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와 운동화

청바지와 운동화

지난 해,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운 날 빼고는 아랫도리에 청바지를 꽤 자주 입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갈 때도 청바지를 입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청바지 입고 교회가면 눈총을 받을 일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목사들조차 청바지 입고 강대상을 누비니, 뭐 저같은 돌신자야 그걸 입지 못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캐나다에서도 청바지 입는 목사는 현지인 목사들이이지, 한국인 목사들은 일년 내내 넥타이에 양복차림입니다. 그런 한인 목사가 버티고 있는 한인 교회에 나가는데도, 뭐 여기는 캐나다니까 하고 용기 빡빡, 뻔뻔하게 청바지 입고, 눈총 개의치 않고 교회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그리 크게 눈총 받을 일도 아닙니다. 이곳 현지 사정은 청년들이 여름이면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교회에 들어오는 분위기다 보니, 사실 노인네 청바지는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도, 눈 여겨 보는 사람도, 청바지 멋있다고 한 마디 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실 젊어서도 잘 입지 않았던 청바지를 늙어 하나 산 것은 재작년이었던가? 코스트코에 들렸는데, 리바이스 청바지가 보여 순간 충동구매 욕구가 일었고, 젊어 못한 것 늙어 폼나게 한번 입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지역에서 금이 발견된다고 소문이 나서 미국의 온 인류가 죽음을 각오하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는 골드러쉬가 있었습니다. 금 캐려고 서부로 이동하다가 금도 캐보지 못하고 오는 도중에 병에 걸려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물을 마시지 못해 죽은 사람들도 숱하게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작 서부에 도착해서도 금으로 돈을 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듯 합니다. 대신 금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비즈니스를 벌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청바지도 골드러쉬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아마도 금을 캐서 번 돈보다 청바지를 팔아서 번 돈이 훨씬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당시 청바지로 떼돈을 벌다가 청바지 브랜드의 원조가 된 것이 리바이스(Levi’s)입니다. 

사실 코스트코에서 본 청바지의 브랜드가 리바이스였기 때문에 구매욕구가 발동한 것이 맞습니다. 보통 명품 브랜드라고 하면 핸드백도 몇천만원을 주고 산다고 하는데, 리바이스같은 명품을 단돈 몇십불 주고 산다는 것은 아주 재수좋고 현명한 득템입니다. 아무리 명품이라고 해도 수백, 수천만원을 주는 것은 구매라기보다는 그냥 미친 돈지랄일 뿐입니다.


