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보다 세단

트럭보다 세단

북미인들의 차에 대한 로망 중의 하나는 픽업 트럭입니다.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그게 남자들만의 바램이 아니라 심지어 여자들도 픽업 트럭 몰고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실제로 여자들이 그 큰 트럭을 몰고 다니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 픽업 트럭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북미를 구경해보지 못한 한국사람들은 뭔 픽업 트럭이냐 하실 겁니다. 한국에서 트럭이라고 하면, 기아 봉고같은 것이 먼저 떠오릅니다. 1톤 트럭 위에 무나 배추 싣고 다니면서 “자, 싱싱한 배추가 왔어요”를 외치는 장사치가 먼저 생각날 것입니다.

하지만 북미에서의 픽업 트럭은 뒤 짐칸에 뭘 싣고 다니면서 장사를 할 목적의 차가 아니고 그냥 승용차처럼 타고 다니는 개념의, 자신의 폼을 드러내는 그런 용도의 차가 픽업 트럭입니다. 그리고 그 픽업 트럭의 가격이 스포츠카 정도의 가격이라 일단 픽업 트럭을 몬다는 것은 그걸 유지할 수 있는 경제수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휘발유값이 승용차의 두 배 이상 들어갑니다. 정비비용도 일단 승용차보다 비싸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픽업 트럭을 몬다? 일단 그 사람 보통 이상의 부자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저도 캐나다로 이사오면서 로망이 픽업 트럭에 travel trailer 달고 샤방샤방 캠핑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뭘하다 아직도 트럭을 소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 로망이 이 생애에 이루어질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트럭은 없지만 실제로 캐나다 이곳저곳을 캠핑해보니, 캐나다의 캠핑장이 정말 좋습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실도 있습니다. 캠핑이 아니라 야외호텔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고급진 캠핑장들이 provincial park에 가면 거의 기본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트래블 트레일러까지 있으면 캠핑장에 호텔같은 침실이 있고, 키친이 있는 것입니다.

내 트럭은 없는데 남의 트럭을 정비하는 생활이라니! 그런데 그 트럭을 정비하면서 트럭이 너무 더럽거나 너무 낡아서 손대는 곳마다 쉽지 않거나, 그런 걸 정비하다가 다치면 신경질이 납니다. 오늘도 머리를 긁히고 피가 나고 아픕니다. 트럭의 날카로운 플라스틱에 긁혔습니다. 디젤 엔진 트럭입니다. 디젤 엔진, 공해 배출이 많고, 엔진오일이 시커멓게 변하고, 엔진룸이 너무 좁고 복잡하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차입니다. 이 트럭은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왔는데, 버큠릭(vacuum leak) 테스트를 해보니 어디서 분명 새고 있는 것이 확실한데, 냉매와 다이(dye)를 재충진하고 에어컨을 돌려보면 바깥쪽에서는 새는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곳, 차 안쪽의 이베퍼레이터(evaporator)에서 새는 것인데, 이건 차를 뜯어보기 전에는 확인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해서 샵포맨과 협의하여 에베퍼레이터 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물건이 캐나다에는 없고, 미국에 있습니다. 파트가 도착하면 대대적으로 일을 벌려야 할 트럭입니다.

어제 작업을 시작한 다른 트럭은 라디오 뒤쪽에서 따르륵거리는 소리가 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소리의 원인은 히터 에어컨의 모드 도어(mode door) 콘트롤 엑츄에이터입니다. 템프 도어(temperature door)는 몸을 뒤집고 페달있는 쪽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보이고 손도 어느 정도 넉넉히 닿습니다. 그런데 모드 도어는 템프 도어보다 더 위쪽에 있는데, 손도 겨우 간신히 닿고, 작업할 수 있는 여유 공간도 거의 없습니다. 모드 도어 엑츄에이터를 교체하려면 운전석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뜯어내야 합니다. 조그만 놈 때문에 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지엠 딜러샵에서 일하다보면 트럭, SUV, 세단 정비 비율이 거의 대등하게 30% 정도씩 됩니다. 어느 때는 하루 종일 트럭만 정비하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줄기장창 세단만 가지고 씨름하는 날도 있기는 합니다. 트럭 정비하는 정비공이 몰고 다니는 차는 조그만 세단입니다. 밴쿠버 사람들은 겨울이면 윈터 타이어(스노 타이어)를 장착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꼭 눈이 와서라기 보다 온도가 내려가면 그늘진 도로에 밤새 얼음이 얼어 미끄러울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눈이 와야 스노타이어를 다는 줄 압니다. 그래서 11월에 눈이 두어번 오면 딜러에 쌓아놓은 윈터 타이어가 몽땅 팔려나가고, 12월이 되도 타운에 눈 한번 오지 않으면 딜러에 쌓인 팔리지 못한 윈터 타이어들은 이듬해 봄에 땡처리되는 비극을 겪습니다.

밴쿠버에 살면서 겨우내 휘슬러로 스키 한번 타러 가려는 사람들은 무조건 윈터 타이어를 달아야 합니다. 밴쿠버와 휘슬러를 잇는 씨투스카이(Sea to Sky) 하이웨이에 들어서려면 10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의무적으로 윈터 타이어를 장착해야 합니다. 썸머 올시즌 타이어가 많이 닳아 이걸 언제 교체하나 조바심하고 있던 차에 올해는 시월이 오기 전에 윈터 타이어를 야무지게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달려 있는 타이어를 보니 정말 많이 닳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코스트코에 접속하여 브릿지스톤 윈터 타이어 네짝을 결재했고, 인스톨 예약을 잡아 코스트코에 가서 윈터 타이어를 겨울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달았습니다. 타이어에 대한 고민을 덜었습니다.


코스트코에서 타이어를 교체하고 한인타운에 들려 설렁탕과 우거지해장국으로 점심배를 채웠습니다. 배도 차도 호강하는 날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앞 비치 파크에서 잠시 바닷바람을 즐깁니다. 정말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삽니다. 


저녁에는 삼겹살 바베큐,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트럭하고 트래블 트레일러만 없고 다 있다.


제 블로그 홈페이지를 열면 블로그의 모든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vancouver-story.blogspot.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태양이 뿔났다

아일랜드로 – Kinsol Testle, Sooke, French Beach, Pothole Park, Rathtrev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