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해만에 다시 찾은 부차드 가든
스무해만에 다시 찾은 부차드 가든
이민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이민 초짜가 밴쿠버 아일랜드로 여행을 간 일이 있습니다. 그게 20여년전 일입니다. 그때 거기 가서 뭘 봤는지 어렴풋한 기억만 있습니다. 가든이 있고, 꽃들과 나무들을 본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 어떤 디테일이 머리 영상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스무해가 지난 다음 두번째 들리는 것이니 처음 제대로 보러 간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페리 배삯을 아끼기 위하여 가는 첫 배와 오는 마지막 배를 예약한 터라 새벽같이 일어나 페리 선착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다섯시 전에 도착을 했는데, 차들이 매표소 전에 줄을 서있고, 표를 끊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려서 매표소쪽으로 가보니 5시 반부터 오픈한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았습니다.
좌우지간 예정대로 6시 넘어 배를 탔고, 배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려 아침을 먹었습니다. 배에서의 아침 식사, 이게 진정한 여행의 멋과 맛이 시작되는 신호탄입니다. 페리 레스토랑은 화이트스팟에서 서빙하는데, 지상에서 먹는 화이트스팟보다 배에서 먹는 화이트스팟이 항상 더 맛있는 것은 또하나 여행의 마법같은 것입니다.
밥 잘먹고 배 밖으로 나가니, 날이 밝았는데, 흐립니다. 흐린 날의 바다지만 그 나름대로 또 멋이 있습니다.
애시당초 계획은 호슈베이에서 배를 타고, 나나이모에 내린 다음, 빅토리아까지 내려가 다시 부차드 가든으로 올라가는 루트를 잡았습니다. 나나이모에서 내려 남쪽으로 주행하면서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것으로 소문난 던칸을 지나 밀베이에 이르렀습니다. 빅토리아까지 가는 도중의 중간 지점인 던칸쯤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할 계획이 있었는데, 내려가는 내내 비가 줄기장창 내려 그냥 어찌 던칸을 스킵하고 밀베이까지 이른 것입니다.
밀베이쯤에서는 한번 쉬어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드는 찰나 하이웨이 오른편에 조그만 몰이 보이고 거기에 맥도날드, 팀호튼같은 레스토랑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어라’ 스마트폰에 켜둔 구글맵 네비가 하이웨이에서 빠져 밀베이 바닷가쪽으로 표시되며 페리를 타라는 안내를 합니다.
일단 팀호튼에 들려 차와 도넛을 먹으며 몸의 긴장을 풀고 화장실에도 들렸습니다. 잘 쉬고 나와 구글이 알려주는 대로 하이웨이를 벗어나 밀베이 해안도로를 따라 페리 선착장으로 가보았습니다. 정말로 페리를 타려고 차 몇대가 줄을 서서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차드 가든은 스무해만에 다시 가보는 것이지만, 부차드 가든 말고 다른 곳 여기저기를 여행하느라 밴쿠버 아일랜드에 여러번 와봤지만 밀베이에 이런 페리가 있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하이웨이를 따라 빅토리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필요없이 밀베이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부차드 가든으로 바로 가는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빗길을 운전해온터라 졸음이 엄청 쏟아지던 터에 이렇게 드라이빙 시간을 확 줄여주는 코스가 있었다니 정말 대박 중에 대박입니다. 이번 여행 최대의 대박 사건. 배삯은 25불. 정말 제대로 하나 건져냈습니다.
부차드 가든, 그 촌구석에 평일인데도, 비가 오는데도 구경온 사람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죽 둘러보는데, 정말 처음 와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번에는 부차드 가든 구석구석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드래곤 분수도 전에 와서 본 기억이 없고.
로스 분수도 전에 왔을 때 보지 못한 스팟입니다.
아내의 소원대로 부차드 가든을 제대로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그래도 벚꽃과 튤립이 만개한 드넓은 정원은 사람들이 사진찍기에 더 없이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꽤 많은 직원들이 쉴새없이 정원을 가꾸고 있는 모습도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부차드 가든을 나와 빅토리아로 내려와 오크베이 커뮤니티 센터 수영장에 들려 수영과 사우나로 여독(?)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다운타운으로 들어가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돼지국밥, 돈까스, 제육볶음을 시켜 잘 먹었습니다.
하루 잘 보냈고, 한가지 남은 일은 게잡이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따져보니, 게잡이 할 시간은 너무 빡빡합니다. 그리고 게잡이 포인트를 확정한 것도 아니고, 게잡이 포인트를 두어군데 수색하고 게잡이까지 하기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해서 그건 포기하고, 나나이모로 배타러 바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내려올 때, 스킵한 던칸에 들려 월마트 구경을 했습니다. 스마트워치하면, 삼성, 애플, 구글 핏빗 정도가 보통인데, 월마트에서 한가지 더 볼 수 있는 것은 아마즈핏이라는 중국 브랜드의 스마트워치입니다. 그 브랜드 스마트워치가 던칸 월마트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나나이모에서 늦은 저녁 마지막 배를 탔습니다. 피곤함이 전신에 밀려옵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계속 군것질을 했기 때문에 다들 배가 고프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독(?)으로 소화가 엄청 잘 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배 고프지 않다고 뭘 먹어두지 않으면 새벽녘에 배고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무겁게 먹지는 않고 푸틴과 크램차우더로 저녁끼니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대미, 50% 할인하는 봄 코트를 구입했습니다. 통상 50% 할인하는 옷은 사이즈가 엑스엑스 라지 정도 이상의 입을 수 없는 옷들만 남는데, 그 중에 미디엄 사이즈 옷이 하나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나이모로 오는 배 안에서는 라지 사이즈가 보여 살짝 커보이는 옷을 살까말까 고민을 하다가 내려놓았는데, 돌아가는 배 안에 미디엄 사이즈가 남아 있는 것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거의 로또 수준. Le Element라는 저명 브랜드의 카민색(짙은 자주색) 롱 코트인데 이런 물건을 백 불 밑의 가격으로 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하나 건져냈고, 여행하면서 아내 선물까지, 완벽한 마무리입니다. 행운과 감사함이 넘치는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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