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첫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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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24년의 첫 눈이, 타운에는 아니고 밴쿠버 주변의 2천미터 고지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신부의 면사포보다 더 희디흰. 낮이 짧아지다 보니 아침 해도 움직임이 느려졌습니다. 토요일 아침, 느즈막히(?) 바닷가 조깅을 했습니다.  또 주말 드라이빙, 준비한 계획없으면 고투 씨투스카이, 스쿼미쉬로 핸들을 틀었고, 스쿼미쉬에 다다라 쉘 주유소에 들렸습니다. 기름 만땅으로 채우고 돌아서는데, 큰바위 얼굴이 보입니다. 예수님 얼굴이 보입니까? 제 눈에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데. 기름값은 1불 69센트, 2불 3불로 기름값이 더 이상 치솟지 않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제가 이민 왔을 당시는 기름값이 50센트였는데. 예수님 얼굴은 기름값 표시 바로 우측에 선명히 보입니다. 스쿼미쉬 살 때, 저녁마다 들렸던 강가로 갔습니다. 그동안 물 길이 바뀌어 강의 중간 모래톱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모래톱 저편에 스쿼미시 강의 거센 물결이 거칠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마을 둑쪽 고인물 속에 보이는 가을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 화이트 카약을 나무에 묶어둔 것이 보입니다. 카약을 타고 스쿼미쉬의 거센 물결에 몸을 맡겨보는 것이 아웃도어 매니아들의 드림입니다. 마을 가까운 곳에서 화이트 카약을 즐기는 곳은 스쿼미쉬 리버의 지류인 멈퀌 리버 쪽입니다. 그곳에서 카약을 타고 이곳까지 내려와서는 이리 카약을 떨구고 가버린 모양입니다. 아웃도어 매니아의 소행(?) 치고는 너무 게으른 행동입니다. 스쿼미쉬 강둑에서 멀리 보이는 산 위에 올해의 첫눈이 내려 쌓인 것이 보입니다. 휘슬러에서는 곧 스키 슬로프들이 일찍 오픈할 것 같습니다. 스쿼미쉬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곳, 스쿼미쉬 월마트입니다. 밴쿠버 도심의 월마트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건진 것은 보온병 두 개입니다. 큰 것 하나 작은

진절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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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절머리 제 노트북, HP것이고, 윈도가 깔려있습니다. 윈도11, 노트북을 켜면 화면에 멋진 그림이 떠오릅니다. 제가 세팅하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공짜로(?) 보여주는 친절한 그림입니다. 주로 유명 사진작가들이 찍은 풍경이 바뀌어가며 나오는데, 오늘 나온 그림은 지구 상의 풍경 그림이 아니라 제임즈 웹 우주 망원경이 찍은 천체사진입니다. 사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그림입니다. 뭔가 추상화같은 그림입니다. 저게 한순간 찍은 사진인가요? 아니면 장시간 찍은 사진인가요? 그리고 찍은 순간의 그림 그대로인가요? 아니면 여러번 찍은 것을 합성처리한 것인가요? 한 순간 한번에 찍어서 나올 수 있는 사진은 아닌 것 같습니다.  7700 광년 떨어진 곳의 사진을 여러번의 노출로 합성하여 찍은 영상을 가지고, 은하수 같은 별들의 모임인데, 우주먼지라고 우기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우주 공간은 별보다 검은 색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 더 많습니다. 그게 먼지라면 빛을 발하지 않는데 그게 보이겠습니까? 그 멀리 떨어진 것이 사진 영상으로 남을 정도면 먼지가 아니라 별들의 모임이 맞는 것이지요? 그걸 우주먼지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게 이미 별인데, 그게 모여 신성이 탄생한다고 구라를 치고 있습니다. 빅뱅을 주장하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이 뻥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갈 필요도 없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그냥 생각해보면 엉터리라고 나오는 수준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 썰을 풀면서도 왜 모르는 게 그리 많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면서 계속 답이 나오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성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에 해답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그렇습니다.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은 쉽게 답을 찾는데, 성경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평생 죽을 고생하면서 거짓말만 만들어 내다가 귀중한 한 인생 종을 치고 있습니다. 그 사진이 뭔지

