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
천문학자들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바다에도 가보고, 산에도 가보도, 외국 여행도 다녀보고, 그러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내가 사는 지구가, 세상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하고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떤 신이 그리 전지전능하기에 이런 세상과 천지만물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스케일이나 솜씨가 아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자기 생각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신은 없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들이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구상의 동식물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를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만화처럼 만들어낸 이야기가 우주가 큰 폭발로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빅뱅설이고, 종의 기원에 기록한 자연선택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오늘날 생각해보면 정말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초등학생이 엄마따라 어느 섬을 한번 여행하고 쓴 곤충채집과 일기 수준의 쓰레기 이야기입니다.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한심한 현실입니다.
그러면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아내지도 못할 그런 일을 가방 끈 긴 것 내세워 우기지 말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간단하고 쉬운 상식선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러면 노벨상 받은 박사님과 농사나 짓던 할배와도 대화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사람보다도 더 많아 진 것 같은 자동차를 가지고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자동차가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 흙 속에 섞인 철강석이 어찌어찌 스물스물 흙을 떨구고 기어나와 스스로 자동차로 진화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병원에 가야할 수준이지요? 아니면 만화작가나 공상과학 소설가지요.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5천명의 설계자가 설계하고, 5만명의 작업자가 달라붙어 몇년을 고생해야 만들어집니다. 자동차보다 비싸긴 하지만 만드는데 필요한 사람 수도 적고 구조도 비교적 덜 복잡한 집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고 절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돌과 나무가 스물스물 합쳐져 집이 하나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을 본 사람 있습니까?
우리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 볼까요? 나무들이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니는 깅아지는 더 정말 영물입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집을 만드는 사람 솜씨지만 아직 풀 한 포기, 나비 한 마리 만들 줄 모릅니다.
집도 자동차도 누군가 만들지 않고는 절로 생겨날 수 없는데, 자동차보다 집보다 더 정교하고 신묘막측한 동식물과 사람이 빅뱅 이후에 장구한 세월동안 절로 만들어졌다는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입니까? 이건 학설도 아니고 미친 믿음에 불과합니다. 정신병원에나 가야 들을 수 있는 수준의 소리입니다.
씨앗으로 유전자에 의한 대물림만으로 쇠퇴를 역행하는 질서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는, 사람손이 가진 솜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외부의 의도된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자연 상태에서는 질서가 무질서로 갈 뿐, 무질서가 질서있는 쪽으로 가역반응이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동식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자연상태에서 흙속에서 절로 사람이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집도 사람이 살면서 잘 가꾸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지붕이 새고 벽이 헐리는 것이 상식이지, 돌을 장구한 세월동안 놔둔다고 스스로 집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걸 무시한 가설을 과학이라고, 학설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상식을 내려놓은 이단 종교 광신도에 불과합니다. 과학이라는 탈을 쓴, 가방끈 긴 것을 이용한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하고 계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왜 그런 을의 입장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요? 사람을 창조하고 당신이 지으셨기에, 그 피조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지금이야 유전자 감식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런 것이 없던 지난 몇 천년간 자식이 부모를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이 부모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들의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이 나의 부모님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는 주님이 사람들을 왜 그렇게 잔혹하게 죽이고 있지요?” 구약성경을 읽고 있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매질한다고 그 분이 나의 부모님이 아닙니까? 성경 속에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가 얼마나 사악했는지 분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힌 사람, 주님에 대한 믿음보다 마귀의 속삭임에 귀가 얇은 사람들이 그런 혼돈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1700년대말부터 1900년대 초에 이르는 150여년의 기간동안 인간은 일찌기 겪어보지 못했던 대격변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사가 시작되는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과 예술가, 사상가들이 등장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들었던 근현대사의 모든 용어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프랑스 혁명, 종교개혁, 세계대전, 대항해시대, 진화론, 산업혁명, 금속활자, 상대성 이론, 스펄전을 비롯한 무수한 설교자들의 등장, 그 옛날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나타난, 한번쯤 그 이름을 과학 교과서에서 들어봤을,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물리학자, 화학자, 수학자들이 모두 이 시대에 등장합니다. 뉴튼, 갈릴레오, 파스칼, 다윈, 아인슈타인, 이런 사람들이 먼 세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들입니다. 요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양자역학도 이미 1900년대 초에 나온 이야기고,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과 갈등을 겪다가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시기에 격변한 과학과 철학의 흐름과 계보 속에서 과학이 준 긍정적인 면도 많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인생과 자연에 대해 옳게 생각한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옳은 것만 남아서 인간사에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닙니다. 잘못 되고, 그릇된 것이 세상을 지배한 역사가 깊고, 심지어는 오늘날까지도 그 병폐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사에 준 가장 큰 병폐는 인간 마음 속에 생긴 교만과 욕심입니다. 중세의 삶의 질이 현대보다 결코 좋지는 않았겠지만 종교적으로 암흑기라고 했던 이때까지도 사람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신과 사람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슈가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자 인간은 과학을 이용하여 행복을 추구하고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에 따라 인본주의와 물질주의가 고개를 들고 인간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므로써 신이 정한 죄악에 빠질 필요없이 내 맘대로 마구 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고 인생을 제맘껏 즐기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무신론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그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이 난무하고, 공산주의도 생깁니다. 그렇게 사람과 창조주와의 관계가 완전히 얼그러지고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롬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옳은 것을 찾아가는 것은 과학자의 몫이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밥줄을 유지하기 위하여 잘못된 것을 스스로 바로 잡을 생각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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