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가 아직도 있네요

지프가 아직도 있네요

짚을 아시나요? 짚신이 아니라 짚(Jeep), 지프차. 516 혁명 당시 박정희 소장이 검은 선글라스 쓰고 짚에서 내리는 사진이 5~60년대 무더기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눈에는 익숙한 그림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망한 일본이 더 이상 산업국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농업국으로 만든 것이 미국인데,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가까운 곳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농업국으로 만든 일본에 공장을 세워 자동차를 만들고 대포를 만들게 한 것이 미국입니다. 한반도를 두 동강 내놓은 것도 미국이고 일본을 다시 산업국으로 일으킨 것도 미국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이 시쳇말이 세상 가장 잘 맞아들어가는 경우가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한 짓입니다.

일본에서 한국 전쟁에 투입할 지프차를 만든 것은 미쓰비스 중공업이고, 이때 크라이슬러 짚에서 기술이전을 받았습니다. 일본애들이 지엠씨라고 발음하지 못하고 지무시라고 하던 대형 군용 트럭은 토요타가 지엠의 기술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미쓰비의 선생이 크라이슬러고, 토요타의 선생이 GM인 것이 이때 정해진 줄입니다. 2차 대전때 미군이 폼나게 타고 다니던 그 짚이 아직도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습니다.

짚이 북미에서는 나름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들이 짚을 좋아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약간 골통기가 있기는 하지만. 2021년형 짚이 제가 일하는 딜러에 중고차로 들어온 것이 있어서 인스팩션을 했습니다. 타업체 중고차 인스팩션은 테크니션에게 반가운 작업이 아닙니다. 자기 딜러차 작업하기가 편합니다. 정비매뉴얼 정보와 TSB 정보도 완벽하게 제공이 되고, 부품 공급도 원활하고, 늘 하던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휘파람 작업입니다. 하지만 타업체 중고차는 일단 제공되는 정보망이 없습니다. 전기장치 회로도를 볼 수도 없고, 뭘 고칠게 있으면 순수 경험만으로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타메이커 자동차에 필요한 스페셜 툴이나 스캐너도 없습니다. 

새 차는 별로 심하게 작업할 게 없는데 비해 어디에서 언제 무슨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중고차 작업은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인스팩션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정도의 문제는 빠짐없이 찾아야 하고, 남이 찾지 못하는 문제까지 죄다 찾아야 합니다. 밤에 자다 벌떡 일어나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빵빵한 작업입니다. 중고차 판매 후 얼마되지 않아 문제가 발견되어 리턴되어 오는 확률이 제가 인스팩션한 차가 제일 적다보니 중고차 인스팩션이 저에게 몰리고 있습니다. 자동차 만드는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의 천분의 일 정도 밖에 안되는 강도지만, 그래도 꽤 신경이 쓰이는 작업입니다.

지금의 짚 모양은 군대에서 보던 짚과는 좀 다르게 겉모양을 많이 바꿨습니다. 짚을 원하는 사람은 옛날 군대짚 모양에 대한 향수가 있을텐데, 그냥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는게 맞는 건지, 모던한 스타일로 적응해가는 게 맞는 건지 신차 디자인 컨셉 잡는 담당자들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짚이지만 차체 크기가 SUV인데 뒷차축을 보면 트럭에 쓰이는 엑슬입니다. 전쟁 중에는 여러차에 동일부품을 사용하면 부품조달과 정비가 용이하여 트럭에 쓰는 디퍼렌셜을 짚에도 같이 쓴듯 합니다. 일본애들이 디퍼렌셜을 데후라고 한 것이 한국에 그대로 들어와 그 옛날 우리 한국사람들도 뒷차축을 데후라고 했습니다.


앞차축도 뒷차축과 같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앞차축은 뒷차축과는 다릅니다. 앞타이어는 방향전환을 해야하기 때문에 타이어가 좌우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유니버설 조인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륜 구동으로 가다가 도로 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후륜 구동으로 바꿀 수 있게 앞차축 동력을 차단하는 장치는 전자식 솔레노이드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티어링 기어박스도 트럭에 쓰는 것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진짜 한번 만든 걸로 수십년 우려먹으며 싸게 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명색이 짚이라고 가격은 비싸고, 정말 수익성 대박인 차종입니다. 


연료탱크 휘발성 가스를 포집하는 캐니스터가 작고 아담합니다.


그 옛날 샤시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엔진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걸 올렸습니다.


자동차 연구소에서 신차를 설계할 경우, 뼈대부터 완전히 다른 차를 설계하는 경우가 있고, 뼈대는 일부만 바꾸고 바깥 모양만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겉모양만 살짝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짚이 나온지 80년이 되었는데, 뼈대 설계는 80년 동안 기본 모양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바꿀 경우, 어마어마한 금액의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짚은 겉모양 빼고 새로운 설계가 거의 없으니, 팔기만 하면 이윤이 엄청 남는 장사를 해온 셈입니다. 그렇게 쉽게 장사를 해왔는데 왜 망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망해서 이태리 피아트에게 팔려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맡아서는 안될 크라이슬러를 떠맡은 피아트가 여기저기 돈 구걸하러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 뒷 스토리를 조사해보니, 결국 코비드까지 겹쳐 피아트가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는데, 주저앉은 피아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프랑스 르노고, 네덜란드 돈줄을 끌어들여 2021년에 Stallantis라는 다국적 기업을 만들어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기업 이름이 좀 뉘앙스가 좋지 않습니다.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대륙, 아틀란티스를 생각나게 만드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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