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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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대한민국 산업역군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그 땅에 태어났고, 그 역할에 나름 충실히 일조한 바 있습니다.

그때가 1980년대와 1990년대입니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신나게 해외출장도 자주 다녔습니다. 당시 출장가서 본 미국은 한국촌놈 눈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마치 우주선 타고 어디 갤럭시에라도 간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K-Pop의 나라고 매력적인 나라고, 잘 사는 나라로 세계인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아직 못사는 나라였고, 개발도상 국가였고, 미국은 세계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저세상 세계였습니다. 미제가 세계 최강이었고, 모든 나라들이 미국에 물건을 파는 것이 지상목표였던 시대였습니다. 

일단 미국에 처음 땅을 내디뎌보니, 보이는 거리풍경부터,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의 풍요로움까지 한국촌놈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 호텔에 처음 들어가보니, 침대 놓인 호텔안도 호화스럽게 보이고, 호텔밖 한여름 태양볕 밑에 쭈쭈빵빵한 사람들이 수영장에 둘러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코스트코지만 당시에는 프라이스 클럽이었는데, 저게 뭐지 싶어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회원이 아니라고 제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안에 들어가서 구경한번 하려고, 나 외국인인데, 한번 구경하면 안되겠냐 어짜피 너희들 물건 파는 게 목적 아니냐? 나 현금으로 살께. 그렇게 떼를 쓰고 있으니까 매니저가 나와서 뭘 살건데 라고 묻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살께 하니까 들어오라고 하여 회원가입 없이 코스트코의 전신인 프라이스 클럽을 구경한 경험이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정말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물건이 잔뜩 쌓여있고, 가격은 또 왜 그렇게 싼지.

그리고 지금은 월마트지만 당시에는 월마트는 보이지 않았고, 마트의 대명사는 Kmart였습니다. K가 코리아와는 상관없는 K였던 것 같은데, 세계를 점령한 지금의 K-Pop과 이미지가 교차되며 묘한 느낌입니다. Kmart 안에는 프라이스 클럽에 없는 온갖 잡동사니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한국에서 미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져 전량 수출되어 미국에 깔려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물건을 정작 한국 사람들은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이 미국 시장의 하청공장이었던 시절입니다. 

그게 나중에는 월마트로 바뀌면서 매장에 메이드인 코리아는 사라지고, 메이드인 차이나가 쓰나미처럼 밀려들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을 오가며 미국 매장을 구경하면서 그 물건들에 매료되어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묘한 게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가격표시입니다. 당시 한국가격은 정직한 가격입니다. 십원이면 십원, 백원이면 백원, 천원이면 천원이었고, 물건값을 깎는 방법은 “아이 조금만 더 줘” 뭐 그런 방식이었는데, 미국에 표시된 가격은 $9.99 뭐 이런 식입니다. 10은 보이지 않는데 이게 10불이지, 9불입니까? 그리고 절대로 가격내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걸 가지고 싶으면 에누리 없이 표시된 그 가격의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럼 $23.50은 어떻게 느껴집니까? 야, 25불 짜리 물건을 좀 착한 가격으로 주나보나,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그럴만한 것이 99센트를 붙이지 않고 50센트를 붙여놓은 것이 양심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5달러나 29달러가 아니라 싸게 느껴지기에 충분합니다. $15불에 줄 수 있는 물건인데, 묘한 분위기를 주는 숫자 조합을 만들어 십불 대 물건이라는 것을 은폐하는 작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박싱데이에 정말로 그 물건에 15불 딱지가 붙은 걸 볼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이익을 남기는 것이 장사의 목적이고, 상술이라고 자본주의의 이치와 원리가 그런 것이라고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내놓고 사기치고 속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나요?

하지만 이런 조그만 물건 가지고 그러는 것은 양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평생 집 한채는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불난 금융이 일을 내기 시작합니다. 돈 벌이를 위하여 집 있는 사람에게 집 담보로 대출을 해주어 집을 하나 더 사게 합니다. 그러면 대출이자로 은행이 이윤을 남깁니다. 그게 유행이 됩니다. 그러니 집을 여러채 가진 사람이 늘고 집 수요가 늘다보니 집값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모기지가 늘어나니 은행은 수익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버블이 꺼지자 모두들 경험했던, 전세계를 흔들었던 미국의  그 난리블루스가 터집니다. 그 일로 미국의 집값이 폭락을 했습니다. 그러면 정상으로 돌아간 그 집값을 그 자리에 묶어두고 다시는 그런 투기 열풍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 사는 집을 투기의 수단으로 삼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정치하는 놈들이 그걸 하지 않았습니다. 돈없이 정치할 수 없는 세상이니 그런 걸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산주의가 제일 한심한 것이라고 민주주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상업자본주의에 찌든 민주주의 사회는 아직도 공산주의보다 훨 나은 세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산주의와 비교해서 똔똔, 도토리 키재기 아닌가요? 왜 그렇게 되었나요? 두 사회, 두 진영이 추구하는 목표가 뭐 별다른 게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둘다 이제는 돈이 최고이고, 돈만이 세상을 구원하고 자기를 구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그것만을 위해 사는 세상이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돈이 사람의 모든 죄악을 숨겨주고

돈이 남들의 부러움을 사게 하고

돈이 매력적인 여자를 대령하고

돈이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주고

돈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고

돈이 원수를 땅에 쓰러뜨리지!

그러니 돈 없으면 패가망신이요,

세상만사는 돈으로 돌아가지

돈만 있으면 천국도 갈 수 있으니

현명한 자들이여, 돈을 쌓아라!

-이탈리아 풍자시-


위의 풍자시는 중세시대 메디치 가문이 교황을 매수하여 돈과 권력을 모으던 시절에 사람들이 그 당시 사회를 풍자하여 입에 올리던 것입니다. 문명이 한껏 발전했다는 지금이나 예나 사람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이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정확한 소식인지 모르겠는데, 캐나다에서 2년간 유학생 유입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치솟는 주택 렌트비용을 잡기 위한 임시조치라는 것입니다. 인구유입에 비례하여 주택을 건설하는 등 미리 대처했어야지. 집값이 이미 천정부지로 오른다음, 뭐하는 짓인지? 다들 생활이 어려워 난리블루스입니다. 집값이 합리적인 가격이면 세상이 이처럼 나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와 금융과 부자들이 결탁하여 사람 살 집을 투기 수단으로 만들어 몹쓸 짓을 했습니다. 사람 살 집이 공급이 풍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집하나 어렵지 않게 장만할 수 있는 세상이면 지금처럼 사는 게 힘든 세상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렌트값이 젊은 사람이 벌어서 낼 수 있는 수준이 이미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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