비싼 책의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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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책의 옥의 티 이 글의 제목을 좋은 책의 옥의 티라고 하려다가 티가 있으면 좋은 책이 아닌 것같아 제목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로 비쌉니다. 이북(ebook)은 종이책만큼 비싸지 않지만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두꺼운 책은 백불이 넘습니다. 이게 한국에서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무지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한국어 버전의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걸 캐나다에서 찾아보니 당연히 영어 원본이 있는데, 그게 백불이 넘는 가격입니다. 요즘을 살면서 성경을 읽으면 성경 속의 사건들이 일어날 때의 시대상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온전히 되지 않거나 미스언더스투드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으면 더 심도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경 시대의 시대상과 유적들을 소개하는데, 그림도 많이 들어가 있어서 성경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아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오류가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빠져나와 시내산에 도달하는 여정을 그린 지도에서 시내산을 시나이 반도에 그려넣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출판물에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에서 광야 생활을 한 것으로 서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오류입니다. 아마도 “어떻게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너갔겠어? 그게 말이 돼?”하는 불신 속에서 그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관련 책자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만이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 추종자이지만 밥벌이 때문에 그걸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그건 못 믿는 사람도 만연한 세상이니 뭐.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한 곳은 시나이 반도가 아니라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 쪽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나이 반도 사이에 있는 아카바(Aqaba)만입니다. 아카바 만의 가장 좁은 해협의 바다 밑에서 발

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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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 손가락으로 하신 일 저의 꼬맹이 시절은 밤 하늘에 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전이 수시로 되어 촛불로 방을 밝히는 일도 자주 있었고, 거리에 네온사인도 없어서 밤이 참 어두웠고, 그로 인해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깨끗하게 잘 보였습니다.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 자리, 오리온 자리 안의 삼태성은 그 때도 네모 안에 갇혀 있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갇혀 있습니다. 삼태성이 가까이 붙어있는 별들이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인데도 우리 눈에는 셋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우주천문학자들의 썰대로 우주가 진화하고 팽창하는 것이라면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세월이 지나면 얽그려져 있고, 별자리를 관찰할 수 없이 어느 별이 어디로 갔는지 관찰할 수 없어야 하는데, 별들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 관측이 가능하고 예상 경로와 위치를 예측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우주가 폭발하고 진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리 질서정연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시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Ps 8:3, KJV] When I consider thy heavens, the work of thy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thou hast ordained; 그렇다면 주님은 별자리를 왜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별을 통하여 징조를 보이시고, 예언들이 이루어지는 걸 인간에게 보이시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관장하시는 분인 것을 알려주시려고 그러신 겁니다. [창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Ge 1:14, KJV]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s in the firmament of the heaven to divide the

퍼즐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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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완성 창세기, 지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세상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바이블이 제일 많이 출판된 책이고, 제일 많은 사람에게 읽힌 책입니다. 그 책의 시작이 창세기로 시작되고 있고, 첫 문장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을 했고, 우주가 스스로 진화하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못합니다. 뭔 소설같은 소리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우주가 진화, 무생물이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나요? 우주가 진화한다면 뭔가 진화를 일으키게 하는 소스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게 진화신인가요? 진화론자들이 믿는 신인가요? 스스로 무논리에 빠지는 함정에 빠질 일입니다. 각설하고, 말도 안되는 논리에 빠지고, 진화론 신을 믿는 진화론자들과 어리석은 논쟁을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일뿐입니다. 진화론은 엉터리 믿음일 뿐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창세기 1장에 촛점을 맞춥니다. 창세기 1장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상이 혼돈하고 암흑에 쌓였다고 합니다. 아니 아름답게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인데, 그게 다 어디가고 혼돈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요? 잘 모르는 옛날일이니, 모세가 그걸 적으면서 주님께 들은대로 뭘 잘 모르겠고,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냥 듣고 기억나는대로 적고, 후세에게 나도 잘 모르겠고, 너희들도 각자 알아서 읽어라 하고 그리 무책임하게 기록을 남겼나요? 지난 20년간 사는데 바빠 일과 관련된 책만 들이 팠지, 그 외의 책들은 거의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요즘 들어 책 읽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는 여건 상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매일 이것저것 읽어야 하는 환경이지만, 학창 시절 끝나고 책을 읽을 때는 한 권의 책을 잡고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책 한권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독서의 패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북을 타블렛으로 읽다보니, 타블렛에서 독서앱을 열면 타블렛에 올린 여러 권의

