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앞에서는 크게 웃지마라

그 앞에서는 크게 웃지마라

볼일이 있어 한인 타운에 들렸습니다. 밴쿠버에서 한인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한남마트와 H마트를 비롯한 다양한 한인상점과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노스로드(Northroad) 일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볼일을 마치고 밥먹으러 통일이오 한인식당에 들렸습니다. 오늘 두 번째 볼 일을 보러 가는 도중에 있는 식당이라 거길 택한 것이고, 그 집에서 만들어서 한인마트에 내놓고 있는 양우탕 키트가 맛이 있어서 오늘은 가는 길에 식당에서 직접 먹어보자고 간 것입니다. 우거지 양우탕과 고등어 구이 된장찌개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날을 이기기 위한 몸보신을 했습니다. 이민 와서  씨리얼과 버터의 서양 음식에 적응하고 녹아들었다고 으시대도 이런 토종 음식을 보고 그냥 갈 수 없는 것은 김치국물에 절여진 유전자들의 아우성 때문입니다.


두번째 볼 일은 유픽(U-Pick)입니다. 블루베리 유픽. 메이플리지에 있는 토마스 블루베리 팜(farm)에 도착하여 블루베리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짧은 팔을 입고 왔습니다. 볕이 너무 뜨거워서 팔이 다 타게 생겼습니다. 유픽을 나올 땐, 긴 팔에 창이 큰 모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멀리 보이는 골든이어즈 마운틴 정상에 아직도 잔설이 보입니다.


오늘도 딸 수 있는 블루베리가 많지만, 이틀 뒤면 익을 것들도 무지기수로 많이 달려있습니다. 완전히 익은 색깔도 맛있지만 약간 덜 익어서 붉은 색이 옅게 남아있는 열매도 맛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오전 일찍 와서 잔뜩 따고 돌아가는 팀을 만났는데, 땀을 닦으며 무지하게 힘들었다고 탄식을 합니다. 배도 무지하게 고프다고 합니다. 보니 정말 힘든지 눈에 촛점도 맛이 간 표정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 힘든 일입니까? 놀면서 하고 즐기면서 하면 별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먹자고 하는 일인데 뭐가 그리 힘든지? 


유픽을 할 때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따서 통에 담는 것 반, 입에 들어가는 것 반, 그렇게 유픽을 해야 유픽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럼 그게 도둑질입니까? 아닙니다. 주인도 그걸 암암리에 허용합니다. 유픽하면서 절대로 따먹으면 안된다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좀 주의해야 할 점은 있습니다. 다 따고 계산하면서 이야기할 때, 인사하고 나올 때, 주인 앞에서 절대로 크게 웃으면 안됩니다. 너무 많이 따먹어서 입속이 블루베리 색으로 염색되어 퍼렇게 된 걸 미안하게 주인에게 보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유픽하면서 배고파 죽겠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블루베리를 더더욱 싸게 살 수 있는 요령입니다. 계산할 때 뱃속에 넣은 블루베리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순수익입니다. 2차 몸보신.

우리가 딴 블루베리는 5.5 파운드, 유픽으로 딴 블루베리는 파운드에 2불, 그러니까 11불 어치. 블루베리 농장으로 유픽이 아니라 노동을 하러 가면 1파운드에 1불씩 임금을 계산해줍니다. 그렇게 누군가 딴 것을 사면 파운드에 3불입니다. 그리고 5파운드 이상 사면 2불 50에 줍니다. 그래서 10파운드를 25불에 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15.5 파운드 블루베리를 36불에 픽했습니다. 뱃속 것은 얼마나 될까?


블루베리 유픽을 마치고 나오면 인근에 벧엘농장이라고 또다른 한인농장이 있습니다. 그곳은 블루베리를 재배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 들린 이유는 오이지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농장 마당에 차를 세우고 보니,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비닐 하우스로 들어가보니, 깻잎이 어마어마합니다. 한인마트에서 깻잎은 금값으로 팔립니다. 한국사람이 바비큐할 때 껫잎은 국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뒤쪽 마당에 있어야 할 오이지 드럼통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어라?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고 전화는 받습니다. 첫번째 오이 농사는 망치고, 다시 씨를 뿌린 오이는 3주 뒤쯤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도 기후변화 영향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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