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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고추가 자유스러운 날 - 요 레이크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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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고추가 자유스러운 날 - 요 레이크 트레일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얘네들, 이 쬐꼬만 하늘고추들은 어떻게 하루종일 분기탱천(憤氣撐天)해 있을 수 있을까? 참 고추들 자유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견 부럽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등으로 한 나무에서 여러가지 색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올해 우리집 발코니에 분양한 하늘고추는 초록색에서 그냥 빨간색으로 두 가지 색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7월 초, 한가한 수요일 오후 느즈막히 뒷산 사이프러스에 올랐습니다. 겨울이면 스키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여름이면 등산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산입니다. 여름에는 또 블랙마운틴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글라이더를 오픈하여 그걸 타보려는 사람들이 또 많이 꼬여듭니다. 블랙마운틴을 리프터 타고 오른 다음, 이글블러프를 구경하고 미끄럼 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올 수 있습니다. 그걸 타려면 웹사이트에서 미리 표를 구입하고 타는 것이 편합니다. 그걸 타려고 사이프러스에 오른 것은 아니고 그냥 한가롭게 요 레이크(Yew Lake)나 한바퀴 돌까하고 올라간 것입니다. 트레일 주변으로 야생 블루베리가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7월 중순 이후 야생블루베리를 맛보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프러스 산에 7월부터 9월까지 블루베리가 온 산에 지천입니다. 요레이크의 모습이 참 예쁩니다. 물이 얕고 겨울에는 온 호수가 얼어붙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이즈음 높은 산 트레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키작은 풀꽃은 번치베리(Bunchberry)입니다. 흰색과 초록의 콤비가 ...

Have mercy on me

Have mercy on me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옛날 이스라엘 여리고 신작로 먼지 날리는 한 귀퉁이에서 이런 샤우팅을 한 사람은 바디매오입니다. 


[막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Mk 10:46, NIV] Then they came to Jericho. As Jesus and his disciples, together with a large crowd, were leaving the city, a blind man, Bartimaeus (which means "son of Timaeus"), was sitting by the roadside begging.


바디매오, 그는 거지입니다. 거지인데, 세상을 볼 수 없는 맹인입니다. 그 처지로만 보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 보잘것 없는 인생의 이름이 무려 성경에 기록되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의 이름을 읽고 알게 되었고, 믿음의 표상으로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효자가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이 해프닝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바디매오가 그냥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디매오, 맹인 거지 바디매오의 아버지입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자기 아버지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게 만들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 바디매오가 거지로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할 때, 아버지 디매오가 바디매오를 겉옷하나 덮어주며 거리로 내쳤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에게 잘 케어받다가 아버지 디매오가 죽으면서 거지생활이 시작이 되었을까요?

마가는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를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자신의 기록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바디매오의 아버지가 누군지 수소문해서 알아내었을까요?

저의 상상으로는 바디매오는 아버지 디매오에게 극진히 케어를 잘 받으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디매오가 변고를 당하는 비극을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사실이 그 동네에 잘 알려져 있어서 마가가 디매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디매오가 사람들이 핀잔을 주는데도 마구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가 살아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케어를 잘 받은 때문 아닐까요?

인생이 아무리 힘겨워도 가족간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있는 동안 평생 서로 잘 돌보라는 주님의 메시지가 이 스토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왜 효도하라는 거냐? 지들끼리 좋아하다 내가 태어난 거지. 내가 원해서 태어난 거냐?”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지만 성경적으로 맞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모두 아시고 케어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이 아무리 고난같아도 주님을 소망하고 바라보고, 그 분의 손끝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구원이 내게도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Isa 49:16, NIV] See, I have engraved you on the palms of my hands; your walls are ever before me.


마광수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무릎 꿇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캐어하는 대상을 부모나 자식에게로 국한시키지 말고, 이웃으로까지 지경을 넓혀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그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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