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하면 망한다

이거 하면 망한다

과학 혹은 공학을 할 때, 과학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연구나 개발 대상에 대하여 접근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구 대상에 대한 정성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다루는 물질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떤 화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물리적 특성과 강도가 있는지를 알아야 그걸 가지고 뭘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재료나 물질을 사용하여 만들려고 하는 목적물에 얼마만큼의 양을 사용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두께로 사용해야 할지, 날 것 그래도 사용해야 할지 혹은 구워서 사용해야 할지, 사용해야 할 재료의 모양과 양을 정확하게 결정하는 것이 정량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은 바로 이 정성적인 연구와 정량적인 연구가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어떤 연구나 판단을 할 때, 정성적인 연구는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 하는 일이고, 정량적인 일은 연구의 결과를 구체화 시키거나, 엔지니어가 어떤 구조물이나 물건을 만들려고 설계를 할 때, 만들려고 하는 물체에 들어가는 물질의 양, 두께, 크기를 구체적인 수치로 결정하는 마무리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판넬의 두께를 결정하고, 타이어 크기를 결정하고, 자동차 무게를 어떻게 하면 가볍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그런 모든 것이 엔지니어들이 일상으로 하는 일들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정성적인 것과 정량적인 것이 따로 국밥은 아니고, 항시 얽혀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도 과학자는 정성적인 일을 하는데 가깝고, 엔지니어는 정량적인 일을 하는데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과학자나 엔지니어 모두 정성적인 것과 정량적인 부분 모두에 대한 지식 기반이 없이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정성적인 것은 사용할 재료들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느냐, 정량적인 것은 그 재료의 양을 정확하게 얼마만큼 사용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과학자나 엔지니어만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늘 일상에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성적인 일과 정량적인 일을 동시에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머니가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위하여 된장찌개를 끓일 때, 재료를 선택하는 것은 정성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된장 찌개에는 된장을 넣어야 하고, 두부도 넣고, 호박도 넣고, 콩나물까지 넣으면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아는 것은 된장찌개의 정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머니는 이미 과학자 수준의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정량적인 일은 된장찌개에 넣어야 할 된장의 양, 감자 몇개, 두부 몇 모, 콩나물 얼만큼, 그렇게 된장 찌개에 집어넣을 재료의 양을 결정하는 것이 정량적인 결정입니다. 즉, 된장 찌개 하나도 정성적인 분석과 정량적인 결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에는 된장 찌개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온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도의 양, 혹은 크기를 어떻게 느낍니까? 덥다 춥다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덥다 춥다를 정량적으로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인간들이 그 보이지 않는 온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온도계입니다.

매운 정도도 단계를 나누고 수치화 했습니다. 한국어로 맵다라는 말은 영어로는 hot하다라고 씁니다. 반대로 영어로 hot하다는 말은 한국어로는 뜨겁다로 해석이 됩니다. 한번 해석하고 두번 해석하는 동안 뜻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아, 시원하다”라고 하는 한국 사람들을 미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뜨겁거나 매운 정도를 표현하는 말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와 음식은 문화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나타내는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들을 정량화 할 수 있다면 다른 문화를 대할 때 이해도가 훨씬 급상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람은 화가 났다는 표현을 요즘은 열받았다고 표현합니다. 미국 사람이 들으면 화상을 당한 줄 알 수도 있습니다. 한국말로 화난다 라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열에 아홉 이상 한국 사람들은 anger로 표현할 겁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은 anger와 yelling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Yelling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운다” 혹은 “크고 시끄럽게 이야기한다” 그 정도의 뜻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anger가 더 센 겁니까? Yell이 화냄의 정도가 더 심한 겁니까? Anger와 yell 둘다 화를 낸다는 것의 정성적인 뜻은 같지만,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영어 문화권에서 생활해보지 못한 이민자들은 anger와 yell의 정량적인 차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사전에 나오는 yell의 뜻을 찾아보고는 이민자들은 yell을 아이가 울거나, 때 쓰거나, 소리지르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Anger와 yell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영어문화권에서 평생 살아온 어른에게 anger 한 번 해보라고 하고, 그 다음에 yell 한 번 해보라고 하여, 그것을 보고 배우는 방법이 anger와 yell의 차이를 가장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선책이 있습니다. Anger는 뭐 그냥 화를 내는 모습을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화를 크게 낸다, 조금 낸다 정도로 그냥 감으로 알 수 있는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다만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yell이라는 말을 캐나다 오니 참 흔히들 쓰고 있는데, yell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AI에게 yelling하는 사람을 한 번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yelling이 어느 정도의 화냄인지 누구나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 그려주는 구글 AI Whisk에게 요청했습니다. “월마트에서 직원에게 옐링하는 손님 모습을 그려주세요?”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위의 그림들은 AI가 그려준 여러 그림들 중에 둘을 뽑은 것입니다. 다른 것들도 모두 다 이 정도이거나 이보다 더 심하게 극한의 화냄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들입니다. 알고보니 옐링은 정량적으로(?) 화를 무지하게 많이 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저 놈은 옐링하는 놈이다라는 소리를 절대로 들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원래 과학이나 공학에서 정량적이라고 함은 정확한 수치로 그 양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즉 두께나 길이는 mm나 cm로, 무게는 g으로 양을 측정 가능한 값으로 정확하게 표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는 정도를 정량적으로 표시하기는 좀 난감합니다. 과학이 더 발전하면 그것도 계량 가능한 값으로 표시하고 측정해낼 수 있을까요? 현재 화남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표시할 수는 없지만, 화를 내는 사람의 표정으로 개략적인 화남의 정도를 감으로 그 양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혀로 매운 정도를 가늠하듯이 말입니다. “감”이라는 정량 잣대로 측정한 옐링은 상당히 양이 크거나 높은 것입니다. AI를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의 개그지요?

성경에는 나쁜 행동들에 대한 언급이 수없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행동은 화를 내는 행동입니다. 화를 내는 것, 정말 악한 행동의 근본이고 진원지입니다.


[잠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Pr 15:18, NIV] A hot-tempered person stirs up conflict, but the one who is patient calms a quarrel.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Eph 4:31, NIV] Get rid of all bitterness, rage and anger, brawling and slander, along with every form of malice.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Eph 4:26, NIV] "In your anger do not sin": Do not let the sun go down while you are still angry,


그러면 화를 내지 않고 대신 해야 하는 행동은 어떤 행동인가요?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Eph 4:32, NIV] Be kind and compassionate to one another, forgiving each other, just as in Christ God forgave you.


[히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Heb 12:14, NIV]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everyone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


옐링(yell), 이거 하면 망하는 행동입니다. 절대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될 수 없는 행동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도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은 그 놈, 옐링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이 옐링을 살인과 동일한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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