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철학의 역사는 하나님 잃어버림의 역사
역사학자들이 시대를 구분한 기준, 고대, 중세, 근대는 뭘 기준으로 한 구분인가요?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구분와 관련이 되나요? 중세가 들어간 걸로 봐서 종교적 역사와 다분히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고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알게 되나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주님인지 사람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나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 누가 주님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 절로 그걸 절대로 깨우치고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자신의 믿음이 강해서 자기는 절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뻥을 치지만 그건 뻥일뿐, 그 분도 부모님이든 누구든 그걸 알려주고, 엄마 손 잡고 교회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지 절대로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자신을 닮게 인간을 창조한 덕분에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인간은 스스로 온갖 잡신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 시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그들에게 주님이 누군지 전파한 사람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많은 민족들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에 의해 구약이 쓰여지고, 주님이 작심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는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약이 쓰여지고 그것이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블을 통하여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고, 세상에 주님이 누군지 비로소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주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대 다음에 열린 시대가 중세고, 중세에는 주님을 믿지 않으면 야단 맞는 시대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렇게만 좋게좋게 죽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두가지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는 교회의 부패입니다. 면죄부 사건 같은 것 있잖습니까? 교회 내부의 문제로 인해 교회 밖에서도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보면서 교회를 배척하는 안티 세력이 등장했습니다. 부패한 교회를 떠나 우리 자신을 찾아보자는 계몽주의가 태동을 합니다.
중세을 기점으로 근대까지 격동의 시대입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교회의 부패에 반대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는 혁명의 물결이 휘몰아 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격동의 시대를 거치고 근대로 들어서면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주의가 발생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떠나면서 사람들의 인생이 표류합니다. 사람이 주님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인생의 끝에는 허무함 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허무주의가 만연하고, 신이 없는 것같은데, 있다고 치면서 살아보자 뭐 그러면서 실존주의가 근대 철학의 표상이 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그걸 보면서 과학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인간의 근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끝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허무 밖에는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근대과학의 발달로 하나님을 빼고, 사람 나름의 진보적인 생각과 합리주의가 탄생했습니다. 말이 합리주의지 결국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저지른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자연주의의 최대 걸작 결과물은 진화론입니다. 거대하고 정교한 대자연과 우주 앞에 인간은 먼지와 같은 존재로 스스로 생각이 되었고, 허무주의가 만연하면서 자살이 속출했습니다. 희망이 없으면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자는 실존주의가 만연하면서 소설도 어린왕자같은 실존주의 소설이 나오고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주님에게로 제대로 돌아갈 생각은 죽어도 하지 않고, 유신론적 실존주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뭐 그런 쓰레기 논조들을 내세워 허무를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걸로는 철학자들 밥줄만 연명해줄뿐 인생들의 삶에 만연한 허무를 극복해줄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서양 철학의 역사는 마귀의 궤계에 넘어간 무신론자들의 사기치는 역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어리석은 근대 역사를 거치면서 이어지는 현 시대를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고 합니다. 그 시대 속에서 허무를 안고 사는 세대를 뉴에이지 세대라고 합니다. 허무 이게 철학인가요? 웃기는.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사는 게 바빠 뒤늦게(?) 허무주의에 빠진 서양이 동양으로 눈을 돌려 인도와 중국등을 들여다보니, 이곳은 이미 허무주의에 푹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온갖 잡신을 신주단지 모시고 살고 있으니, 그 인생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허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교도 두 손 벗겨지도록 빌고 염불 외워봐야 그 끝은 허무 밖에 없고, 스님도 결국은 인생에 대해 실토하는 말이 인생 잘 모르겠다. 뭐 그런 겁니다.
그런데 웃기는게, 그런 동양을 들여다보던 서양이 “어? 우리는 이제 허무에 빠졌는데, 동양은 이미 허무에 푹 빠져있네! 이야, 동양이 앞서가네, 그들 문화와 문명에 뭔가 심오한 것이 이미 있었나보다, 그걸 한번 배워보자” 이러면서 서양 젏은 골통들이 머리 빡빡 밀고, 절에 들어가 목탁 두드리며 염불외고, 인도에 가서 맨발 벗고 돌아다니고 그러고 있습니다.
기껏 서양에 먼저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알려주었더만, 그것들이 주님을 잊고, 잃어버리더니 그런 뻘짓을 하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서양 철학? 하나도 고상할 것 없고, 심오할 것없는 한심한 하나님 잃어버림의 어리석은 역사일 뿐입니다. 그런 역사를 되짚어볼 의미는 있는 일이지만, 그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어서 달달 외우게 하고, 대학입시 문제로 내놓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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