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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베이스에서 SM58 마이크를 이용한 오디오 트랙 녹음 - 괄목할만한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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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베이스에서 SM58 마이크를 이용한 오디오 트랙 녹음 - 괄목할만한 성능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어떤 형태의 음악을 하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아니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녹음입니다. 노래든, 연주든, 처음에는 그 어설픈 실력으로 녹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녹음이라는 과정은 연주의 최종 목표가 멋진 연주인만큼 남들 앞에서 하는 연주가 아니라도, 전문 연주가가 아니더라도, 그냥 취미로 하는 음악이라도 연주에 의한 결과물로 만족을 할 수 있는 것인만큼 연주를 녹음하고 기록으로 쌓아두는 것은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그 발전 과정을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미디 키보드로 음악을 시작하면서 녹음을 할 경우 필요한 장비는 미리 준비를 해놓고도 아직 녹음을 제대로 해본 일이 없고, 사실은 살짝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과연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질 좋은 결과물이 나올까 싶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옛날 PC에 사운드 카드 꼽고 사운드 카드 뒤쪽의 마이크 단자에 혹은 노트북의 마이크 잭에 얄궂은 마이크를 꼽고 목소리를 녹음해본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소리는 나오지만, 퀄리티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뭐 지금도 녹음 준비라면은 마이크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녹음을 위한 기본 3대장이라고 하면,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리고 하는 음악 제작편집 프로그램과 오디오 인터페이스, 그리고 마이크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DAW는 독일이 만든 큐베이스라는 프로그램이고 노트북에 인스톨 했습니다. 그리고 오디오 인터페이스...

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지금 써놓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기억 한 조각

제가 꼬맹이 시절에는 대한민국에 아직 유치원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있었는데 저만 모르고 살았던건지는. 좌우지간 제 주변에는 그리고 그후 상당기간 동안 유치원이란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이름)에 처음 들어간 것은 서울 관악구 신림 사거리 부근 개천가에 살 때였습니다. 제가 들어간 학교는 봉천동에 있는 은천 국민학교입니다. 벌써 60년 전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은천 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본 건 캐나다로 이민 오기 얼마 전, 그 은천 국민학교 앞을 자동차를 타고 지나면서 본 것입니다. 그 때 제 눈을 의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동장이 정말 코딱지만하게 보였습니다. 꼬맹이 때의 기억은 정말 끝없이 드넓은 운동장이었는데, 어른이 된 눈에는 그렇게 조그맣게 보이다니! 어른의 눈에는 꼬맹이 때 본 것보다 열배 이상 작아보였습니다.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의 구글 위성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집들로 숨쉴 틈도 없이 모든 공간이 꽉 차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꼬맹이 시절 그 드넓어 보이던 개천들도 모두 복개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저는 2월생입니다. 주로 1957년생들이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시기에 저는 58년에 일찍 태어난 죄(?) 때문에 57년생들과 섞여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년이면 엄청난 변화가 있는 시기에 정신적으로 1년 어린 놈이 1년 더 성장한 놈들과 섞이자니, 학교 가기 싫어 매일 엄마 치맛자락 잡고 우는 게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참으로 잔인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울보로 시작한 학교 생활이었지만 엄마 손을 놓고 어떻게 적응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혼자 떨레떨레 학교를 오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니 꼬불꼬불 시골길을 따라 갔으면 1km 남짓한 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꼬맹이의 시각에서는 어른 시각보다 열배는 크고 길어 보였을 것이니, 어른으로 치면 꼬맹이가 십리 이상의 길을 매일 오간 것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 학교를 가자면 관악산에서 흘러나와 1년 내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깨끗한 신림천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건너 산을 올라야 했습니다. 산 쪽에 지은 초가집과 기와집을 지나로라면 감나무들도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그리고 산 위에 이르면 큰 나무들은 없고 낮은 초목과 풀들이 가득 자란 모습 너머 학교쪽으로 드넓은 논밭이 펼쳐졌습니다. 

논을 향하여 산을 내려가면 다시 큰 개천이 하나 나타납니다. 개천을 건너, 논밭을 지나면 학교로 이어지는 신작로가 나타납니다. 지금이야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지만 당시에는 그 큰 신작로도 전부 비포장이고 차가 다니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소가 끄는 우마차가 가끔 지날뿐이고, 어쩌다가 차가 한번 지나갈라 치면 차 뒤로 흙먼지와 배기가스가 범벅이 되어 휘몰아 쳤습니다. 꼬맹이들이 그 차를 쫓아가면서 배기가스 냄새를 맡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동차 매연 냄새가 뭐가 좋다고 그걸 쫓아가면서 흡입했는지? 정말 철없던 개구장이 시절이었습니다. 한국전쟁 후 얼마되지 않은 시절이라 산들은 거의 전부 민둥산이었고, 신작로를 따라 미루나무인지 플러타너스인지 키 큰 나무를 듬성듬성 심어놓았습니다. 여름이면 뙤약볕을 맞으면서 학교를 다녔고, 그 옛날 겨울이면 정말 추웠는데 그 추위를 뚫고 언손을 불어가며 꼬맹이가 학교를 다닌 것입니다.

여름철 학교를 파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노는 길입니다. 논에서 벼메뚜기를 잡고, 논두렁 물길에서 미꾸라지, 버들붕어, 물방개 등을 잡으며 놀다가, 산 위에 올라가서는 종달새 둥지를 뒤지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포함된 일입니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산을 내려와 집 앞 개천에 이르면 집에 바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개천가에 책가방을 놓고는 개천물에 뛰어들어 모래무지와 피라미를 잡으며 노는 것까지 마쳐야 그제야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밥 먹고 노곤한 몸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졸며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고. 그렇게 깨끗하고 물고기들도 많이 살던 개천이 얼마되지 않아 썩은 시궁창으로 변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전기 잘 들어오고, 집안 따뜻한 지금이 천국인 것 같지만, 살고 보니, 부족한 것 많고, 겨울에 우풍 때문에 방안이 추웠어도 그때가 오히려 더 천국이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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