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 워십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유튜브에서 수백만 뷰를 치는 동영상, 아마 모든 유튜버의 로망일 것입니다. 요즘 CCM으로 수백만을 히트하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수백만 뷰면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 빼고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그게 찬양 동영상이니 국내의 기독교인이면 거의 다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그 워십 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보는 재미보다 듣는 재미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보는 것도 참 은혜가 많이 됩니다. 창조주 주님께 올리는 제사, 중요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주님 자신인 예수님이 제사의 제물이 된 것을 보면 주님께 제사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주님이 조금은 의아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이 제사보다 주님 자신을 아는 것을 더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Hos 6:6, NIV] For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and acknowledgment of God rather than burnt offerings. 찬양,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면, 알게 되어가면, 그 사랑을 알게 될 때, 인간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절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찬양입니다. 찬양, 그것은 그 분의 신실하심과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사의 표시이며, 창조주의 영광을 인정하고, 그 분의 날개 밑으로 들어가는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기뻐 절규하는 찬양, 최고의 예배입니다. [욥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Job 38:7, NIV] while the morning star...
성지용의인 - 정치하는 사람들이 도적놈보다 못한 세상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성지용의인(聖知勇義仁) 이게 뭔 소리인가? 도척이라는 짱깨(중국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도적놈 이름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장자 잡편 도척편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도척은 춘추전국시대에 만명 안팎의 도둑들을 거느리고 도적질은 했던 그 시대 유명한 대도입니다. 그 놈이 도둑질 나서면서 부하들에게 내뱉은 도척의 5도(道)라는 것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것이 성지용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뜻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聖)은 妄意室中之藏 聖也을 말합니다. 뜻은 도둑질 하러 들어가서 뭔 물건이 있는지 미리 알아맞히는 초능력 혹은 정보력, 예지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知)는 知可否 知也를 말합니다. 도둑질 해도 뒷탈이 없을 만한 곳을 알고 턴다는 뜻입니다. 용(勇)은 入先 勇也을 말합니다. 의미는 앞장 서서 용감하게 쳐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의(義)는 出後 義也을 말합니다. 도둑질을 마치고 나올 때는 마지막으로 나오는 의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선장의 대범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仁)은 分均 仁也을 말합니다. 턴 것을 공정하게 분배한다는 뜻입니다. 도둑놈들 사이에 뭔 도가 있었겠냐만, 당시 썩은 사회상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겁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대한민국 국민이 사기꾼 같은 놈의 쇼맨십에 꼴딱 속아 넘어가 도적같은 놈을 대통령으로 뽑은 어리석고 아찔한 역사가 대한민국에 있었습니다. 정말 도적놈보다 못한 놈이 대통령이었는데,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들 속에 윤어게인을 외치는 미친 인간들은 어디에서 떨어진 버러지들입니까? 보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군인들은 ...
아마존에서 이북 구입하기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안드로이드 기기를 사용하는 경우 이북(ebook)을 구입하는 것은 주로 구글 북스에서 구입하여 타블렛을 이용하여 보게 됩니다. 물론 스마트폰 화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근, 타블렛 화면으로 보기가 훨씬 좋은 것은 당연합니다. 이북(ebook)으로 책을 구입하면 좋은 점은 우선 가격이 종이책의 반값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방구석에 앉아 즉시 볼 수 있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북이 종이책이 가지지 못하는 단점은 있습니다. 어디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어디 있었더라”하며 책장을 넘기며 찾기는 종이책이 훨씬 편리한 면이 있습니다. 뭐 키워드로 쉽게 찾는 기능이 이북에 있기는 해도 말입니다. 종이책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 장서를 보는 뿌듯함과 아무 때나 아무 책이나 보이는대로 꺼내 훑어보기 좋은 점은 이북이 가질 수 없는 종이책의 장점이기는 합니다. 반면에 종이책은 그것이 차지하는 부피와 공간을 무시할 수 없고, 그것을 관리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책 위에 쌓이는 먼지도 무시할 수 없고요. 이북은 폰 하나에 책 수십, 수백권이 다 들어가 버리니 나름 굉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서점들을 보면 이북이 대세인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래도 서점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서점이 없어지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서점에 가도 진열된 책들의 양과 다양성이 옛날만 하지 못한 것은 더 서글픈 일입니다. 아무리 동영상과 SNS를 보는 세상이고, 책과 멀어지는 세상이라고 해도, 동영상을 들여다 볼 때보다는 책을 들여다 볼 때, 사람이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감...
