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은혜로다

인생이 은혜로다

제가 어릴 때 집이 가난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가난했습니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제가 꼬맹이 때는 주변에 월남집이라고 불리는 집도 흔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돈 생길 게 별로 없으니, 월남에서 돈 벌어오는 집을 월남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미군들이 지나가면서 차 위에서 쫓아뛰어가는 꼬맹이들에게 쵸콜릿을 던져주는 풍경이 흔했고, 고물상이 돈 많이 버는 비즈니스였고, 거리에는 과일과 채소, 생선등 이것저것 온갖 것을 갖다가 파는 좌판이 흔했습니다. ‘뻥이요!’ 하는 경고음(?) 뒤에 쌀이나 옥수수 알갱이를 뻥튀기하는 뻥소리가 길거리에서 늘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한국이 폭발하듯 엄청난 변화가 있던 풍운의 시절, 그 시절을 풍미하다가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서 숨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오늘 불현듯 그 시절이 회상이 되면서 코딱지만한 집안을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보면서 인생이 참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크리스마스 선물.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주님 이땅에 오신 날. 한강의 기적과 한국에서의 기독교 부흥은 때를 같이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신앙이 기복신앙이라 교회의 힘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이 워낙 못살던 시절이라 기복신앙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고, 기복신앙의 힘이 한국 기독교 부흥에 일조한 면이 없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살게 된 지금도 기복신앙의 기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죄악입니다. 기복신앙을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신자들도 문제지만, 그 심리를 이용하여 기복신앙을 교회 비지니스(?) 툴로 사용하고 있는 목회 지도자들이 더 악합니다. 그게 오늘날 기독교가 욕먹고, 쇠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한국에도 그 시절 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로 마당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안에 설치되어 있고, 수돗물 나오는 데가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수돗간에서 찬물로 등목을 했지만, 지금은 집안에서, 그것도 무려 뜨거운 물로 발가벗고 샤워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똥 싸려면 바깥 똥간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똥간은 골목길에 있기 일쑤였고, 여러집이 사용하다보니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습니다. 똥 퍼가는 똥차가 때에 맞춰 미리 와서 똥간의 똥을 퍼가지 않으면 똥간에 똥이 차고 넘쳐서 똥을 밟지 않고 똥을 싸려고 참 애먹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화장실은 로마황제나 이집트 파리오가 부럽지 않게 호사스럽습니다.


설상가상 더 가관이었던 것은 지금처럼 똥꼬를 잘 닦아낼 수 있는 화장지도 없었습니다. 신문지를 꾸깃꾸깃 부드럽게 만들어 닦아야 했으니 현대인이 다시 되돌아가 겪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그 옛날 가장들이 가장 구실 잘하기 쉽지 않던 시절에, 꼴에 부엌에 가서 손에 물도 묻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남자도 설거지하기 쉽게 집집마다 디쉬와셔(dish washer)가 있습니다. 그 시절 듣도보도 상상도 못한 신문물입니다.


냉장고, 제가 어릴 땐 이걸 구경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집안에 냉장고가 있는 걸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오븐(oven)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연탄불이 요리를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쌍둥이표 주방기구? 이건 뭐..


스마트폰, 컴퓨터에 밀린 TV. 당시 티비는 있었나요?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브라운관 티비였고, 동네에 몇집에만 있었습니다. 제 집에는 티비가 없어서 친구집에 쭈구리 들어가 저녁시간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흑백화면으로. 그 정도 살다가 이 정도 살면, 인생이 은혜입니다.


판자집이 몰려있던 동네에 살다가, 지금 밴쿠버에서 집값이 제일 비싼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다를 보며, 바베큐를 하는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출세한 것이 있으니, 그 어떤 것보다 큰 은혜는 기복신앙으로 얻은 물질적인 편안과 선물이 아니라, 곤궁한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하늘이 내리는 손길에 행복한 제 영혼과 평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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