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탁의 전설

꼬끼탁의 전설

웨스트밴쿠버에 정이 많고 천진난만한 부모님을 둔 천방지축 개구장이 낭만파 꼬맹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밴쿠버 밤하늘에 오로라가 보이던 어느해 이른 봄, 하루는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사리 손에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이를 반기는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으니 얼음장같이 차갑습니다. 뒷산에 아직도 눈이 쌓여 추운 날씬데 뭔가 손에 비닐봉지까지 하나 쥐고 걸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엄마가 아이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이구 손이 얼었네, 이건 뭐니?”

“Chic!”

엄마가 비닐 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태어난지 며칠 되어보이지 않는 병아리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보고 짹짹거리는 그 앙징스러운 모습에 반해서 전재산 2불을 털어 사온 것입니다. 그런데 꽤 쌀쌀한 날씨에 그냥 비닐봉지 안에 들어가 흔들거리며 왔으니 그 조그만 몸이 얼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거의 저 세상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얼었네!”

엄마의 그 소리를 듣고는 낭만파 아이가 “그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럼 통닭이 될텐데. 먹을래?”

정이 많고 삶의 스탠다드 기준이 높은 천진난만한 엄마의 그런 소리를 듣고는 아이가 기겁을 하고는 “아니!” 전자레인지로 향하는 엄마를 온몸으로 막아섭니다.

엄마의 호전적인 대응에 아이는 울컥하며 “Help me please, Mom.”

“그럼 우리 손이 뜨거운 해결사 아빠에게 부탁해보자.”

둘이 꽁꽁 언 병아리를 들고 서재에서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머리를 박고 있는 천진난만한 낭만파 아빠에게 가 보여주었더니, “헐!”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즉각 움직이는 골때림.

병아리를 그 큰 두 손으로 감싸니 손만 보이고 손 안의 병아리는 보이지 않게 완전히 인간손 인큐베이터 안에 갇힌 모습. 그것도 모자라 아빠는 거실로 나가 거실에 들어선 햇볕에 웅크리고 엎드려 햇볕 플러스 손바닥 체온 원적외선 첨단 의료 시스템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손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지고, 삐약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

멋짐폭발 아빠의 그 소리에 센스쟁이 엄마가 접시에 물을 담아 가져왔고, 아빠가 손을 여니 병아리가 기어나와 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물 찍고, 하늘 보고 넘기고, 유전자에 입력된대로 움직이는 그 모습. 귀염뽀작!

“집에 좁쌀이 있나?”

물 마시고 좁쌀까지 먹더니, 완전 원기회복, 분기탱천. 온 집안을 폭주족 오토바이 내달리듯 휘달리면서 찍찍 배설물 난사시작. 강아지에게는 가능한 배변교육 삐약이에게는 절대 불가.

살아난 것은 좋은데, 이게 뭐람? 아이는 그저 좋고, 신기. 어른 둘은 ‘헐!’

태어난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 쬐꼬만 놈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합니다. 거친 하이톤은 엄마 찾는 소리, 낮은 톤의 조금 귀여운 짹짹거림은 먹을 것 찾는 소리.

거친 톤을 난사할 때, 아빠의 두 손으로 솜털같은 쬐끄만 놈의 몸을 감싸면 놈은 손바닥에 스스륵 기대며 눈까지 같이 자동 스르륵, 한잠 콜콜. 그러다 깨어나 낮은 톤, 먹을 것주고 마실 것 주면, 잘 먹고 마신 다음, 다시 온 방 돌아다니며 난사.

그렇게 조그만 아파트 방에서 녀석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병아리 모습을 털고, 중닭 모드로 들어가려고 할 즈음, 자동차 고치던 아빠는 UBC 기계공학과 교수로, 집에서 독학으로 우크렐레 치던 엄마는 UBC 음대 교수로 초빙되어 웨스트 밴쿠버를 떠나 UBC쪽으로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집에서 닭을 키울 수 없어서, 꼬끼오는 그냥 웨스트 밴쿠버에 홀로 남기고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꼬끼오와 낭만 가족의 생이별, 그래도 웨스트 밴쿠버에 홀로 남은 꼬끼오는 산책하던 사람들이 너구리나 코요테의 습격을 받으면, 용감무쌍하게 나가싸워 그것들을 물리치는 기개를 발휘하여 웨스트밴쿠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멋있는 싸움닭으로 잘 성장해주었습니다.

닭이란 걸 본 적이 없는, 지가 사람인줄 아는 녀석은 옛가족들이 너무나 그리워 UBC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다 망부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망부석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황동상으로 진화했다는 전설이. 그리고 녀석이 울부짖을 때, 꼬끼오하면서 날개를 탁탁 털어, 이름을 꼬끼탁으로 지어주었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는.


그리고 녀석이 눈물 흘린 자리에 그 눈물이 수선화가 되어 피어났다는 눈물겹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그 수선화는 꼬끼탁이 난사한 닭똥을 먹고 정말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는 그런 또 다른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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