Way Maker “웨이 메이커”라는 찬양을 아십니까? 10년 전에 만들어진 가스펠인데, 곡이 잘 만들어졌고, 멜로디가 영혼을 담아 주님을 찬양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세계적으로 교회에서 많이 워십곡으로 불려지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을 작곡한 사람은 나이지리아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입니다. Sinach라는 예명을 쓰고 있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길을 여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요즘 찬양 사역으로 유튜브에서 뜨거운 예람워십과 리바이츠에서도 커버링한 곡입니다. 외국에서는 마이클 스미스, 릴랜드 같은 아티스트들도 커버링하면서 유명해진 CCM입니다. 아래에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버전의 웨이 메이커 유튜브 동영상을 올렸으니, 취향대로(?) 한번 즐기면서 같이 주님을 찬양해보시기 바랍니다. 찬양,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내 영혼도 같이 즐거워지고, 위로 받고, 하늘이 내려주는 평강을 경험하는, 마법과 같은 것이 찬양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경우, 글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글이 열립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https://www.youtube.com/@vancouver-story
창조 - 회개 - 예언 - 징조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씹는 걸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이 인간들에게 주는 출생증명서와 같은 것이라서 그것의 진위를 가지고 언급할 자격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자기 호적등본을 떼고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또라이지요. 자기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에게는 후레자식이고 패륜아지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에게 그 분이 만들어주신 창조의 증거인 호적등본(성경)의 진위여부에 대해 따지는 것은 패륜아가 부모에게 호적등본에 대해 따지는 것과 과 닮은 꼴입니다. 성경을 올바른 자세로 대할 수 있으려면 창조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성경은 지혜없는 인간들의 가십거리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조를 믿는다면, 성경의 내용 중에 믿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고, 성경의 내용을 꿀과 산삼과 보약같이 달고 맛있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소중한 지혜를 성경을 통하여 무한대로 얻을 수 있고, 그것은 몸과 영혼에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세상의 금은보화는 도둑이 들어 훔쳐갈 수 있지만, 몸과 영혼에 들어온 금은보화는 그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값으로 칠 수 없는,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기만의 재산이 됩니다. 주님의 품에 안긴다는 것은 온 우주만물을 얻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온 일을 우선 믿지 못합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있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갈릴리 사람이고 그를 본 사람들이 많은, 그야말로 빼도박도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신일 수 있느...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거든 - 노는 재미로 산다고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전쟁하는 재미로 사는 정치인들입니다. 그야말로 싸움닭들입니다. 공정이나 대의는 기대하기 힘들고, 그냥 자기 논리만 있고, 자기 논리에 거스르는 사람들은 전부 나쁜 놈이고 죽일 놈입니다. 사이코 살인범도 혀를 내두르고 손털고 돌아설 인간들입니다. 그러면 권력도 없고, 마음대로 휘두를 군대도 없는 나같은 한심한 인간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트럼프는 벌었다하면 한 방에 수억을 벌고, 수억을 탈세도 한다는데, 나같은 인간은 일당 벌려고 헥헥거리며 종일 진땀을 흘려야 하고, 그렇게 일해봐야 벼룩이 간 빼먹듯 연방정부에서 주정부에서 세금을 엉덩짝 고기 쑥덕 잘라 떼어가듯 징발해가 버립니다.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연명해 살아야 하는 인생은 무슨 재미로 사나? 몸에 붙은 살 다 떼어먹히고 근육 얼마 남지 않은 뼈마디 휘청거리며 언제까지나 버티고 살 수 있을까? 죽어라 일한 다음에는 죽어라 빨리 정리하고 퇴근하여 세상에서 나 하나 바라보고 매일 데이트하고 싶어하는 아내 만나 매일 노는 재미로 사는 것이 개미 인생이 겨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햇볕 아래 아내와 데이트하는 순간 만큼은 수억 버는 트럼프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오늘 글의 제목이 뭔가 어디선가 언젠가 들어본 소리인 것 같은 화두지요? “왜 사느냐고 묻거든” 민주화 운동가 시인 박노해의 시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독재 정권에 잡혀 투옥되어 옥중에서 지은 시입니다. “왜 사느냐고 묻거든 - 나는 웃음 소리 멈추고 - 그냥 산다고 하겠소” 요즘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찬송가 304장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단순하고 쉽지만 멜로디가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마음에 들게 부르고 있는 동영상을 찾아보는데 쉽지 않습니다. 이 찬양은 단순한 멜로디이고 그래서 부르기 쉽지만 막상 직접 부르려고 하면 악보대로 정확히 부르기 쉽지 않은 찬양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악보를 보지 않고 외워서 불러야 은혜가 되기 때문에 악보를 정확히 숙지하고 자칫 틀리기 쉬운 그 부분들에서 박자를 정확하게 쳐주고 넘어가야 찬양이 멋지게 들립니다. 아래 동영상은 백점만점에 백점은 아니지만, 이 찬양에서 제가 원하는 부분이 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찾아본 영상 중에서는 악보에 가장 충실한 동영상이고, 꽤 잘 만들었습니다. 이 찬양 악보 잘 숙지하고 가사 전부 외워두면 정말 언제 어느 때고 은혜롭게 혼자 혹은 여럿이 부르기 참 좋은 찬양입니다. 아래 악보 중에서 주의할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두 음표 사이에 쉼표가 없습니다. 가사의 두 문장이 이어지는 부분이지만 그냥 8분 음표로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개의 동영상의 경우, 떼창을 유도하며 쉽게 부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 사이에 마치 쉼표라도 하나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앞 음을 길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주의할 부분은 초록 색으로 표시한 부분과 파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인데, 앞의 것은 한 음(4분 음표) 플러스 반음(8분 음표)이고, 뒷 부분은 한음 플러스 한음이어서 앞뒤가 끌어주는 음의 길이가 다릅니다. 연습하여 악보대로 부르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절의 가사가 스토리 전개가 있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에 몇번 불러보면 가사가 절로 외워지는 찬양입니다. 여럿이 모여 악보 보지 않고 악보대로 음길이 맞춰가며 부르면 꽤 멋지고 은혜가 되는 찬양입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나 PC에서 보실...