참고로 청바지를 보면 군데 군데 리벳이 박혀 있고, 주머니 안에 주머니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것도 그 옛날 청바지 개발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청바지 원단이 텐트를 만들던 두터운 면텐트천이다 보니, 잘 닳지는 않는데, 문제는 바느질한 부분이 여기저기 한두 군데씩 뜯어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뜯어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에 리벳을 이용하여 강하게 붙였더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청바지에 박힌 리벳은 그런 이유로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주머니 안의 작은 주머니는 그 옛날 시계를 집어넣었던 주머니입니다. 그 시절 시계는 서부 영화를 보면 가끔 한번씩 볼 수 있듯이 손목 시계가 아니고, 시계를 줄에 매달고 다니다가 포켓에서 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보았습니다. 청바지의 주머니 안의 작은 주머니는 바로 그 시계를 넣기 위한 주머니였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명품 청바지를 입고 지난 해 여름과 가을,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잘 놀았습니다. 그때 신은 신발은 역시 코스트코에서 산 몇십불짜리 트레일 런닝화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일년에 한번 생일 즈음에 비싼 신발 하나씩 사서 신어보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뭔 신발을 신을까 고민을 여러 날 했습니다. 처음 고려한 브랜드는 요즘 제일 핫한 온(ON)이나 호카(HOKA)였습니다. 나이키(NIKE)는 너무 진부하고, 요즘 인기 뚝뚝 떨어지고 있는 브랜드여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뉴밸런스(New Balance)나 아식스(Asics)도 고려했지만, 요즘 좀 폼나는 것은 호카 아니면 온인것 같아 그 둘을 타겟으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언제 사지? 신발 구경을 하러 웨스트밴쿠버의 로열파크몰에 들려 신발을 파는 가게들에 들려보면, 대상 브랜드 신발들이 있기는 한데, 구색이 별로 다양하지 않습니다. 타겟으로 잡은 온이나 호카 신발들은 디자인이 두어 가지밖에 진열을 해놓지 않았습니다. 웹사이트에서 보면 디자인도 다양하고 마음에 드는 놈들도 하나둘씩 있는데, 그걸 매장에서는 구경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 그냥 주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발이 정해진 사이즈가 있기는 하지만, 같은 사이즈라도 신어보면 신발마다 착용감이 천차만별입니다. 비싼 돈 주고 산 신발이 신어보니 꽉 껴서 불편하다면 그거 참 난감한 일입니다. 그래서 몸에 걸치는 것은 옷이든 신발이든 인터넷으로 사는 것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도 나와서 신나게 돌아다녔습니다. 운전할 때, 앞에 스마트폰을 붙이고 운전을 합니다. 가는 길이 아는 길이어도 스마트폰으로 네비를 켜는 이유는 교통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이 막히는 것같으면 로컬들이 아는 우회길로 즉각 방향을 바꾸고 그때 네비가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상단에 보이는 5G 마크가 신문물을 즐기는 기분을 업시켜줍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저장시켜놓은 음악을 듣는 것은 돌아다니는 것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 줍니다. 음악은 유튜브의 음악 영상을 다운받아 그 음악을 재생시키기도 하고 저장시켜놓은 음악 파일을 실행시키기도 합니다. 음악 실행앱은 제트오디오(jetAudio)입니다. MP3 음악과 MP3 플레이어가 나오던 시절 한국 사람들이 만든 앱입니다. 정말 좋은 앱이고 아직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IT 명품 하나를 쓰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어 다시 신발 한 번 더 보자고 몰에 다시 들렸습니다. 뭐 다시 가봐야 원하는 브랜드의 신발들이 디자인 종류가 더 다양하게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이키, 뉴밸러스, 아식스 신발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데, 호카나 온은 두어가지 디자인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명성대로 신으면 정말 편한지 한번 신어나 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 호카와 온 신발을 신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헐! 신발들이 너무 불편합니다. 아프기까지 합니다. 사이즈 10을 신는데, 10.5로 신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문이 완전히 엉터리인데? 호카와 온 신발을 인생에서 완전히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그럼 뭘 신지? 보니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평생에 한번 신고 싶었던 신발은 빨간 신발입니다. 평생 신은 신발이 무채색 신발이었고, 기껏 색깔이 있는 신발은 파란 색이나 갈색 신발이었습니다. 그 빨간 신발을 10.5 사이즈로 신어보니 정말 너무 편하고 발에 착 달라 붙었습니다. 아내와 만장일치 그 신발로 선택을 했고, 오늘 사기로 작정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오늘 신발을 하나 샀습니다.


평생 처음 사 본 빨간 운동화는 헬리한센(Helly Hansen) 브랜드입니다. 요즘 밴쿠버에서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뜨고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파타고니아와 헬리한센입니다. 이 브랜드의 제품들이 구색이 몇 없었는데, 요즘 들어 확 늘어났고, 특히 헬리한센의 경우는 가격까지 공격적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원래 의류쪽에 상품이 많았는데, 헬리한센의 운동화들이 언제부터인가 보이기 시작했고, 오늘은 빨간 운동화도 보여 그걸 신어 봤고, 마음에 들어 질렀습니다. 내 맘에 명품이면 넌 명품이야! 밴쿠버에서 청바지에 빨간 운동화 신은 미친 놈 보이면 그게 접니다. 제 노트북 화면의 마우스 커서 색깔도 무려 빨간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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