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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대와 18명의 이스라엘 선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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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대와 18명의 이스라엘 선지자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성경에서 구약성경을 보면 선지서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서등 4명의 대선지자들의 선지서들이 나오고, 이어서 12권의 소선지서가 있습니다. 모두 16명의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의 선지자들을 이야기할 때 18명의 선지자를 언급합니다. 앞서 언급한 16명의 선지자와 달리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두 명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더하면 18명이 됩니다. 그런데 이 18명의 선지자들이 구약에 연대기별로 정리된 것도 아니고,  대선지사와 소선지사로만 나뉘어 있어 어느 시대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여 뭔 일을 했는지 잘 와닿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16명의 선지자는 선지자 이름의 선지서가 있지만 엘리야와 엘리사는 별도의 선지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열왕기와 역대기에 등장하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 18명의 선지자들이 어떤 시대에, 어떤 배경에 등장했는지 대충 대강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보며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헤맨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여호수아라는 큰 지도자가 사망한 이후에 영적 구심점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타락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그 죄악을 이방 민족을 이용하여 징계하십니다. 이방민족의 핍박의 고통에 견디지 못하고 구원을 외치면 사사를 통하여 구원을 내려주시는 역사가 반복이 됩니다. 그런 반복적인 괴로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과 같은 그들의 왕을 원합니다.  사사 시대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원대로 하나님은 사무엘을 왕으로 지목하시고, 다윗과 솔로몬으로 왕권이 이어집니...

변소에서 화장실로

변소에서 화장실로

화장실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난 애들은 변소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반대로 변소를 사용하던 시절의 사람들은 한국의 미래에 화장실이라는 말이 등장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화장실이라는 말을 꺼냈다면 그 말을 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자들 얼굴 화장 고치는 방, 아니면 시체 태우는 화장터, 둘 중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요? 똥 누는 곳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똥간에서 무슨 화장을 혀?” 뭐 그렇게 기가 차지도 않다는듯 혀를 찼겠지요.

그럴만한 것이 변소, 말 그대로 똥 있는 장소가 변소였습니다. 변소에서 똥 퍼서 배추밭에 뿌려 농사짓던 시절의 똥간을 점잖게 이야기해서 변소인 겁니다.

그 시절의 변소의 모양이 조금 현대식으로 바뀐 모양이 요즘 외진 캐나다 캠핑장에 가면 보이는, 혹은 공사장 주변에서 보이는 간이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당시 한국의 변소는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똥과 오줌이 떨어지도록 사람이 디디고 설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길쭉한 네모 구멍을 만들어 그리로 오줌과 똥을 내리는 겁니다. 때맞춰 똥을 퍼내지 않으면 똥이 발판 구멍 너머 쌓이고, 똥보다 오줌이 더 많은 경우에는 똥을 내리는 중에 똥물이 튀어 소중한 궁디에 묻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습니다. “세계적인 K-Pop 문화의 우아한 한국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구?” 있었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그런 변소들이 있었고, 거기서 퍼낸 똥오줌을 세상 온 밭에 뿌려대었으니, 그 시절에는 어딜 가나 똥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냄새뿐만이 아니라, 볼 일 보고 밑을 닦아내는 일 또한 대단한 밋션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화장지를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신문지가 최고의 뒷처리 수단이었습니다. 넘친 똥을 피해 까치발로 간신히 발을 디디고 일을 본 다음, 뻣뻣한 신문지를 구기고 비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다음, 뒷처리를 하고 무사히 변소를 빠져 나오는 것이 정말 하루 일들 중 가장 챌린지가 되는 일 중의 하나였고, 그 시절의 그 변소 트라우마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도 꿈에서 변소 찾아 헤매다 잠에서 깨는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환경이 그러니 당시는 온 국민이 정기적으로 회충약 먹는 게 또 한 행사였습니다. 당시, 화장지는 없었지만, 교회는 있었습니다. 워낙 뭐가 없고, 필요한 것은 많은 시절이었던 터라 교회가서 기도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뭘 비는 기복신앙이었을 수 있지만, 교인들이,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순수하고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변소가 화장실로 바뀌없지만, 정작 환경이 좋아지고 잘 살게 되니까, 사람들 마음은 거꾸로 화장실이 변소로 바뀐 것 아닌가 싶은 절망감이 듭니다. 겉은 화려해졌는데, 속은 반대로 썩어버린. 그래서 수레바퀴 같이 반복재생되는 인간의 역사와 인생들의 변하지 않는 죄악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한탄한 것일까요?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화장실, 하루의 시작을 그곳에서 하고, 하루의 마감을 그곳에서 합니다. 싸고 씻고 가꾸고 꾸미고 정리하고, 세상을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서는 세상에서 묻은 먼지와 흘린 땀을 씻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하는 그곳에 말씀 묵상과 기도가 있어서 영적으로도 변소가 화장실로 변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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