스쿼미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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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미쉬 나들이 웨스트 밴쿠버에 둥지를 튼지도 벌써 십년이 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잠시 살았던 곳이 스쿼미쉬입니다. 스쿼미쉬에 산 2년간은 캐나다에 이민온 것을 제대로 환영받는 듯한 생활이었습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스쿼미쉬와 휘슬러 사이의 산속 트레일들을 트래킹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광대한 가리발디 쿼리도어의 이름난 트레일들을 모두 원없이 둘러보면서 대자연 속에 제대로 동화되어본 추억을 만든 소중한 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밴쿠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휘슬러는 알아도 스쿼미쉬는 잘 모릅니다. 휘슬러 가는 길에 지나치는 조그만 산골 마을이고 크게 유명한 것이 없으니 그냥 맥도날드에 들려 햄버거만 하나 사먹고 지나치는 곳입니다. 스퀴미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당연히 둘러볼 곳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스쿼미쉬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고, 들리면 둘러볼 곳도 여기저기 많은 재미있는 곳입니다. 아웃도어 레크레이션 생활을 제대로 한 곳이고, 연어 올라오는 철이면 퇴근 후에 매일 연어 두 마리 잡는 것이 일과였고, 스쿼미쉬 강의 급류를 카약을 타고 바다까지 흘러내려 갔고, 7월에도 눈이 쌓인 산을 올라가고, 그런 곳이었고, 구석구석 모두 꿰고 있으니, 그냥 거기 가면 뭔가 재미있는 곳이 스쿼미쉬입니다. 주말에 아내와 씨투스카이를 타고 스쿼미쉬로 드라이빙을 즐겼습니다. 스쿼미쉬에 도착하니 늦은 점심시간인지라 “금강산도 식후경” 먹을 곳을 먼저 찾았습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베트남 식당이 보입니다. 우리가 살 때는 없었던 식당입니다. 스쿼미쉬 다운타운에 있는 그 식당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가 월남 국수와 돼지고기 구이를 시켜 먹었습니다. 월남 국수에는 기름이 너무 많이 둥둥 떠있습니다. 돼지고기는 좀 덜 구워졌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자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세번 앉았는데 아마도 이 월남 식당에서 먹은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쿼미쉬 가도 그 식당은 다시는 들리지 않을 곳입니다.

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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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역사학자들이 시대를 구분한 기준, 고대, 중세, 근대는 뭘 기준으로 한 구분인가요?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구분와 관련이 되나요? 중세가 들어간 걸로 봐서 종교적 역사와 다분히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고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알게 되나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주님인지 사람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누가 주님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 절로 그걸 절대로 깨우치고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자신의 믿음이 강해서 자기는 절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뻥을 치지만 그건 뻥일뿐, 그 분도 부모님이든 누구든 그걸 알려주고, 엄마 손 잡고 교회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지 절대로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자신을 닮게 인간을 창조한 덕분에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은 스스로 온갖 잡신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들에게 주님이 누군지 전파한 사람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에 의해 구약이 쓰여지고, 주님이 작심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약이 쓰여지고 그것이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블을 통하여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고, 세상에 주님이 누군지 비로소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주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대 다음에 열린 시대가 중세고, 중세에는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야단 맞는 시대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렇게만 좋게좋게 죽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