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 모음

실패가 성공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쇼핑 철학

이미지
실패가 성공이다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쇼핑 철학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형사 콜롬보”를 아십니까? 흑백티비 시대를 사신 분들은 그 옛날 주말의 명화만큼이나 열심히 챙겨보던 수사 드라마입니다. 물론 당연히 미국 드라마입니다. 한쪽 눈에 의안을 한 작은 체구의 형사 콜롬보가 늘 한결같이 헐렁한 트렌치 코트를 걸쳐 입고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단서를 찾고 범인의 행적을 더듬어 가며 골똘히 생각하는 장면이 이 드라마의 아이덴티티입니다. 형사 콜롬보가 드라마에서 입던 그 트렌치 코트를 사냥하기 위해서 드라이빙을 시작했습니다. 구글 맵에 제일 먼저 찍은 좌표는 포트 코퀴틀람의 월마트였습니다. “그 런던 포그 코트 찾아보러 가자”고 하니 아내가 쌍수를 들고 대환영입니다. 아내 옆에 더 멋진 남자를 세우고 싶어하는 저의 배려와 늘 남편의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아내의 욕심이 주파수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환상적인 영혼의 속궁합. 구토 주의. 그런데 갑자기 웬 트렌치 코트? 밴쿠버 생활 20여년, 한국에 있을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옷차림입니다. 캐나다 와서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는 아웃도어 생활을 즐기다보니 평소 차림새도 극도로 케주얼해졌습니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마천루 거리를 거닐면 가끔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밴쿠버 사람들의 보편적인 차림새가 워낙 자유스럽고 캐주얼하여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동화되었고, 밴쿠버에서의 직업도 정장을 입을 일이 없는 일이다 보니 옷차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이들어 생김새가 완전히 뽀대없고 초라하게 변하다 보니, 차림새라도 좀 댄디해져야 사람 대접 받을 수 있겠다 싶어 신발부터 검정색에서 탈출해보고, 양말도 발목에서 많이 올라오지...

순종과 불순종의 틈새

순종과 불순종의 틈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완벽한 말씀이라고 믿는 반면에, 예수를 믿지 않고 성경을 예수쟁이들이 만들어낸 종교 서적이나 전설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래서 틀린 구석도 많다고 놀리고 우습게 여깁니다.

노아가 방주에 실은 동물의 숫자가 오락가락하는 대목도 그런 사람들이 시비거는 대상 중의 하나입니다. 하루이틀 사이에 방주에 실어야 할 동물의 수가 한쌍에서 일곱쌍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그것을 보고 성경의 부정확함을 지적합니다.

당시에 나무를 가지고 그 큰 배를 짓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런 일을 하라고 노아가 숙제를 받을 때, 노아는 한마디도 이러쿵저러쿵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다시 뭐라고 묻는 일도 없었습니다. 노아가 뭐라고 궁시렁거렸을 건데, 창세기 저자가 노아가 하는 말을 적지 않았을 뿐이라고요? 창세기 저자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말 대답하면 꼬치꼬치 다 적은 사람입니다. 주님과 모세와의 대화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출4:13)

방주 만드는데 지쳐 짜증이 폭발할 법한 노아에게 방주에 한 쌍씩 실으라고 했다가, 일곱쌍씩 실으라고 했다가 다시 한 쌍씩 실으라고 하시는 주문(?)에도 노아는 전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습니다. 정말로 노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서 창세기 기자가 적을 말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오락가락 하는 말씀으로 노아를 시험했던 주님도 노아의 순종에 흡족하지 않으셨을까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19)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20)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창7:2)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7:3)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창7:9)

그리고 또, 이 방주의 역사를 기술한 예수쟁이가 바보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보통 사람 몇 배로 뛰어난 머리와 지능과 기억력을 가진 비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기록을 적으면서 그런 오류를 일부러(?) 그리 남기고 그런 비판이 나오는 걸 알면서도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고 있겠습니까? 그 분은 주님의 말씀을 감히 자기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것이었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적었고 유지했을 뿐입니다.

토달지 않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예썰” 대답까지도 주님 앞에 호사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저 묵묵히 순종할 뿐입니다. 그에 반해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습니다. 토를 많이 답니다. 불만도 많고, 핑계도 많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말이 불순종에서 나온 꽃이고 열매입니다.

말 많던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주님의 계획에 겁없이(?)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말 많고 핑계 많고, 이유도 많은 불순종의 대명사입니까? 아니면 고난과 인생이 주는 눈물을 경험하며 주님의 경외로움 앞에 무릎 꿇은, 범사에 감사와 기쁨으로만 충만한 순종파입니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예람 워십

성지용의인

아마존에서 이북 구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