌이고 나무일뿐입니다. 알라도 세상을 만든 신은 아닙니다. 주님에 대적하여 사탄이 만들어낸 툴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제대로 믿게 복음을 전하는 입술을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가 주님이 듣고 싶어하시는 기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부와 명예를 얻지 못했고, 크고 위대한 일, 역사에 남을만한 일을 한 것없이 그저 제 한 몸 간수하는 것조차 버겁게 살았지만, 그런 하찮은 인생에도 주님의 개입하심이 있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그냥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칩니다. 인생은 작고 보잘것 없었지만 그 초라한 인생에 개입한 주님의 역사와 사랑은 위대했습니다. 죽일 수 있을 때 살려주셨고, 꺾였을 때 일으켜 주셨고, 망했을 때 챙겨주셨습니다. 인생은 작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위대하시고 영광 속에 계셨습니다. 인생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주님뿐이고, 그 분의 사랑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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