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Man


Journey Man

 

캐나다에서 티켓(정부공인 자격증)을 딴 사람을 저니맨(Journey Man)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경험과 경력을 쌓으면서 보다 좋은 보수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고, 이리저리 옮겨다닌다고 하여 붙인 시쳇말입니다.

 

그 말을 증명이나 하듯 부활절 금요일을 하루 앞둔 4월 중순의 목요일에 테크니션 마크(Mark)가 공구통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많은 쇠덩어리 공구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공구통 무게는 수백킬로그램에 달합니다. 굴려가야지 서너명이 달려들어도 들릴까말까 한 무게입니다. 그런 공구통을 나를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공구판매 트럭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북미에는 스냅온(Snap On)이나 맥툴(Mac Tool)같은 메이커의 공구판매 트럭들이 딜러와 샵들을 순회하며 공구통과 공구 장사를 합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공구통을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몇번 옮겨보다가 좋은 직장 잡으면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직장을 옮기면 그 직장에 적응해가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한 곳에서 오래 일해야 시간이 지나면 휴가기간도 늘어나고, 잘만 적응하면 이런저런 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는 것은 돈 문제 외에 다른 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편한 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크고 작은 실수를 많이 하여 마음이 불편하여진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를 잘 쌓지 못하여 불편하여진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크는 그동안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고, 좀 눈에 띄게 이기적인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한 북미지만 이기적인 것은 저 같은 동양인뿐만 아니라 북미에들 눈에도 고깝게 보이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마크는 람보르기니 딜러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람보르기니? 이태리가 만든 이름난 스포츠카 브랜드인데, 이게 아마 독일의 포르쉐에게 팔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포르쉐가 폭스바겐 것이니, 람보르기니도 결론적으로 폭스바겐 것인 셈인가요?

 

그건 그렇고, 람보르기니, 한국에는 몇 대나 있습니까? 그러면 밴쿠버에는?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리 많이 깔린 차가 아닙니다. 미쯔비시에서 일하던 테크니션이 하루종일, 차 한대 오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람보르기니도 그에 못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크 말고 또 한 테크니션도 샵을 떠난다고 합니다. 똑똑한 척하면서 정말 재수없게 구는 젊은 백인 친구입니다. “재수 없게 굴더만, 왜 가는 거지?”하고 붙임성 좋은 다른 테크니션에게 물어보니, 얼마전에 자기에게도 너무 재수없게 굴어가지고 한번 맘먹고 호되게 대들었더만 그 다음부터는 자기에게는 그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게만 재수없었던 친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여러 사람 기분 나쁘게 하고 미움 받으면서 계속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테크니션뿐만 아니라 샵포맨에게도 잘난 척하며 부딪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아이작(이름으로 보아 영국출신인듯)이라는 그 친구는 버나비에 새 건물을 만든 아우디로 옮긴다고 합니다. 그 아우디는 좋지 않은 소문이 있는 샵입니다. 테크니션들을 감시카메라로 모니터링 하면서 일을 밀어붙인다고 합니다. 그런 샵에 가서 매일 느그적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작이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저도 밴쿠버에 와서 이 정비일을 하면서 참 많은 저니(journey)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직장에서 18년을 일했는데, 밴쿠버에서는 2~3년 만에 직장을 옮기는 일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동안 일해본 딜러만 해도, 혼다, 토요타, 포드, 현대, 기아 등 너댓 딜러가 되고 지금은 지엠 딜러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곳처럼 좋은 딜러도 찾기 힘듭니다. 분위기, 테크니션에 대한 대우, 보수, 샵포맨의 도움, 작업장 환경 등 종합적인 고려를 해볼 때, 보기 드물게 좋은 직장입니다. 이런 직장을 찾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다른 곳에 가서 죽을 고생을 해봐야 뒤늦게 깨달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모든 곳을 다 경험해본 것도 아니고, 이곳보다 좋은 직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마크나 아이작이 가는 직장은 이곳보다는 나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전에는 독일 딜러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밴쿠버에서 유명한 BMW 딜러 매니저와 인터뷰해본 일이 있습니다. 겉모습의 샵은 뻔지르르하지만 한시간 동안 인터뷰하면서 느낀 분위기가 별로라 옮길 것을 거절하고 나온 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새로 온 매니저와 테크니션들 간에 갈등이 있어 많은 테크니션들이 그 샵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젊은 실업이 문제인 상황이지만, 기술이 있으면 산업이 미개한(?) 지약에서도 서바이벌 할 수 있습니다. 밴쿠버는 한국같이 대기업이 많은 도시가 아니고 더구나, 현대나 삼성 같은 큰 공장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스몰 비즈니스 중심의 미개한 산업, 아니 상업 중심의 도시입니다. 큰 기업이라면, ICBCBC Hydro같은 회사를 꼽을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제조업 회사는 아닙니다. 공무원이나 ICBC, BC Hydro같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기술을 배워 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밴쿠버에는 그렇게 서바이벌 할 수 있는 길로 BCIT라는 대학을 만들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삐까번쩍한 UBC 나와서도 기본급 수준의 일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BCIT에서 실용적인 기술을 배워서 경력을 쌓고, 자격증을 획득하여 일하면 기본급의 두세배 이상을 받으며 일할 수 있습니다. 밴쿠버의 기본 시급은 $10.7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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