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어느 수준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나
인간의 마음은 어느 수준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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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호수 붕괴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뉴스가 전쟁과 트럼프보다 더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온난화인데, 그 명백한 원인을 놔두고 너무나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후 온난화는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열을 최종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육지보다 더 넓은 바다를 채우고 있는 바닷물입니다. 바닷물 온도상승은 대기의 온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전에 없던 기후 대재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대기의 강이나 토네이도, 여름과 겨울이 바뀐 기후는 오히려 빙산의 일각일 수 있습니다. 바닷물과 대기의 기후 상승으로 인하여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동토층입니다. 동토층, 동토층은 말하자면 땅밑에 얼어있는 얼음이 그 핵심입니다. 앞으로 기후 대재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동토층의 붕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년설에 덮혀 있던 툰드라 땅과 고산지대이 빙하가 녹으면서 동시에 녹는 것은 땅 속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그 얼음 때문에 단단했던 땅이 물렁해지고 진흙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 영향 때문에 툰드라 지역의 땅이 꺼져가면서 집이 기울어지고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벌이진 이번 참사의 원인도 사실은 고산지대에서 일어난 동토층의 붕괴입니다. 단단하게 땅의 하층부를 지지하고 있던 기반이 물러지니 거대한 빙하가 허물어져 내린 것입니다. 그것이 빙하호수의 댐을 터뜨린 내관이 된 것입니다.
빙하의 붕괴로 인한 물난리 이후에는 물부족 그리고 기온 상승으로 인한 각종 병원균과 세균의 창궐로 인한 질병이 지구촌을 휩쓸 것입니다. 동토층의 붕괴는 그런 시나리오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상 최대의 군사강국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는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일축하면서 지구의 온난화 방지 대첵에서 발을 뺐습니다. 그것은 지구촌의 맏형 노릇을 포기하겠다는 신호탄이 되었고, 그 이후 각종 망나니 짓을 시리즈로 벌이고 있습니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꼬맹이 때 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배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나이든다고 저절로 젊잖아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란 것을 살아보면서 인간들을 보니 처절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그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이면서 어린 아이같이 노벨상을 꿈꾸고 자신의 이름을 곳곳에 새기고 싶어하는 정말 유아기적인 심리를 부끄럼없이 내놓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그렇게 혐오스러운 인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그런지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의 측근들이 특히 밴스 부통령같은 작자가 트럼프가 돈벌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면서 자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같은 의심이 들기도 하고, 트럼프가 마냥 꼭두각시만은 아닌 것도 같은 게, 밴스의 목적이 쿠바가 우선이었는데, 트럼프가 네타냐후에게 꼬드김에 넘어가 이란을 먼저 친 것을 보면 트럼프가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지간 미국 행정부의 행태는 지금 어른들이 하는 짓이 아니고 애들이 제멋대로 놀고 있는듯한 모습입니다.
대국의 대통령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행동하니 범생들은 어떻겠냐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거의 평균적으로 모두 유아 수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릴 때 책을 좀 읽은 것이 있다면 어른이 되어 그러지는 않을 듯도 싶은데 말입니다.
어른들이 차일디쉬(childish)하고 어리석고 이기적으로 구는 것을 우화로 표현한 것이 이솝 동화입니다. 그런 것만 좀 읽었어도 이기적이고 허세적인 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알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심리학까지 뒤지지 않고도 이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모파상의 목걸이 같은 고전만 읽어봐도 허세가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인지 알 수 있습니다.
허세 중에 이런 허세도 있습니다. “복권 당첨되면 너 1억 줄게”라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에게 허세를 부리는 바보같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그걸 몰라서 더 바보입니다.
문학적으로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현대 심리학으로 보아도 거의 정신착란 증세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먼저 그런 행동을 하는 기저에는 “사회적 승인이나 인기도에 대한 욕구”가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돈을 쓰지 않고도 넉넉하고 인심좋은 대인배 이미지를 타인에게 각인시키려하는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큰 돈을 나눠주는 베푸는 위치에 자신을 놓아 집단 내에서 호감, 존경,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싶어하는 그런 유아기적인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리고 도파민에 취한 마약 환자같이, 있지도 않은 복권 당첨이라는 판타지에 취한 정신병자입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경제적, 사회적 결핍을 복권 당첨이라는 우연의 이벤트에 당첨될 것이라는 최면으로 덮고 있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돈을 쓰지 않으면서 최대의 과시 효과를 누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전혀 가능성 없는 나눔을 약속할 때 상대방이 보여주는 고마워하는 반응, 환호를 통해 가상의 승리감에 도취되는 정말 하찮은 심리상태입니다.
또한 미래의 커다란 한 방을 설정하여 현재의 자신의 약함이나 부족함을 과대포장된 너그러움 뒤로 감추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복권 구매에 대한 명분 만들기이기도 합니다. 매번 복권을 사면서 느끼는 은밀한 죄책감이나 허무함을 복권이 당첨되면 남들 나눠줄 착한 의도라는 도덕적 명분으로 포장하는 심리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현실의 리스크는 제로인 상태에서 타인으로부터 상위 계층의 관대함과 호감을 사전 구매하려는 심리적 거래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로 사기치고 구라치는 창피하고 유치한 행동이라는 겁니다. 나이들어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할 게 아니지요. 품격의 문제입니다.
그럼 성경적인 측면에서 복권 구매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청지기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 물질과 돈을 하나님이 맡기신 선물이지 도구로 보는 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불확실성에 자산을 낭비해서는 안되는데 복권 구매는 불로소득과 탐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공급하심에 대한 불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번 돈을 불리면 안되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청지기의 자산 관리에서 정당한 금융활동은 나쁘게 치부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탕주의 투기와 합리적인 투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권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와 한탕주의이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를 가지지 못한 것이고, 그런 복권을 가지고 남들에게 떠들어대면서 인심을 얻는 것은 참 어른스럽지 않고 뇌없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이 복권을 입에 올리는 것이 지혜롭지 않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성경의 한 구절에서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돈을 더 좋아하면 교회 나가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돈을 우상으로 이미 섬기는 것입니다. 복권에 심리적으로 목을 맨다는 것은, 돈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마치 지니에게 사정하듯 돈을 달라고 하나님께 떼쓰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기복신앙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기 위해 나가는 곳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너무 약하여 그래도 복권 한 장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을 때, 귀신도 모르게 사고, 절대 복권의 복자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그래도 기본 체면이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떠벌리고 다니는 놈은 바보등신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면서 돈을 바랄 일이 아니라, 돈을 우상이 아닌 도구로 다루는 성경적인 믿음이 어떤 것인지, 현대 사회에서 자족하는 삶을 사는 지혜가 어떤 것인지, 땀흘려 번 돈으로 어떻게 이웃사랑을 구현하면서 살 것인지 그런 것을 이마에 피땀나게 고민하고 성경을 묵상해보는 것이 참된 기독교인의 자세 아닐까요? 뭐 생각이 그렇게 고상하게 잘 되겠냐만 그렇게 생각이 잘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번민해보는 양심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말이지요. 주말 밤, 야간 산책을 하면서 쥐뿔도 없는 믿음 가지고 그런 고민을 한 번 해보았습니다.
<링크> 돌아온 사자왕 스칼렛 - 웨스트 밴쿠버 홈스튜디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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