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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나무 그늘 아래 - 웨스트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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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나무 그늘 아래 - 웨스트 밴쿠버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광복절 주말입니다. 2026년, 1945년으로부터 81년,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당시 미국과 겨루던 세계 최강의 일본에 비해 아시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한국이 이제 그 일본과 힘을 겨룰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을 했고 일본에까지 K-문화가 스며들고 있으니 충분히 복수(?)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본에 당한 수탈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 정도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합니다. 야만 일본, 태평양 바닷속으로 없어져야 속이 시원할 나라입니다. 지금도 일본 극우들의 생각은 전범 일본의 생각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평생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생각만 하면 라멘 부글부글 끓듯 끓어오르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 내면 깊은 곳의 분노를 꾹꾹 눌러 삭이면서 아침 웨스트 밴쿠버 바닷가를 걷습니다. 광복절인 것을 아는지, 웨스트 밴쿠버에 핀 무궁화의 흰 떼깔이 오늘 아침 유난스럽게 가슴 저밀게 애절한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꽃잎 안에 새겨진 실핏줄같은 텍스쳐는 36년간 일본에 수탈당한 한민족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독일이 전범을 지구 끝까지 추적하여 요절을 내듯 친일은 뿌리의 마지막까지 완전히 뽑아 근절시켜야 합니다. 친일에 뿌리를 둔 극우, 윤어게인을 멸절시키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할 한반도 국민들의 영원한 숙제이고 염원입니다.  극우가 얼마나 위험한 지는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지금의 미국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극우가 트럼프같은 괴물을 낳았고, 트럼프 2기를 대표하는 두 인물은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과 레빗 화이트 하우스 대변인, 쌍두마차입니다. ...

미캐닉의 신발

미캐닉의 신발

이 신발이 도대체 몇번째냐? 이 신발을 신고 평양 침투 특수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마니같이 산삼 찾아 두메산골을 헤맨 것도 아니고, 온몸을 녹이는 뙤약볕 아래 데스밸리 돌밭길 트레일을 헤맨 것도 아닌데 이 신발은 왜 이리도 빵꾸가 자주 나는 것일까? 모세는 어떤 길을 걸었길래 40년 동안의 광야길을 신발 한 켤레로 견딜 수 있었을까?


[신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Dt 29:5, NIV] Yet the LORD says, "During the forty years that I led you through the wilderness, your clothes did not wear out, nor did the sandals on your feet.


손님들의 차를 손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그 차주인을 향하여 축복 기도를 했으면 주님께서 감동하셔서 제 신발이 닳지 않는 은혜를 제게도 베풀어주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나와 광야를 헤매는 40년 내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마음이 단단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을 보았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어리석은 뻘짓을 시리즈로 벌였습니다. 그런 못난 사람람들 한테도 생명줄을 연장하는 은혜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이 닳지 않는 선물을 주셨으니, 저도 참 못난 사람이긴 하지만 바라지 못할 것은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신발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 기적을 경험한 일은 없습니다. 정비할 때 신는 신발은 앞에 무거운 것이 떨어져도 발가락이 다치지 않도록 신발 안쪽에 쇠커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운동화보다 비쌉니다. 이런 단단한 신발이 몇달 신으면 너덜너덜 해집니다. 몸이 신발과 같이 너덜너덜 같이 몇달만에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은혜입니다. 


구멍 뚫린 신발을 버리고 새 신발로 바꾸었습니다. 망가져서 버린 신발이 몇십 켤레인지 몇백 켤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수없이 신발을 바꿔 신으면서 손본 자동차는 몇 대였을까요? 적어도 수천 대는 되지 않을까요? 만대를 넘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차를 손보는 동안 제가 모두 축복을 했다면, 천국에 가도 남을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습니다. 축복은 커녕, “바보같은 놈”하는 욕이 나오는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자동차를 몰면서도 자동차를 모르고 벌이는 사람들의 뻘짓은 그 종류도 참 다양하기 그지 없습니다. 상식을 상실한 말과 행동들도 많이 보입니다. 아래 그림은 타이어가 휠하우스 라이너를 긁은 모습입니다. 타이어를 오른쪽으로 잔뜩 돌리면 오른쪽 타이어가 차를 긁는 소리가 나고, 왼쪽으로 잔뜩 돌리면 왼쪽 타이어가 긁는소리가 들립니다. 정말 듣기 싫은 끔찍한 소리가 납니다.


그런 이유가 뭘까요? 스팩보다 큰 타이어를 달아서 그렇습니다. 사용해서는 안되는 타이어를 달아서 문제가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하라고요? 이걸 문제라고 들고와서 어떻게 해달라는 사람에게는 그 무식함에 축복이고 뭐고, 우선 나오는게 욕입니다. 세상이 내게 어떻게 다가와도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 믿는 사람의 자세이거늘, 늘 느끼는 것은, 내게 참 믿음이 부족하다는 허망한 기분입니다. 

세상과 등지고 살면서,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살면서 점잖음을 유지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아니 저절로 그리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에 나가 부대끼면서도 변함없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세상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과 사랑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미션 중의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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