연속적인 변화의 증거가 없다면 진화는 거짓이 아닌가? - 화석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페이스북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멍청해진다고 하니 그걸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이 잘 나가는 이유가 눈길을 끌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쇼츠들이 줄줄이 이어서 나오니 넘기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고 있다보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저도 뭐 예외는 아닙니다. 하루종일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지만, 짬짬히 가끔씩 열어 봅니다. 제 스마트폰에는 아예 페이스북 앱이 깔려있지도 않았는데, 구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페이스북에 블로그를 연동 시킬 목적으로 스마트 폰에 페이스북을 인스톨하면서 가끔 자주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보면 참고할 내용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보면 내 인생과 상관 없는 이야기고 헛웃음 나올 정도로 정말 실없는 컨텐츠 투성이입니다. 보면 그 시답잖은 영상을 만들려고 시간들여 쇼를 한 내용들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게 먹히는 세상이라니, 헝클어져도 심하게 헝클어졌습니다. 오늘은 페이스북 화면을 보다가 정말 짜증나는 내용이 하나 보였습니다. 화석이 진화의 증거라는. 화석은 진화의 증거가 아닙니다. 화석은 창조의 증거입니다. 창조를 본 사람도 없고 진화를 본 사람도 없으니, 그걸 가지고 싸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어이구 그런 문제는 박사님들이나 생각할 일들이지.” 뭐 그러고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아닙니다. 이 논쟁은 인류 전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한 사람도 이 논제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
실패가 성공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쇼핑 철학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형사 콜롬보”를 아십니까? 흑백티비 시대를 사신 분들은 그 옛날 주말의 명화만큼이나 열심히 챙겨보던 수사 드라마입니다. 물론 당연히 미국 드라마입니다. 한쪽 눈에 의안을 한 작은 체구의 형사 콜롬보가 늘 한결같이 헐렁한 트렌치 코트를 걸쳐 입고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단서를 찾고 범인의 행적을 더듬어 가며 골똘히 생각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아이덴티티입니다. 형사 콜롬보가 드라마에서 입던 그 트렌치 코트를 사냥하기 위해서 드라이빙을 시작했습니다. 구글 맵에 제일 먼저 찍은 좌표는 포트 코퀴틀람의 월마트였습니다. “그 런던 포그 코트 찾아보러 가자”고 하니 아내가 쌍수를 들고 대환영입니다. 아내 옆에 더 멋진 남자를 세우고 싶어하는 저의 배려와 늘 남편의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아내의 욕심이 주파수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환상적인 영혼의 속궁합. 구토 주의. 그런데 갑자기 웬 트렌치 코트? 밴쿠버 생활 20여년, 한국에 있을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옷차림입니다. 캐나다 와서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는 아웃도어 생활을 즐기다보니 평소 차림새도 극도로 케주얼해졌습니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마천루 거리를 거닐면 가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밴쿠버 사람들의 보편적인 차림새가 워낙 자유스럽고 캐주얼하여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동화되었고, 밴쿠버에서의 직업도 정장을 입을 일이 없는 일이다 보니 옷차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이들어 생김새가 완전히 뽀대없고 초라하게 변하다 보니, 차림새라도 좀 댄디해져야 사람 대접 받을 수 있겠다 싶어 신발부터 검정색에서 탈출해보고, 양말도 발목에서 많이 올라오지...
왜 회개하라고 하는가 -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데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죄인이라는 말과 회개라는 말에 알러지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너나 죄인해라. 나는 죄 지은 것 없다. 바보들” 이런 응대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 왜 내가 근본적인 죄인인가? 죄는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 같은데, 왜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나도 자동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원죄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죽였으니, 죄인인 것은 맞겠는데, 나는 다른 사람 때려본 일도 없고, 사기친 일도 없는데, 왜 무조건 회개를 하라고 하는가? 교회는 왜 사람을 다짜고짜 죄인 취급하는가? 좀 기분 나쁜 일 아닌가? 교회 다니고, 회개하고(?), 세례 받은 사람들까지도 일단 인정은 했지만, 그 후(?)로도 내내 생각 속에서 뭔가 정리되지 않고 뭔가 의문이 머리 속에서 뱅뱅 도는 것을 느낍니다. 왜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인정? 이건 억울하기도 하고 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고하게 잡혀가 취소실 안에서 부당한 공권력 앞에서 거짓 자백을 해야 하는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인정이라는 과격한 말보다는 영적인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구나 하는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인정하고(?) 인정을 이해 수준으로 좀 낮춰 볼까요? 인정이라는 레벨보다 낮추어서 이해라는 차원에서 한번 접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정은 영적인 차원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건방지게(?) 따질일이 아니라 납작 엎드려 순종해야 할 일이지만, 창조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억지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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