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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베이스에서 스튜디오 프로로 - 웨스트 밴쿠버 홈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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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베이스에서 스튜디오 프로로 - 웨스트 밴쿠버 홈 스튜디오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조그만 피아노 건반 모양의 미디 키보드를 치면서 음악을 만들어 보려면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40년 전에 초기 도스나 윈도 PC에서 그런 작업을 할 때는 오디오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사운드 카드를 이용하고 당시에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작곡편집 프로그램)는 케이크워크(Cakewalk)라는 것을 썼습니다. 당시에 그렇게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별다르게 뭘 하지도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았고, 당시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 지금은 남아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다 40년이 지난 후, 20년 정도 사용하던 후진 소니 노트북이 맛탱이가 가서 끄고 켜는 것에서부터 뭐 문서 한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까지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느려 터지기 시작하면서 버티지 못하고 드디어 2년 전에 노트북 개비를 했습니다. 새로 짠 등장한 노트북은 요즘의 그 어떤 앱을 깔아도 슁슁 잘 돌아가는 빵빵한 사양의 물건입니다. 인텔 13세대 i7 CPU가 장착되었으니, 현재 기준으로도 성능이 차고도 넘치는 놈이 책상 위의 새로운 메인 스테이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놈으로 1년쯤 사용하고 난 다음에 굼실 떠오른 생각이 그 옛날 잘 하지 못했던 음악으로 향한 꿈에 대한 도전을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뻘짓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미디 키보드와 오인페(오디오 인터페이스)입니다. 알아보고 또 알아본 다음에 선택한 것은 키보드는 아카이(Akai) MPK mini plus이고, 오인페는 포커스라이트(Focusrite)의 스칼렛(Scarette) 4세대 2i2입니다.  이것들...

은퇴하고도 일을 해보니

은퇴하고도 일을 해보니

지구촌에 컴퓨터 과학이 태동하려고 꿈틀거리고, 과학자들이 네트워크 개념을 생각할 즈음에 저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ARPA(미국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가 인터넷의 모태가 된 ARPANET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저는 국민학교(나중에 초등학교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6학년이었습니다. 저의 인생처럼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되었던 인터넷인데, 제가 현대자동차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대리, 과장으로 진급할 즈음에는 한국에서 전화선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화선을 이용하는 인터넷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동안은 전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두 개를 개통해서 한 선은 인터넷 전용으로 쓰는 호사를 떤 역사가 있습니다.

그 당시 인터넷이라고 해야 전화선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뎀을 이용해야 했고, 속도도 빠르지 않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천리안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용하는 PC의 화면도 흑백화면에 텍스트 기반의 도스 운영체제였습니다.

모니터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도스에서 윈도로 바뀌면서 윈도다운 윈도를 쓰게 된 것은 윈도95가 나온 1990년대 중반 즈음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모니터는 화면이 컬러로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 브라운관 모니터였습니다. 지금같이 평판 모니터가 나온 것은 그 후로도 한참 뒤였습니다. 

제가 꼬맹이 때는 집에 전화 있는 집이 드물었고, 전화가 없는 집은 길에 세워진 공중전화 부스(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이는)를 찾아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후 경제발전을 한참 한 뒤에야 집집마다 전화가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집전화 있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각자 개인들이 손에 자기 전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어디 신상명세서 써낼 때도 이제는 집전화번호 적는 칸이 아예 없어져 버렸으니 천지가 개벽할 변화라 아니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옛날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MZ세대?) 지금처럼 집에 전화는 없고, 대신 고속 인터넷 선이 깔려 있고, 그 인터넷을 스마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할 수 있고 그 폰으로 전화도 하고, 전화보다도 SNS를 더 많이 하는 지금의 상황이 오래 전부터 절로 그리된 것인줄 알테지만 길어야 불과 10년 정도 밖에 안된 역사입니다.

그런 인터넷 역사 속에서 저는 인터넷 개발자쪽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추종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나름 열심히 변화의 물결에 편승해 왔습니다. 제가 밥벌이를 한 분야는 자동차쪽입니다.

현대자동차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엑셀, 엑센트, 엘란트라, 소나타, 그랜져가 태어나는 것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엔지니어로서 18년 한국에서 일했고, 자동차 공장이 없는 밴쿠버에 와서는 정비 테크니션(미캐닉, 정비공)으로 2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포드, 현대, 토요타 딜러들을 거치며 일하다 지금은 지엠 딜러에서 10년 이상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은퇴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일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가 나름 있지만 굳이 이유 한 가지만 변명같이 이야기 하자면 이렇습니다.

은퇴하면 놀러다녀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어디 쌓아놓은 돈이 없으니 일을 그만 두고 놀러만 다닐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하는 동안은 노는 것이 아니니 돈을 쓰는 일도 없고, 오히려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일석이조입니다. 돈이 없다고 놀러도 못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세상에 그것처럼 심심하고 따분한 일이 없을 것이니 가난한 중생은 은퇴나이 이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대신 일하는 날을 하루 줄여 나흘(4일)만 일하니 꽤 할만 합니다. 4일 일하고 3일 쉰다. 꿈의 직장입니다. 젊은 애들이 늙는 것은 싫어 하지만, 제가 4일만 일하는 것은 되게 부러워 합니다. 

이제 이 지엠딜러에서 일한지도 올해로 10년이 넘었으니, 올해부터 휴가도 한달로 늘었습니다. 한달, 4주,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샵 오픈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니 1주 휴가라는 것이 5일 휴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4일을 일하고 있으니, 4일을 휴가를 내면 1주를 쉴 수 있는 셈이 됩니다. 4주 휴가니 20일 휴가고, 한번 휴가에 4일을 쓰면 1주일 휴가니, 실제적으로 5주를 휴가로 쓸 수 있는 셈이 됩니다. 바쁜 딜러샵에서 나이 들었다고, 험한 일은 피해서 젊은 애들 주고, 주 4일만 일하게 배려해주고, 목요일 오후쯤 되면 대충 일찍 마쳐도 되고. 하루 일 빠지면서 줄어든 돈은 정부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메꾸어지고. 늙으막에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도 쓸 돈이 늘 모자라는 것은 평생 무능한 제 책임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힘없고 가난한 민생을 돌보는 것보다 권력을 등에 업고 부자쪽에 편승하여, 사람이 편히 살아야 할 집을 놓고 투기를 하게 만들고, 돈 놓고 돈 먹기하고 있는, 자유민주의 탈을 쓴 황금만능 자본주의의 사회적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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