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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vs Popeyes - 일 끝나고는 치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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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vs Popeyes - 일 끝나고는 치킨이지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일 끝나고 주말이 시작되는 전날 저녁 일 끝내고 나서는 금요일 저녁에는 치킨과 맥주 생각이 절로 납니다. 사흘 일하는 저의 불금은 불목입니다. 일끝내고 나오는 저를 마중 나온 아내에게 치킨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사는 웨스트 밴쿠버에 치킨 집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홀푸드 마켓 푸드 코트에서도 치킨을 집어들 수 있지만, 전문 치킨 프랜차이즈는 KFC와 파파이스 두 군데가 있습니다.  파크로얄 몰 안쪽 푸드 코트에 있는 KFC는 근래에 새로 입점 했습니다. 그 전에는 노스 밴쿠버에 KFC가 한 군데 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웨스트 밴쿠버에 문을 연 KFC가 노스 밴쿠버의 KFC만큼 닭을 잘 튀기는지 확인해 보기 위하여 개점 한 후, 두어주 뒤에 가서 먹어보았더니, 참 잘 못합니다. 아마도 본점에 가서 레시피를 교육 받고 배워왔을 것 같은데, 누가 가서 배워왔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닭고기 튀김을 엄청 못합니다. 튀김 옷은 전혀 바삭하지 않고, 안쪽은 고기가 잘 익혀지지 않았고, 기름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역겨워서 먹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면서도 튀김 옷은 시커멓습니다. 웨스트 밴쿠버에 KFC가 하나 생겨서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있으나마나 한 것이 하나 그냥 생긴 셈입니다. 당연히 이번에 들린 곳은 노스몰에 있는 파파이스입니다. 여전히 잘 합니다. 아니, 실력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겉바속촉을 제대로 잘 합니다. 먹는 동안 역겹게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전혀 없습니다. 실컷 먹었습니다. 패밀리 팩을 시켰는데, 치킨은 상자에 2층으로 집어 넣어 양이 엄청 납니다. 30불 가격으로 매장에서도 실...

십일조 소망

십일조 소망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적 병폐가 심화된 현대 사회, 부자들은 교회 가서 폼나게 십일조 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가 요구하는 십일조를 감당하는 것이 정말 여의치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눈총이 무서워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잘 사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를 보면서 발길을 돌립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오늘날 교회가 풍비박산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본고장이 되었던 미국의 교회들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모습과 현대 우리 사회의 대형교회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초대 교회는 잘 사는 사람들이 물질을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도 물질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았는데, 현대 교회는 헌금 많이 내는 사람이 대우 받고 십일조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한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밴쿠버는 셋방살이 하는 사람들이 렌트비로 지출하는 비용이 평균적으로 수입의 61 퍼센트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한달 생활비 중에 음식도 먹고 싶은 만큼 제대로 사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 수입의 대부분을 집세로 낸 사람이 수입의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는 것은 정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일입니다.

이런 형편없는 질서 속의 자본주의 황금만능 시대에 서민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데, 대형 교회는 어마어마한 헌금을 거두어들이면서 못사는 교인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의식없고 양심없는 목사를 중심으로 그를 추종하는 부자들이 교회의 모습을 얼그러뜨리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와 부자 교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교회가 지금처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와 사회가 부패해도 교회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도긴개긴이 되었으니 망했습니다. 교회의 모습이 사회 부조리의 복사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4: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Ac 4:34, NIV] that there were no needy persons among them. For from time to time those who owned land or houses sold them, brought the money from the sales

십일조와 헌금이 현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슈가 되고 도전이 되고 있는데, 옛날 교회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주님이 내라고 정한 것인지, 사람이 정한 것인지, 정해졌다면 어떤 상황에서 정해진 것인지, 누구에게나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인지, 옛날에 정해졌다면,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5장에 충격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을 팔아 헌금을 한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를 하나님이 죽이십니다. 땅 판 돈 전부를 교회에 내지 않고, 삥땅을 떼고 나머지 돈을 내면서 전부를 낸다고 슬쩍 속인 것 때문에 그냥 속절없이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마치 베드로가 이들을 저주하여 죽이는 것같지만, 사람인 베드로가 그들이 얼마를 숨겼는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베드로에게 성령이 역사하여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일을 행하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십일조를 내지도 못하는 사람이 허다한 마당에 전재산 다 팔아 조금 떼기는 했지만 나름 엄청난 금액을 헌금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왜 죽였을까요? 그렇게 헌금했는데도 죽는다면, 저같은 시로도 성도는 매주 줄초상을 치러도 모자랄 판입니다.

당시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다니는 교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누굽니까? 바울은 워낙 알려진 이름이라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입니다. 하지만 교회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바나바라는 인물은 생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이 시기에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에서 쌍벽을 이루었던 듀오입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이었던 바울이 예수님 만나고부터 모든 걸 버리고 목숨 걸고 선교했지만, 바나바도 그에 못지 않게 재산을 팔아 사람들을 도우며 신앙생활을 했고,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인물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처럼 자기들도 존경받고 교회 내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에 씌워 그렇게 죽을 죄를 짓게 되고 말았습니다.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주님 보시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신앙적으로 순수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운 그들 부부의 죄된 속마음이 주님의 레이더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도 교회 생활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실생활을 들여다보면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령이 충만하고 거짓이 용납될 수 없는 분위기의 초대교회에서, 가식적이고, 살짝 속이는 영이 깃든 이들 부부의 썩은 영이 교회를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듯 합니다.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가 초상치는 당시 초대교회의 그 모습이 그대로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난 살아있을 수 있을까? 난 왜 죽지 않고 있지? 아싸 그래도 안죽는구나. 그냥 이대로 내 맘대로 쭉 살아도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막 사는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은 영혼입니다. 주님이 죽은 영혼 또 죽일 필요없는 것 아닐까요?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거듭거듭 강조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십일조입니까? 십일조 이야기를 죽어라 외치는 것은 목사들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지만,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럼 십일조는? 초대교회에서는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집과 땅을 팔아 이웃과 나눕니다. 그를 본받아 현재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살 집만 남기고 나머지 집들은 팔아 이웃을 돕던지, 집없는 사람에게 주던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집을 돈 버는 투기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집을 두 채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여러 채, 십 수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현상 때문에 집값이 너무 오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시고, 넘치게 주시는 주님이 온 인류가 먹고도 남을 먹거리를 이 땅 위에 충분히 주셨는데, 사람들의 욕심이 부동산, 금융, 식량을 독식해버리는 바람에 가난한 사람들은 오늘 저녁에 애들 먹일 식량이 없어 눈물 짓고 있습니다. 욕심이 죄악을 잉태했습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두들 집 한 채만 가지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우는 사회가 된다면, 집값 떨어져 집 구하기 쉽고, 그로 인해 물가도 떨어지면, 가난한 사람에게도 십일조 내는 것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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