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어를 알아 버렸네

레이어를 알아버렸네

60년대 꼬맹이 시절을 살던 때, 골목을 누비며 다마치기(구슬치기), 다방구, 잣치기 등 갖가지 놀이를 섭렵하며 어두울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시절에 꼬맹이가 책읽는 것보다 더 좋아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만화가게 가서 신간만화를 보던 것입니다. 

때는 흑백TV시절, 그나마 그 TV도 귀하여 있는 집에만 몇 대 있던 터라 TV있는 집 방 한구석에 끼어들어 저녁시간에 방영하던 만화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는 것도 하루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만화도 보지 않고, 만화영화도 보지 않으니, 그 시절의 추억으로만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의 편린들입니다. 요즘 그 시절 만화를 대체한 것은 웹튠이나 유튜브 동영상들입니다. 문물이 발전하여 그 옛날 종이로 보던 것을 이제는 화면으로 보는 것이 또 달라진 것 중의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을 만화로 보냈다면, 어른이 되어서 빠져든 것은 컴퓨터입니다. 플로피 디스크로 돌아가던 XT컴퓨터를 가지고도 1990년대 초 인터넷도 하고, 미니 홈피도 돌리고 했으니, 그걸 가지고 놀면서 인생의 반 이상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습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픽 프로그램입니다. 그걸로 사진 수정 작업도 하고 작품을 만들어 프린트하여 뿌듯하게 벽에 걸어놓기도 하는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픽 프로그램은 평생동안 손끝에서 놓지 않은 놀이도구인 셈입니다. 여러가지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왔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가장 애용했던 프로그램은 포토 임팩트(Photo Impact)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노트북에 윈도11을 깔고 포토임팩트를 다시 깔려고 하니 이제 더 이상 그 프로그램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좋은 그래픽 프로그램이었는데, 코렐이 포토 임팩트를 사들이고 그걸 잘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 프로그램을 더 살리고 포토 임팩트를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하지만 코렐의 그래픽 프로그램은 제 스타일이 아니어서 다른 대체 그래픽 프로그램을 찾다가 드디어 영혼의 단짝이 될만한 것을 하나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Clip Studio Paint)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기능을 보니, 포토 임팩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터페이스들이 제 스타일입니다. 알고보니 저만 모르고 있었지, 이 업계에서는 아주 잘 알려진 엄청난 프로그램입니다.

대단한 것을 발견한 희열을 느꼈지만 초기에 시간이 좀 걸리는 프로그램입니다. 공부를 좀 해야 잘 쓸 수가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중에 가장 걸리는 것은 레이어에 대한 기능과 개념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폰의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인 키네마스터(KineMaster)에서도 기본적으로 레이어를 이용하여 작업을 하지만, 클립스튜디오 페인트의 레이어 개념은 확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어떻게 레이어를 만들고, 관리하고, 사용하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이북(ebook)으로 구입한 클립 스튜디오 페인트 책을 읽으며 며칠 사용해보니,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던 레이어가 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업자들 편하라고 만든 것이고, 정말 편하고 유용한 기능인데, 못나게 무지 어렵게 그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북이 레이어에 대해 설명하면서 새 레이어를 만드는 방법을 먼저 설명을 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먼저 따로 만들 필요도 없고, 작업을 시작하면 프로그램이 스스로 레이어를 생성해주었습니다. 그냥 막 파일 오픈하고, 그림 불러오고, 쓰고, 그리고, 붙이면 되는 것이고, 레이어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그림과 글을 넣어 만든 포스터입니다. 레이어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작업을 했는데, 오른쪽에 레이어들이 절로 만들어진 것이 보입니다. 레이어 이름은 자기 편의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레이어 중에서 그림 레이어의 아이(eye) 아이콘을 클릭하여 아이를 껐더니, 그림이 사라졌습니다. 작업한 레이어들을 한꺼번에 다 보려면 모든 아이 아이콘을 켜면 됩니다.

세 개의 문구도 세 개의 레이어에서 따로 작업이 되어 있습니다. 문구 하나를 만들 때마다 제가 새 레이어를 만든 것도 아닌데, 문구 하나당 레이어 하나로 프로그램 자체가 그렇게 배정을 했습니다. 작업할 레이어를 클릭하여 선택한 다음에 작업을 하면 다른 레이어의 글이나 그림에 영향을 주지 않고 고치고자 하는 레이어의 것만 작업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보통 사람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이런 엄청난 툴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생산성이 엄청 나겠습니다. 이런 쪽 공부하고 이런 쪽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재미도 있고, 돈도 잘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야도 AI가 그림을 마구 그려대니 위기인가요? 그래도 AI는 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맛깔스러운 것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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