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에서 화장실로
변소에서 화장실로
화장실 있는 아파트에서 태어난 애들은 변소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반대로 변소를 사용하던 시절의 사람들은 한국의 미래에 화장실이라는 말이 등장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화장실이라는 말을 꺼냈다면 그 말을 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자들 얼굴 화장 고치는 방, 아니면 시체 태우는 화장터, 둘 중 하나를 상상하지 않았을까요? 똥 누는 곳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똥간에서 무슨 화장을 혀?” 뭐 그렇게 기가 차지도 않다는듯 혀를 찼겠지요.
그럴만한 것이 변소, 말 그대로 똥 있는 장소가 변소였습니다. 변소에서 똥 퍼서 배추밭에 뿌려 농사짓던 시절의 똥간을 점잖게 이야기해서 변소인 겁니다.
그 시절의 변소의 모양이 조금 현대식으로 바뀐 모양이 요즘 외진 캐나다 캠핑장에 가면 보이는, 혹은 공사장 주변에서 보이는 간이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당시 한국의 변소는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거기에 똥과 오줌이 떨어지도록 사람이 디디고 설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길쭉한 네모 구멍을 만들어 그리로 오줌과 똥을 내리는 겁니다. 때맞춰 똥을 퍼내지 않으면 똥이 발판 구멍 너머 쌓이고, 똥보다 오줌이 더 많은 경우에는 똥을 내리는 중에 똥물이 튀어 소중한 궁디에 묻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습니다. “세계적인 K-Pop 문화의 우아한 한국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구?” 있었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그런 변소들이 있었고, 거기서 퍼낸 똥오줌을 세상 온 밭에 뿌려대었으니, 그 시절에는 어딜 가나 똥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냄새뿐만이 아니라, 볼 일 보고 밑을 닦아내는 일 또한 대단한 밋션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화장지를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신문지가 최고의 뒷처리 수단이었습니다. 넘친 똥을 피해 까치발로 간신히 발을 디디고 일을 본 다음, 뻣뻣한 신문지를 구기고 비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다음, 뒷처리를 하고 무사히 변소를 빠져 나오는 것이 정말 하루 일들 중 가장 챌린지가 되는 일 중의 하나였고, 그 시절의 그 변소 트라우마의 영향 때문인지, 요즘도 꿈에서 변소 찾아 헤매다 잠에서 깨는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환경이 그러니 당시는 온 국민이 정기적으로 회충약 먹는 게 또 한 행사였습니다. 당시, 화장지는 없었지만, 교회는 있었습니다. 워낙 뭐가 없고, 필요한 것은 많은 시절이었던 터라 교회가서 기도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뭘 비는 기복신앙이었을 수 있지만, 교인들이,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순수하고 더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변소가 화장실로 바뀌없지만, 정작 환경이 좋아지고 잘 살게 되니까, 사람들 마음은 거꾸로 화장실이 변소로 바뀐 것 아닌가 싶은 절망감이 듭니다. 겉은 화려해졌는데, 속은 반대로 썩어버린. 그래서 수레바퀴 같이 반복재생되는 인간의 역사와 인생들의 변하지 않는 죄악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한탄한 것일까요?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화장실, 하루의 시작을 그곳에서 하고, 하루의 마감을 그곳에서 합니다. 싸고 씻고 가꾸고 꾸미고 정리하고, 세상을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서는 세상에서 묻은 먼지와 흘린 땀을 씻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 하는 그곳에 말씀 묵상과 기도가 있어서 영적으로도 변소가 화장실로 변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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